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319화 아록 내부와 외곽의 사이를 갈라놓는 가시덤불은 절대적인 성역의 경계였다. 자격 있는 자만이 덤불을 지나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기에, 아록에서 가시덤불의 상징성은 대단히 컸다. 그런데 바로 그 절대적인 상징이― 화르르르르르륵! 불타고 있었다. 아록의 긴 역사에서 단 한 번도 없던 사태. 신성화염계를 몸에 두르고 있는 아리우스가 결연한 얼굴로 불길을 헤치며 걸어왔고, 그 뒤를 탈로크와 수련자들, 그리고 모제와 하미엘이 뒤따랐다. “가자!” 아리우스와 탈로크가 이끄는 수련자 무리가 불타 버린 가시덤불을 지나 아록 안으로 진입했다. 마지막까지 망설였는지 경계에서 다리를 내디뎠다가 멈추는 자들도 있었지만, 결국 덤불을 건너는 순간에 모든 망설임을 털어내듯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이제는 죽거나 살거나 둘 중 하나였다. “들어가자!” “가자아아아아!” 모두가 격렬한 함성을 내지르며 결계 너머 아록의 땅을 밟았다. 그러나. 터엉! 텅! 선두의 수련자들이 투명한 뭔가에 부딪혀 크게 튕겨 나갔다. 흠칫 놀란 수련자들이 걸음을 멈췄다. “더, 덤불 뒤에 결계가 있습니다! 아스페리아 성녀님이 직접 펼친 결계 같습니다!” “물러나십시오.” 그 말에 모든 수련자들이 옆으로 비켜서고, 결연한 얼굴의 아리우스와 분노한 얼굴의 탈로크가 앞으로 나섰다. 우웅! 아리우스가 한 손으로 결계를 짚고 다른 한 손으로는 신성 마법진을 펼친 채 분석을 진행하고. “흐랴아아아아!” 탈로크는 두 주먹에 신성을 집중시킨 채 연신 결계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결계 공략에도 두 사람의 성격이 드러나는 모습. 그러나 이들이 진땀을 흘리며 분투해도 결계는 요지부동이었다. 아리우스가 잘 안 풀리는 듯 머리를 마구 쓸어내렸고 탈로크는 주먹이 아픈지 손을 탈탈 털며 물러났다. 이를 지켜보던 수련자들이 동요하며 웅성거렸다. “어, 어쩌죠?” “가시덤불까지 불태우면서 각오를 보였는데 이렇게 바로 막히다니!” “비켜.” 그때 모두를 압도하는 음성이 울려 퍼졌다. 그 박력에 수련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좌우로 물러났고, 그 자리로 한 소년이 걸어 나왔다. 바로 ‘신의 손’ 모제였다. “범재들이 하는 일이 다 그렇지.” 그가 퉁명스럽게 중얼거리며 결계 앞에 서더니, 도복 주머니에 넣은 오른손을 꺼내 결계를 가볍게 짚었다. 우웅-! 그가 첫 번째로 손을 짚자, 투명하고 단조롭던 결계 전체가 크게 요동치며 은빛으로 바뀌었다. 카아아앙! 그가 두 번째로 손을 짚었을 때 결계가 금빛으로 물들며 더더욱 두껍고 견고해지기 시작했다. 화아아아아아악! 그가 세 번째로 손을 짚었을 때는 결계의 형태가 더더욱 두드러지며 거대한 성곽처럼 웅장하게 변했다. 천국을 새겨 넣은 듯한 황홀한 무늬들까지 떠올랐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형제님!” 하미엘이 식겁하며 뛰어 들어와 모제의 오른 손목을 붙잡았다. “안 그래도 단단한데! 그 오른손으로 결계를 만지면 어쩌잔 거냐구요!” 웅성 웅성 웅성! 다른 수련자들도 표정이 굳어졌다. 그들 모두가 프리스트였기에 지금 결계가 뚫리긴커녕 처음보다 더 튼튼해졌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수련자들이 흥분하며 모제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돕지 못할망정 축복으로 결계를 더 강화하다니!” “너 이 자식! 아스페리아의 스파이 아냐?” 탈로크는 아예 주먹에 신성을 끌어모으며 모제를 한 대 치려고 했다. 다른 수련자들이 달려들어 뜯어말렸다. 그리고 이들을 보는 모제의 반응은. “하아아아아아아아.” 제자리에 쪼그려 앉아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푸우욱 쉬었다. 그 반응에 모두가 행동을 멈추었다. “……내가 왜 하늘섬에서 내려와서 이딴 범재들이랑 일하고 있는 거지? 갑자기 흥이 확 깨네.” “무, 무슨 소리를…….” “니들 명색이 프리스트 아냐? 이건 뭐 하러 들고 다니냐!” 모제가 경멸 가득한 얼굴로 제 머리를 팍팍 때리며 비꼬았다. “생각을 할 수 있는 동물이면 제발 생각을 좀 해! 성녀의 결계는 그 자체로도 절대적 완성형이다! 바로 여기에 권능급 축복 효과를 걸면 이미 그 자체로도 완전했던 결계에 부하가 걸리는 게 당연하지 않겠냐!” 그럴듯한 설명에 수련자들이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모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기에 이번 ‘성물화’는 지속 시간을 짧게 설정한 대신 강화 효과를 대폭 상승시켰어. 결계는 일시적으로만 여력 이상으로 강한 효과를 내게 되는 거지. 그 뒤엔 어떻게 된다?” 모제의 말대로 3겹의 강화 성물화가 풀리고, 결계에 티딕 틱 소리가 나며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모두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결계를 바라보았다. “결계가 약화된다는 거야! 이 우민들! 범재들! 범골들! 나는 교황을 시켜준다고 해도 안 할 거야! 이런 것들을 이끌며 연방을 운영할 자신이 없어!” 그가 투덜거리며 등을 돌려 가시덤불 쪽으로 걸어갔다. 대부분의 수련자들이 무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가운데, ‘재수 없다’는 둥의 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잘하고도 욕먹는 전형적인 타입이네요. 모제 형제님.’ 하미엘이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이내 모제가 걸어가 아직 불에 타지 않은 가시덤불에 오른손을 올리고 성물화를 걸자. 샤아아아아아아아- 가시덤불들이 금속처럼 변하며 살아 움직이듯 올라오기 시작했다. 모제가 시크한 표정으로 팔을 앞으로 쓱 내밀자, 모든 가시덤불이 쏟아지듯 결계로 나아갔다. 빠각! 빠득! 이내 균열이 간 결계에 성물화된 가시덤불이 연달아 창끝처럼 틀어박히기 시작했다. 무엇으로도 뚫리지 않을 것 같던 성녀의 결계에 깊은 균열이 생겨났다. “잘 봐라, 우민들아.” 척. 도복을 휘날리며 앞으로 나온 모제가 두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고는 마치 거대한 대문을 열어젖히듯 좌우로 힘껏 밀어붙였다. 끄그그그그그그그- 그가 두 손을 힘주어 좌우로 벌리자, 성물화된 가시들도 결계의 중심부를 억지로 밀어젖혔다. 결계의 중심부가 까가가가가각! 소리를 내며 좌우로 벌어지기 시작했다. “세상에……!” 곳곳에서 경악과 탄성이 일어났다. 성녀의 결계가 액체처럼 물결치며 다시 붙으려 했지만, 지금은 모제가 결계를 벌리는 힘이 더 강했다. 마침내 구역 전체를 덮는 거대 결계에 사람이 통과할 수 있을 만큼의 틈이 생겨났다. “들어가!” 모제가 힘겨운 표정으로 소리쳤다. 아리우스가 제일 먼저 결계 내부로 뛰어들었고 그 모습을 본 다른 수련자들도 허겁지겁 안으로 들어왔다. 빠각! 콰직! 그러나 결계가 다시 닫히려 하고 있었다. 강철처럼 단단했던 성물화된 가시들이 하나둘 구부러지고 깨지기 시작했다. 모제는 여전히 양팔을 세우는 자세를 유지한 채 조금씩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스스스! 그때, 모제의 등 뒤에 있던 성물화되지 않은 가시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홍색 잿가루가 일렁거리는 그것이 모제의 등을 노리려는 듯 다가오고 있었다. “형제님 조심해요!” “그쪽도 피해야 합니다!” 수련자들이 다급히 외쳤지만, 아직 들어오는 수련자들이 많았다. 모제는 이를 악물었다. “알고 있으니까 니들부터 들어가라고……!” 촤아아아아! 홍색 가시들이 이내 속도를 확 높여서 모제의 등을 향해 쇄도했다. 모두가 아우성치고 있는 그때. 뿌우우우우우우-! 맹렬한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며 모제의 등을 꿰뚫으려던 가시들이 파삭 소리를 내며 가루처럼 흩어졌다. 어느새 결계 앞에 식탁보를 뒤집어쓴 정령들이 나팔을 들고 있었고, 하미엘도 입에 든 나팔을 입에서 떼어내며 외쳤다. “이제 모아 형제님만 들어오면 됩니다! 뛰어요!” 하미엘의 그 말에 모제도 팔을 내리고 달렸다. 즉각 다른 가시들이 쏟아졌지만 모제는 제 발에 축복을 걸고는 결계의 틈을 향해 몸을 날려 슬라이딩했다. 촤아악! 간발의 차이로 모제가 틈으로 들어오며 결계가 닫혔다. 모제가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풀밭에 나뒹굴며 쓰러졌다. 우와아아아아아! 수련자들이 두 팔을 번쩍 들고 함성을 쏟아내며 달려왔다. “대단합니다, 형제님!” “보고도 믿을 수 없어! 아깐 의심해서 미안했소!” 수련자들이 모제를 얼싸안고 손을 잡고 기도를 드리는 등 난리도 아니었다. 아리우스와 하미엘은 미소를 지었고, 탈로크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거리를 두었지만 입가엔 미소가 번져 있었다. 모제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힘겹게 말했다. “……머리 텅 비는 병이 옮을 것 같으니까 다들 비켜.” 모두가 이제는 모제의 성격에 적응한 듯 웃었다. 아리우스가 외쳤다. “갑시다. 붙잡힌 시온 형제님과, 전 동료들을 구하러!” “모아 형제님의 분투를 본받자!” 수련자들이 하나둘 걸어가기 시작했고, 이내 하미엘이 옆으로 쓰러진 모제의 옆으로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투덜거려도 결국 다 구해냈네요. 대중은 우민이라고 하면서도, 결국 백성에 대한 애정은 있나 봐요?” “헛소리.” 모제는 조용히 그렇게 한마디 하고는 하미엘의 손을 붙잡고 몸을 일으켰다. “모든 건 성자님을 위해서다.” “네, 네.” * * * 수련자들은 번뇌가 있으면 건너지 못한다는 베리타스강까지 무사히 건너는 데 성공했다. 처음에 실패한 자들도 있었지만, 극진을 발동한 채 걸어 나오니 어렵지 않게 강을 건널 수 있었다. 수련자들은 다소 어이없어하는 표정이었다. -베리타스강은 정신 수양이 극한에 이르러야만 넘을 수 있다고 들었는데……. -이 정도로도 가능한 거였어? -지금까지 했던 수련은 대체 뭐였던 거지. 하지만 그들의 실망과 분노는, 그 뒤의 광경을 목격한 충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모두의 꿈과 희망이었던 아록인들의 실체. “하하하하하하!” “깔깔깔깔!” 그것은 다른 감정들은 거세당한 채 행복만을 울부짖으며 발가벗고 짐승처럼 나뒹구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속세에서는 너무나도 존경받던 인물이나, 수련 최단 기록으로 신수의 인정을 받아 아록에 진입하며 천재라는 소리마저 들은 자까지. 모두가 헐벗고 휑한 꼴로 웃음 짓는 모습을 보며 할 말을 잊고 말았다. “아버지! 아버지! 정신 좀 차려보세요!” 아록의 안내원이 한 노인을 붙들고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다. 기력이 다 쇠진한 듯한 노인이 쇳소리를 내며 허허 웃었다. “허허! 누군진 모르겠지만, 흐흐허허헣! 끄억! 컥! 화내지 마시오. 허헉! 나는 행복하니께! 허허!” “아버지!” 그 모습을 충혈된 눈으로 보던 아리우스의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그러나. [기생자들이 여기까지 기어들어 오다니.] [여기가 어딘지 알고 왔느냐!] 파앗! 팟! 성녀의 집행자들이 눈부신 빛과 함께 하늘에서 하나둘 수련자들 앞에 나타났다. [여긴 성역 아록이다! 선택받은 자들만이 들어올 수 있다!] “집어치우십시오!” 아리우스가 격분한 표정으로 팔을 휘둘렀다. “뭐가 성역입니까! 뭐가 선택받은 자들입니까! 이 꼴을 보이고도 우리에게 그런 소릴 하는 겁니까!” […….] 탈로크도 한 걸음 걸어 나왔다. “너 이 새끼들, 다 알고 이랬던 거야? 우리를 능멸하니 재밌었냐?” 퉷! 그가 침을 뱉으며 만국 공통의 욕인 중지 손가락을 내밀었다. “지옥에나 떨어져라.” 스릉! 승! 성녀의 집행자들도 무기를 꺼냈다. [마지막 경고다. 물러나라.] “아스페리아 성녀님을 뵙게 해주십시오.” 수련자들이 모두 전투준비를 하는 가운데, 아리우스가 싸늘하게 말했다. “직접 설명을 들어야겠습니…….” “본녀를 불렀나요.” 화아아아아아아아아악! 중앙에서 눈부신 빛이 명멸했다. 달려들려던 성녀의 집행자들이 일제히 한쪽 무릎을 꿇고 경배했다. [그라툴라 미 키빌리스.] 영원의 성녀 아스페리아가 친히 수련자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제 수련자들 누구도 그녀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드디어 나타나셨군, 마귀.” 모제가 중얼거리며 히죽 웃었다. 하미엘이 굳은 얼굴로 속삭였다. “그, 그런데 시몬 형제님은 어디 있을까요?” “그분을 의심하지 말지어다.” 모제가 웅장한 톤으로 그렇게 말하며 신의 손을 주먹 쥐었다. “성자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최대한 버틴다. 그걸 위해 우민들을 데려온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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