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339화 베론은 빌딩 꼭대기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에 난입해 온 침입자를 바라보았다. 수상한 복면을 쓴 여자. 자신을 추정할 어떤 힌트도 주지 않겠다는 의지가 드러나는 검은색 전신 바디슈트까지. “야.” 대뜸 튀어나온 침입자의 한마디에 베론은 흠칫했다. “……지금 날 부른 건가?” “여기 당신 아니면 누가 더 있슴까?” 침입자가 답답하다는 듯 말하며 허리에 손을 얹었다.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순순히…….” 윙- 그녀가 무언가 말하기도 전에 천장에 붙어 있던 무인 무기가 불을 뿜었다. 탄환이 날아왔고, 침입자는 한숨을 쉬며 귀찮은 듯 팔을 휘둘렀다. 탱! 마치 금속에 부딪힌 듯한 소리와 함께 튕겨 나간 총탄이, 반대쪽에 설치된 또 다른 무인 무기를 부숴 버렸다. “어딜 장난질이야?” 침입자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천장에서 후두둑 떨어지는 무기 파편을 발등으로 받더니, 공중으로 띄우고 다른 발로 재차 강타했다. 다시 뽀각! 하고 쪼개진 파편이 좌우로 튕겨 나가 나머지 무인 무기들까지 파괴했다. 사장실에 설치된 세 방향의 무인 무기가 모조리 박살 난 채 네옴을 줄줄 흘렸다. “……놀라운 솜씨로군.” 베론이 솔직하게 감탄하며 말했다. “대화로 해결하려고 했는데 안 되겠슴다. 일단 맞고 시작할까요?” 그녀의 정체는 물론 레테였다. 그녀가 손을 풀며 다가오자 베론이 손가락을 딱 소리가 나게 튕겼다. “!” 레테가 흠칫하더니 즉시 몸을 뒤로 뺐다. 촤아아아악! 그녀가 있던 허공을 하얀 검격이 가르며 지나갔다. 그 검격은 뒤편의 유리벽을 뚫고 건물 밖까지 나가 반대편 건물의 귀퉁이까지 베었다. 사아아- 레테는 손등의 솜털이 곤두서는 걸 느꼈다. 또각 또각. 드륵. 드르르륵. 마치 뒷세계의 청부업자를 연상케 하는 흑갈색 줄무늬 정장을 입은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손에는 바퀴 달린 트렁크 가방을 질질 끌고 있었고, 부츠 한쪽에 선명한 칼날이 달려 있었다. 방금 살인을 저지르려고 한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무표정과 권태로움이 가득한 얼굴. 타성에 젖은 공무원 같은 분위기가 흘렀다. “늦었다, 밀레.” “죄송합니다 보스.” 밀레라고 불린 여성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베론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지나쳐 걸어갔다. “조용히 처리하도록.” “예.” 그 말을 들은 레테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봐요! 내 말 아직……!” 촤악! 또다시 하얀 검격이 날아들어 레테의 말을 끊었다. 옆으로 피한 레테의 뒤로 건물 벽이 쩍! 소리와 함께 갈라졌다. “한번 해보잔 검까.” 레테가 으르렁거렸다. 밀레가 치켜든 다리를 내리며 입을 열었다. “다르블렝 최강의 암살자, 밀레다.” 철컥! 그녀가 가져온 트렁크 가방을 들어 올렸다. 트렁크가 열리고 그 중심에서 ‘네옴’ 엔진이 맹렬한 엔진음을 뿜어냈다. 이내 그녀가 그것을 짊어지듯 어깨에 장착하니, 무수한 포대가 쇳소리와 함께 솟구치며 레테를 겨냥했다. “당신 같은 실력자가 갑자기 도시의 빈민층에서 나타날 리 없고, 하늘섬에서 보낸 자객이겠지?” “…….” “늘 궁금했다.” 그녀가 안광을 번뜩이며 장비를 작동시켰다. “내가 갈고닦은 실력이 과연 하늘에 닿을 정도일지!” 콰콰콰콰콰콰! 무수한 주포가 불을 뿜으며 네옴 탄환과 섬광을 쏟아냈다. 레테가 벽을 타고 빠르게 쇄도하며 탄환을 피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녀가 가는 곳마다 탄환이 박혀 벽이 깨지고, 섬광이 부딪히며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흡!” 그때 그녀의 속도를 따라잡은 네옴 섬광이 날아오자 레테가 한 손을 들어 방어마법진을 펼쳤다. 카가각! 네옴의 섬광이 마법진에 부딪히며 하얗고 시린 불똥이 튀어 올랐다. 이내 섬광의 출력이 다하자 레테도 방어마법진을 해제하고는 비릿하게 웃었다. “어차피 다르블렝 밖으로 가져가면 쓰지도 못할 무기, 그런 고철 덩어리를 믿고 하늘에 닿느니 뭐니 한 검까?” 그 말을 들은 밀레의 눈이 가늘어지더니, 장비를 어깨에서 떼어내 던졌다. 레테는 그것을 사뿐히 발차기로 걷어차 기둥에 박아버렸다. 스릉! 밀레가 다른 한쪽 부츠에도 칼날을 일으킨 뒤 성큼성큼 다가왔다. 양발 모두에 달린 칼날과 신성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레테가 입꼬리를 올렸다. ‘암살자 주제에 묘하게 감정적이잖아?’ 그래도 저런 호승심, 나쁘지 않았다. 다르블렝에서도 의외로 낭만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그 입에서 미소를 거두게 해주지.” 그렇게 말한 밀레가 거칠게 다리를 휘둘러 하얀 검격을 쏟아 보내기 시작했다. 참격이 반달 모양으로 무수히 쏟아져 내리고, 레테는 침착하게 스탭을 밟으며 공격을 피해 나갔다. 촤악! 촤아악! 밀레의 움직임에 가속이 붙기 시작했다. 다리를 긋고 휘두를 때마다 반달 모양 검기가 어지럽게 쏟아져 내렸다. 급기야 바닥에 손을 짚고 연격까지. 도저히 레테가 앞으로 들어갈 만한 틈이 없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슬슬 밀레의 움직임이 눈에 익으려는 그때. 척. 밀레가 모든 동작을 멈추며 보고했다. “하중 계산 완료, 적 섬멸 보고.” “?!” 어느새. 주위의 기둥 곳곳에 칼날이 지나간 흔적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 이내 기둥이 두부처럼 잘려 나가며, 기둥이 떠받치고 있던 천장 일부가 그대로 내려왔다. 쿠쿠쿠쿠쿠쿠쿵! 천장 한 층이 직각으로 무너져 내리며 레테가 있던 곳을 깔아뭉갰다. 자욱한 흙가루와 먼지가 주위에 휘몰아쳤다. “역시 훌륭한 솜씨다. 밀레.” 멀찍이 떨어져 지켜보고 있던 베론이 흡족해하며 말했다. 그는 부하의 실력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듯했다. “과연 다르블렝 최강답군.”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녀가 당당히 말하며 정장 재킷을 여민 뒤 돌아서려 했으나. “!” 일렁이는 기척을 느낀 그녀가 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자욱한 흙먼지 속, 오른 주먹을 번쩍 쥐어서 하늘로 내세우고 있는 레테의 모습이 보인다. 다른 곳은 모두 천장이 내려앉았지만, 그녀의 주먹을 중심으로 천장이 뻥 하고 뚫려 있었다. “먼지 때문에 숨 막히잖슴까.” “큭!” 밀레가 급히 다리를 앞세워 공격하려 했지만, 잔상을 일으킨 레테가 눈 깜짝할 사이에 코앞까지 다가왔다. ‘더 빨라졌어!’ 밀레가 재빠르게 발차기를 완성하며 검기를 내보냈고, 레테 역시 발끝에 신성을 모아 발을 내뻗었다. 까강! 두 발끝에서 일어난 신성이 충돌하며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촤악! 촥! 거울처럼 반짝이는 신성의 파편들이 밀레의 몸 곳곳에 상처를 내며 지나갔다. 반면 레테는 파편이 피해가듯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검기끼리 부딪힐 때 파편이 튀는 방향까지 미리 계산한 건가!’ 정밀한 전투 센스에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왜 얼이 빠져 있으심까?” 레테가 그녀의 품으로 훅 하고 파고들었다. “근접전은 어떤지 볼까요.” 레테의 주먹이 날아왔고, 밀레가 다급히 손목의 장비에서 칼날을 세운 채 방어 자세를 취했다. 쩌어어어엉! 그러나 얼마나 주먹이 강한지, 방어를 했는데도 밀레는 전신에 커다란 충격을 받으며 밀려났다. 뇌가 뒤흔들리는 것 같았다. “이, 이런 괴물 같은……!” “실례잖슴까.” 레테가 입술을 삐쭉이며 투덜거렸다. 밀레는 오른 다리를 거칠게 세워 들어 레테를 물러나게 한 뒤, 자신도 물러나 더더욱 거리를 벌렸다. “나랑 멀어진다고 해서-” 우우우우웅! 레테가 기다렸다는 듯 손을 휘저으며 전면에 마법진을 펼쳐냈다. “도망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셨슴까.” <레테 오리지널 - 라 에스크림> 마법진의 중심에서 찬란한 빛의 장창이 맹렬하게 회전하며 등장했다. 수십 줄기의 축복의 띠가 창날에 휘감기며, 그것은 드릴의 형상으로 변모했다. 촤아아아아아아아아! 라 에스크림이 굉음과 함께 쏘아져 나갔고, 절대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한 밀레가 다시 한번 두 팔의 칼날을 교차하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카가가가가가가각! 이어지는 격돌. 터져 나오는 불똥이 허공을 벌겋게 뒤덮었다. 라 에스크림은 계속 회전하며 밀레의 칼날을 갉아먹어 갔다. “아윽! 끄으으윽!” 밀레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끝까지 버티려 했다. 두 다리에 있는 칼날을 내려서 바닥에 고정했지만, 그래도 점점 뒤로 밀려났다. 뒤쪽은 레테가 빌딩으로 진입한 유리창이 있는 방향. 즉, 아무것도 없는 낭떠러지였다. 카각! 끝없이 밀려나던 그녀의 발뒤꿈치가 결국 바닥을 지나 허공에 떴다. 발끝에 힘을 준 채 바들바들 떨면서 버티던 밀레가 절박하게 비명을 지르며 남은 힘을 쥐어짜 냈다. “아아아아아아아!” 캐차아아앙! 마침내 라 에스크림을 깨뜨렸다. 비틀거리던 그녀가 앞으로 휘청이며 바닥에 엎드렸다. ‘해, 해냈다!’ “아직 안 끝났는데요?” 밀레가 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레테가 허공에 둥둥 떠서 마법진을 펼친 채 기다리고 있었다. 깨진 라 에스크림의 파편들이 휘날리며 재구성되어 길쭉한 말뚝의 형태로 변했고, 알록달록한 축복의 띠들이 각자 허공에 휘날리다가 말뚝들에 휘감겼다. <라 에스크림 연계기 – 라 페르세(La Percée)> 퍼억! 퍽! 퍽! 레테가 손을 놓자, 여러 개의 말뚝들이 날아가 밀레의 몸을 연달아 관통했다. 무너진 자세와 힘 때문에 전부 방어할 수 없었다. 밀레가 뒷걸음질 치며 무릎을 꿇었고, 레테가 뚜벅 뚜벅 다가왔다. “뭐 하는 건가! 밀레!” 전적으로 믿고 있던 부하가 밀리자 베론이 당황하며 소리쳤다. 지금이라도 도망치려 했지만 진작에 모든 출입구는 레테가 신성 결계로 막아둔 상태였다. “네게 지급하는 돈이 대체 얼마라고 생각하나! 죽어도 쓰러뜨려!” 밀레가 ‘아아악!’ 함성을 토해내며 맨주먹으로 레테에게 달려들었다. 부웅! 붕! 맹렬한 펀치가 공기를 가르며 연속으로 날아들었지만, 레테는 고개를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쉽게 피해냈다. ‘멀다!’ 밀레의 동공이 흐릿해졌다. 자신의 주먹과 레테의 얼굴 간의 간격은 손가락 한 마디 차이였지만, 그 간격이 이렇게 멀게 느껴졌던 적이 없었다. 퍽! 레테의 주먹이 밀레의 복부에 제대로 꽂혔다. 그녀가 꺼흑! 소리를 내며 몸을 꺾은 채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그녀가 물러나는 만큼 레테가 앞으로 성큼 걸어왔다. “이야아아악!” 최후의 힘을 쥐어짜 낸 밀레가 팔을 휘둘렀으나 가볍게 검지를 펼쳐 받아낸 레테가 밀레의 다리를 걷어찼다. 뽀각! 하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밀레가 털썩 한쪽 무릎을 꿇었고, 이어지는 무릎에 턱을 맞았다. 그대로 넘어갈 듯하던 그녀가 힘겹게 중심을 잡으며 목소리를 냈다. “나, 나는…… 다르블렝 최강의……!” “우물 안 개구리.” 레테가 그녀의 옷깃을 잡아 끌어당기며 반대쪽 손을 주먹 쥐었다. “그래도 뭐, 개구리치곤 나쁘지 않았슴다.” 주먹을 날리려던 레테가 훗 하고 웃으며 손바닥을 가볍게 펼쳤다. “더 정진하세요.” 짜아아아아악! 레테의 신성 싸대기가 작렬하며 얼굴이 우악스럽게 찌그러진 밀레가 한참을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후두둑- 그리고 더는 움직이지 못했다. 작은 천장의 파편들이 떨어져 그녀의 몸에 톡톡 떨어졌다. “자, 그럼.” 레테가 고개를 돌려 베론을 바라보았다. 짝. 짝. 짝. 어느새 소파에 태연히 앉은 베론이 손뼉을 치며 미소 지었다. “훌륭해. 아주 훌륭해.” “……?” “내 경호원을 갈아치웠군.” 그가 꼰 다리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테이블에 놓인 와인을 집어서 뚜껑을 퐁 소리가 나게 열었다. “나와 함께 일하지 않겠나?” 쪼르르륵- 그가 거품이 일렁이는 화이트 와인을 빈 잔에 채워 넣고, 레테에게 건넨 뒤 자신의 잔에도 와인을 채워 넣었다. “연봉 5천 크로바를 일시불하겠네.” “…….” “혹시 부족한가? 2천 크로바 얹어주지.” 레테가 한숨을 푸욱 쉬었다. 순간 다르블렝에 온 직후 돈이 없어서 빨랫줄에 기대거나 관에 들어가 잘 뻔한 기억들이 머릿속에 잠시 스치고 지나갔다. “제가 위에서 받는 돈의 몇백 배인지 모르겠슴다. 그런 돈이 있었으면 처음 같은 고생도 안 했을 텐데.” “자네 같은 인재에게 푼돈을 주며 일을 시켰다니! 어떤 형편없는 곳인지 모르겠군.” 베론이 쨍 하고 레테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힌 뒤 꿀꺽 마셨다. “그럼 계약서를 써볼까? 앞으로는 내 명령에 절대적으로…….” 푸확! 레테가 잔에 든 와인을 그의 얼굴에 쏟았다. 베론이 ‘웁푸풉!’ 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휘청했다. “싫어요.” 레테가 상큼하게 웃으며 답했다. 그녀가 잔을 내려놓고 주먹을 쥔 채 다가오자 베론이 다급히 말했다. “왜, 왜 거절하는 겐가! 도, 돈을 준다니까! 혹시 부족하면 두 배! 아니, 세 배로……!” 쩌어어어어억! 레테의 주먹에 맞은 베론의 얼굴이 우악스럽게 일그러졌다. 공중에서 몇 차례 회전하던 그의 몸이 와인 진열대를 격렬하게 부수며 쓰러졌다. “돈으로 움직이지 않는 사람도 있는 법임다, 악당.” 그렇게 말한 그녀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등을 돌렸다. 전투가 종료되었다. 결계를 펼쳐두어서 소음도 억제했다. 이미 경비들이 아래층에 도달한 것 같지만, 결계에 막혀 계단으로 올라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그녀가 드륵 드륵 서랍을 열고 서류를 훑어보았다. 워낙 자료가 많아서 원하는 걸 바로 찾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때 그녀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저건.’ 베론이 앉아 있던 자리. 그곳의 책상에 네옴 아티팩트들이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었고, 마나 스크린 같은 화면이 떠 있었다. 그녀가 그곳으로 다가가 보았다. [데우스 인 마키나 온라인.] 갑자기 들린 소리에 놀란 그녀가 어깨를 떨었다. 이 기기에서 소리가 들리며 화면이 바뀌고 있었다. [보안 해제 기간 세 시간 유지. 남은 시간 한 시간.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베론 사장.] “…….” 가만히 들여다보던 레테가 눈을 빛냈다. “이 도시에서 대체 뭘 만들고 있는 거야?” 그래도 이 순간, 그녀는 직감했다. 지금이 이 도시의 비밀에 가장 근접한 순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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