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429화 끝없는 설원과 눈 내리는 하늘을 배경으로. 레테와 카리사의 추격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우, 씨! 더럽게 빠르네! 진짜!' 란에 올라탄 레테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좀처럼 따라잡기 힘들었다. 카리사의 움직임이 워낙 잽싼 데다가, 혹한으로 이쪽의 시야확보를 방해하고 움직임을 더디게 만들기까지 했다. 레테는 이제 카리사의 도주를 막기 위해 이동 경로에 신성유성까지 떨어뜨리고 있었다. "아까는 필멸자 어쩌고 하면서 비웃더니, 꽁지 빠지게 도망치기냐!" 나름 도발도 해보았지만, 카리사는 들은 척도 안 했다. '쳇.' 레테는 초조한 얼굴로 손가락을 깨물었다. 혹한의 반경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저 던전주를 절대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가게 둘 수는 없었다. '장기전에 진입하면 란의 체력이 먼저 떨어져.' 레테가 란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 눈을 감았다. 바로 지금이 승부수를 던질 시점. <오버 헤이스트> 녹색 광채가 번쩍이더니, 순간적으로 란의 비행속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섬광처럼 뻗어 나간 란이 단숨에 카리사의 꼬리를 휘감았다. [......!] 꼬리를 붙잡힌 카리사가 뒤를 돌아보았고, 잽싸게 백마법을 완성한 레테가 손바닥을 펼쳤다. <레테 오리지널 - 라 에스크림> 드릴의 형상으로 뻗어 나간 신성창이 카리사의 몸통에 제대로 틀어박혔다. 비늘을 뚫고 들어가는 걸로도 멈추지 않고, 회전에 가속이 붙으며 계속해서 파고들어 갔다. 카리사가 고통스럽게 비명을 내지르며 입을 벌렸다. 싸아아아아아아! 순백의 서리가 시야를 뿌옇게 가리자 레테의 몸이 얼어붙었다. 타고 있던 란까지 얼음으로 뒤덮였다. [하하하! 꼴 좋구나!] 카리사가 냉소했다. 빠직! 빠직! 그러나 레테를 가둔 얼음에 순식간에 금이 가더니. 째애앵! 레테가 두 팔을 떨치며 빠져나왔다. 바로 란의 몸에도 손을 올리자, 얼음이 녹아내리며 란도 자유로워졌다. 그사이에 카리사는 입과 몸통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다시 도망치고 있었다. "란! 거의 다 잡았어! 조금만 더......!" 그러나 란의 체력이 먼저 다했다. 외상이라면 회복으로 끝없이 일어나게 할 수 있었지만, 역시 문제는 지구력이었다. 지금까지 신성 브레스 한 방에 모든 적을 쓰러트리던 란에게, 이런 난적을 상대한 경험이 적었던 것도 한몫했다. "란!!" [크하하하하하하!] 카리사가 상처 부위를 얼음으로 뒤덮으며 계속 도망쳤다. 그가 포효할수록 혹한은 거세졌다. 산맥을 넘어 다른 따뜻한 지역까지 혹한이 향하고, 드넓은 바다는 끝도 없이 얼어붙고 있었다. '이젠 방법이 없어!' 레테가 검지와 중지를 붙인 채로 하늘을 세웠다. '맞든 안 맞든......!' "레테!!"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레테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시몬?!" 하지만 그의 이름을 외쳐놓고 레테는 의문에 빠졌다. 비행능력이 없는 그가 여기에 올 수 있을 리가. "!" 와 있었다. 화아아아아아아아아악―! 에스카일 산맥에 두 개의 태양이 떠올랐다. 태양처럼 거대한 신성을 매달고, 파직거리는 스파크로 이루어진 뭔가에 올라탄 시몬의 모습이 보였다. '진짜 시몬?' 보고도 믿기 힘들었다. 파직거리는 전류와 스파크로 뒤덮여 있었지만, 시몬이 타고 있는 건 빛으로 이루어진 전차였다. 그리고 전차를 몰고 있는 건 말이 아니라 곰 신수인 아칼리온이었다. 아직 하늘을 날지 못하는 아칼리온이 부유 효과를 갖고 있다. 그렇다는 건 저 전차는 역시. '신수의 사물화!' [또 네놈이냐!] 카리사도 경계했다. "보여줄게! 레테!" 시몬이 씩 웃으며 신성으로 만든 고삐를 잡아당겼다. "내 신수학의 진가를!" 그가 고삐를 잡아당기는 것을 신호로, 시몬의 몸이 번개처럼 앞으로 뻗어 나갔다. '어어?' 하는 시몬의 표정이 잠깐 보였다. 그리고. 쐐애애애애애액! 쐐애애애액! 한 줄기 섬광이 되어 엄청난 속도로 허공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으악―! 으아아아악―! 시몬의 비명이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레테가 당황해서 소리쳤다. "아니! 지금 뭐 하는 검까!" "너, 너무 빨라서 속도를 조절할 수가 없― 으아아아아악!" 신수 전차는 자기 멋대로 다른 산으로 갔다가 건너편 산으로 갔다가, 바다를 내달렸다가, 다시 레테와 카리사가 있는 방향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그야말로 번개를 연상케 하는 속도였으나, 제대로 통제하고 있다고는 말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하하하하! 성녀는 위력을 제어하지 못하고, 이놈은 속도를 주체하지 못하는가? 하찮도다!] 상황을 파악한 카리사가 큰 소리로 비웃음을 흘렸다. [역시 네놈 필멸자들이 가지고 있기엔 분에 겨운......!] 신이 나서 말하던 카리사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화아아아아아악! 커다란 태양이 카리사의 머리 위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한 방 먹이는 정도는!" 마차에 탄 시몬이 눈을 부릅떴다. "가능해!!" 마차를 휘감은 태양이 한 줄기 섬광으로 변하더니. 콰르르르르르르르릉! 천둥과 같은 소리와 함께 번개가 되어 카리사의 복부에 처박혔다. [커헉!] 카리사의 몸이 빛의 속도로 끌려가 바닥에 처박혔다. 지켜보던 레테의 이마에 땀이 줄줄 흘렀다. '완벽하게 꽂았어!' 쥐어짜 낸 단 한 번의 일격을 퍼붓고 '사물화' 상태가 풀렸다. 희고 검은 전차가 반으로 쩍 갈라지며 두 마리의 새끼 고양이들로 돌아왔다. 아칼리온도 작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시몬이 세 마리의 신수들을 껴안은 채 추락하며, 레테를 향해 소리쳤다. "지금이야 레테!" 절호의 찬스. 조건만 갖춰준다면 레테의 화력은 성녀들 중에서도 극강이었다. "알고 있슴다!" 그녀가 시원하게 웃으며 두 팔을 내리그었다. 하늘이 갈라지며 그 위로 광명과 함께 그 어떤 것보다 큰 유성이 내려오고 있었다. "레, 레테?" 시몬이 다소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너무 큰 걸 꺼낸 것 같은......!" "뒈져어어어어어어어어!" 악에 받친 레테의 외침과 함께 유성이 내려갔다. [크으으윽!] 낙뢰에 맞아 강제로 바닥에 추락한 카리사가 고개를 들었다. 무슨, 행성 하나가 내려오는 것 같다. 실시간으로 하늘이 가려지며 도망칠 범위가 줄어드는 모습은 극도로 공포스러웠다. 도망치려 했지만 충격은 물론, 방금 낙뢰의 스파크가 아직도 파직거리며 움직임을 봉쇄하고 있었다. 몸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 발사한 카리사의 브레스는, 고작 다가오는 유성의 아주 작은 부분만 얼릴 뿐이었다. [내, 내가......!] 이내 유성이 다가오며 주위의 모든 것이 새하얗게 물들어갔다. [멸하는......!] 그의 몸이 하얗게 물들어 흩어져 사라졌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 상공 수천 미터에 떠 있는 시몬의 몸도 맞바람에 떠밀려 날아갔다. 무슨 신성 마법의 후폭풍으로 버섯구름 같은 것까지 피어오르고 있었다. 덥석!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시몬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잡았슴다!" "레테!" 레테가 유쾌하게 웃으며 소리쳤다. 란이 마지막 힘을 짜내어 비행했고, 폭발에 휘말려 날아간 시몬의 뒷덜미를 낚아챈 것이다. "웃차!" 레테가 팔힘으로 시몬을 단숨에 끌어당겼다. 무사히 올라탄 시몬은 멍한 표정으로 숨을 헐떡였고, 레테는 피식피식 웃으며 녹초가 된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제법이잖슴까." "기본이지." 시몬이 힘겹게 웃었다. 그의 품 안에는 두 마리의 새끼 고양이와 작은 곰이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 * * -고양이들의 발육과 건강상태도 나쁘지 않고, 변신할 때의 모습을 보면 이상적이에요. 왜 변신이 안 되는지 이상할 지경이네요. 새끼 고양이 신수들의 사물화는 신수학 전공자인 레테도 의문을 품었다. 사실 두 신수는 이미 사물화에 다다를 정도까지 성장했었다. 다만 핵심은 '융합각성'이었다. 둘은 희고 까만 겉모습이 완전히 달라서 착각할 수 있지만, 같은 시간에 태어난 쌍둥이다. 신수의 힘 또한 반으로 나누어 가진 채 태어났다. 따라서 각성의 키는 두 마리가 동시에 같은 신성을 삼키는 것으로서, '반으로 나뉜 힘의 동시 발현'을 유도하는 것. 지금까지는 계속 한 마리 한 마리 개별로 신성을 나눠주어서 시몬이나 고양이들이나 감을 잡지 못했지만, 에스카일의 신수학 수업에서 아이들이 두 고양이에게 하나의 신성뭉치를 먹이기 시작한 게 좋은 계기였다. 하나의 사물화를 위해, 두 마리의 힘 모두가 필요했던 거였다. '......쿨라의 점 봐주는 할머니가 '수레'라고 한 게 그거였구나.' 시몬이 쓰게 웃었다. 전차와 수레는 엄연히 다르지만, 그렇게 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던전주 카리사는 레테의 무자비한 공세로 완전히 파괴되었고, 산맥 꼭대기에 있던 던전도 사라졌다. 시몬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지상에 내려가 카리사의 뼈 파편 몇 개를 챙겼다. 혹한이 그쳤고,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바랐던 푸른 하늘이 펼쳐졌다. 쿨라는 따뜻한 날씨를 되찾았으며, 바다의 얼음도 서서히 녹았다. 혹한을 피해 서식지를 버리고 인간의 마을을 공격하던 몬스터들도 물러났다. -그럼, 에프넬에 보고하겠슴다. -괜찮겠어? -네. 원칙적으로 이곳 킨버 지방은 중앙 에프넬의 간섭이 금지된 곳이지만, 카리사 사태는 다른 지역에도 피해를 입힌 건이니 간섭할 여지가 생겼다. 레테는 성녀 신분으로 에프넬에 연락해 상황을 보고했다. 성녀의 명령이었기에 에프넬에서는 즉각 팔라딘들을 파견했고, 그들이 아공간에 가져온 식량으로 주민들도 급한 배를 추릴 수 있었다. 던전을 방치하고 카리사를 숨겨주고 있었던 '미제나시' 사람들은 모두 성기사들이 체포했다. 마지막에 카리사에게 붙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 다만, 평범한 에스카일 주민들의 경우는 애매했다. 그들은 던전주나 던전의 정체를 몰랐고, 이 혹한이 설녀의 저주라고 굳게 믿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죄는 죄. 결국 에프넬과 이 지역의 대영주는 미제나시 사람들을 신성연방에서 추방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뭐, 오히려 잘됐슴다. 레테가 말했다. 분위기가 조금 풀리긴 했지만, 그래도 쿨라에 남게 되면 차별을 받을지도 모르니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 낫다는 게 그녀의 판단이었다. -제가 성녀로서 책임지고 중립지대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울게요. -응, 잘 부탁해. 그리고 쿨라의 영주는 시몬과 레테에 협력해서 사태 수습을 주도하면서도, 다소 얼이 빠진 표정이었다. 시몬은 에스카일에 내려오는 동화책의 내용이 진짜냐고 물었다. "전부는 아니지만, 거의 사실입니다." 영주가 그렇게 말하며 눈을 감았다. "저희 아버지가 그 모험가 중 하나였습니다." "아......." "아버지는 다 같이 잘살아보자고 시작한 일이었지만, 너무 많은 장사치와 자본가들이 쿨라에 들어오는 바람에 모든 게 엉망이 됐죠. 아버지는 언제나 설산을 보며 면목이 없다며 고개를 떨구셨습니다." 젊은 영주가 주먹을 꾹 쥐었다. "아버지는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은 우리들의 잘못이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저는 그때마다 나약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화를 냈지만, 아버지는 마지막 눈을 감는 순간에도 에스카일 사람들에게 사과하다가 돌아가셨죠." "......." "저는 그런 아버지가 싫었고, 에스카일의 프리스트 파견 요청도 무관용 정책으로 대처했습니다." 그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았다. "누굴 탓하겠습니까. 모든 건 우리의 원죄였습니다." 시간이 지났다. 비정상적으로 얼어 있던 바다의 얼음이 녹아내리고, 배들이 운행을 재개했다. 쿨라도 점점 예전의 모습과 활기를 되찾았다. 시몬도 마을의 정상화를 도왔다. 사실 에스카일에 잠입하고, 빙룡 카리사와 싸우는 것보다 사태 수습 쪽이 더 피곤했다. 그렇게 시몬이 쿨라의 울타리 수리를 돕고 있는 그때. "여기 있었군요. 우리 조카." 상인으로 분장한 이스라필이 환한 미소와 함께 쿨라에 방문했다. 그녀의 손에는 반짝이는 뭔가가 들려 있었다.
Please login to track prog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