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81화 며칠 후. 초급 흑마법 시간. 학생들이 간절하게 원하던 정보가, 제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키젠 본부에서 시험관련 공지가 내려왔습니다." '드디어!' 시몬과 A반 학생들은 긴장감을 숨기지 못하고 침을 꼴깍 삼켰다. 1학년들 중에서 200명이나 300명은 떨어질 거라던 그 악독한 시험. 제인은 바스락 소리를 내며 조교로부터 받은 문서를 펼쳐 들었다. "이번 진급시험 및 5차 BMAT, 통합시험의 무대는." 그녀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던전입니다." 던전! 시몬이 주먹을 꾹 쥐었다. 드디어 그 진짜 미지의 공간에 들어가 보게 되는구나. "봐봐! 내 말 맞지?" 딕이 키득거리며 말했다. 진급시험은 해마다 여러 레퍼토리로 나뉜다. 작년에는 몬스터가 우글거리는 섬에 들어갔고, 재작년에는 던전이었다. 올해는 이미 '섬 생존평가'를 진행했으니 던전이 아닐까 하고 딕이 예상했었는데, 그 추측은 정답이었다. "우선 여러분이 작성해야 할 서류가 있습니다." 제인이 손짓하자, 조교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며 학생들의 책상에 서류를 내려놓았다. "......아하." 서류를 넘겨본 시몬이 쓴웃음을 흘렸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흔히 '신체포기각서'라고 불리는 바로 그 서류. 대충 요약하자면 우리는 이 시험의 위험도를 인지하고 있고, 시험이 치러지는 동안 어떠한 경우에도 학교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키젠을 다니며 이미 몇 번이고 작성해본 문서였기에, 학생들은 놀라기보다는 올 게 왔다는 표정이었다. "이번 진급시험의 위험도는 지금까지의 다른 시험들과는 격이 다를 겁니다." 제인이 말했다. "지금까지의 모든 시험은 키젠본부 측에서 주관하고 통제했지만, 이번 시험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던전 안에서 그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습니다. 배리어 게이지가 0%가 되면 학교로 귀환하는 편리한 텔레포트 마법 따위-" 그녀의 목소리가. "없습니다." 강의실에 강렬하게 내려앉았다. "시험에서의 죽음은, 실제의 죽음입니다. 던전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그 무엇도 보장할 수 없습니다. 포기할 거라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타악. 그녀가 서류를 강연대에 내려놓고 의자에 앉았다. 앉는 자세마저 귀족스러운 품격이 물씬 풍겼다. "키젠 1학년을 끝까지 버텼다는 커리어로도 어딘가에서 먹고살 수는 있겠죠. 선택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착!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제일 먼저 딕이 문서에 서명했다. 이어서 시몬과 다른 학생들도 깃펜을 쥐고 문서에 힘주어 본인의 이름과 서명을 기입했다. 어떻게 여기까지 살아남았는데, 키젠 2학년 진급을 앞두고 물러설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적어도 겁쟁이는 없는 것 같군요." 조교들이 문서를 걷어오자, 제인이 의자에서 일어나 단상으로 되돌아왔다. "그럼 시험 룰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그녀의 설명을 들으며 시몬은 키젠답게 시험의 스케일이 상당히 크다는 생각을 했다. 던전에는 1학년 전교생 전원이 들어간다. 그들 모두 '녹화 마법'이 내장된, 절대로 깨지지 않는 아티팩트를 목에 걸게 된다. 전교생의 목적은 하나. 던전의 클리어. 던전은 극도로 위험한 공간이기에, 같은 학생과의 교전은 철저히 엄금한다. 적발 시 퇴학 조치된다. 그리고 던전을 클리어하는 순간에 모든 시험은 종료된다. "반대로 말하면." 제인이 강조했다. "던전을 클리어할 때까지 시험은 계속됩니다. 일주일이 될 수도 있고, 한 달이 될 수도 있겠네요. 혹은 내년에 후배 신입생들이 입학할 때도, 여러분은 던전에서 나오지 못할 수도 있을 겁니다." 빡세다. 모든 학생들의 머릿속에 동시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역시 악명 높은 키젠의 진급시험. 괜히 1학년 입학생 정원 1,000명 중에서 300명 정도만 살아남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시험의 위험성이 어마어마하게 크기에, 제인도 의도적으로 학생들에게 위기감을 불어넣는 말들을 하고 있었다. 착! 그때 손 하나가 번쩍 올라왔다. 모두가 예상하던 그 사람이었다. "제이미 빅토리아입니다. 교수님! 던전을 클리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제인이 그녀를 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던전에는 '던전주', 혹은 '보스몬스터'라고도 부르는 개체가 있습니다. 공간의 변이를 주도하는 이 핵심개체를 파괴하면, 던전은 자연히 붕괴되고 여러분도 원래의 세계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번엔 한 남학생의 손이 올라갔다. "스콧 스나이더입니다! 교수님께서 아까 전교생의 목적이 던전의 클리어라고 하셨는데요! 그럼 던전주에게 덤비는 것도, 전교생이 다 우르르 가서 막 1 대 647명으로 붙어도 되는 건가요?" "네, 됩니다." 학생들이 웅성거리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질문 당사자인 스콧 스나이더는 손을 내리며 조원들에게 '그럼 너무 쉬운 거 아냐?' 하고 말하고 있었다. "물론." 제인이 덧붙였다. "던전주가 있는 마지막 장소까지 도달할 수 있는 학생들은 647명 중에서도 극소수겠죠." "그, 그렇겠네요." 이번엔 뒷자리에 앉아 있던 메이린이 손을 들었다. 제인도 고갯짓으로 그녀를 지목했다. "메이린 빌렌느입니다! 진급시험의 평가 및 채점 기준이 궁금합니다." 과연 모범생다운 질문이었다. "평가 기준은 '던전에서 여러분의 활약'입니다. 여러분이 던전에서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어떤 몬스터를 어떤 흑마법으로 사냥했는지, 비상사태에 어떤 조처를 하는지, 의식주의 확보와 멘탈관리 및 목표의식 설정까지. 여러분이 행동하는 모든 게 평가대상이겠네요." 진급시험은 1학년의 마지막 시험인 만큼, 일종의 종합 테스트다. 지금까지 네크로맨서로서 배우고 경험하고 느끼고 숙달해 온 그 모든 것을 평가할 거라고 제인은 말했다. "하지만 평가 기준은 '던전에서의 활약'이라고 했습니다. 던전 클리어라는 목적에 따라 움직였을 때 의미 있는 성적이 나오겠죠." 그 말에는 총명한 메이린도 고개를 갸웃했다. "이, 이해가 잘 안 돼요. 예를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 "예를 들어, 단순히 성적을 목적으로 시험기간 내내 던전에서 나오는 몬스터를 무작정 많이 사냥하는 학생이 있다고 하죠." 그녀가 엄청난 속도로 칠판에 사람 그림을 그렸다. "반면에, 던전주와 싸우고 있는 학생들에게 시간을 벌어줄 목적으로 몰려드는 몬스터를 스스로 유인해서 상대하는 학생이 있습니다. 전자가 더 많은 몬스터를 사냥했다고 해도 키젠은 후자의 학생에게 훨씬 더 많은 점수를 줄 겁니다." '오.' 시몬은 살짝 감탄했다. 이 시험 전체를 관통하는 룰. '누가 클리어해 주겠지~' 하는 생각으로 무의미한 몬스터 사냥에 열을 올리는 일이 원천적으로 막힌다.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선 모두가 '던전 클리어'라는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음- 으음. 음." 그때 시몬 옆자리에 앉은 딕이 책상을 손끝으로 두들기며 고민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다 손을 번쩍 들었다. 제인도 그를 가리켰다. "사랑하는 제인 교수님! 딕 헤이워드입니다!" 딕이 벌떡 일어나 외쳤다. "네, 우리 반에서 가장 걱정스러운 딕 헤이워드." 제인이 말했다. "그럼 학생들 간의 협력이 가능하다면, 무조건 협력하는 게 좋은 건가요? 이때 평가 기준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제인은 잠시 말없이 딕을 훑어보다가 대답했다. "무조건 협력이 좋다고는 말 못 하겠군요. 다른 학생들과 협력해서 '파티'를 구성하는 경우, 채점 시 팀워크와 포지션 역할 등이 추가되겠죠." 파티에 들어가면 방어를 맡은 학생은 방어에만 집중해도 점수를 받고. 보조에 집중하는 학생은 보조만 해도 점수를 받는다. 물론 팀플레이와 팀워크 등, 마이너스로 작용할 여지도 생긴다. "즉, 당신의 잔머리도 파티에 공헌한다면 그것 또한 점수가 될 수 있겠네요." "여윽시 제인 교수님! 저를 꿰뚫어 보셨군요!" "자리에 앉으세요." "넵!" 자잘한 웃음소리와 함께 딕이 잽싸게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뒷자리에 앉은 메이린이 한숨을 푹푹 쉬며 이마를 덮었다. "......난 세상에서 너만큼 부끄러운 사람을 본 적이 없어." "별말씀을! 극찬 땡큐합니다!" "개 또라이야 진짜." 뒤이어 다른 학생들도 질문을 쏟아냈고, 제인은 막힘없이 답했다. 우선 던전의 종류나 테마는 공개할 수 없다는 게 키젠본부 측의 지침이었다. 제인은 직접 던전에 들어가서 확인해 보라고 말했다. 공개할 수 있는 정보는 던전은 넓다는 것뿐이다. 학생 간의 협력이 가능하다고 했지만, 던전 탐험 내내 사람을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할 수 있을 만큼 넓다고 한다. "진급시험은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뒤입니다." 제인이 말했다. "기말고사가 끝났다고 늘어지는 학생은 A반에 없을 거라 믿습니다. 자기 자신의 역량을 극한까지 갈고 닦도록 하세요. 던전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도 공부해 두면 좋겠군요. 이상." * * * 진급시험의 일정과 내용이 공지된 이후, 학생들은 난리가 났다. 다른 반 학생들도 담당교수에게 사항을 전달받았기에 학생식당에서 밥 먹는 내내 던전에 대해 떠드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작은 왕국만 한 크기의 던전이라.......] 시몬은 산책겸 헤르세바와 함께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공중에 둥둥 떠서 비행하는 헤르세바는, 주위의 모래들로 여성의 모습을 이루고 있었다. [신기하긴 하네!] "내가 묻고 싶은 건 따로 있어." 시몬이 말했다. "다른 던전 안에서도, 상대를 네 던전으로 초대하는 제3 권능을 쓸 수 있는지 없는지." [당연히 쓸 수 있지!] 헤르세바가 뭘 그런 걸 묻느냐는 듯 말했다. ['던전'이라는 단어로 규정지어서 이해하기 어렵나? 공간은 그냥 공간이야. 여기서 쓰든, 던전 안에서 쓰든, 내 권능은 제대로 작동해. 지속시간이 끝나면 다시 원래 있던 장소로 돌아올 거고.] "그거 다행이네." 헤르세바가 인상을 찌푸렸다. [근데 그건 왜 물어? 되도록 제3 권능은 쓰고 싶지 않은데.] 샤텔과의 전투 이후, 헤르세바는 일주일 내내 골골댔었다. 후유증이 상당히 컸고, 약간의 트라우마 증상까지 보였다. 그래서 시몬은 움직이려 하지 않는 그녀를 살살 꼬드겨 다양한 방법으로 이능을 효율 좋게 쓰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생각난 김에......!" 시몬이 헤르세바를 꽉 붙잡자, 그녀가 꺅! 하고 놀란 소리를 냈다. 근처의 바닥에 돌멩이를 주워서 가볍게 위로 던진 다음, 지팡이로는 바닥을 내리쳤다. '황금화!' 바닥이 최소한의 크기만 황금화가 진행되고, 그 위에서 황금 구조물의 뾰족한 지붕이 솟구쳐 떨어지는 돌멩이를 정확히 맞췄다. "이런 느낌이면 부담 없지 않아?" [그, 그렇긴 한데. 아! 너무 꽉 잡지 마!] 헤르세바가 투덜거렸다. [문제는 세 번째 권능이라고.] "그것도 최대한 조율해 볼게. 마지막에 그 미라용을 꺼낸 게 너무 컸던 것 같긴 하고." 열심히 허공에 헤르세바를 휘두르며 이능을 시험하던 시몬은 어느새 산이 우거진 곳까지 왔다. "이제 아공간에 들어가 있어, 헤르세바." 그녀가 눈을 깜빡였다. [왜? 여기 경치 예쁜데 조금 더 구경하면 안 돼?] "이 너머로 가면 리치인 넌 힘들 수도 있거든." -야옹! -냥! 냥! 냥! 냥! 그때 고양이 울음소리와 함께, 두 마리의 하얗고 까만 새끼고양이들이 빨빨거리며 시몬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하양아! 까망아! 잘 있었어?" [뭐야, 고양이?] 두 새끼 고양이들은 시몬의 발에 온몸을 비비며 얼른 만져달라고, 안아달라고 성화였다. "너희들은 하나도 안 컸네." 시몬이 씩 웃으며 두 고양이를 안아 들었다. 한 손에 한 마리씩 쏙 들어왔다. "자네 왔나." 그때 풀숲에서 도복을 입은 하얀 수염의 노인이 나타났다. "파라한 교수님!" 신성 방어학 수업의 교수, 파라한이었다. [허억! 뭐야? 저 사람?] 헤르세바가 파들파들 떨었다. 그녀는 리치가 된 이후로 신성을 처음 느껴보는 거였으니 이런 반응이 당연했다. 시몬은 그녀를 배려해서 아공간 안에 넣어주고는 파라한의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상대를 헤르세바의 던전에 집어넣으면 제약 하나가 사라져.' 시몬이 입가에 자신만만한 미소가 걸렸다. '나와 헤르세바만의 공간. 이번 시험에서도 녹화 아티팩트 문제만 해결하면, 신성을 마음 놓고 쓸 수 있게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 시몬은 모든 경우의 수를 열어놓고 움직이기로 했다. "자. 오늘은 신수학의 기본기를 점검해 보겠네." "네, 교수님!"
Please login to track prog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