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68화 같은 시각. "푸하!" 바다 밑바닥으로 내려갔다가, 이제 막 수면 위로 올라온 메이린이 낑낑대며 발판에 올라왔다. 그녀는 나오자마자 공기 마법진에 공기를 채워놓고는 텅패드를 확인했다. '이제 6개. 한번 내려갈 때마다 2개씩 줍는 꼴이네.' 치열했던 시험 초반부의 '무한경쟁' 양상은 해소되고, 다들 코인 찾기에 전념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슬슬 10개를 다 모으고 외해로 가서 포인트 사냥을 하는 학생들도 있을 것이다. '외해의 몬스터 씨가 마르기 전에 빨리빨리 진출해야 해.' 공기 마법진을 채워 넣은 메이린이 다시 바다로 뛰어들었다. 첨벙! 알록달록 물고기 떼가 헤엄치는 모습이 보인다. 그 위로 비추는 햇빛이 물고기들의 비늘에 반사되어 아름다운 빛의 산란을 일으킨다. 시험만 아니었다면 이런 풍경을 좀 더 느긋이 즐겼겠지만, 아쉽게도 그럴 여유는 없다. 메이린은 딕이 개발한 오리발을 이용해 빠르게 바다 아래로 내려갔다. 바다 밑바닥이라고 했지만 다행히 수심은 깊지 않아서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문제는 다른 경쟁자들이나 해양 몬스터들의 공격이었다. '아무도 없지?'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확인한 메이린은 천천히 앞으로 헤엄치면서 바닥을 꼼꼼하게 살폈다. 키젠에서 어떤 처리를 해둔 듯, 시야 확보는 육안으로도 문제없었다. 그래도 모래 속에 파묻혀 있는 코인은 더럽게 찾기 힘들었다. 모래를 헤치면서 키젠을 몇 번이나 욕하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아.' 바닥을 살피던 메이린이 잠시 멈춰섰다. 어느 한쪽의 모랫바닥이 간헐적으로 들썩거리고 있었다. '저거 몬스터네.' 그녀는 허벅지에 그려놓은 마법진 위에 오른손을 올리고는, 권총을 뽑아 들듯 손으로 옮겨붙여 작동시켰다. '아이스 볼트!' 마법진에서 쏜살같이 날아간 얼음 조각이 들썩거리는 모랫바닥의 정중앙에 명중했다. 바로 반응이 튀어나왔다. 숨어 있던 가오리 형태의 몬스터가 모래를 해치고 고통스럽게 몸부림쳤다. '좋아.' 펼쳐놓은 마법진의 문양 하나가 사라졌다. 이 문양 하나가 잔량을 뜻했다. 남은 건 아홉 발. '아이스 볼트! 아이스 볼트! 아이스 볼트!' 퍽퍽 소리와 함께 얼음 조각에 꿰뚫린 몬스터가 축 늘어졌다. 네 발에 한 놈을 죽이는 걸 보면 효율은 다소 떨어졌지만, 바다에서는 어쩔 수 없다. 모두가 똑같은 조건이리라. 텅패드로 포인트가 오른 걸 확인한 메이린은 몬스터가 있던 주위를 샅샅이 뒤졌다. '역시!' 그녀가 쾌재를 불렀다. 놈이 숨어 있던 바닥에 코인 하나가 있었다. 그것을 소중하게 주워들어서 손목에 찬 텅패드 앞에 가져다 놓자, 팔찌에서 혓바닥이 튀어나와 날름하고 먹어 치웠다. 코인은 아공간에 보관하면 실격처리다. 텅패드에게 보관하거나 자신이 품에 가지고 있어야 했다. '몬스터를 잡아서 포인트도 올랐네. 바로 다음!' 메이린은 전체적으로 진도가 빠른 상위권이었다. 처음 시험이 시작하고 학생들끼리 무아지경으로 싸울 때, 발판 위에서 대기하며 힘을 아꼈다. 그리고 학생들의 경쟁이 꺾이고 힘이 빠져 있을 때 출발. 잽싸게 발판과 바다 밑바닥을 번갈아 이동하며 코인들을 회수했다. 저번 BMAT 시험 피드백에서, 제인에게 신랄하게 지적당한 걸 생각하면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페이스 조절. 페이스 조절이 중요하다. 절대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 더 찾았다!' 풀숲 같은 해초에 코인 하나가 감겨 있는 모습이 보였다. 메이린이 얼른 그쪽으로 향했지만, 이번에도 몬스터가 숨어 있었다. 연체 동물류의 몬스터가 불쑥 튀어나와 그녀에게 독연기를 뿜어냈다. '윽! 또야?' 위험도 3급 몬스터, 풀파(pulpa). 이 바다에 가장 많은 개체수를 자랑하는 몬스터로, 항문 같은 곳에서 독 연기를 뿜어내 물고기나 사람을 중독시켜 잡아먹는 무시무시한 괴물이었다. 하지만 독을 얼굴에 뒤집어써도 메이린은 아무렇지 않게 오른팔을 세워 들었다. '아이스 볼트!' 퍽! 풀파가 얼음조각에 정통으로 얻어맞으며 힘이 빠졌다. 그 위로 올라간 메이린이 직접 아이스볼트를 양손에 쥐고 몸통에 냅다 꽂아버렸다. 녹색 핏물이 튀어나오며 몬스터가 축 늘어졌다. 바다 밑바닥에 내려온 그녀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독에 중독돼도 아무렇지도 않아. 이게 다 별야 교수님의 수업 덕분이겠지?' 독을 먹는 수업이 다소 이해가 안 될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메이린뿐만 아니라 많은 학생들이 그 성과를 몸으로 체감하고 있었다. 실제로 별야의 맹독학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풀파의 독 공격을 받고도 멀쩡했지만, 다른 교수의 맹독학 수업을 들은 뒷반 학생들은 독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견디다 못해 발판 위에 올라가 해독제부터 만드는 학생들도 있었다. 메이린은 새삼 별야를 원망했던 게 미안해졌다. '순위권에 오르면 인사라도 드리러 가야겠다.' 탐색은 계속됐다. 조금 시간이 걸려 코인을 하나 더 찾았고, 이제 아홉 개였다. 앞으로 딱 하나만 더 찾으면 외해로 진출할 수 있지만, 잠수복에 그려 넣은 공기 마법진의 잔량을 확인하니 슬슬 올라가야 할 것 같았다. '아~ 이대로 올라가긴 좀 아까운데. 근처에 없나?' 그녀가 막판 스퍼트로 열심히 바닥을 뒤지고 있는 그때였다. 촤아아아아. 알록달록 물고기 떼가 갑자기 그녀를 지나쳐 나아갔다. 메이린이 무슨 일인가 싶어 뒤를 돌아보았다. "!" 도망치는 물고기 떼 뒤로, 사람보다 더 커다란 몬스터가 나타났다. 4급 위험도의 상어 몬스터 감반. 그 입에는 키젠 학생의 것으로 추정되는 다리가 버둥거리고 있었다. "......!" 메이린은 너무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이내 배리어 게이지가 다했는지, 상어의 입속에 들어간 학생의 몸이 그대로 텔레포트 되었다. 몬스터는 갑자기 입안으로 들어온 사냥감이 사라지자 분노한 듯 눈동자를 굴리더니, 이내 뻣뻣하게 서 있는 메이린을 발견하고 돌진했다. '큭!' 그녀가 얼른 헤엄쳐 도망쳤지만, 바다에서 인간이 감반의 속도를 이겨낼 수 있을 리 없었다. '싸워야 해!' 결심을 마친 그녀는 아이스 볼트의 잔량을 확인했다. 남은 건 딱 두 발. 그녀가 등을 빙글 돌리며 오른팔을 겨누었다. 감반이 입을 쩍 벌리며 곧바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이스 볼트!' 두 발의 얼음 조각이 나아가 감반의 몸통에 퍽! 퍽! 소리를 내며 부딪혔지만, 겉에 피만 조금 흘릴 뿐 오히려 놈의 화만 더 부추겼다. '아윽!' 감반의 날카로운 이빨이 그녀의 오른팔을 덥석 물었다. 배리어 게이지가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줄어들며 초록색에서 노란색으로 바뀌었다. '다, 당하겠어!' 그녀가 퍽퍽 주먹으로 감반의 얼굴을 내리쳤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생명줄이라고 할 수 있는 배리어 게이지가 이제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이대로 코인과 포인트를 다 잃을 수는 없었다. '누...... 누가 좀!' 스르륵! 스륵! 궁지에 몰린 순간, 위에서 이질적인 녹색의 채찍이 내려와 감반의 몸통을 뱀처럼 휘감았다. 놀란 메이린이 고개를 들자 한 여학생이 양손을 펼치고 흑마법을 발동시키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다름 아닌. '클라우디아!' 채찍에 붙잡힌 감반이 독에 감염되었는지 고통스럽게 몸부림쳤고, 메이린을 물고 있는 힘도 약해졌다. 클라우디아가 눈짓으로 신호를 보내는 게 보였다. '뭐가 뭔진 잘 모르겠지만!' 메이린은 용기를 냈다. 팔을 뺄 기회였지만, 역으로 감반의 입속으로 더 깊숙이 팔을 밀어 넣으며 흑마법을 발동시켰다. <프리징(Freezing)> 상어의 내부가 얼기 시작했다. 이런 따뜻한 바다에 생활하는 종일수록 온도의 급격한 변화에 민감하다. '하물며 몸 내부가 얼어붙는다면야!' 독의 감염에, 내부의 급격한 온도변화까지. 결국 감반이 힘이 빠지며 축 늘어졌다. '잡았다!' 동시에 텅패드에도 포인트가 올랐다. 1,000포인트가 두 명에게 분배되어 500포인트씩 오른 것이다. 무사히 감반을 쓰러트렸지만, 아직 방심할 때는 아니었다. 메이린이 고개를 들어 경계의 눈빛으로 클라우디아를 응시했다. '어쩔 셈이지? 내 코인을 노리는 거면.......' 하지만 클라우디아는 특별히 공격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슬쩍 미소 지어 보이며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키는 게 아닌가. 꼬르륵! 공기가 다 했다. 달리 선택지가 없던 메이린이 위로 헤엄쳤고 클라우디아도 뒤따랐다. 이내. "푸하아아아!" 수면으로 올라온 메이린이 참았던 숨을 크게 내쉬었다. 진짜 죽을 뻔했다. 그 옆으로 클라우디아도 올라와 숨을 쉬었다. "......." 잠시 두 소녀 간의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메이린은 입을 다물고 괜히 무안한 듯 딴청을 피우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야, 구해줘서 고마......." "전엔 미안했어. 메이린." 클라우디아의 말에 메이린의 눈이 커졌다. "......그으, 너 성적 운운한 거. 받아줄지 말진 모르겠지만 미안해. 사과할게." 그렇게 말하는 클라우디아는 다소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최근 바짝 민감하게 굴던 그녀의 분위기가 조금 바뀌었다는 걸 깨달은 메이린은 조용히 웃었다. "됐네요! 오글거리게 왜 이래? 안 하던 짓 하면 사람 죽는다던데." "사과해도 난리야!" 클라우디아가 얼굴을 붉히며 그렇게 대꾸하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젖혔다. "이제 보이콧은 그만두기로 했어." "학생 인권 어쩌고 열심히 싸돌아다니더니." "아- 몰라, 내가 잠시 미쳤나 봐. 쪽팔려 죽겠어. 그리고." 클라우디아가 손바닥을 펼쳐보았다. 방금 사용한 맹독채찍 마법진이 일렁이고 있었다. "내가 별야 교수님을 오해하고 있었던 것 같아." "흠-" 메이린이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데, 그녀들의 등 뒤에서 남학생이 몰래 저주를 준비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가 저주를 발사하려는 그때, 두 사람이 기다렸다는 듯 동시에 뒤를 돌아보며 오른팔을 뻗었다. <아이스 볼트> <맹독채찍> 독과 얼음의 흑마법이 연신 퍼부어지며 남학생의 배리어를 두들겼다. 순식간에 배리어 게이지가 0이 되며, 그는 저주 한번 써보지 못하고 텔레포트 되었다. "깝치긴." 메이린이 소리 내어 웃었다. 클라우디아도 덩달아 웃었다. 그러곤 잠시 입술을 달싹이더니, 용기를 내어 먼저 제안했다. "메이린, 이번 시험 동안만 동맹할래?" 잠시 고민하던 메이린은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과도 들었고 화해도 했으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두 사람이 손을 맞잡았다. * * * '저쪽 저쪽!' '저기 코인 하나 더 있다!' 잠수복을 입은 키젠 학생들이 뭉쳐서 바다 밑바닥을 탐색하고 있었다. 세 명이 한 팀인 무리였다. '드디어 나도 코인 하나......!' 쌔애애앵! 난데없이 밀려드는 물거품과 함께 뭔가가 지나가더니, 바닥에 있던 코인이 사라져 버렸다. 학생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저, 저게 뭐야?' '스켈레톤을 타고 있어? 바다에서?' 다른 학생들이 일일이 헤엄쳐서 밑바닥에서 코인을 찾다가 발판으로 올라가기를 반복하는 가운데, 시몬은 혼자서 미친 듯한 속도로 바다를 활보하며 코인을 건져내고 있었다. '우리랑 같은 시험 치는 거 맞아?' '쟤 혼자 다른 장르네.' 잠시 멈춰서 바다 밑바닥을 뒤지던 시몬이 이내 열 번째 코인까지 주웠다. 이걸로 최소조건 만족이었다. '데이모스. 수면 위로 올라가자.' 데이모스의 머리가 위로 향하더니 쏜살같이 솟구쳤다. 발로 헤엄쳐 이동하는 학생들이 그 모습을 부러운 듯 바라보았다. 쏴아아! 순식간에 수면 위로 올라왔다. 시몬이 근처의 발판 지점을 가리키자, 데이모스가 바로 시몬을 그쪽으로 안내했다. "착하지." 발판에 안착한 시몬이 데이모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기분 좋은 듯 슬쩍슬쩍 시몬의 손바닥을 머리로 비볐다. 시몬이 뒤를 돌아보자 뻣뻣하게 굳어 있는 남학생 두 명이 보였다. 시몬이 웃는 얼굴로 물었다. "싸울 거야?" 데이모스와 시몬을 번갈아 보던 학생들이 기겁하며 고개를 가로젓고는 물속으로 도망치듯 들어갔다. "응? 쫓아낼 생각은 아니었는데. 괜히 미안하네." 시몬은 잠시 공기 마법진을 충전하면서 털썩 자리에 앉아 포인트를 확인했다. 1위 - 엘리사 : 2,500Point (코인 10개) 2위 - 아운 : 1,540Point (코인 0개) 3위 - 헥토르 : 1,100Point (코인 10개) 4위 - 샤텔 : 980Point (코인 10개) 느긋하게 있는 사이 벌써 포인트 차가 꽤 벌어졌다. 전부 외해로 간 학생들이었다. 아운이라는 2위 학생은 아마 코인을 포기하고 외해부터 가서 포인트부터 모은 작전을 쓴 것 같았다. [크흐흐! 괜찮겠나? 1위가 벌써 2,500포인트인데.] '괜찮아요.' 시몬은 계산을 해보듯 손가락을 몇 개 접어보다가 말했다. '10분이면 따라잡겠네요.' [뭐?] 피어의 어이없어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크흐흐! 미친놈. 또 무슨 미친 짓을 꾸미고 있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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