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14화 카미바레즈의 대출혈 마법이 제대로 들어갔다. 모래바닥에 추락한 스콜피온이 온몸에서 피를 뿌리며 괴로워했다. "크윽!" 하지만 시몬도 독이 퍼지는지 안색이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었다. "시몬! 괜찮아요?" 전혀 괜찮지 않았지만 애써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놈이 도망치려 해. 지금 확실히 끝장내자." 시몬이 그렇게 말하며 팔을 뻗으려는 순간, 괴물은 등을 돌렸다. 꼬리 꽁무니 쪽에서 장갑이 벌어지더니 자욱한 독연기가 칙! 소리를 내며 뿜어져 나왔다. 시몬은 피할 틈도 없이 독연기를 뒤집어썼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카미바레즈에게도 독연기가 덮쳐 오고 있었다. '둘 다 중독돼선 안 돼!' 적어도 한 명은 멀쩡히 남아서 해독제를 만들어야 했다. 시몬이 팔을 거칠게 휘두르자 스켈레톤의 본 아머가 빛살처럼 날아와 카미바레즈의 몸에 장착되며 그녀를 뒤로 밀어냈다. "꺅!" 간발의 차이로 독연기가 그녀가 있던 곳을 뒤덮었고, 본 아머 차림의 카미바레즈는 멀찍이 날아가 바닥에 쓰러졌다. "허억 허억!" 시몬이 거친 숨을 헐떡이며 앞을 보았다. 카미바레즈가 충격을 받는 바람에 '블러드 스레드'가 풀려 버려서 자유의 몸이 된 스콜피온이 땅을 파서 도망치고 있었다. "카미......!" 시몬이 털썩 한쪽 무릎을 꿇으며 소리쳤다. "쫓......!" "시몬!!" 결국 버티지 못하고 시몬이 풀썩 쓰러졌다. 스콜피온을 뒤쫓으려던 카미바레즈가 놀란 얼굴로 시몬에게 달려와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시몬! 정신 차려요! 제발, 시몬!" 그녀의 눈동자에 한가득 눈물이 맺혔다. 시몬은 애써 미소 지어 보이며 그녀를 안심시킨 다음, 손을 움직였다. "......독부터 채취하자." "아, 네!" 스콜피온 사냥은 마지막에 해도 되지만, 해독제 조제는 지금 당장 해야만 했다. 그녀가 허겁지겁 해독제 키트를 꺼내더니, 기름종이 같은 것을 시몬의 베인 상처에 댔다. 종이가 독을 흡수하며 녹색으로 물들어 갔다. "꾹 누르고 계셔주세요." 그녀의 목소리가 달달 떨렸다. 시몬이 쓰러져서 너무 혼란스럽고 걱정스러웠지만, 그래도 네크로맨서답게 우선순위대로 움직였다. '내가 해독제를 만들어야 시몬도 무사할 수 있어!' 다행히 독연기는 아직 완전히 걷히지 않았다. 시몬은 독에 중독되어 누워 있는 와중에도 아공간에서 스켈레톤을 꺼내고는, 자신의 키트에서 종이를 꺼내 스켈레톤에 건네주었다. 독에 영향을 받지 않는 스켈레톤이 독연기 속으로 달려가 독을 묻혀서 돌아왔다. "카미 여기...... 독연기 성분." 힘들어 보이는 시몬과는 달리, 그가 사념으로 조종하는 스켈레톤은 무척이나 빠릿빠릿한 움직임을 보였다. "가, 감사해요." 그녀가 스켈레톤이 건넨 종이를 두 손으로 공손히 받고는 키트 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이걸로...... 칼날독이랑 연기독 모두 회수했어." "시, 시몬은 이제 쉬세요!" "괜찮아." 독에 중독되어도 정신은 멀쩡하니, 언데드는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카미바레즈는 시몬을 치료하면서도 불안하게 주위를 휙휙 살피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 스콜피온이 다시 공격할지 몰랐으니까. "이, 일단 안전한 곳으로 갈게요!" 해독제 키트를 아공간에 집어넣은 그녀가 시몬의 허리를 감싸고, 그의 무릎 아래로 팔을 넣었다. 그러곤 '흡!' 하는 소리를 내며 시몬을 안아 올렸다. '......하하.' 하지면 어쩔 도리가 없는 체격 차이였다. 자세가 극도로 불안정했다. 카미바레즈가 힘에 겨운 듯 달달 떨면서도 칠흑 체내 운용으로 버텨냈다. "시, 시몬은 제가 구할 거예요!" 그녀가 후들거리는 다리로 한 발 한 발 힘겹게 내디뎠다. 온갖 애를 쓰며 낑낑 걸어가는 모습에 시몬은 독에 취한 상태에서도 옅은 웃음이 나왔다. "......내려줘 카미, 내가 알아서 걸을게." 무엇보다 그녀에게 안겨 있는 자세가 너무 힘겨웠다. 이대로는 독에 당하기 전에 허리가 먼저 박살 날 것 같았다. "그 몸으로 어떻게 걸어요!" "방법이 있어." 시몬이 스켈레톤 두 기를 분해해 자신의 몸에 붙였다. 전신 본 아머였다. 본 아머의 진가는 외골격 수트 같은 강화효과에 있었다. 시몬의 몸은 힘이 빠져서 흐느적거렸지만, 사념으로 본 아머를 컨트롤해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가 바로 익숙해졌는지 착착 걸었다. "가자 카미." 시몬이 본 아머로 걷는 모습을, 카미바레즈는 뒤에서 멍하니 바라보았다. '......시몬은 정말 대단해.' 극독에 중독되어 당장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은 때에, 자칫하면 죽을지도 모르는데, 시몬은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세워 착착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무척이나 대단하고 어른스럽게 보였다. '으음.' 반면 시몬은 골치가 아파왔다. 카미바레즈를 보내고, 영상 녹화용 펜던트는 가슴 위에 올려둔 뒤에 몰래 신성을 쓸까도 생각했지만. '지금 내 큐어(Cure)로는 5급 위험도 몬스터의 독은 못 풀어.' 백마법 중에서는 독을 비롯한 각종 상태이상을 해체하는 치유학 기술, '큐어' 마법이 있었다. 하지만 시몬은 힐에 집중적으로 훈련하느라 큐어에는 다소 소홀했다. 별야의 맹독학 수업으로 독에 어느정도 면역이 생겨서 그걸 믿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뼈 아팠다. '......선택과 집중이라고 생각하면 어쩔 수 없지. 지금은 맹독학의 해독제를 믿자.' 사막을 지나 그나마 안전한 숲으로 들어왔다. 시몬은 풀밭 위에 누워서 스켈레톤만 조종했고, 카미바레즈는 해독제를 제조하는 데 정신이 없었다. 그녀의 맹독학 성적은 전체 상위권, 혈류학 다음으로 잘하는 과목이었으며 시몬과 성적 차이는 컸다. 시몬도 해독제 조제는 그녀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시작할게요." 가슴에 두 손을 올리고 침착하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작업에 들어갔다. 우선 독의 분석부터 서둘러야 했다. 독을 빨아들인 종이를, 세 겹으로 겹쳐진 삼색 종이 위에 올렸다. 독이 각각 삼색 종이로 번져나가며 새로운 색깔을 냈다. "......빨간 종이가 노란색으로 바뀌는 건 신경독 종류의 캐미컬 루트." 그녀가 맹독학 교과서를 펼쳐놓고 빠르게 분석하기 시작했다. "파란 종이가 검은색으로 바뀌는 건 나트륨 루트. 하지만 빨간 종이가 캐미컬 루트로 나왔으니까 이 경우에는......." 카미바레즈가 빠르게 중얼거리며 독 위에 여러 종이를 올려 보았다. 종이의 색깔 변화를 보고 분석을 노트에 필기한 후, 그 외에 수용액을 한 방울 떨어뜨리거나 키트의 지방 덩어리를 올려둬서 독에 분해되는지도 확인했다. 어떤 독이라도 구성 성분이 무엇인지만 알면, 이에 대응하는 해독제도 어떻게든 만들어낼 수 있다. 한편 자리에 쓰러져 있는 시몬은 스켈레톤들을 움직여 나무를 가져와서 불을 피울 준비를 했다. 나뭇가지와 마른 잎을 가져와서 한쪽에 놓고 지지대를 만든 다음, 그 위에 마법솥을 걸었다. "분석 다 했어요!" 그사이 그녀는 칼날독과 연기독 모두 분석을 완료했다. 집중했던 그녀가 이마에 땀을 뚝뚝 떨어뜨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시, 시몬!!" 어느새 시몬은 정신을 잃은 듯 쓰러져 있었다. 너무 놀란 그녀가 필기한 책을 내팽개치며 달려왔다. 이마에 손을 대보니 열도 꽤 많이 났다. "......." 시몬이 위험하다. 아무리 수행평가가 중요해도 시몬의 목숨보다 중요한 건 없다. 그녀가 결연한 표정으로 목에 맨 펜던트를 들어서 시험포기 선언을 위해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툭툭. 등 뒤에서 스켈레톤이 카미바레즈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고는 팔로 X자를 그리더니, 깃펜으로 교과서에 조그맣게 메모하기 시작했다. <난 괜찮아. 절대 포기하지 마.> "......시몬." 그녀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시몬의 가슴 위에 귀를 대보았다. 시몬이 알려준 대로, 호흡은 규칙적이고 맥박도 아직은 괜찮다. "아!" 어느새 시몬의 가슴 위에 밀착해 있다는 걸 깨달은 카미바레즈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휙 고개를 들었다. "......정 못 버틸 것 같으면, 내가 누를게." 그때 시몬의 목소리가 들렸다. "해독제를 만들러 가줘." "시, 시몬." 그녀의 동공이 흔들렸다. 잠시 망설이던 그녀가 몸을 일으키고 무릎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조,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금방 다녀올게요!" "응." 카미바레즈가 바닥에 떨어진 맹독학 교과서를 들어서 허리에 낀 다음, 숨을 헐떡이며 숲을 달리기 시작했다. 복부에 봉인 마법진도 살짝 풀어서 우르슬라 가문의 피도 발동시켰다. '매번 시몬이 날 구해줬던 것처럼!' 그녀가 칠흑을 밟고 달려 나갔다. '이번엔 내가 시몬을 구할 거야!' 식물과 풀잎의 모양을 보고 바로바로 해독초를 채취하고, 꽃을 따서 바구니에 잘 담아 아공간에 넣었다. -커컹! 컹! 방해꾼이 나타났다. 숲의 단골 몬스터인 '하운드 독'이 으르렁거리며 카미바레즈에게 다가왔지만, 그녀는 해독초를 따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 손으로는 해독초를 뽑고, 다른 한 손은 휙 하고 머리 뒤로 넘기더니 보지도 않고 혈류탄을 쐈다. 퍼엉! 혈류탄에 맞은 하운드 독들이 깨갱 소리를 내며 도망쳤다. "다음!" 그녀가 교과서를 펼쳤다. "웨어울프의 쓸개. 이 숲에 웨어울프가 있을까?" 현장에서 100% 완벽한 해독제를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어느 정도 비슷한 효과를 내는 것들이라도 찾아야 했다. -키싯! 킷! 이번에는 고블린 떼가 나타났다. "비켜!" 카미바레즈가 피의 흑마법을 마구마구 일으키며 주위를 초토화시켰다. 몬스터들이 기세에 밀려 물러났다. 다른 고블린들이 뒤쫓으려 했지만 저 인간은 미쳤다며 말렸다. 그러나 이 정도로 큰 소란이 생기면. -크르르! 우두머리 개체도 나올 가능성이 커지게 마련이었다. 이 숲의 주인, 거대한 곰, 크림슨 베어가 카미바레즈의 앞을 가로막았다. "비켜!!" 카미바레즈가 시뻘건 안광을 번뜩이며 소리쳤다. 그녀의 몸에서 살벌한 칠흑이 솟구쳐오르자, 크림슨 베어가 찔끔한 표정을 짓더니 놀랍게도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찾았다!' 그사이 카미바레즈가 달려가 중요한 해독제 재료인 백하꽃을 뜯어내 아공간에 넣었다. '시몬! 기다려 주세요!' * * * '으음.' 독에 취해 해롱해롱 기절해 있던 시몬은 새로운 훈련법을 알아냈다. 정신이 반쯤 나간 이 상태가 되자, 오히려 신체 내부와 칠흑 흐름을 깊게 느낄 수 있었다. 역시나 별야의 수업이 의미가 있었는지, 체내의 요소들이 독을 상대로 맞서고 있었다. 몸이 적응하며 조금씩 항체도 만들어지는 것 같았다. 지금 이 상태에서, 시몬은 독에 저항하는 요소들을 컨트롤할 수 있었다. 그것들은 이물질들을 압박해 한쪽으로 몰아내기 시작했다. '이쪽.' 시몬이 손에 숏소드를 쥐고는 배에 살짝 상처를 냈다. '큐어(Cure).' 독이 빠르게 중화되는 게 느껴진다. 시몬은 힐로 다시 상처를 덮은 다음, 독과 싸우기 시작했다. '독에 걸렸다고 누워 있기엔 시간이 아까워.' 별야의 궁극적인 목표였던 '혈독'의 상위단계를, 시몬은 스스로 깨우쳐 가고 있었다. 거기에 그동안 소홀하던 큐어의 훈련까지. '독에 걸리니 이런 훈련이 되는구나. 하다 보니 재밌네.' 가히 노력 중독. 시몬의 몸은 시련을 보란 듯이 짓밟고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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