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326화 “그거 아쉽네요.” 영원의 성녀, 아스페리아가 그렇게 말하며 입맛을 다셨다. “그렇다면 다소 강압적인 수단을 이행해서 당신을 갖는 수밖에요. 본녀는 팔 없이 지내봤는데 이것도 꽤-” 그녀가 손끝을 세우자 두 거대한 신수가 눈을 빛냈다. “괜찮더라구요.” 촤아아아아아아! 지면에서 아무런 전조 없이 거대한 금속 같은 재질의 가시가 솟아올랐다. 시몬이 급히 몸을 틀어 피했지만. “큭!” 팔꿈치가 살짝 베이며 핏방울이 비산했다. 촤악! 촤아악! 연이어 솟구치고 사라지는 가시들을 피해, 시몬은 정신없이 지상을 뛰어다녔다. ‘저 녀석인가.’ 아스페리아가 움직이는 두 신수 중 하나. 몸은 지면 아래에 있는지 보이지 않고 얼굴만 땅 위로 불쑥 내민 신수. 마치 하얀 물걸레를 연상케 하는 지저분한 갈기를 바닥에 드리운 채 쩝쩝거리며 입맛을 다시고 있는 사자 머리가 보인다. 꼬리로 보이는 뭔가가 조금 떨어진 위치에 뚫고 나와 흔들리고 있었다. 촤아아아아아! 가시가 시몬의 이마를 살짝 스치고 지나가며 핏물이 흘렀다. ‘극강의 관통기……!’ 결코 ‘방어할 수 없는 종류의 공격’이라는 건 한 번에 눈치챘다. 하나하나가 어떤 종류의 갑주도 뚫고 상대를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즉사기. 상대는 그런 즉사기를 난발하고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시몬의 심장이 느리게 뛰기 시작한다. ‘패턴은 있어.’ 타악. 시몬이 두 발을 쭉 내밀어 지면을 딛고 순간적으로 어깨를 틀었다. 촤아아아! 어깨를 살짝 스치며 가시가 솟구쳤다. 이번엔 시몬이 오른발을 앞으로 디뎠다가, 동시에 두 발을 뒤로 옮겼다. 촤아아아아아! 이번엔 전면으로 가시가 튀어나온다. 시몬은 몸을 비틀며 최대한 짧은 거리에서 피했다. 하얀 가시가 솟구치다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내 위치와 동작에 따라 가시의 방향이 바뀌어. 그리고 한 번에 솟아오르는 가시의 수는 최대 세 개.’ 촤아! 촤아아아! 가시에 잘려 나간 시몬의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분장을 위해 염색한 머리카락 아래로 본래의 푸르스름한 색깔이 살짝 드러났다. “황홀하네요.” 그녀가 손을 세웠다. “놀라운 판단력이에요. 당신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어요.” 따악!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하얀 마법진이 사자 신수의 머리 위에 펼쳐졌다. 시몬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강화 계열 신수 마법!’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번에는 다섯 개의 가시가 동시에 시몬의 사방에서 튀어나왔다. 카각! 카가가가각! 시몬이 간신히 차크람을 세워서 앞으로 올라온 가시를 받아냈다. 불똥이 튀어 올랐다. 시몬이 즉시 몸을 던져서 빠져나갔고, 그 자리로 새로운 가시들이 솟구쳐 오른다. 촤촤촤촤촤촤촤촤촤! 가시들의 수가 배 이상으로 늘어나고, 각기 다른 패턴으로 솟아올랐다. 시몬이 지면을 짓밟고 달려 나갔다. ‘이러면 끝이 없어!’ 아록의 지배자 아스페리아는 신수학으로 정점에 도달한 성녀. 패턴을 읽히니 바로 신수를 강화해서 패턴을 바꾸어 버렸다. 신수학에 있어서는 레테 이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리를 좁혀야 해!’ 파박! 시몬이 전신에 신성을 일으키고, ‘헤이스트’를 비롯한 각종 축복을 건 채 속도를 높였다. 사방에서 하얀 가시들이 솟구치고 내려가는 가운데, 그 사이로 과감하게 파고드는 시몬의 모습은 예술을 보는 듯한 광경이었다. 아스페리아와 거리를 좁힌 시몬이 오른손에 든 하얀 차크람을 입에 덥석 문 채 손바닥을 펼쳤다. <레테 오리지널 – 라 에스크림> 키이이이이잉! 순식간에 마법진으로부터 맹렬히 회전하는 장창이 형성되었고, 온갖 축복들이 띠처럼 휘감겼다. 시몬이 함성을 지르며 그것을 날려 보냈다. “흐흠.” 아스페리아는 제자리에 무방비로 선 채 웃을 뿐이었다. 스륵- 어느새 모습을 감추고 있던 새와 용을 섞은 듯한 신수, 아우레본이 날개를 펼쳐 그녀의 몸을 감쌌다. 라 에스크림이 아우레본의 날개에 부딪히자. 째애애애애앵! 마치 유리창이 산산조각 나듯 깨져 버렸다. ‘뭐지?’ 시몬이 즉시 걸음을 멈추었다. 라 에스크림은 분명 신성으로 이루어진 기술인데, 저 날개에 닿는 순간 유리 같은 성질로 바뀌어 버렸다. 이내 조각난 유리 파편들이 아우레본의 몸으로 흡수되었고, 아우레본이 날개를 크게 휘둘렀다. 그것으로 시몬이 구사했던 것과 똑같은 ‘라 에스크림’ 마법진이 펼쳐졌다. ‘내가 아는 아우레본과는 달라!’ 아스페리아가 다루는 아우레본은 이전과는 달리 투명하게 변해 있었다. 사용하는 능력도 바뀌어 있다. “영웅께서도 아우레본을 다뤄봤겠지만, 이렇게까지 다룰 수 있다는 건 몰랐겠죠?” 그녀가 손끝을 세우며 말했다. <라 에스크림>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아! 수십 개의 신성 창들이 하늘에서 회전하며 내려왔다. 시몬이 다급히 뒤로 물러서려 하던 찰나, 움찔하며 다시 억지로 몸을 밀어내야 했다. 그 즉시 하얀 가시들이 솟구쳐 올라 시몬의 퇴로를 막아냈다. ‘미치겠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라 에스크림이 연달아 시몬의 주위를 폭격했고, 가시들이 땅을 들쑤셨다. 곳곳에서 흙먼지와 소음이 일어나는 가운데. 푸확! 이내 먼지구름을 뚫고 피가 철철 흐르는 시몬이 양손에 차크람을 든 채 달리는 모습이 보였다. “경이로워요! 나의 영웅!” 그녀가 입꼬리를 쭉 올리며 손바닥을 펼쳤다. “처음 보는 순간부터 그대에게 끌렸어요! 왜 그럴까요? 본녀는 당신의 어떤 점에 그렇게 끌린 걸까요? 알고 싶어요!” 화르르르륵! 이번엔 신성화염계. 내부는 하얗고 외곽은 홍색을 띠는 불꽃이 아스페리아의 손바닥 위에서 돌멩이만 한 크기로 피어나더니, 순식간에 집채만 한 크기로 부풀어 올랐다. “아직 뭔가를 숨기고 있죠? 더 멋진 모습을 보여주세요!” 그녀가 그 홍색 불꽃을, 투명한 거울 같은 표면의 신수인 아우레본에게 던져 버렸다. 시몬이 ‘아’ 하는 표정을 지었다. ‘성녀들도 군단장 이상으로 정상이 없는 건가!’ 화염이 유리창처럼 깨지고, 아우레본이 두 날개를 휘둘러 성녀의 불꽃을 빨아들인 뒤 하늘로 퍼뜨려 버렸다. 하늘에 무수한 홍색 화염이 이글거리며 펼쳐지더니 이내 지상을 향해 떨어졌다. 아록 전체를 불태울 만한 화력. 시몬이 이를 악물고 자신의 몸에 신성 배리어를 펼친 채 질주했다. 화아아아아아아아악! 주위가 불바다가 되어가고 있었지만, 시몬은 여전히 냉정했다. 전력을 다해 두 발에 신성을 일으킨 채 달리면서 떨어지는 화염의 낙하지점을 포착하고 움직였다. <아스페리아 오리지널 – 라티가소 데 루스> 키이잉- 이에 아스페리아는 손에 황금으로 이루어진 채찍을 펼치더니, 하얀 사자에게 찰싹 하고 채찍질을 가했다. 그러자 사자가 얼굴을 파르르 떨었다. 쿠쿵! 시몬이 급히 걸음을 멈추었다. 거의 50개의 가시가 넓은 사방을 포위하며 솟구쳐 올랐고, 그대로 전진해 시몬을 향해 좁혀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하늘에서는 아우레본에게 반사되어 더 강력해진 신성화염계 불꽃이 떨어지고 있다. “자!” 아스페리아가 가슴에 손을 얹으며 기대감 어린 미소를 지었다. “이젠 어쩔 거죠?” 퍼어어어어어어어엉! 화염이 방대한 범위로 퍼져 나갔다. 그녀가 기대감에 찬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그때. 푸화악! 화염을 걷으며 한 줄기 번개가 튀어 나갔다. 뒤늦게 솟아오른 가시조차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크읍!” 하늘을 나는 전차와, 전차를 이끄는 아칼리온이 번개가 되어 빠르게 전장에서 이탈하고 있었다. 전차에 올라탄 시몬이 코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숨을 헐떡였다. ‘지금 당장 내가 가진 힘만으로 싸우기에는 상대가 너무 강해!’ 상대는 현역 베테랑 성녀다. 피온 모드가 되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의 강적이었고, 상대하려면 최소한 가짜 성녀를 쓰러뜨릴 때처럼 모제가 필요했다. 시몬이 머리를 굴리며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하고 있는 그때. “!” 마차의 진행 방향으로 갑자기 하늘이 번쩍이며 투명한 날개가 펼쳐졌다. 그 위에는 아스페리아가 올라타 있었다. ‘어느새!’ “비행형 신수를 가진 나를-” 그녀가 손짓하자 거대한 아우레본의 날개가 전차를 강하게 후려쳤다. “속도로 따돌릴 수 있을 리 없잖아요.” 터어어어어어엉! 날개의 충격으로, 전차는 반대 방향으로 튕겨 나가 지상으로 추락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 아칼리온과 전차는 지면에 부딪히며 큰 충격을 받은 뒤, 한참을 더 구르고 나서야 멈췄다. 자욱해진 흙먼지 속에서 시몬이 콜록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다들, 괜찮아?” 어느새 전차의 형태가 풀리며 하양이와 까망이가 바닥에 뱅뱅 돌아가는 눈으로 쓰러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칼리온까지 정신을 잃고 말았다. 펄럭! 하늘에서 옷깃이 휘날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아스페리아가 벌써 쫓아왔다. 시몬은 우선 부상당한 아칼리온부터 빠르게 치유하고, 하양이와 함께 신성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그나마 움직일 수 있는 건.’ -냐옹! 정신을 차린 까망이 한 마리뿐이었다. 시몬이 까망이를 차크람으로 사물화해서 왼손에 쥐었다. 타악. 그사이 아스페리아가 사뿐히 지면에 착지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녀가 구둣발 소리를 내며 걸어왔다. “다른 주민들은 모두 도망쳐도, 당신이 나와 아록으로부터 도망치는 건 용납 못 해요.” “…….” 시몬은 냉정히 상황을 관조했다. 전차를 치고 지나간 아우레본의 신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가시를 솟구치게 하는 그 신수도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그녀가 혼자 있는 거라면. ‘지금, 싸운다!’ 터엉! 시몬이 까망이 하나를 장착한 채 아스페리아에게 뛰어들었다. 검은 차크람에 신성이 일렁이며 빛났고, 순식간에 그녀와 거리를 좁힌 시몬이 차크람을 휘둘렀다. 부웅! 아스페리아가 뒤로 살짝 물러나는 것으로 공격을 피했다. 시몬이 다리를 앞으로 내뻗고 양손으로 붙잡은 검은 차크람을 맹렬히 휘둘렀다. 부웅! 붕! 부우웅! 잔상이 일어날 정도의 맹공이었지만, 아스페리아는 성투까지 뛰어난 듯 가뿐한 움직임으로 피해 나갔다. 그러다가 그녀가 손바닥을 펼치고 후 하고 입김을 불자, 홍색 잿가루가 시몬을 향해 퍼져 나갔다. “큭!” 순간 시몬의 정신이 행복감에 의해 흔들렸다. 동시에 왼손에 차고 있던 까망이의 ‘사물화’가 풀리면서 까망이가 헤롱거리는 상태로 풀밭에 떨어졌다. “이를 어쩌죠? 본녀는 신수의 여왕.” 그녀가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신수학 기술은 통하지 않아요.” “그렇다면!” 차악! 시몬이 까망이를 집어서 신성 아공간에 집어넣은 뒤, 머리카락이 휘날리도록 달려서 그녀의 측면에서 발차기를 날렸다. ‘성투로!’ 터어어어어엉! 가볍게 손목으로 받아낸 아스페리아는 미동도 없었다. 주위의 쩍쩍 갈라지는 지면만이 시몬이 가한 공격의 파괴력을 증명할 뿐이었다. 시몬이 몸을 돌려 연달아 스트레이트 펀치를 날리며 연타를 퍼부어댔지만 아스페리아 또한 마치 발레를 하는 동작처럼 우아하게 받아냈다. ‘무슨 무술이야 저게!’ 마치 중력을 무시하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그녀는 허공을 딛고 뛰어오르거나 팔을 유연하게 움직여 주먹을 걷어냈다. 심지어 그녀의 두 다리가 갑자기 공중으로 치솟더니 시몬을 향해 망치처럼 떨어졌다. 시몬이 급히 물러나 피했다. 쿵! 하고 주위의 바닥이 격렬하게 갈라졌다. “그 정도로는 본녀를 이길 수 없어요.” 그렇게 말하던 그녀의 눈이 커졌다. 갑자기 전면으로 파직거리는 보랏빛 전격이 쏟아지고 있었다. <카오스 스피어> 콰르르르르릉! 그녀가 가까스로 방어 마법진을 펼쳐 그것을 받아냈다. “놀랍네요. 궁지에 몬 생쥐라고 생각했는데.” 파직! 파직! 시몬의 손에서 보랏빛 스파크가 튀고 있었다. 아스페리아도 처음으로 경계심이 생긴 듯 얼굴에 미소를 지웠다. “이빨을 숨기고 있었네요.” 그녀가 거칠게 오른팔을 뻗었다. 그녀의 손바닥으로부터 흘러 나간 홍색 잿가루가 시몬을 지나쳐 인근의 숲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그녀가 가진 성녀의 권능은 인간을 조종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모든 신수의 사랑을 받는 것이 가장 핵심인 힘. “아우레본.” 펄럭! 어느새 거울을 뒤집어쓴 듯 투명한 새가 두 팔을 펼친 채 하늘에 고정되었다. 그리고 신수의 숲에 살던 모든 신수들이 잿가루의 영향으로 지배되었고, 일제히 신성 브레스를 비롯한 원거리 공격을 하늘의 아우레본에게 쏟아 보내기 시작했다. 시몬의 이마에 진땀이 흘렀다. ‘이건 반칙인데.’ “강도를 높여보도록 할까요?” 신수들의 모든 공격이 유리 파편이 되어 아우레본의 몸에 빨려 들어갔고, 그 모든 공격이 확장, 증식된 채로 시몬을 향해 살벌한 기세로 쏟아져 내렸다. 콰콰콰콰콰콰콰! 쿠쿠쿠쿠쿠쿠쿠쿠쿵! 곳곳에서 자욱한 흙먼지가 주위를 뒤덮었다. 그녀는 미소를 머금은 채 지켜보고 있었다. 스스스스- 그러나 흙먼지가 걷히자, 자리에 주저앉은 시몬의 옆으로 거북이 등껍질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방패막이 펼쳐져 있었다. 그녀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감히 본녀를 방해하는 건가요?” 타닥. 시몬의 앞으로 누군가가 나타났다. 작은 가젤, 혹은 목이 짧은 기린을 닮기도 한 신수. 머리에는 뿔 대신 솜뭉치 같은 둥근 것이 달려 있었다. 시몬이 먹이를 줬던 바로 그 신수. 낙원의 신수 중 마지막 존재가 시몬을 보호하고 있었다. “너는……!” -빠아아! 신수가 시몬을 보며 인사하듯 작게 울음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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