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79화 논문 발표회의 성격에 맞게, 시몬은 헤르세바를 학술적인 개념으로 풀어놓았다. 리치의 핵심 재료인 심장의 성질, 소환 마법진의 수식 및 룬어, 라이프베슬의 구조와 특성. 특히 관중들이 가장 관심을 보인 부분은 자율 행동 지팡이 '아렐델루'와 '헤르세바'의 결합이었다. 리치의 정신이 아티펙트에 넘어갔다는 이야기에는 아론도 놀라워했다. "흔치 않은 일이긴 해." "리치 제작은 변동성이 워낙 크니까." "자율 행동 지팡이와 리치의 결합은 제대로 연구해 봄 직하오. 리치의 리스크를 크게 줄일 수 있는 방책이니." 연구원들은 시몬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받아적기에 바빴다. 언제나 받아적는 입장이었던 시몬은 다소 생소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 아무튼 지금은 소환학 수업 시간이니, 시몬은 펜타모니엄 학술회의 경험을 살려 학술적인 측면을 집중적으로 강조해서 설명했다. 헤르세바가 사용하는 세 가지 권능이나, 미라의 상세스펙 등을 다루기에는 시간도 부족했다. 그렇게 발표를 마치고. 짝짝짝짝짝!! 열렬한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시몬은 관중들에게 깍듯이 인사하고 아론에게도 고개를 숙였다. 모두가 환호하고 있을 때. "천재는 발표도 맛깔나게 하네." "역시 천재는 다른가 봐? 태생이 우리랑은 다르니까." "나도 천재로 태어나고 싶다~" 강의실 구석에서 약간은 비꼬는 듯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A반의 몇몇 소환학 지망생들, 그들은 스켈레톤 메이지 수업 이후로 시몬을 못마땅하게 보고 있었다. 교수의 '관심'은 학생들에게 있어 자산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시몬은 수업 시간에 스켈레톤 메이지를 앞세워 놓고 아론을 압박해서, 라이프베슬 과외까지 따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부럽다~" "툭 까놓고 말해 키젠 교수한테 1:1 과외받으면 누가 못 해?" "특례 1번은 네프티스 님 픽이니까. 네프티스 님 눈치가 보여서라도 챙겨주시겠지." 비난의 수위가 점점 높아지려는 그때. "아, 아니야!" 갑자기 대화에 불쑥 끼어드는 목소리가 있었다. "시몬에 대해 잘 모르면서, 그렇게 말하지 마!" 다름 아닌 토토였다. 사방에서 떠들썩한 환호성 때문에 묻혔지만, 토토의 목소리는 꽤 컸다. 소환학 지망생들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너 지금 우리한테 말한 거니?" 그중 한 여학생이 지긋이 노려보자, 토토의 얼굴이 급속도로 쭈글해졌다. "찐따가 뭔데 껴들어?" "쟤 애초에 시몬이랑 같은 동아리잖아?" "와~ 벌써 라인 타는 거야? 시몬이랑 친하면 니가 뭐 돼?" 토토가 당황한 표정으로 손을 휘저었다. "내, 내 말은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시몬은......!" 짝! 그때 아론이 크게 손뼉을 쳐서 떠들썩한 환호성을 잠재웠다. "잘했다." 아론이 입을 열었다. "리치의 소환마법은 변수 덩어리다. 사용한 삼요소 중 하나만 바뀌어도 완성품의 성질은 천차만별로 바뀌지. 내가 이래라저래라 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수식이나 룬어 쪽에서도 지적할 만한 점은 없었다. 다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아론의 시선이 시몬에게서, 다른 학생에게로 향했다. "논문의 내용을 떠나서, 이번 시몬의 발표. 어땠나?" 기다렸다는 듯 손 하나가 번쩍 솟구쳤다. 반장인 제이미였다. "엄청 능숙했습니다!" "그래." 아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지금 논문의 수준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시몬은 저번 달에 펜타모니엄 학술회에 다녀왔다. 너희들보다 먼저 이런 논문을 써봤고, 먼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해봤지. 그 한 뼘의 경험 차이가 이런 결과를 낳는 거다." 아론이 주위를 한번 슥 둘러보았다. "이 중에서, 펜타모니엄에 도전하겠다고 손이라도 들어본 사람 있나?" "......." 강의실이 정적에 휩싸였다. 몇몇은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시몬의 발표가 능숙했던 건 천재라서가 아니다. 그처럼, 세상의 모든 일에는 인과가 있고 이유가 있다." 학생들이 조금 당황한 눈으로 아론을 보았다. 갑자기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거지? "남들이 쉴 때 메이지를 만들었고, 남들이 메이지를 만들 때 리치를 준비했다. 앞서나가기 위한 노력을 외면한 채, 모든 걸 재능의 차이로 단정 짓고 깎아내리는 것만큼 구질구질한 것도 없지." 아론은 정확한 시선으로 세 학생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말에 아까 시몬을 깎아내렸던 소환학 지망생들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다른 관중들의 시선도 아론을 따라 그 셋으로 향했다. "야! 너희 또 시몬 뒷담 깠지?" 클라우디아 멘지스가 제일 먼저 벌떡 일어났다. "너희들 진짜......." 제이미가 딱하다는 시선을 보냈다. "아론 교수님 과외가 그렇게 질투 나면 니들도 진도 초월해서 부탁하든가. 노력은 하기 싫고, 보상은 받고 싶고. 불만만 많아서 주둥이만 나불나불~" 신디 비바체가 신랄하게 뇌까렸다. 움찔! 그때 세 사람은 등을 쿡쿡 찌르는 듯한 살기를 느끼며, 뻣뻣하게 뒤를 돌아보았다. 강의실의 어두운 명암 속에 몸을 누인 채, 헥토르가 살벌하게 안광을 번뜩이고 있었다. "......버러지 같은 새끼들." 누구보다 시몬을 따라잡으려 죽도록 노력하는 헥토르의 입장에서, 가장 경멸하는 종류의 인간들이었다. "니들 좀 이따 나 좀 보자?" 메이린도 생긋 웃으며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입은 웃고 있었지만 이마에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조용!" 아론의 외침에 다시 모두의 시선이 연단으로 돌아왔다. "기말고사, 수행평가, BMAT, 진급시험. 물론 너희들이 학사일정으로도 바쁘다는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남들이 하는 대로만 해서는 남들과 달라질 수 없다. 그 점을 이해해라." "네!!" "시몬 폴렌티아." 아론이 고개를 돌려 마침내 시몬을 보았다. "A+다." "아...... 감사합니다!" 이내 커다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어느새 최고 성적을 받은 시몬을 바라보는 다른 학생들의 눈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 그리고 관중석 구석 자리. 바힐의 명령으로 슬쩍 탐방 온 저주학 수석조교 체헤클은 박수를 치면서도 놀라고 있었다. '아론 교수님이 저런 말씀을 하시다니.' 체헤클도 조교로 지낸 시간이 있는 만큼 아론을 꽤 오랫동안 봐왔다. 도전이니, 노력이니. 결코 1학기 초 피폐해진 때의 아론이라면 꺼내지 못했을 말이었다. '시몬 학생의 선한 영향력이, 아론 교수님의 네거티브한 성향을 바꿔놓은 거야.' 그녀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턱을 괬다. 그러고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저 아이가 우리 또라이 교수님도 바꿔놓을 수 있을까?' * * * "놀랍군요! 놀라워요! 아주 훌륭합니다! 시몬 학생!" 저주학 수업. 최종 수행평가 <세 개 이상의 저주를 활용한 시너지 저주>의 발표회. 흥분한 바힐은 시몬의 이론이 얼마나 완벽하고 아름다운지 침을 튀기며 설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몬은 다소 민망한 표정으로 옆머리를 긁고 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4대 저주까지는 습득하긴 했는데.' 무통의 저주 인돌렌스(Indolence). 적대의 저주 호스틸(Hostile) 망상의 저주 딜루젼(delusion) 각성의 저주 웨이커(Waker) 시몬이 네 가지 저주를 완성하고 바로 그다음 날이 바로 발표회였다. 하는 수 없이 콤펠로니아를 만드는 건 잠시 미뤄놓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만 네 개의 저주 수식을 빼 와서 하나의 저주를 만들어보았다. 네 수식은 모두 정신계 저주인 만큼, 일종의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 각성수식이 들어간다는 점. 그래서 이 네 개 수식을 적절하게 배합해 각성 효과를 극대화한 수식을 발표했는데, 바힐은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듯 극찬을 늘어놓고 있었다. "아주 훌륭했습니다! 물론 채점 대상은 '저주의 시너지'지만, 네 개의 저주 수식을 창의적으로 배치한 것만으로도 A+를 받을 이유는 차고 넘치겠죠." "감사합니다!" 시몬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리고 연단 뒤에서 시몬의 A+ 성적을 리스트에 새겨넣은 체헤클이 고개를 들어 바힐을 보았다. '아주 입이 귀에 걸리셨군.' 시몬이 창작 저주 마법진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바힐은 기분은 무척이나 좋아 보였다. 물론 체헤클이 봐도 시너지 구성은 참신했다. 기본적으로 흑마법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창의적인 학생이었다. 슥. 슥. 그때 바힐이 체헤클에게 손짓으로 신호를 보내는 게 보였다. 체헤클은 한숨을 푹 쉬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조용히 시몬에게 다가갔다. "시몬 학생." "아, 넵. 조교 선생님." 시몬이 깍듯하게 자세를 바로했다. "바힐 교수님께서 수업 끝나면 잠시 연구실에서 보자고 하십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올라갈게요." 체헤클이 물러나고 딕과 메이린, 카미바레즈가 시몬을 빤히 바라보았다. "흐응, 직속제자 제안이네." 메이린이 단정 지었다. "하, 하지만! 시몬은 아론 교수님 직속제자를 생각하고 있잖아요!" 카미바레즈가 당황하며 말했다. "혹시 거절할 거면 나 좀 추천해 줘." 딕이 뻔뻔하게 자신을 가리켰다. "직속제자 때문에 부르시는 건 아닐 거야." 바힐의 4대 저주 모두 배웠으니, 이제 그 의문의 콤펠로니아라는 기술을 가르쳐 주지 않을까 싶었다. * * * 시몬의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바힐의 연구실에 불려간 시몬은 드디어 콤펠로니아를 전수받았다. 다른 네 개의 저주를 공부하며 핵심 수식은 자연스럽게 습득해둔 뒤였기에, 습득 난이도는 그렇게 높지 않았다. "시몬 학생. 콤펠로가 뭔지는 예전에 설명했죠?" 여전히 전 시간 발표의 여운이 남아 있는지, 바힐이 만족스럽게 웃으며 물었다. "네, 교수님! 위대한 네크로맨서들이 간혹 체험한다는, 절대적인 진리의 영역이라고 하셨습니다."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네요. 맞습니다. 혹시 최근에 쓴 기억이 있나요?" 그렇게 묻는 바힐은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였다. 시몬은 잠시 고민하다가 '아!' 하고 무릎을 쳤다. "이번에 리치를 만들 때 살짝 들어간 것 같아요!" 빠직. 바힐은 웃는 얼굴에서 미간만 꿈틀거렸다. 커피를 가져오던 체헤클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푸훗!' 하고 소리를 냈다. "흠! 교수님, 시몬 학생. 커피 드세요." "감사합니다." 시몬은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가볍게 한 모금 마셨다. 역시나 이 연구실 커피는 달았다. "스스로 콤펠로를 여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겁니다." 바힐이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다만, 콤펠로니아를 쓰는 데 조건이 한 가지 있습니다." "조건이요?" 바힐이 고개를 끄덕였다. "콤펠로니아는 '첫 사용'이 중요합니다. 처음 '문'을 넘어설 때,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자각하느냐. 그게 핵심이죠. 첫 사용이 올바르지 않은 자들은 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시몬이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그럼 언제 사용하면 좋을까요?" "위기." 바힐이 즉답했다. "당신의 인생을 통틀어 가장 절망적인 순간, 목숨이 위험하고 모든 수단이 막혀서 이제는 하늘에 비는 것밖에 없을 만큼 참담한 상황일 때, 저를 믿고 콤펠로니아를 사용하십시오." 그의 입꼬리가 들어 올려졌다. "그러면 이 저주가 시몬 학생에게 해답을 내려줄 겁니다." "아, 알겠습니다." "명심하세요. 최후까지 안배하고, 최후의 최후에 사용해야 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렇게 시몬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연구실을 떠났다. 바힐은 조용히 탁자에 올려둔 담뱃대를 들어서 입에 물었다. 후우우. 뿌연 연기가 실내를 자욱하게 만들었다. "체헤클." "네, 교수님." 체헤클이 공손한 자세로 그의 앞에 기립했다. 바힐은 잠시 창밖으로 시선을 던져놓다가,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몬에게 있어 목숨이 위험한 절체절명의 위기. 어떤 게 좋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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