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321화 영원의 성녀, 아스페리아가 불러낸 에시람이 시몬을 공격하지 않고 역으로 술사인 그녀의 목덜미를 물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하나. 스릉! 승! 지금의 아스페리아는 가짜라는 확실한 증거였다. 성녀의 집행자들이 창끝을 세우고 아스페리아를 역으로 포위했다. [손을 드십시오.] [조사를 실행해야 하니 협조해 주십시오!] 하하. 하. 아스페리아가 긴 두 팔을 축 늘어뜨린 채 웃음을 흘렸다. 목덜미에 박힌 에시람의 독니가 독을 퍼뜨렸고, 독은 그녀의 쇄골을 지나 가슴까지 퍼져 나가고 있었다. “정말.” 그녀가 180도 바뀐 싸늘한 목소리로 에시람의 목을 움켜쥐었다. “짜증 난다니까.” 슈와아아아아아아아! 아록에서 가장 오랫동안 존재한 상징. 하얀 실뱀이 그녀의 손에 붙들리는 순간 전신이 시커멓게 변했다. 물고 있던 목덜미를 놓으며 미친 듯이 발버둥 치던 신수가 이내 누가 말릴 틈도 없이 시꺼멓게 변한 채 그녀의 손안에서 뚝뚝 촛농처럼 녹아내렸다. 아록의 전설이었던 생물이 죽었다. 성녀의 집행자든, 수련자들이든, 모두가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전령이 죽었을 때와 동일합니다! 그 또한 저런 최후를 맞았습니다!” 아록의 안내원이 외쳤다. 아스페리아를 둘러싸고 있던 성녀의 집행자들이 창끝을 더더욱 앞세워 그녀의 목 앞으로 들이밀었다. [당장 두 손 들고 투항하라!] 그러나 그녀는 픽 웃더니 경고를 무시하듯 팔을 움직였다. 결국 성녀의 집행자들이 결단을 내렸고. 푸욱! 푹! 창으로 그녀의 목과 가슴을 찔렀다. “!” 그러나 꿰뚫린 게 아니라 그녀의 몸에 창들이 파고들어 가 있었다. 마치 늪 속에 창을 집어넣은 것처럼, 그녀는 멀쩡히 성녀의 집행자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잘 가요.” 쏴아아아아아아아아! 즉시 그녀의 몸이 액체화되어 360도 전 방향으로 퍼져 나가 성녀의 집행자들을 집어삼켰다. [아아악!] [끄윽!] 오물을 뒤집어쓴 성녀의 집행자들이 자리에 주저앉으며 녹아들어 갔다. 치이익! 소리와 함께 거품을 일으키던 오물이 꿀렁꿀렁 움직여 다시 중앙으로 모여들었고, 오물이 지나가며 그 자리에 남은 건 앙상한 뼈뿐이었다. “우욱!” 곳곳에서 수련자들이 헛구역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내 검은 오물들이 모여들며 다시 아스페리아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 멍청한 성녀, 분명히 두 팔을 자르고 숨통만 붙여뒀을 텐데. 무슨 수작을 부린 거지?” 다시 구축한 그녀의 두 긴 팔에는 천 조각을 기워놓은 듯한 봉합 자국이 있었고, 피부색이 다른 이질적인 손이 달려 있었다. “어떻게 타인에게 권능을 전달했다는 건지 의아하네요. 아니, 그 전에 당신.” 그녀의 시선이 시몬에게로 향했다. “어떻게 알았어요?” “말했잖아. 감이라고.” 시몬이 태연히 눈을 감으며 대답했다. “너희들 결사가 저지르는 일이야 뻔하지. 명백한 목적과 이유가 있어서 오히려 이해하기 쉬워.” 암흑연합에서 불리는 결사 킬러란 명성답게, 이제 시몬은 결사가 저지르는 행동에 대해서 감이 빠르게 왔다. 암흑연합이든 신성연방이든 그 틀을 흔들기 위해서는, 영지의 지배자를 흔드는 게 기본이다. 영주와 손을 잡거나, 유령궁의 예시처럼 지역 절대자의 권능을 차지하려 하거나, 혹은 지배자를 억류시키고 그 지배자로 변장하는 것들 말이다. 그리고 이 아록이라는 부유한 영지를 가진 성녀. 아록에 문제가 생겼다면 그 지배자에게도 문제가 생겼을 확률이 높았다. 물론 결정적인 확신은 시몬이 그녀를 만졌을 때 들었지만 말이다. “감?” 그녀가 잠시 시몬의 말을 곱씹어보다가 말을 이었다. “그럴 리가? 내가 촘촘하게 세운 계획이 그깟 감 때문에 틀어질 리 없잖아요. 분명히 뭔가 있어요. 성물의 운반자를 자처하던 당신-” 그녀가 혀를 할짝댔다. “붙잡아서 연구해 보고 싶은걸요.” “…….” 시몬이 말없이 신성을 끌어올리고 있는 그때. “거기까지.” 빠밤 빠바밤! 요란한 관악기 소리와 둥둥 북소리가 울려 퍼지며, 그 사이로 회색 머리카락의 소년이 걸어오고 있었다. 모제 델 베아투스. 전투를 앞두고 어느새 도복 대신 평소의 긴 목자옷을 꺼내 입은 그가 저벅저벅 걸어왔다.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떠드느냐! 나 신의 손 모제. 더 이상 그분을 불쾌하게 하는 행동은 용서할 수 없다.” 뒤에서 식탁보를 뒤집어쓴 정령들과 함께 연주하던 하미엘이 이내 모제의 뒤로 살짝 숨으며 외쳤다. “요, 용서하지 못한답니다!” “신의 손? 오, 그래요.” 가짜 성녀가 미소 지었다. “당신이 이번 일의 주모자, 그 유명한 교황청의 충견이로군요. 교황은 이미 이 사태를 예견하고 있던 걸까요?” “아니.” 그 말에 모제가 픽 웃으며 손끝을 세웠다. “그보다 더 위대한 분의 안목이다.” 가짜 아스페리아는 혀를 차며 고갯짓을 한 뒤, 진짜 아스페리아의 팔을 이어 붙인 길쭉한 두 팔을 앞으로 세웠다. “죽어요 그럼.” 촤아아아아아아아! 그녀의 다리 일부가 액체화되더니 검은 오물들이 살벌한 해일과도 같은 기세로 몰려들었다. 모제가 태연한 얼굴로 신의 손인 오른손을 세워 들었고. “!” 갑자기 뭔가 깨달은 듯 신성 방어마법진을 펼치며 제 몸을 감쌌다. 이어지는 파도가 모제를 집어삼켰다. “모제!” [가짜 성녀를 죽여라!] 아직 살아남은 성녀의 집행자들이 가짜 아스페리아를 향해 돌진했다. 수련자들도 함성을 지르며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이리 온, 신수들아.” 이에 대응하는 그녀가 한쪽 팔을 뒤로 향한 채 홍색 잿가루를 일으켰다. 그것은 인근의 숲으로 퍼져 나갔고, 숲에 있던 아록의 신수들의 눈 색이 바뀌더니, 그녀를 지키기 위해 달려왔다. 쿠웅! 퍽! “큭!” “어째서!” 아록의 신수들이 성녀의 집행자와 수련자들을 밀쳐내는 사이, 그녀는 오른팔을 앞세웠다. 거대한 신성 마법진이 그녀의 팔 위로 펼쳐졌다. [여러분, 아록에 영원의 행복을 깨뜨리려는 사악한 자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녀가 매섭게 눈을 빛냈다. [행복을 지키기 위해 저들을 몰아내야 합니다.] 바닥에 뒹굴고 있던 헐벗은 아록인들이 그 말에 반응하더니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켜야 해.” “……아록을 지켜야 해.” 행복을 갈구하던 아록인들이 갑자기 태도를 싹 바꾸더니 좀비처럼 다가오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들 자체의 전투능력이 아니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아록의 수련자 생활을 했거나 고위 프리스트 출신들. 그들이 팔을 뻗자 아록의 신수들도 수련자들과 성녀의 집행자들에게 적대감을 보이기 시작했다. “여러분의 아록을 지켜주세요.” 가짜 아스페리아의 외침에 응답하듯, 아록인들이 신수들과 우르르 달려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전장이 뒤엉키며 난전이 펼쳐졌다. “크악!” “어윽!” 신수에 들이받혀 바닥을 나뒹굴고, 아록인들에게 붙잡혀 넘어지는 수련자들이 속출했다. 몇몇은 이 방해를 뚫고 가짜 아스페리아를 공격하려 했지만. 촤아아아아아! 그 또한 여의치 않았다. 그녀가 계속해서 홍색 잿가루를 두르듯 주위에 퍼뜨리고 있었고 방심하다간 바로 행복에 잡아먹히는 신세가 되었다. 이 모든 걸 뚫어낸 성녀의 집행자 몇몇이 신성을 담은 창으로 그녀의 몸을 찔렀으나. 푸욱. 푹. 여전히 그녀의 몸은 물처럼 모든 공격을 통과했다. “이 아록에서 나를 이길 수 없는 존재는 없어요.” 검을 오물을 뿌려 성녀의 집행자들을 무력화한 아스페리아가 아록의 유적을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신수들이 가득한 지형에서 신수를 따르게 하는 힘, 행복에 취하게 하는 힘, 그리고 나 본연의 힘까지. 그 누구도-” 저벅저벅. 그때 그녀가 눈을 깜빡이며 뒤를 돌아보았다. 이런 난리와 혼란과는 상관없다는 듯 태연히 걸어오고 있는 두 남자. “방황하는 신도의 모습을 보고 가엾이 여기시던 성자께서 가라사대.” 목자옷을 몸에 두른 회색 머리의 모제가 경전을 읽는 투로 연신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왼손으론 나뭇가지를 지휘봉처럼 휙휙 휘두르고 있었다. “모제야 보아라. 네 번의 도끼질은 단 한 번의 도끼질을 위한 것이니, 모든 것에는 준비가 필요하도다.” 그 옆으로 걸어가고 있던 시몬이 쓰게 웃으며 한마디 했다. “숭배하는 거 민망하니까 그만하고 전투에 집중해.” “성자께서 가라사대, 모제야. 어찌 빛을 빛으로 보고 우상을 숭배하느냐, 눈앞의 악을 제거하는 데 집중하라 하셨더라.” 시몬은 한숨을 푹 쉬고는 다시 진지한 얼굴로 가짜 아스페리아를 노려보았다. “아마 구원자급으로 보이는데, 쉽게 보낼 생각은 없어.” 그녀가 미소 지었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인걸요? 아록은 앞으로도 영원히 유지되어야 해요. 이곳에서 내 정체를 본 자는 전원-” 그녀가 팔을 뻗었다. “사형이에요.” 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녀의 하반신이 오물처럼 흘러내리며 검은 웅덩이가 만들어졌다. 그 안에서 시커먼 마물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좀비처럼 허우적거리는 두 팔 달린 마물들. 마치 지옥의 수라장 같은 광경이었다. “가자, 모제.” 시몬이 신성 아공간에서 하양이와 까망이를 꺼내 신성을 불어넣고 공중으로 던졌다. 이내 두 팔을 뻗은 시몬의 손에 마치 바퀴를 형상화한 듯한 ‘차크람’이 역수로 잡혔다. “모든 것은 성자님의 뜻대로.” 모제가 왼손에 든 나뭇가지를 오른손으로 옮기자, 나뭇가지가 빛을 발하며 성검의 형태로 변했다. “결사니까 아마 단순한 액체화 능력은 아닐 거야.” 시몬이 분석했다. “예, 성자님. 물리력을 벗어나거나 그로 인한 변신은 부가적인 효과일 뿐, 질병을 일으키는 몬스터의 피를 주입받은 것처럼 보입니다.” 모제가 답하며 앞으로 걸어갔다. “먼저 길을 열겠습니다.” 양손으로 힘껏 성검의 손잡이를 틀어쥔 그가 검신을 위로 쳐올렸다. <성검기- 디바인 저스티스> 후콰아아아아아아악! 무려 성검 사용자의 필살기를 재현하는, 다시 봐도 말도 안 되는 기술. 빛의 참격이 파도처럼 쏟아지며 절규하는 액체 마물들을 가볍게 분쇄했다. 그리고 바로 그 참격을 타고 있던 시몬이 아래로 내려오며 차크람을 휘둘렀다. 쩍! 퍼억! 흰색과 흑색의 차크람이 각자의 궤적을 그릴 때마다 액체 마물의 몸통이 조각났고, 머리가 날아갔다. 시몬이 속도를 높이며 아스페리아를 향해 전진했다. “흡!” <신수기 – 포티파이(Fortify)> 키이이잉! 시몬의 신수 축복에 차크람의 크기가 한 차례 더 커졌고, 시몬이 춤을 추듯 지나갈 때마다 액체 마물들의 목이 숭숭숭 날아다녔다. 쩡! 퍼어억! 이를 본 가짜 아스페리아가 인상을 쓰며 자신의 허리까지 액체화했다. 그로부터 쏟아지는 액체 마물들의 머릿수가 더더욱 불어났다. “가세하겠습니다!” 타아! 모제가 앞으로 뛰어들었다. 성검을 길거리의 쓰레기 버리듯 던져 버린 그가, 새로운 나뭇가지를 주워서 다시 성검을 형성했다. 촤아아아! 촤아아아아아아! 두 소년이 경쟁하듯 적을 베어 넘기며 들이닥쳤다. 가짜 아스페리아가 액체 마물을 쏟아내며 물러나는 것보다, 두 소년의 돌파가 더욱 빨랐다. “신수들! 저들을 막아!” 그녀의 외침에 신수들이 우르르 들이닥쳤다. 신성연방의 프리스트들은 신수를 결코 상처 입히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가짜 성녀가 가로되.” 촤아아아! 그러나 모제가 목에 매고 있던 목도리를 벗어서 오른손으로 쥐자 목도리가 커지고 직물의 형태가 넓어지며 그물처럼 변했다. “에시람이 본녀를 따르니 본녀가 참된 자라 이르노라. 이에 성자께서 꾸짖어 말씀하시되.” 그대로 돌진하는 신수들을 성물 그물로 붙잡은 모제가 신수들을 한 번에 끌어당긴 뒤 힘껏 밖으로 내던져 버렸다. “그 신수가 진실로 따르고 있음을 네가 확신할 수 있느냐 하셨느니라.” “그러니까!” 시몬이 손끝으로 신성마법진을 그린 뒤 손바닥에 붙이고 직접 신수들을 터치 터치하면서 지나갔다. 투욱. 툭. 시몬의 손에 닿은 신수들이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휙휙 흔들더니 진짜 주인을 향해 뛰어갔다. “그거 민망하다니까!” 압도적 강함. 투닥거리면서도 압도적인 물량을 파훼하며 다가오는 두 소년을 보며 가짜 아스페리아의 동공이 급격히 흔들렸다. ‘저 두 놈! 다른 녀석들이랑은 차원이 다른……!’ <아운더리 엑소시즘> 콰르릉! 시몬의 신성 마법이 가짜 아스페리아의 몸에 작렬하며 강렬한 불꽃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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