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22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맹독학 수업이 끝났다. 첫 수업부터 세계 최고의 엘리트들을 볼꼴 못 볼꼴 다 보게 만든 별야는 기지개를 쭉 켜며 흡족한 얼굴로 맹독학관 건물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교수님!" 그때 긴 머리의 여자 한 명이 헐레벌떡 별야를 뒤쫓아왔다. 그녀는 프란체스카의 뒤를 이은 수석조교였다. 별야가 삐쭉한 삼각형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어어, 오늘 수고했다." "교수님. 그...... 다름이 아니라." 잠시 우물쭈물하던 수석조교는 이내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일 다른 반 학생들도 이 수업으로 진행하실 건가요?" "당연하지!" "그, 그럼 두 번째 수업부터는......." "당연히 새로운 독을 처먹여야지! 내가 말 안 했나?" 수석조교는 땀을 삐질 흘렸다. 대체 이 사람을 어쩌면 좋을까. 갈 곳 없는 우릴 받아준 사람이라 거역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이런 미친 수업을 강행하자니 학생들의 반발이 장난 아니고. 이들이 어디 보통 학생인가? 명가의 가주, 대장군, 재상 등등 최고 권력자들의 자식들이다. 금지옥엽처럼 기른 자기 자식들에게 키젠이 독을 먹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학부모들은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 수석조교는 고심 끝에 각오를 굳히고 충언하기로 했다. "교수님의 수업 의도와 취지는 이해합니다. 하지만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1학년들이에요! 게다가 평소 맹독학을 잘 쓰지 않는 학생들도 섞여 있어요. 아무리 준전시 커리큘럼이라지만, 이런 훈련은 학생들이 좀 더 성장한 뒤에 하시는 게......." 하하하하하! 갑자기 천둥 같은 웃음소리가 쏟아졌다. 별야가 어깨를 들썩일 때마다 몸에서 알록달록한 모래알들이 투둑 떨어졌고 조교는 다급히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의도와 취지는 이해한다며?" "아, 네." "그럼 된 거 아냐? 니들이 무슨 걱정하는지는 알겠는데, 윗사람들 눈치만 보고 있으면 아무것도 못 해요. 모든 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 믿고 따라와라." 별야가 그녀의 어깨에 툭 손을 올리며 씩 웃었다. "알겠냐?" "......예." 수석조교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겨준 별야가 다시 등을 돌려 걸어갔다. 그녀가 사라진 뒤 정확히 30초 뒤, 숨어 있던 다른 조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어떻게 됐어요 언니?" "누님! 안 한답니까?" 조교들의 물음에 수석조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곳곳에서 한숨과 한탄이 들려왔다. "......하아아, 맹독학에는 뭔 마가 꼈나." 남자 조교가 퀭한 눈으로 벽에 등을 기대어 시가를 꺼냈다. "첫 번째 교수는 돌아가시고, 두 번째 교수는 성녀고, 세 번째 교수는 야인이네." "오빠. 교정 내에선 금연이에요." "내가 지금 안 태우게 생겼냐. 우린 뭔 죄가 있다고 이런 사람들만 섬기는 거야?" 조교진의 사기가 바닥을 기는 게 느껴졌다. 그때 수석조교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집어넣어." 남자 조교가 움찔하더니, '옙' 하고 무안한 표정으로 시가를 주머니에 넣었다. 수석조교가 모두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교수님의 지침이 그러시다면 다른 방법이 없네. 따라가자. 대신 우리는 최대한 윤활유 역할을 하면서 학생들의 불만을 풀어줘야 해." "불만을 풀어준다는 말씀은." "어떻게 하시겠단 거죠?" 후배들의 물음에 수석조교가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독의 함량을 낮춰주시길 건의 드리거나, 수업에 두 세트 정도로 낮춰야 해. 교수님도 학생들을 생각해 수위를 조절한다는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도록 해보자. 내일 다시 교수님께 가볼 거야." 조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오늘의 수업이 모두 끝났다. 시몬은 그리 컨디션이 좋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돌연변이' 동아리 방에 들르기로 했다. 토토와 같이 선배들에게 인사드리겠다고 약속했으니 지켜야 했다. '여기는 다시 봐도 허름하네.' 동아리방의 문에는 삐뚤빼뚤한 글자로 '돌연변이'라고 쓰인 종이가 붙어 있었다. 너덜너덜해져서 떨어지기 직전이었기에, 손바닥으로 가볍게 눌러 붙이고는 노크했다. "시몬 폴렌티아입니다." 그런데 어쩐지 안이 소란스러웠다. 또 뭔가 사고가 났거니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보았다. "저기 도망친다!" "잡아!" 정말로 사고가 벌어져 있었다. 새까만 스켈레톤이 난동을 부리며 도망치고 있었고, 그것을 토토가 붙잡으려 뛰어들다 스켈레톤의 발길질에 얼굴을 맞았다. 그가 쌍코피를 터뜨리며 벽면으로 나가떨어졌다. "아아앗! 거기 서!" 그 뒤로는 얼굴에 석탄 같은 검은 가루를 한껏 묻힌 크림색 머리카락의 소녀가 뛰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2학년의 벤야 바닐라. 거대 언데드 업계인 바닐라 그룹 회장의 손녀딸이자 동아리 '돌연변이'의 회장이다. 그녀가 시몬을 발견하고는 마침 잘됐다는 듯 소리쳤다. "야, 제군아! 저거 빨리 멈춰봐!" 폭주한 스켈레톤은 양손에 쌍 도끼를 들고 마구 허공에 휘두르는 위험천만한 기예를 부리고 있었다. 그 도끼질 한 번에 근처의 수조가 깨지며 누런 액체가 줄줄 샜다. 마침 그 밑에 쓰러져 있던 토토의 입안으로 액체가 들어갔다. "으악!" 따닥! 따다닥! 폭주한 스켈레톤이 시몬이 열어놓은 문으로 빠져나가려 돌진했다. 시몬이 전투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선배님, 이거 제가 망가뜨려도 될까요?" "절대 안 돼! 그 녀석은 세계정복을 위한 중요한 한 걸음이야! 최대한 상처 없이 제압해!" "?" 떨어지는 액체를 피해 일어난 토토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저게 상처 없이 제압할 수 있는 수준인가? "알겠습니다." 시몬이 오른팔을 뻗자, 여섯 개의 오버로드 촉수들이 촤르륵 소리를 내며 뻗어 나갔다. 스켈레톤이 쌍 도끼를 휘두르기도 전에, 두 개의 칼날은 팔뼈와 팔뼈 사이의 이음새를 정확히 가르며 지나갔다. 나머지 촉수들도 각각 두 다리와 가슴, 목의 이음새를 정확히 베어내며 지나갔다. 스켈레톤의 몸이 뼛더미가 되어 흩어졌다. 와르르르르! 공중으로 비산하던 뼈들 사이로 뛰어든 시몬이 가장 중요한 두개골을 품에 받아서 내려왔다. "여기요." "오, 땡큐!" 냉큼 두개골을 받은 벤야가 두개골 내부의 마법진을 가볍게 터치했다. 그녀의 손가락을 깨물 기세로 날뛰던 스켈레톤의 머리가 진정제가 투여된 것처럼 잠잠해졌다. "어휴. 큰일 날 뻔했네. 땡큐 땡큐~" 벤야가 촐랑거리며 테이블에 두개골을 내려놓았다. 시몬의 활약을 바로 앞에서 지켜본 토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전보다 오버로드 운용이 훨씬 깔끔해졌어. 아니, 그보다 비상사태에 어떻게 저렇게 차분히 대처하는 거지? 동갑이지만 나랑은 겪어온 경험이 다른 것 같아!' 눈을 반짝이는 토토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시몬은 못 본 척 바닥에 떨어진 스켈레톤의 뼈들을 주웠다. 이내 주워온 뼈들을 모두 테이블에 내려놓자 벤야가 말했다. "뼈 다시 맞추는 것 좀 도와줄래?" 시몬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아, 정말요? 제가 손대도 될까요?" "그럼! 우리 제군도 이제 세계정복에 일조하도록 해!" '......그거 아직도 포기 안 하셨네.' 참고로 동아리 회장 벤야의 장래희망은 '언데드로 세계정복'이었다. 두 사람은 빠르게 스켈레톤을 조립하기 시작했다. 조립도도 보지 않고 감만으로도 뼈를 맞추는 벤야도 대단했지만 그녀를 보조하는 시몬의 솜씨도 발군이었다. "8번, 14번." 그녀가 말하는 뼈마다 척척 찾아서 들어 올렸다. 어느 정도 감을 잡은 뒤에는, 미리 준비하고 있다가 그녀가 말하기도 전에 뼈를 내밀기도 했다. 급기야 벤야가 오른쪽 다리뼈를 완성하자, 알아서 그것을 보고 왼쪽 다리뼈를 만들었다. "이거 75번이랑 76번 순서가 바뀌지 않았어요?" "오! 진짜네! 쏘리쏘리." 심지어는 바닐라 가문의 손녀딸의 실수를 찾아내기까지. 두 사람은 놀라운 호흡으로 검은 스켈레톤을 조립해 나갔다. "완성이다! 우리 제군은 서포트도 잘하네?" "감사합니다 선배님." 수습이 끝나고, 청소를 하던 토토까지 합류해 세 사람은 가볍게 주스를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새로 개발 중인 스켈레톤의 사념이 툭하면 폭주해서 고민이라고 했다. "이것도 시중에는 없는 스켈레톤이죠?" "그럼! 양산이 불가능해서 팔 건 아니고, 내 개인적으로 쓸까 싶어서 만들었는데...... 성깔이 더러워서 쉽지 않네. 그래도 여러모로 성과는 있었어." 벤야는 기분이 좋아 보았다. 그녀는 민폐 끼친 거 도와준 대가로 부탁할 게 있다면 뭐든 말하라고 했다. "괜찮으시다면 저도 개인적인 스켈레톤을 가지고 싶은데, 재료를 한번 봐주실 수 있을까요?" "오, 그래? 함 꺼내봐." 시몬은 검은 스켈레톤을 바라보고 있다가 냉큼 아공간에서 두개골 하나를 꺼냈다. "뭐, 뭐야 이거!" 벤야가 펄쩍 뛰어오르며 두개골을 들어 올렸다. "느껴져! 엄청나게 강한 언데드라는 게!" 실제로 그랬다. 저건 예전에 데스랜드에 갔을 때, 시몬이 상대한 소드마스터 '마누스'의 스켈레톤 두개골이었으니까. "근데 코어랑 사념이 전부 날아갔네." 그녀가 두개골 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이대로는 빈껍데기일 뿐이야. 어떤 언데드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이 언데드가 생전의 힘과 기억을 완전히 되찾는 건 불가능할 거야. 그래도 이 정도면 쓸 여지는 있어 보이는데, 으음." 그녀가 잠시 고민하다가 두개골을 내려놓았다. "너만 괜찮다면, 바닐라 본사에 보내서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해줄까? 성과가 좋으면 넌 너만의 스켈레톤을 가질 수 있고, 실패해도 소정의 연구비를 지급할게. 어때?" 이쪽 업계 최고의 회사가 제안하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시몬은 지금까지 두개골을 들고 다니며 아무런 손도 대지 못한 상황. 여기서부터는 전문가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꼭 부탁드리고 싶네요. 그런데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요?" "아무도 모르지~ 이건 진짜 대단한 언데드고, 늦으면 1~2년 잡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시몬이 아찔한 표정을 지었다. 거의 뭐 졸업선물인가. 그래도 시몬은 소드마스터 스켈레톤의 강함을 직접 상대해봐서 알고 있었다. 바닐라가 못 하면 다른 누구도 건들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그렇게 할게요.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맡겨줘!" * * * 그렇게 다음 날 아침. 시몬은 퀭한 얼굴로 눈을 떴다. '......으으 머리야.' 동아리에 있을 때까지는 괜찮았는데, 기숙사에 돌아와서 자다 보니 또 독이 퍼진 건지, 시몬은 화장실에서 몇 번이나 토하고 설사까지 해야했다. 온종일 끙끙대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일단 정신 좀 차리자.' 침대에 편안한 자세로 누운 시몬은 마나 호흡을 시작하고 체내의 칠흑을 순환시키며 몸을 추슬렀다. 그렇게 30분이 지나니 조금 상태가 나아졌다. 시계를 보니 이른 새벽이었고, 딕과 카쟌은 여전히 자고 있었다. '역시 잠이 안 와.' 정신이 말똥말똥했다. 결국 시몬은 화장실에서 씻고 키젠 교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아침 일찍 기숙사 밖으로 나왔다. 시몬이 들른 곳은 도서관이었다. 개관을 앞두고 하수인들이 청소를 하고 있었다. 시몬이 우물쭈물 서 있는데, 서재 안은 청소가 끝났으니 들어와도 좋다고 하수인들이 친절하게 말해주었다. 시몬은 사양 않고 바로 서재로 향했다. -요나(Yona). 키젠에 돌아가거든 그 이름으로 찾아보거라. 도서관에 들른 이유는 군단장 시절 아버지 리처드의 행적에 대해 알고 싶어서였다. 시몬은 하수인들에게 슬쩍 양해를 구하고는 책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일단 책 제목에 '요나'가 들어가는 건 없다. 하는 수 없이 군단장에 대한 책이면 죄다 챙겨서 빈 책상에 탑을 쌓아놓고 앉았다. 그리고 가장 위의 책부터 꺼내 훑어보았다. <군단의 역사> 그리고 책을 펼치자마자 소제목에 '요나'라는 이름이 보였다. '찾았다.' 시몬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페이지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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