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71화 시몬의 움직임은 파격 그 자체였다. 10만 포인트짜리 몬스터인 괴공을 쓰러트린 것도 모자라, 데이모스의 알파 능력으로 해양 몬스터 떼를 몰고 다니며 외곽 지역의 바다를 싹 휩쓸고 다녔다. 걸리는 몬스터들은 그야말로 바다에서 지워 버렸다. 물론 네크로맨서 시험에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소환수 규정에 따라, 시몬은 알파로 조종하는 몬스터들이 사냥에 성공해도 자신의 포인트로 환산받았다. 이제 시몬이 지나간 곳에는 몬스터의 씨도 남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불가능한 영역이라고 여겨지던 육의 자릿수 포인트를 시몬은 가뿐히 성공시켰다. 2위가 이제 1만 포인트 정도인 걸 감안하면, 그야말로 압도적인 격차였다. 하지만 이제는 슬슬 정신력의 한계가 오고 있었다. 포인트를 벌 만큼 벌었다고 생각한 시몬은 데이모스의 알파 능력을 해제한 뒤 돌아다녔다. 그러다 작은 외딴섬을 발견했다. '저기 숨어서 시험 끝날 때까지 좀 쉬자.' 시몬은 물살을 가르고 나아가 무사히 섬에 도착했다. "수고했어 데이모스." 고생한 데이모스의 머리를 쓸어준 다음, 아공간으로 들여보냈다. 그러고는 홀로 터덜터덜 모래사장에 발자국을 남기며 무인도에 들어왔다. 작은 섬이었고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간혹 섬의 토착생물로 보이는, 두 발로 걷는 뚱뚱한 조류가 있었는데 인간에게 공격성을 보이는 개체는 아닌 것 같았다. 오히려 시몬에게 호기심을 보이며 기웃거리는 모습에 작게 웃음이 나왔다. "죽겠다아." 시몬은 근처에 바위에 몸을 기대어 숨을 길게 내쉬었다. 간만에 '콤펠로' 상태에 들어가 머리를 혹사시켰더니 사실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 같았다. 물론 정신을 잃고 아웃처리 되면 큰일이다. '정신 놓을까 봐 자는 것도 못 하겠다.' 방금 수만 마리의 해양 생명체를 이끌고 괴공과 싸웠던 게 한결 꿈처럼 느껴졌다. 시몬은 팔에 찬 텅패드를 확인해 보았다. 1위 - 시몬 : 223,500Point 역시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현 2위인 1만 대 포인트의 엘리사와는 21만 포인트 차이가 난다. 시몬은 음흐흐 웃으며 흡족한 얼굴로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 또 1등 했어요! 아버지.' 남은 시간은 한 시간도 되지 않았다. 이대로 버티면서 포인트를 지키기면 하면 승리다. 시몬은 푸른 하늘을 보며 여러 상념에 잠겼다. * * * 첨벙 첨벙. 시룡의 비늘을 붙인 헥토르가 짜증스럽게 바다에서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의 눈은 피로로 가득했다. "망할! 망할! 망할!" 계획했던 모든 게 꼬여 버렸다. 페이스를 올려서 유력한 1위 후보인 엘리사를 넘어선 건 좋았다. 거기까지는 자신의 계획대로였다. 그런데 갑자기 10위 밖에서 대뜸 튀어나온 시몬 폴렌티아가 10만 포인트라는 말도 안 되는 수치로 1등을 먹어버렸다. 머리끝까지 열이 뻗친 헥토르는, 페이스를 무리하게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바다로 들어갔다. 그러나 체력이 받쳐주지 않는데 마음만 급하다고 사냥이 제대로 될 턱이 없었다. 게다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근처 바다에 득실대던 해양 몬스터들도 싹 사라진 상태였다. 그런 악조건들이 겹쳐 헥토르는 크게 헤맸고, 그사이 다시 엘리사에게 2위를 내준 걸로도 모자라 4위까지 내려왔다. "빌어 처먹을......!" 짜증이 치밀었다. 이게 다 시몬 폴렌티아 때문이다. 놈 때문에 모든 게 꼬이고 있다. 신경을 쓰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매번 이런 식인데 어떻게 놈을 의식하지 않겠는가. "그 새끼의 뻔뻔한 면상을 언젠가 제대로 한번......." 거기까지 중얼거린 헥토르의 눈이 급격히 커졌다. '?!' 그는 잠시 자신의 기대가 만들어 낸 허상이 아닐까 생각하여 천천히 눈을 비빈 다음, 다시 앞을 보았다. 허상이 아니었다. 수풀이 우거진 바위에 등을 기댄 소년, 바로 그 시몬 폴렌티아가 텅패드를 확인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 시몬도 뒤늦게 그를 발견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하." 헥토르는 그저 웃음이 나왔다. "큭. 크크큭. 크!" 세상은 아직 날 버리지 않았다. "크. 하하하하하하!" 여기서 떡 하니 마주치게 될 줄이야! "시몬 폴렌티아아아아!" "아으 씨." 시몬이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으로 옆머리를 벅벅 긁었다. '어떻게 여기서 딱 만나냐.' 최악의 위기였다. 체력도 정신력도 고갈된 상태. 여기서 헥토르에게 아웃당하면 모든 코인과 포인트를 빼앗기는 건 물론이고, 시험장으로 돌아오기도 전에 시험이 끝나 버린다. 즉 퇴학이다. 이런 사태를 겪지 않으려고 페이스를 늦게 가져가려 한 거였다. 라헤임과 괴공이라는 예상 못 한 적들 때문에 꼬여 버렸지만. "드디어." 입꼬리가 귀 끝까지 올라간 헥토르가 화산 같은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결착의 때가 왔다." "잠깐, 잠깐만. 헥토르!" 시몬이 애써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두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아직 포기하긴 이르다. 드래곤 레어에 들어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산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잠깐 진정하고 내 말을 들......!" 파아아악! 헥토르가 던진 시룡의 비늘이 표창처럼 시몬의 뒤쪽 바위에 틀어박혔다. "들을 것도 없다." 헥토르가 몸에 덜렁거리는 비늘을 하나 더 떼어내어 손에 쥐었다. 그런데 정작 헥토르의 몸 상태도 심상치 않아 보였다.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덜덜 떨리고 있었다. '다행히 헥토르도 지쳐 있네. 몸 상태는 나와 크게 다를 바가 없어.' 시몬은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지만 다시 설득을 시도했다. "들어봐. 여기서 우리끼리 승부를 내기엔 상황이 좋지 않아!" 헥토르가 문답무용으로 비늘을 던졌고 시몬이 얼른 몸을 숙여서 피했다. 헥토르는 너무 강하게 비늘을 던진 반동으로 휘청거리며 넘어질 뻔했다. 두 사람 다 극도로 지쳐 있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30분 남짓이야!" 시몬은 포기하지 않고 소리쳤다. "여기서 쓰러진 한쪽은 코인을 주울 기회도 없어! 시험에 탈락하고 키젠에서 떠나야 한다고!" "그거 좋군." 헥토르가 이번엔 양손에 비늘을 들었다. 시몬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갑자기 딕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헥토르가 왜 너랑 싸우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아마 널 꺾는 게 자기 힘의 증명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그 말을 떠올린 시몬이 얼른 말했다. "시간을 내서 제대로 일정을 잡자! 피차 힘이 빠진 상태에서 승부를 가리면 찜찜하잖아!" "잔머리 굴리지 마라. 시몬 폴렌티아." 헥토르의 몸에서 바닥난 줄 알았던 칠흑이 솟구쳐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절대, 눈앞의 승부에서 눈 돌리지 않는다!" 헥토르가 성난 코뿔소처럼 돌진해 왔다. '아, 정말!'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운 시몬이 헥토르가 돌진해 오는 타이밍에 맞춰 슬라이딩 태클을 걸었다. "큭!" 헥토르가 훌쩍 뛰어올라 피했다. 헥토르가 바닥에 착지하기 무섭게 역으로 달려든 시몬이 스트레이트를 날렸다. 부우웅! 헥토르가 허리를 젖히고, 시몬의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헥토르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약해졌군." 이번엔 헥토르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다 죽어가는 꼴이구나 시몬 폴렌티아!" 부아아앙! 그의 커다란 주먹이 휘둘러졌지만 시몬은 슬쩍 고개를 꺾어 피했다. "!" "힘 빠진 건 너도 마찬가지 같은데." 쩌억! 치솟은 시몬의 주먹이 헥토르의 턱에 꽂혔다. 헥토르의 배리어 게이지가 깎여 나갔지만 턱이 올라간 헥토르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렸다. 별로 아프지 않은 반응이었다. "약해." 퍽! 이번엔 헥토르가 시몬의 안면을 훅으로 강타하는 카운터를 날렸다. "윽!" 한 대 맞았지만, 바로 시몬이 반대쪽 손으로 헥토르의 안면을 갈겼다. 쩌억! 퍽! 퍼억! 쩍! 두 사람이 서로 주먹을 주고받았다. 피차 주먹에 실을 칠흑도 없을 정도로 지쳐 있었다. 방어는 없었다. 한 대 맞으면 한 대씩, 시몬의 고개가 돌아가면 헥토르의 고개도 돌아갔다. "이제 그만해!" 빡! 날아오른 시몬의 무릎이 헥토르의 안면을 가격했다. 헥토르가 먼지를 일으키며 쓰러졌지만,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났다. "크후웁!" 헥토르가 야수처럼 뛰어들어 시몬의 두 어깨를 붙잡고 바닥에 쾅! 소리가 나게 쓰러뜨렸다. 시몬을 깔아뭉갠 헥토르가 회심의 미소를 흘리며 주먹을 들어 올렸다. "뒈져라." 퍼억! 퍽! 퍽! 두 주먹이 번갈아 가며 시몬의 안면을 두들겼다. 배리어가 깜빡거리며 빠르게 깎여 나갔다. "!" 일방적으로 타격하고 있던 헥토르의 중심이 순간 휘청하고 흔들렸다. 쓰러져 있던 시몬이 다리에 힘을 주어 몸을 불쑥 세워 들자, 그의 상체가 넘어가 팔꿈치가 바닥에 닿았다. 덥석! 덥석! 이내 시몬의 두 손이 헥토르의 허리를 붙들고, 두 다리는 헥토르의 몸을 뱀처럼 휘감더니 그대로 옆으로 넘겨 버렸다. '뭐냐 이 기술은!' 정신을 차리니 헥토르가 역으로 뒤집혀 있고 시몬이 그 위로 올라탄 자세가 되었다. 퍼억! 퍽! 바로 상황이 반대되었다. 시몬이 주먹으로 두들기고 헥토르가 얻어맞는 처지가 되었다. "크아아아아!" 몇 대 얻어맞던 헥토르는 순수한 힘과 체격으로 시몬을 밀어냈다. 잠시 소강상태가 된 두 사람이 숨을 헐떡였다. "하아, 하아!" "허억! 허억!" 무릎을 굽히고 숨을 헐떡이던 두 사람이 동시에 몸을 일으켰다. 이내 다시 바닥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부웅! 붕! 주먹이 오가는 치열한 난타전이 벌어졌다. 피차 적중률은 형편없었고, 맞아서 아픈 것보다 주먹을 휘두르는 게 더 힘들었다. 그때 그들의 시선이 서로의 머리를 향했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리부터 올라왔다. 투콰아아악! 두 사람이 날린 발차기가 X자로 교차하며 부딪혔다. 크게 휘청하며 뒤로 물러난 두 소년이 자리에 한쪽 무릎을 꿇고 거친 숨을 토해냈다. '크으!' 두 사람이 다시 서로를 향해 달려가는 순간. "!" 헥토르의 눈이 커졌다. "망할, 피해라!!" 시몬은 그 다급한 외침이 자신을 향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시몬이 옆으로 몸을 날리는 즉시, 거대한 암벽기둥이 그가 있던 자리에 꾸웅! 소리와 함께 틀어박히며 뿌연 흙먼지를 일으켰다. 쿠구구국― 시몬은 얼이 빠진 표정으로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다. 헥토르도 아슬아슬하게 브레이크를 밟아 멈췄다. 두 사람의 키를 합한 것보다 더 큰 암벽이었다. 쿠웅! 쿠웅! 쿠웅! 마치 대지가 들썩이는 듯한 발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이 자세를 바로잡으며 몸을 일으켰다. 시몬은 그 존재감을 감지하는 순간, 목덜미에 소름이 바싹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최악이다.' 그것은 잠시 몬스터라고 착각했지만, 입고 있는 잠수복과 방호슈트가 학생임을 증명했다. '제대로 앞에서 보는 건 처음이야.' 키가 3미터나 넘어가는 거구 중의 거구. 불룩하고 둥글둥글한 몸에, 회색 머리카락과 눈썹. 게슴츠레한 실눈에, 입가에 툭 튀어나온 짐승 같은 어금니. 마치 인간을 먹이로 둔, 상위 포식자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특례 3번의 샤텔 마에르......!' 거인의 게슴츠레한 실눈이 떠지며, 음침한 흰자가 슬쩍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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