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91화 한 소년이 있었다. 혼란스러운 시대에 남부러운 것 없는 유복한 가문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세넥타! 어디 있느냐! 그의 아버지는 악마였다. 아버지의 이름은 '실라지 비사바르'. 네크로맨서다. 세간 사람들이 시체쟁이라고 헐뜯는 바로 그 족속. 아버지는 어릴 때 코어를 개방하면 좋을 거라며 어린 3세 아들의 심장에 코어를 억지로 시술했다. 그러나 실라지의 변변치 않은 실력에, 3세의 아이에게 코어 시술은 극도의 부담이었다. 소년은 코어가 망가진 채, 평생을 심장에서 오는 고통에 시달리며 지내야 했다. 부작용도 대단했다. 고작 3세 소년의 몸이 노인처럼 주름살이 가득하게 됐고 살은 퉁퉁 불어 터졌다. 몸 곳곳에 염증과 혹이 튀어나왔으며 한 시간에 두 번씩은 피를 토했다. 상냥하게 씻겨주던 시녀들의 표정에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징그럽다는 혐오의 반응. 어머니는 시술이 실패해 괴인이 된 소년을 안고 한참을 울었다. 그러나 당사자인 아버지 실라지는 자신의 아들이란 게 이 정도도 버티지 못하냐며 오히려 소년을 구타했다. 소년의 아버지. 실라지 비사바르는 '개'였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저택의 고용인들을 범했다. 성별, 종족을 가리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가족에게도 손을 댔다. 소년보다 네 살 많던 누이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노예와 전쟁고아들을 무분별하게 사들여 몸을 섞었고, 기운이 떨어지게 된 것들은 꼬챙이에 꿰어 죽였다.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노예들의 모습을 보며 와인을 마시는 취미를 가진 소년의 아버지는 악마였다. 지옥과 같은 어린 시절. 10살이 된 소년은 여전히 아버지가 실패한 코어의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었다. 심장의 고통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쳤다. 저택의 모든 흑마법 책을 독파하고 구하지 못하는 책들은 스스로 구해서 읽어냈다. 코어에 대한 비밀을 풀어내고, 이 끔찍한 고통에서 벗어나자는 일념 하나로 노력했다. 어떤 날은 음지의 시체쟁이 학술회에 가서 지식을 갈구하기도 했다. 그러던 그에게. -재미있는 이론이구나. 손을 내밀어주는 한 사람이 있었다. -자금을 대주마. 좋을 대로 연구를 해보아라. 아버지 실라지가 술과 여자로 방탕한 생활을 하며 가문의 재산을 탕진하고 있는 지금, 소년에게 자금을 대주겠다는 이 남자는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소년은 아버지의 눈을 피해 창고를 연구실로 개조하고, 무수한 신체실험을 감행했다. 이미 가문 안에 시체는 썩어나도록 많았고, 아버지의 '놀이'로 희생된 진귀한 종족과 괴인들도 많았다. 그렇게 5년이 더 흘러 소년의 15세 생일. 그는 비로소 금지된 흑마법을 완성했다. 이 기술의 이름은 '섭식'. 허물을 벗어 모습을 바꾸는 몬스터로부터 힌트를 얻었다. 타인의 피와 살점과 뼈를 섭취한 뒤 흑마법으로 몸에서 재조립하여, 자신의 몸을 벗고 섭취된 것과 같은 구성요소로 재탄생하는 기술이었다. -어디 있나! 내 아들 세넥타여! 오늘이 너의 생일이라니, 내 친히 너를 취할 것이다! 대낮부터 술에 취해 비틀거리던 아버지 실라지는 창고를 개조한 소년의 연구실 문을 박살 내며 찾아왔다. -이게 무슨! 무어냐! 소년의 표정은 싸늘해졌다. 고용인들에게 그렇게 이 연구실을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했거늘. 이렇게 배신하다니. -대답해라 세넥타! 내게 숨기고 여기서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게냐! 소년은. 미소 지었다. -아버지. -뭐, 뭐냐? -잘 먹겠습니다. 그날 이후 소년은, 실라지가 되었다. -....... 저택의 복도를 걸어 다니는데 그 누구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 몸을 씻겨주던 시녀들도, 심지어 어머니까지도, -주인님. 식사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시녀가 정중하게 말했다. 소년이 그녀를 바라보자 시녀는 반사적으로 '힉!' 소리를 내며 두 손을 머리 위로 든 채 덜덜 떨었다. 얼마나 맞았으면 저럴까. 소년은 시녀에게 부드럽게 손을 내밀었다. 눈물이 그렁그렁하던 어린 시녀가 이내 고개를 들어 소년을 보았다. 짜악! 그리고 소년은 힘껏 시녀의 뺨을 후려쳤다. -미천한 것, 왜 막느냐. -죄, 죄송합니다! 들키지 않아야 했다. -주인님. 오후에 처형식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늦지 않게 진행하도록. 아들이 아버지를 죽인 패륜이 알려진다면 가문은 무너질 것이다. -여보, 우리 아들 세넥타는요? -잊어라. 소년은 여전히 무자비하게 주위 사람들을 대했다. 정체를 들키지 않아야 한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분노도 있었다. 흑마법 '섭식'으로도 심장과 뇌는 건드릴 수 없었다. 발톱과 몸의 반점까지 재현할 수 있었지만 망가진 코어 때문에 고통은 여전했다. 내가 실라지가 됐다고 해서, 나를 배신한 이들이 고통에 해방될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나만 고통받을 수는 없다. 소년은 실라지의 역할에 누구보다 충실했다. 날이 갈수록 실라지의 악행은 널리 알려졌다. -저 남자가 실라지야? -......학살자. -노예들과 고아들을 죽이고 실험한다던데. -끔찍하군. 연회에 참여했더니 귀족들이 소년의 악행을 떠벌렸다. 실라지. 실라지. 실라지. 실라지. 사람들이 아버지를 욕하고 짓씹는 게 기분이 좋았다. 그래, 더. 더 그를 욕해라.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악행이 알려져야 한다. 소년은 보란 듯이 연구와 시체실험을 거듭했다. 그러다 자신의 망가진 코어를 수습할 수 있는 방책을 만들었다. 바로 블러드 코어. 기존의 코어와는 다르다. 누구나 쉽게 시술하고 시술받을 수 있지만 무수한 핸디캡이 있고 시술자의 수명도 짧아진다. 그러나 혈류학 흑마법에 특화되어 있으며, 출력이 뛰어나다. -가히 근간이 될 기술이군. 소년 시절 만났던,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자금을 대주는 남자와 오랜만에 만났다. 그 또한 전혀 나이를 먹지 않았다. -나와 같이 손을 잡지 않겠나. 이 세상의 진리를 위해. 소년은 남자의 말에 크게 감화되었다. 그가 말하는 모든 것이 소년이 원하던 세계였다. 목숨을 걸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남자와 소년이 손을 잡았고. 혈천교가 탄생했다. 실라지는 혈천교의 이름으로 무수한 악행과 실험을 저질렀다. 이 지긋지긋한 심장의 고통이 끝날 때까지,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실라지라는 사람을 짓씹게 하기 위해, 그리고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그리고 실라지의 몸이 노년이 되어갈 때, 소년은 비사바르 가문에 새로운 규칙을 만들었다. -비사바르의 가주는 오로지 실라지 비사바르뿐이다. -가주가 죽을 경우, 차기 가주가 될 후계자가 실라지라는 이름을 물려받는다. 이것은 물론 실라지 비사바르라는 이름을 유지하기 위한 방책이었다. 소년은 많은 아들을 낳았고, 그중 가장 상태가 좋은 자를 먹어 다시 실라지가 되었다. 아들, 손자, 그 후손들의 후손까지. 소년과 실라지 비사바르는 계속 이어졌다. 불로불사. 그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건 소년뿐이었다. 어느새 소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전부 죽여라. -다음 시체를 가져오도록. 그토록 혐오했던 자신의 아버지 실라지 비사바르. 그 자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긴 세월이 흘러, 네크로맨서와 프리스트의 시대가 왔다. 실라지 비사바르 '6세'는 키젠의 혈류학 교수로 재임했다. 시대가 바뀌니 끔찍한 실험자라는 이미지도, 위대한 혈류술사 가문이라는 명성으로 바뀌어 있었다. -젊은 힘과 생기가 넘치는, 그런 심장과 코어가 제물로 필요해. 최고의 심장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 오랜 세월 기다렸단 '사도 부활 프로젝트'를 실행하기 위해. 키젠에서 20년 동안 재직했다. 드디어 1학년 600명을 제물로 바칠 계획을 시작하려는 순간, 키젠에서 돌연 실라지를 피의 고리를 해제하는 임무에 파견했다. 예상 못 한 사태였지만, 실라지는 기민하게 움직였다. 자신이 후속 교수로 추천한 '발터 한'의 몸을 먹고 키젠에 돌아왔다. 중간중간에 시몬이라는 애송이가 방해했지만, 수백 년간 쌓아온 연륜과, 네프티스도 알지 못하는 혈천교의 비술로 빠져나갔다. 그렇게, 오랜 비원(悲願)이 이제 빛을 보려는 순간. "난 이분법적인 선악론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마지막에 그를 막으러 온 것은 사사건건 방해했던 그 시몬 폴렌티아였다. 심지어 그는 군단장의 힘까지 갖고 있었다. "당신은 이 대륙에서 가장 끔찍한 악(惡)이야. 실라지 비사바르." 실라지가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시몬이 입을 일자로 다물고는 가만히 실라지를 노려보았다. 그는 즐거워 보였다. 도대체 속이 얼마나 베베 꼬여 있는 걸까. 저런 악인에게 이 정도의 발언은 오히려 칭찬으로 들리는 걸까. 하지만 그런 문제를 다 떠나서, 저 남자는 어딘가 근본적인 부분이 꼬여 있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라.' 시몬이 눈을 꾸욱 감은 다음 다시 실라지를 보았다.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시간과 세월을 그렇게 몸을 바꿔 다녔겠지." "......?" "나는 그 껍데기에게 말하는 게 아니야." 시몬의 눈이 부릅떠졌다. "바로 당신에게 말하고 있어. 인간과 인간이 제대로 대화하는 방법마저 잊어먹은 거야? 망령." 바로 그 시몬의 한마디에. 실라지는 가슴 깊은 곳에서 전율을 느꼈다. '만물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이로군. 과연.' 이렇게 심장이 철렁하는 기분은 오랜만이었다. 그가 팔을 늘어뜨렸다. "그보다, 아직 내 제안에 대한 답을 듣지 못했네. 시몬 폴렌티아." "거절한다." 시몬이 씹어먹듯 말하며 헤르세바를 앞세웠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당신을 막겠어." "그렇군." 실라지가 싸늘한 표정으로 두 팔을 쭉 펼쳤다. "그럼 여기서 죽게나." <실라지 오리지널 - 혈석성> 꽈르르르르르르르르르! 실라지의 뒤편으로 피로 이루어진, 마치 루비 같은 뻘건 광석이 성을 이루며 올라오기 시작했다. "시체조각도 찾지 못하게 분해해 주겠네." 준비시간이 필요한 흑마법. 시몬이 저 성이 완성되는 순간, 끝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헤르세바! 이젠 진짜 제3 권능뿐이야! 부탁해!" [아, 진짜아아!] 그녀 본인도 괴롭다는 듯 몸을 뒤흔들고 있었다. [이제 나도 몰라!] 쏴아아아아아아아-! 그녀의 몸체에서 황금빛 모래가 쏟아지고 시몬이 지팡이를 움직여 그것을 컨트롤했다. '저 모래는 심상치 않군.' '성이 완성되기 전에 던전을 완성해야 해!' 두 남자가 서로를 노려보며 흑마법을 준비했다. 이내 실라지의 혈석성이 완성되며 그야말로 주위가 시뻘겋게 변했다. 반경 일대의 모든 피를 증발시켜 생명체를 말살하는 초 대량학살 마법. 그리고. 쏴아아아아아아아! 헤르세바의 방대한 황금 모래가 주위로 퍼져 나가며 시몬과 실라지의 몸을 뒤덮었다. <헤르세바 오리지널 - 모래의 세계> 혈석성이 시뻘건 광채를 사방으로 흩뿌리는 동시에, 두 남자의 몸이 모래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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