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20화 "이, 이게 다 뭐야?" 길게 쭉 이어질 줄 알았던 어둠에 잠긴 지하 통로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생체적인 벽으로 바뀌어 있었다. 혈관과 핏줄이 보이는 선홍빛의 벽은 꿀렁거리며 살아 숨 쉬듯 움직이고 있었다. 짐승의 배에 들어온 기분, 시몬은 황천고래를 탔을 때를 떠올렸다. '이게 학교 건물의 지하라고?' 스스스. 스스. 그리고 이 통로에는 무수한 괴물들의 팔다리 같은 것들이 꿀렁거리며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물러나지." 카쟌이 딱 잘라 말했다. "저기서부터는 미지의 영역이다. 경호자인 나도 네 목숨을 장담하지 못해." "......." 시몬이 입술을 깨물며 망설이자, 카쟌이 재차 말했다. "진실을 밝히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네 목숨이 우선이다." 결국 시몬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 안에 뭐가 있을지, 발터가 무슨 짓을 꾸미는지 알고 싶었지만, 더 이상은 정말로 위험한 냄새가 났다. 이 정도만 해도 성과는 충분하다. "돌아가죠." * * * 시몬과 카쟌은 무사히 건물에서 탈출해 기숙사로 돌아왔다. 녹초가 된 두 사람을 보며 딕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 어딜 갔다 온 거예요? 그냥 와인 한잔하고 온 거 아니었어?" 카쟌은 옷가지를 휙휙 던져놓고는 바로 2층 침대 위로 들어가 이불을 덮어버렸다. 시몬이 쓴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그냥 야밤에 훈련 좀 했어. 카쟌이 마투를 봐줬거든." "크흡. 부럽다! 나도 카쟌이랑......!" 퓩. 그 말이 채 이어지기도 전에 딕의 목에 침 같은 게 날아와 꽂혔다. 이불 속에서 카쟌이 독침봉 같은 것을 입에 대고 있었다. "으허헝." 딕은 그대로 침대에 나자빠지며 쿨쿨 코를 골았다. "나도 자주 쓰는 수면침이다. 푹 잘 거다." 카쟌이 이불을 걷으며 얼굴을 드러냈다. "날이 밝는 대로 지금까지 수집한 정보를 가지고 네프티스 님께 약식 보고하겠다. 아무리 네크로맨서라고 해도 우리가 본 건 정상적인 광경은 아니었으니." "예, 부탁드릴게요." "너도 이만 자라." 카쟌이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하아.' 시몬은 방의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지만,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곳에서 본 끔찍한 광경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건 대체 뭐였을까? 거긴 대체 어디였을까? 발터는 정말로 혈천교의 주교일까? 그리고 키젠에서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걸까? 시몬은 그날 새벽 조금 잠을 설쳤다. * * * 다음 날 아침. 바로 전날 밤에 놀라운 모험을 했지만, 태양은 언제나와 다를 바 없이 밝아왔고 일상이 시작됐다. 오늘은 마투학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그리고 A반 학생들이 하마를 타고 도착한 곳은, 그간 와본 적 없는 훈련장 같은 곳이었다. 여기엔 각종 목각인형과 허수아비, 짚단 등. 다소 클래식한 훈련 도구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자, 자, 앉으제요!" 마투학 교수 홍펭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하마를 타고 오느라 땀을 쭉 뺀 학생들이 드링크를 하나씩 손에 들고 자리에 모여들었다. "오늘은 그동안 배웠던 것들을 간단히 복즙할 거예요!" 훈련복 차림의 그녀는 가벼운 걸음걸이로 걸어가 근처의 바위 앞에 섰다. "자, 내가 쓰는 기줄을 보고, 어떤 기줄인지 맞춰보제요!" 그녀가 바위에 손을 올렸다. 퍼어어엉! 난데없이 바위가 그녀의 손을 중심으로 크게 파였다. 학생들이 놀라워하면서도 큰 소리로 말했다. "취타입니다!" 홍펭의 오리지널 타격기인 '취타'. 주먹이나 손바닥에 칠흑을 모은 다음, 그 힘을 한 번에 폭발시키는 원리의 마투학 기술이었다. "잘했어요! 브레드 조교?" 브레드가 바위 위에 올라가서 방패로 바위를 가렸다. 홍펭은 피하지 않고 그대로 방패에 주먹을 내질렀다. 꽝!! 그녀의 주먹이 나무 방패를 넘어 그 뒤에 있는 바위에 다시 한번 큰 흠집을 냈다. 방패는 멀쩡했다. 학생들이 입을 모아 대답했다. "천흉입니다!" 갑주나 방어구를 무시하고 상대의 몸에 직접 타격을 줄 수 있는 관통기인 천흉. 홍펭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세를 낮추었다. 그녀의 오른손에 칠흑이 휘감기는 듯하더니 손에 단검을 든 것처럼 살짝 칠흑의 날이 삐쳐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녀가 그것으로 허공을 휘두르자. 쩡! 그 커다란 바위가 깔끔한 단면을 보이며 반으로 갈라졌다. 학생들이 앞다투어 외쳤다. "착검입니다!" 이번에도 홍펭 오리지널 기술인 착검. 주먹과 다리를 주로 쓰는 마투학에 부족한 '날붙이'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기술이자, 원거리 공격도 가능한 범용성이 뛰어난 마투기였다. 세 가지 기술의 시범을 보인 그녀가 주먹과 손바닥을 모으는 자세로 인사했다. 학생들의 우렁찬 박수 세례가 쏟아졌다. "모두 한 번은 배운 것들이죠?" 홍펭이 검지를 휘휘 흔들었다. "그럼 이제 팔을 한번 들어볼게요! 이 3가지 중에서 아직 하나도 못 하는 학쟁!" 갑자기 주위에 긴장감이 흘렀다. 여학생 두 명이 삐질삐질 땀을 흘리며 손을 드는 모습이 보였다. 알고 보니 뒷자리에 앉은 토토도 손을 들고 있었다. 홍펭이 다시 말했다. "그래도 이 중의 하나는 할 줄 안다!" 거의 절반 이상의 많은 학생들이 손을 들었다. 메이린, 카미바레즈, 딕이 포함됐고, 절반 이상의 비율이 여기에 속했다. "그럼 두 가지!" 나머지 학생들이 번쩍 손을 드는 모습이 보였다. 이쪽도 꽤 수가 많았는데 아주 자신감이 넘치는 얼굴이었다. 시몬이 아는 사람들 중에서는 반장 제이미가 있었다. 마투에도 강점이 있던 모양이다. "그럼 모두 쓸 줄 아는 학쟁!" 대부분의 손이 내려가고 딱 네 명의 손이 새로 올라왔다. "오올~" 그 모습을 본 학생들이 탄성을 흘리거나 휘파람을 불었다. 손을 든 시몬은, 조금 멀리 떨어진 자리에서 인상을 구긴 채 손을 들고 있는 헥토르와 딱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나머지 두 명은 마투학 전공자들이었다. "좋아요! 배우는 족도에 개인차가 있겠지만, 마지막엔 취타, 천흉, 착검 모두 자유자재로 가능하도록 훈련해요! 적어도 이 기줄들은 다 익혀야." 그녀가 미소 지으며 덧붙였다. "조교들이랑 대등하게 싸우는 게 가능하겠죠?" 그랬다. 홍펭이 공고한 마지막 수행평가는 조교와의 1:1 마투학 매치였다. "오늘은 이 기줄들을 맹훈련을 해볼 거예요! 모두 일어나요!" 간단한 스트레칭 후 바로 훈련이 시작됐다. 조교들이 돌아다니며 학생들의 자세와 기술을 봐주었다. 두 가지 이상을 쓸 수 있는 학생은 나머지 하나도 빠르게 배우는 편이었다. 시몬은 이미 세 가지 기술 모두 쓸 수 있었기에 다소 여유가 있었다. "야, 시몬." 그때 메이린이 주뼛거리며 시몬에게 다가왔다. "응, 무슨 일이야?" "흠흠." 뺨이 발그레해진 메이린이 말을 고르다가, 이내 힘주어 말했다. "하, 한가하면 나 착검 좀 봐주면 안 될......!" "세 가지 다 할 줄 아는 학생은 이쪽으로 오세요!!" 조교의 외침의 시몬의 시선이 돌아갔다. 메이린이 속으로 '악!'하고 분노를 뿜어냈지만 애써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 암것도 아냐. 빨리 가봐!" "됐어." 시몬은 대수롭지 않은 듯 무시하고는 말했다. "네가 더 중요해. 가르쳐 줄 테니까 자세 잡아봐." "......!" 메이린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이 녀석은 가끔. 아주 가아아아끔이지만 훅 하고 다가올 때가 있었다. "한 가지 쓸 줄 아는 건 뭐야?" 시몬이 물었다. "취, 취타." "그럼 천흉부터 해보자. 취타를 할 줄 알면 더 빨리 배울 수 있어." 시몬이 메이린의 자세를 교정해 주며 자신이 생각하는 팁을 알려주었다. "우리가 손바닥에 닿은 물건에 칠흑을 흘려보내는 건 익숙하잖아?" 시몬이 메이린의 손목을 살짝 잡으며 말했다. 그녀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칠흑의 기억하는 버릇 때문에 조금 애먹을 수 있어. 천흉을 쓸 때는 평소처럼 칠흑을 흘리는 게 아니라, 넘겨 보내는 걸 확실히 자각하는 게 중요해. 손바닥에 닿은 것을 인지하지 않고, 그 너머를 찌른다는 느낌이야." 시몬이 붙잡은 그녀의 하얀 손등 뒤에 자신의 오른손을 살포시 올렸다. 그리고 칠흑을 일으키자, 그녀의 손바닥 아래로 칠흑이 삐져나왔다. "어때? 내 칠흑이 안 느껴지지?" "......." "메이린?" "어, 어어! 절대 안 느껴져! 응!" 그녀가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시몬이 미소 지으며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앞에 있는 물체는 의도적으로 의식하지 않고, 그 너머의 대상에 집중해. 자, 한번 해보......." "시몬 폴렌티아―!!" 굵직한 외침과 함께 우락부락한 덩치의 남자가 다가왔다. 마투학 조교 브레드였다. 금방이라도 짜증을 쏟아내려던 그가 시몬과 메이린이 손을 잡은 모습을 보고는 콧방귀를 뀌었다. "하! 뭐 하나 했더니 연애질이냐?" "무, 무슨 소리예요!" 얼른 손을 빼낸 메이린이 빽 소리를 질렀다. 브레드가 귀를 후비는 시늉을 하며 시몬을 보았다. "세 개 다 할 줄 아는 놈들은 훈련장 쪽으로 가라. 가르치는 건 우리 조교들의 몫이다." "네, 가보겠습니다. 미안해 메이린." 그렇게 시몬이 훈련장으로 향한 뒤 브레드가 팔짱을 꼈다. "놈이 천흉을 가르쳐 주고 있었나? 한번 해봐라. 내가 훨씬 더 잘 가르칠 테니!" 메이린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브레드를 노려보더니, 하는 수 없이 허공에 천흉을 사용해 보았다. "그게 아니지!" 브레드가 소리쳤다. "힘이 없잖아 힘이! 조금 더 파밧! 촤악! 하는 느낌으로 해봐!" '파밧 촤악이 뭔데요.' 그녀가 몇 번 더 시도해 보았지만 브레드는 답답하다는 가슴을 치며 자기가 천흉을 발동해 보았다. 그러곤 대뜸 따라 해보라고 했다. "이게 왜 안 되나! 파밧! 촤악! 하라니까! 그냥 딱 내가 하는 대로만 따라 해!" "이제 됐어요. 감사합니다." 메이린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브레드를 노려보고는 푸른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걸어가 버렸다. 이 인간은 평생 교수 일은 못 할 거라 생각했다. * * * 한편 시몬은 훈련장 앞에 도착했다. 여기는 코스가 꽤 체계적으로 갖춰져 있었다. 훈련 코스의 좌우에는 레일이 깔려 있었는데, 그 레일을 타고 목각인형 같은 것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목각인형은 몸통에 여러 개의 나무 팔들을 단 채로 회전하는 중이었다. 마침 한 마투학 지망생이 레일 사이를 뛰어가며 연습하고 있었다. 목각인형이 회전하면서 나무팔들이 학생에게 다가오고, 그것을 학생이 재빨리 쳐내면 팔의 관절이 휘어지며 지나갈 수 있게 된다. 그때 홍펭이 말했다. "왔군요 지몬! 다음은 지몬 차례예요!" 시몬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이게 다 뭐예요?" "주행평가예요! 원래는 다음 주업에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그녀가 빙긋 웃었다. "우등쟁들에게는 부담 없이 먼저 도전할 기회를 주고 있답니다!" 퍼억! 결국 먼저 코스를 타던 학생은 중간에 다가오는 방패에 부딪혀 나가떨어졌다. '그렇구나.' 기본적으로 마투학 코스에, 취타, 천흉, 착검을 자유자재로 써서 통과해야 하는 코스인 것 같았다. "가능하겠어요?" 홍펭의 물음에 시몬이 씩 웃었다. "네,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홍펭이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조교가 그 모습을 보고는 소리쳤다. "시몬 폴렌티아 학생! 훈련장 코스 도전하겠습니다!" 시몬이라는 말에 다른 학생들도 재밌는 구경거리가 생긴 듯 기웃거리며 다가왔다. '시몬 폴렌티아?' 헥토르도 굳은 얼굴로 다가왔다. 다른 두 명이 떨어졌지만 헥토르는 간발의 차이로 통과한 상태였다. 팔짱을 낀 그가 이를 뿌득 갈았다. '뭐, 이번엔 쉽지 않을 거다.' 시몬은 가볍게 스읍 숨을 들이마시고는 훈련장 코스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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