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63화 아케뮤스를 탈환한 시몬은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무사히 로크섬으로 넘어왔다. 세르네, 카쟌과 함께 제인에게 찾아가서 복귀 신고를 한 뒤, 빠른 걸음으로 금지된 숲을 지나 피어의 유적에 들어왔다. "다들 나오세요!" 시몬이 허공을 붙잡고 힘차게 열어젖혔다. 쩌어어엉! 기다렸다는 듯 초대형 아공간에서 피어와 아케뮤스, 에르제베트와 프린스가 차례대로 나왔다. 같이 갔던 스켈레톤과 송장거미들도 우르르 쏟아져 나와 유적의 깊은 곳으로 흩어졌다. [드디어 집에 돌아왔네요!] 에르제베트가 쭉 기지개를 켰다. 그러고는 강한 욕망이 드러나는 눈으로 시몬을 바라보았다. 시몬은 등골을 타고 냉기가 싹 퍼지는 기분을 느꼈다. [소녀, 이번 파견에서는 정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옵니다.] "......그, 그렇지. 정말 수고 많았어." [포상을 기대하고 있사와요?] 그녀가 혀를 달싹이자 시몬의 몸이 오한으로 떨렸다. [안 돼!] 옷을 쭉쭉 잡아당기는 손길에 고개를 돌려보니 프린스가 있었다. [나도 공 세웠어! 나랑 먼저 놀아줘야 해! 아, 내가 저택에서 새로운 핸드셰이크를 개발했거든? 이거 어떻게 하는 거냐면......!] 쿠우우웅! 에르제베트와 프린스가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언제 왔는지 아케뮤스가 바닥에 엎드려 통곡하듯 소리쳤다. [늦게 군단에 합류한 불충을 용서해 주십시오! 도련님!] 시몬이 무안한 미소를 지으며 두 손을 휘저었다. "괘, 괜찮다니까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고!" [리처드 님의 아들이 태어나 이렇게 장성했거늘! 소신은 그런 사실도 모르고 초야에 묻혀 허무하게 시간만 보냈습니다!] 아무래도 번거로운 언데드가 하나 더 들어온 것 같다. 시몬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나마 이 네 명 중에는 정상에 가까운 피어가 낄낄거리고 있었다. [닥치고 스컬윙 부대를 만들 준비나 해라 아케뮤스! 5군단의 위세를 봤겠지? 7군단은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해져야 한다!] 물론 피어가 정상이라는 말은 아니었다. 결국 시몬이 나섰다. "이, 일단 아케뮤스의 몸부터 정리하죠." 아케뮤스도 에이션트 언데드라서 자가 회복력은 가지고 있었지만, 아직 치유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일단은 그의 몸 곳곳에 틀어박힌 말뚝이나 가시 같은 것들을 뽑아냈다. 분명 엄청난 고통을 느끼고 있을 텐데, 아케뮤스는 덤덤하게 잘 참았다. [조심해라, 소년!] 시몬이 아케뮤스의 허벅지에 박힌 가시를 뽑으려고 하자 피어가 말렸다. [이건 저주가 들려 있는 물건이다.] "아." 피어가 시몬 대신 맨손으로 가시를 뽑더니, 바닥에 떨어뜨리고는 강한 힘으로 짓밟았다. 팍!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연기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해골의 형상으로 변하더니 천천히 흩어져 사라졌다. [저주 말뚝. 매그너스도 정말 악질이와요.] 에르제베트가 말했다. 그녀는 손수건으로 아케뮤스의 얼굴에 묻은 검은 피를 닦아주고 있었다. 아케뮤스는 이를 질끈 악문 채 묵묵하게 몸에 가시가 뽑히는 걸 견뎌냈다. 그러다 중간에 시몬과 눈이 마주치자 또 감격에 젖어 통곡 같은 소리를 냈다. [도련님! 역시 이대로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소신의 불충을 벌한 뒤에......!] [작작하시죠?] 에르제베트가 거미줄로 아케뮤스의 뒤통수를 붙잡아 뒤로 당기자, 시몬과 프린스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몸에 박혀 있는 가시나 말뚝을 모두 뽑고 눌어붙은 피를 닦아내자 봐줄 만한 모습이 되었다. [도련님, 그럼 이제 계약 준비를 하겠습니다.] 아케뮤스가 가슴을 붙잡고 열어젖히자, 내부가 쩍 벌어지며 갈비뼈 사이에 보이는 검은 구체가 일렁이는 모습이 보였다. 반은 검고, 반은 붉은색이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본 다른 에이션트 언데드들이 갑자기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이 미련한 친구야.] 피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갑작스러운 분위기에 시몬은 무슨 상황인지 몰라 눈을 깜빡였다. "다들 왜 그래요?" 피어가 눈을 감았다. [......매그너스가 그토록 악에 받쳐서 고문한 이유가 있었군.] "네?" [아케뮤스는 아직 '군단화'되지 않았다.] 시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실 처음 피어에게 매그너스의 에이션트 언데드를 붙잡아 아케뮤스와 교환하려는 계획을 설명했을 때, 이미 아케뮤스는 매그너스에 의해 군단화가 됐을 것이라는 게 전제였다. 군단화는 일반적인 자연형이나 소환형 언데드를 군단 소속으로 바꾸는 작업을 말한다. 탐욕스러운 매그너스라면 아케뮤스를 손에 넣자마자 그런 짓을 했을 거라고 생각했고, 관리자인 피어가 시간을 들여 어떻게든 손을 써볼 생각이었으나. [아케뮤스는 버티고 있었다.] 아케뮤스의 코어에는 절반은 본인의 칠흑, 나머지 절반은 매그너스의 칠흑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 오로지 본인의 의지만으로 군단화를 거절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여간에.] 에르제베트가 팔짱을 끼며 한숨을 쉬었다. [인간은 우릴 이해하지 못한다니까요?] 에이션트 언데드는 학자들도 연구를 포기했을 정도로 학술적인 설명이 불가능한 존재들이다. 그들은 어떤 결여된 감정을 가졌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네크로맨서인 군단장과 계약하는 경우가 많다. 거미여왕 에르제베트는 사랑. 좀비왕자 프린스는 유희. 그리고 아마 이번에 합류한 아케뮤스의 경우, 충심이 아닐까 하고 시몬은 생각했다. 그리고 충심을 가진 아케뮤스를 매그너스가 억지로 지배하려고 했으니, 그가 강한 거부감을 느끼는 게 당연했다. '아, 근데 충심은 내가 어떻게 채워줘야 하는 거지?' 시몬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아케뮤스의 코어를 살펴보던 피어가 시몬을 보며 말했다. [소년! 아케뮤스가 그리 좋은 컨디션은 아니지만, 빠른 회복을 위해서라도 지금 군단화하는 게 좋겠다.] "네, 알겠어요." 시몬이 다가가자 아케뮤스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갇혀 있는 내내 이 순간을 기다렸습니다. 대단한 영광입니다.] "잘 부탁해요. 아케뮤스." 시몬이 그렇게 말하며 아케뮤스의 코어에 손을 대고는 칠흑을 흘려 넣었다. "윽!" [끅!] 두 사람이 몸이 동시에 칠흑으로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때 에르제베트의 눈이 커졌다. [피어, 이거!] [망할......!] 피어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역시 그냥 간단히 아케뮤스를 내줄 리가 없었나!] 시몬이 아케뮤스의 코어에 손을 대는 순간, 나머지 절반이었던 매그너스의 칠흑이 기다렸다는 듯 폭주하며 두 사람의 칠흑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시몬도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는 충격을 받았다. [버텨라. 소년!] 피어가 소리쳤다. [네가 무너지면 매그너스가 아케뮤스를 조종하게 된다! 아니! 최악의 경우에는 코어가 폭발해!] 여기서 아케뮤스의 코어가 폭발해서 '에이션트 언데드의 시체폭발'이 일어나게 될 경우, 피어의 유적 전체가 날아가 버릴 것이다. 시몬이 이를 악물고 다른 한 손도 코어에 올렸다. [도, 도련님!] "조금만 버텨주세요!" 시몬의 눈이 번뜩였다. 아케뮤스는 그런 고초를 겪으면서도 자신과 아버지의 군단을 기다렸다. 절대로 그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하아아아아아!" 시몬의 검푸른 칠흑이 격렬하게 밀려들며 매그너스의 칠흑과 싸우기 시작했다. 매그너스는 지금 자리에 없지만, 두 군단장이 하나의 에이션트 언데드를 놓고 격돌했다. [크으으!] 서로 상반된 군단장의 칠흑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몰아치는 사이, 말뚝을 뽑아도 덤덤하던 아케뮤스가 코어를 부여잡고 고통에 부르짖고 있었다. 이대로 시간이 계속 끌리면 폭발할지도 모른다. '한 번에!' 시몬의 전신에 가득하던 칠흑이 쭈우욱 빨려 들어간다. '몰아낸다!' 검푸른 광채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오더니 이내 순식간에 아케뮤스의 코어를 뒤덮어 버렸다. 곳곳에서 튀어나온 탄성과 함께, 밀려난 매그너스의 칠흑이 불길처럼 치솟다가 공중에 흩어져 사라졌다. "하아." 시몬이 그대로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았다. 에르제베트와 프린스가 양옆에서 시몬을 받쳐주었다. [.......] 아케뮤스가 눈을 떴다. 그는 두 주먹을 천천히 쥐었다 폈다 하다가 날개를 펼쳤다. 촤아아악! 촤악! 듬성듬성 깃털이 빠져서 뼈대마저 보이던 썩은 날개에, 칠흑으로 이루어진 검푸른 깃털이 빈자리를 채워 넣으며 윤기 나는 한 쌍을 이루었다. 시몬은 그 날개가 너무나도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소신 아케뮤스!] 그가 시몬의 앞에 정중하게 무릎을 꿇고 주먹을 바닥에 세운 다음 날개로 몸을 감쌌다. 자신을 낮추는 자세인데 그야말로 품격이 느껴졌다. [이미 망자인 존재로서 새로운 목숨을 부여받은바, 도련님께 영원한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시몬도 웃는 얼굴로 그 맹세를 받았다. "저의 군단에 온 걸 환영해요." 다른 에이션트 언데드들도 환호하며 축하해주었다. 이것으로, 시몬은 무사히 새로운 에이션트 언데드를 손에 넣었다. * * * 아케뮤스를 군단에 소속시킨 후,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다. 사실 시몬은 키젠에 돌아가서 편안한 기숙사 침대에서 잘 생각이었지만, 온몸에 힘이 빠져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오늘 밤은 여기서 자기로 했다. [그럼 이제 포상의 시간이와요!] 에르제베트가 음흉한 시선으로 시몬을 훑어보았다. 시몬은 다시 등줄기에 오르는 오한을 느껴야 했다. 그녀가 거미줄로 자신의 몸을 감싸자 점점 모습이 바뀌기 시작한다. 검은 재킷과 레드 톤 넥타이, 그리고 스커트 자락을 휘날리는 이 복장은 키젠 여학생 교복이었다. 그 뒤로는 머리카락도 풍성한 핑크빛으로 바뀌었다. 그녀의 키젠 학생 버전인 '엘리자베스 웨퍼'의 모습이었다. [자아.] 그녀가 맨바닥에 무릎을 꿇고는 제 허벅지를 팡팡 두들겼다. [이리로 와주세요.] 시몬이 민망한 듯 뺨을 긁적이다가, 이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 아무 짓도 안 할 거지?" 에르제베트는 그 모습이 귀여워 죽겠다는 듯 짧은 비명을 내질렀다. [소녀를 믿지 못하시나요?] 절대 못 믿는다. 시몬은 그렇게 생각하며 경계의 눈빛을 풀지 않았다. [오호호! 저도 선이란 게 있답니다? 스무 살 성인이 될 때까지는 지켜 드릴 테니 걱정 마시와요.] 에이션트 언데드에게 있어 3년이란 시간은 티끌과도 같다. 지금 시몬의 나이대에서만 즐길 수 있는 감성도 있으니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그럼 스무 살이 된 뒤에는 어떻게 되는 건데?" 에르제베트가 먹잇감을 앞둔 야수처럼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궁금한가요?] 시몬이 급히 고개를 내저었다. 나 자신의 멘탈 유지를 위해 더 물어보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에이션트 언데드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려면 '포상'을 내려야 하는 게 군단장의 임무인 것도 맞다. 시몬이 뻣뻣하게 다가가 에르제베트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슬쩍 그녀를 올려다보니 민망한 각도여서, 아예 새우잠 자듯 몸을 옆으로 기울였다. [오늘 하루는 여기서 주무시는 거예요!] [야! 나도! 나도 시몬이랑 놀 거야!] 프린스가 끼어들었다. 그는 시몬의 옆에 나란히 누운 다음, 그와 새로운 핸드 셰이크를 하기 시작했다. 시몬은 헛웃음을 흘렸다. 에이션트 언데드가 아니라 떼쓰는 애들이랑 어울려 주는 기분이었다. [저 두 사람은 여전하군.] 아케뮤스가 말했다. 그나마 점잖은 편인 아케뮤스와 피어는 군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군단에 공중 병력이 빠르게 필요하다! 아케뮤스!] 피어의 말에 아케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몸이 회복되는 대로 둥지를 만들어보겠네. 오랜 전우여.] 시몬이 아케뮤스를 보았다. "둥지? 그건 뭐예요?" [스컬윙을 양산하는 언데드 생체 건물입니다 도련님. 제 몸을 떼어내어 만들 수 있지요.] 흥분한 시몬의 눈이 커졌다. "진짜 양산이 가능하......!" 심술이 난 에르제베트가 그의 뺨을 꼬집었다. [피어를 닮아가고 있사와요, 군단장님. 한눈팔지 마요.] [야! 시몬! 게임에 집중 안 해?] 진짜 애들 돌보는 기분이다. 시몬이 퀭해진 눈으로 프린스의 손바닥에 자신의 손바닥을 맞부딪혔다. 아마도 날이 밝아오는 내내 이래야 할 듯싶다. '아, 그러고 보니.' 무아지경으로 손바닥을 움직이고 있던 시몬의 머릿속에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이번에 받은 3만 골드. 빨리 써야 하는데.' 돈 쓰는 생각만큼 즐거운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시몬은 키젠에 복귀하는 대로 실행할, 원대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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