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45화 "그럼 지금부터 안드레 왕자님과 시몬 폴렌티아 학생의 결투를 시작하겠습니다." 두 사람을 한 번씩 훑어본 집사장이 팔을 내렸다. "시작해 주십시오!" 처억! 척! 경기가 시작되자, 두 소년은 각기 다른 행동을 취했다. 안드레는 마법진부터 펼치고 상위 흑마법 준비에 전념했다. 시몬은 등 뒤에 마법진 하나만 그려놓고는, 그대로 안드레에게 돌진했다. '좋은 판단.' 달려가는 시몬의 뒷모습을 보며 로레인이 팔짱을 꼈다. '2학년이 사용하는 흑마법은 차원이 달라. 최소한의 보험만 들어놓고 초반에 마투로 결정짓는 게 최선이야.' 터어어엉! 근접전을 노리는 시몬이 칠흑을 밟고 날아 올랐다. 이에 대처하는 안드레의 눈이 급격히 커졌다. '뭐야, 이 자식?!' 안드레의 입장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던 검은 선이 훅! 하고 눈앞까지 밀려드는 것처럼 보였다. 투콱! 두 팔을 교차해 발차기를 막아낸 안드레의 인상이 찡그려졌다. '무슨 힘이!' 두 다리가 바닥에 자국을 길게 남기며 밀려났다. 시몬은 계속해서 밀어붙였다. 잔상을 일으키며 마치 창격처럼 쏟아지는 발차기를 안드레는 힘겹게 팔을 움직여 쳐내고 있었다. 타닷. 그때 발차기를 가하던 시몬의 왼발이 안드레 쪽으로 깊게 들어왔다. 이어지는 상체의 움직임이 공간을 끌고 나가듯 극단적으로 앞으로 쏠리더니, 오른팔의 강한 스트레이트가 뻗어 나갔다. 부아아아아앙! 거친 일격이 허공을 갈랐다. 몸을 기울여 피해낸 안드레가 카운터 찬스를 잡았다. '1학년 따위가!' 자신도 시몬 쪽으로 발을 내디디며 펀치를 날렸다. 터업! 스트레이트를 뻗느라 빈틈이 생긴 줄 알았건만, 어느새 시몬의 두 팔이 원래대로 돌아와 안드레의 팔을 붙잡고 있었다. "!" 팔을 잡히는 것과 동시에 안드레의 시야가 공중으로 솟구쳤다. 그의 몸이 반대로 넘어가고 있었다. "크윽!" 쿠웅! 등이 지면과 충돌하는 대참사가 일어나기 전에, 칠흑을 끌어올린 두 다리가 먼저 안착하며 버텨냈다. 시몬은 바로 후속타를 먹일 생각이었지만, 안드레가 허공에 펼쳐둔 마법진을 보고는 뒤로 물러났다. 칠흑 칼날이 그의 겉옷만 살짝 자르고 지나갔다. '망할......! 이제 결단코 방심은 없다!' 급히 몸을 일으킨 안드레가 입가를 슥 닦으며 칠흑을 일으켰다. 우웅! 우웅! 우웅! 그의 주위로 세 개의 마법진이 펼쳐졌다. 이번엔 칠흑화살이었다. 이를 지켜보는 시몬의 눈에 의아함이 깃들었다. '2학년이 칠흑화살?' 칠흑화살의 마법진 앞에 또 하나의 마법진이 겹쳐지더니 마차 바퀴처럼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투두두두두두두두! 마치 기관화기처럼 일직선으로 쏟아지는 화살에 시몬은 기겁하며 몸을 날렸다. 시몬이 달리는 곳마다 화살이 길처럼 막혔다. [다시 거리가 벌어진다 소년! 어떻게든 좁혀가야 해!] '알겠어요!' 그나마 마투는 이쪽이 우위란 걸 확인했다. 시몬이 지그재그로 달리며 다시 안드레와의 거리를 줄여 나갔다. '!' 그때였다. 소름이 쭉― 하고 끼쳤다. 새까만 뭔가가 옆으로 쇄도해 오는 느낌. 그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로레인의 단검을 들어서 옆으로 보냈다. 터어어어어어엉! 시몬의 몸이 디귿 자로 꺾였다. 난데없이 대검 같은 게 옆구리로 들이닥친 것이다. 아슬아슬하게 로레인이 준 단검의 끝부분으로 막아냈다. 촤아아아악! 시몬이 바닥에 긴 자국을 그리며 물러났다. 로레인의 단검을 보니 벌써 칼날의 붉은 기운이 10% 정도 날아갔다. 거의 뭐 달리는 마차에 치인 충격이다. "이걸 반응할 줄은 몰랐는데." 안드레가 히죽 웃었다. 시몬을 강타한 그 정체불명의 무언가는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뭐야.' 시몬이 식은땀을 흘리며 단검을 세워 들었다. 방금 그 기술의 정체가 뭔지 알아내지 못하는 이상, 섣불리 마투로 싸우겠다고 접근할 순 없었다. 그사이 안드레의 흑마법은 완성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눈 크게 뜨고 잘 봐라!" 그가 팔을 높게 들어 올렸다. "그리고, 키젠에서 1년을 더 버텼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깨달아라!" 스으으으으으. 마법진에서 검은 연기가 흘러나와 안드레의 주위를 뒤덮었다. 이내 그 연기 속에서 흐릿한 형체의 거인이 튀어나왔다. 온몸은 검은 갑주로 뒤덮여 있고, 투구에는 흉흉한 안광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오른손에 쥔 것은 아까 시몬을 가격했던 바로 그 대검이었다. <강림술 - 엔시페르> 처억! 대검을 어깨에 짊어진 거대한 그것이 시몬을 내려다보았다. 시몬은 몸이 저릿저릿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사령학 전공자였구나.' 스피릿을 이용해서 특수한 망령에 물리력을 부여하여 온전히 모습을 드러내게 하는 흑마법. 사령학의 꽃이라고도 부르는 '강림술'이었다. "이 녀석을 완성한 걸로 승부는 났다." 안드레가 팔을 뻗었다. "뒈져." 시몬이 기겁하며 허리를 젖히자 대검이 허공을 가르고 지나갔다. 지나간 자리에는 검은 선이 남았다. 반응이 느렸다면 몸이 두 동강 났을 거란 생각에 머리카락이 주뼛주뼛 섰다. '대검이 그렇게 길지는 않아. 일단 거리를 벌리자.' 시몬이 급히 등을 돌려 달렸다. 저 괴물이 거대하긴 했지만 안드레를 중심으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멀리 벗어나지는 못하리라는 생각이었다. 부아아아앙! 그런데 내려오는 대검의 길이와 크기가 더 늘어났다. 순식간에 머리 위로 떨어지는 대검을 보며 시몬이 급히 단검을 세워 들었다. 까아아아아앙! 단검과 대검이 부딪히며 굉음이 터져 나왔다. '크윽!' 마치 인간과 개미가 검을 나누고 있는 것 같은 모습. 로레인의 단검 덕분에 큰 충격은 없었지만 또 단검의 칠흑이 상당량 빠져나갔다. "거리를 벌리면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했지?" 안드레가 히죽 웃었다. 엔시페르의 공격 범위는 수십 미터가 넘는다. 지금 경기장으로 쓰고 있는 이 공터 어디든 검이 닿았다. "꼴사납게 도망쳐라!" 시몬이 숨을 헐떡이며 단검을 들었다. 꽝! 소리와 함께 또 단검과 대검이 부딪히며 칠흑이 빠져나갔다. '힘, 속도, 거리. 어느 쪽도 못 이기겠어! 뭐 이런 흑마법이......!' 당장 저 괴물에게 대적할 방법이 안 떠오른다. 방법이 있다면 술사 안드레를 직접 치는 것 정도. 다행스럽게도 안드레는 저 '엔시페르'를 일으킨 뒤 계속 한 자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아마도 마법진의 좌표가 고정되어서 움직일 수 없는 게 아닐까. '좋아.' 거기까지 생각한 시몬은 아공간에서 여섯 기의 스켈레톤을 꺼내 달리도록 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도 못하고 부아아앙! 소리와 함께 스켈레톤의 뼈들이 공중으로 날아다녔다. "하하하하! 소환수의 격차가 심하다고 생각 안 하냐!" 몇몇의 사념 연결이 끊기며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지만 아직 사념의 링크가 유지된 스켈레톤을 선택했다. 비산하던 뼈들이 공중에서 멈추며 날카로운 끝을 쪽으로 향하게 했다. <본 네일> 뼈들이 전면으로 날아가자 안드레는 여유 있게 칠흑방패를 펼쳐 막아냈다. "!" 그가 본 네일을 막아내는 동시에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좀비들이 있었다. 시간차 공격. 시몬이 오버로드로 좀비를 잡아서 투석기처럼 날려 보낸 것이다. 촤아악! 하지만 시몬이 시체폭발로 터뜨리기도 전에 엔시페르가 대검을 휘둘러 반으로 갈라 버렸다. '끙, 어렵네.' 좀처럼 상대의 빈틈이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이쪽도 흑마법을 완성해야 했다. 시몬은 이후 회피 일관으로 공격을 피해 다니기만 했다. 물론 시몬이 달리는 속도보다 엔시페르의 대검이 날아오는 속도가 더 빨랐기에, 거의 로레인의 단검으로 타격을 흡수하는 식이었다. 슬슬 이것도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웅성 웅성 웅성. 전황이 일방적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하자 벌써 귀족들은 로레인과 세르네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대로는 시몬 학생이 패배하겠는데." "두 레이디가 너무 무모했다고 보오." "진짜 왕자 앞에 무릎을 꿇을까요?" "몰라. 어느 쪽이든 대단한 뉴스겠지." 반면 팔짱을 낀 로레인과, 삐딱하게 골반에 손을 올린 채 지켜보던 세르네는 덤덤한 표정이었다. "그쪽은 무슨 이유로 시몬의 승리에 걸었어요?" 세르네가 물었다. "넌?" "당신이 하니까 덩달아?" "미쳤네." 세르네가 미소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보다 물음에 대한 대답은 아직 못 들었네요." "당연한 판단이야." 로레인이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사령학 전공 2학년들이 배우는 엔시페르. 시몬은 그보다 더 강력한 걸 쓸 수 있으니까." 터어어어어엉! 결국 엔시페르의 대검에 로레인이 빌려준 단검이 산산조각 나버렸다. 시몬이 숨을 헐떡이며 뒤로 물러났다. "널 지켜주던 유일한 희망도 끝났고." 승기를 잡은 안드레가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 "이제 어쩔 거지? 상아탑 여자가 준 물건은 언제 꺼낼 속셈이냐." "이미 쓰고 있습니다." 시몬이 아공간에서 골렘의 핵을 꺼내며 말했다. "그 덕분에 이제 막 완성됐네요." 찰칵! 시몬이 반대쪽 손으로 등 뒤에서 만들고 있던 마법진을 작동시켰다. 마법진이 시몬의 등에서 떨어져 공중으로 떠오르자, 즉시 골렘의 핵에 마법진을 결합시켰다. "건방진......!" 안드레가 팔을 뻗자 엔시페르의 대검이 내려왔다. 시몬은 제자리에 멈춰 있었다. 이제 로레인의 단검도 쓸 수 없었다. 콰아아아아앙! 지켜보던 사람들이 아찔한 비명을 질렀다. 주위의 흙먼지가 뿌옇게 올라왔다. 심판이었던 집사장이 기겁하며 말했다. "도, 도련님! 키젠 학생이 다치기라도 하면......!" "괜찮아." 안드레가 혀를 달싹였다. "이건 본인의 승낙으로 이루어진 정당한 결투니까. 죽음의 마녀가 뭐라고 하든...... 응?" 키긱. 키기긱. 뿌연 먼지 속에서, 엔시페르의 대검이 흔들리고 있었다. 안드레의 눈이 부릅떠졌다. '버텼다고? 어떻게?' 뿌연 흙먼지가 가라앉으며 시몬이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앞으로는 바닥에 놓인 골렘의 핵에서 에메랄드빛의 팔이 튀어나와 대검을 붙잡고 있었다. "갑니다." 시몬이 두 팔을 세웠다. 꾸르르르륵! 골렘의 팔이 클라우드로 빠르게 뒤덮였다. 이미 등 뒤에 있는 마법진으로 클라우드를 계속 짜내어 정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보통보다 훨씬 더 빠르게 덮을 수 있었다. 'BMAT에서는 30분 걸렸는데, 지금은 10분 만에 완성했어.' 역시 세르네의 깃털이 있고 없고의 집중력 차이는 컸다. 로레인은 버티는 힘을, 세르네는 필요한 시간을 단축시키는 힘을 시몬에게 주었다. 그 결과. 까득! 골렘의 핵에서 몸통이 만들어지고, 팔 한 짝이 더 생겨서 대검을 붙잡았다. 이내 두 다리가 꿈틀거리며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설마!" 저 흑마법이 뭔지 눈치챈 안드레의 표정이 창백하게 변했다. "1학년이 어째서 3학년 선배들의 기술을......!" "저학년이라고 고학년 기술을 배우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요." 이내 키가 삼 미터로 불어난 골렘이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1학년은 1학년 기술만 배워야 한다는 게, 왕자님이 강조하시는 그 관례입니까?" "이 새끼!" 골렘이 대검을 뿌리치자 엔시페르의 커다란 대검이 그대로 옆으로 밀려나 바닥에 틀어박혔다. 블러드 골렘의 완력이 더 강했다. "이제." 시몬이 가슴의 마법진을 골렘과 연동시켜 블러드 링크까지 활성화했다. "제대로 반격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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