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300화 이번 학생들의 졸업 논문 점수에는, 당연히 논문 발표회에 참가했던 외부인 평가도 반영된다. 하지만 외부인 평가는 전체 비중의 20%에 불과했고, 결국 졸업 논문 통과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키젠 3학년 교수들이었다. 제인을 비롯한 3학년 교수들은 원탁에 빙 둘러앉아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졸업 논문을 검토하고 점수를 매기고 있었다. “학쟁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번 취업 평가는 다른 해에 비해 전체적으로 힘들었던 것 같아요.” 마투학 교수 홍펭이 손뼉을 가볍게 맞부딪히며 말을 이었다. “이유는 결자의 공격 때문이죠. 각 취업처로부터의 복귀가 늦어졌으니, 논문의 전체적인 완정도 부분에저는 조금 더 관대하게 봐야 한다고 쟁각해요.” “에이, 그런 게 어딨냐, 동생아.” 같은 초원 출신에 맹독학 교수인 별야가 턱을 괸 채 콧구멍을 후비적거리며 말했다. 다소 품위가 떨어지는 그녀의 행동에, 고위 귀족 영애 출신인 사령학과 교수의 스테이시 세잔은 오만상을 쓰고 있었다. “애들 하나하나 봐주다간 버릇만 나빠진다고. 그렇게 따지면 뭐, 작년에도 그 빌어먹을 결사 때문에 난리였잖아? 올해는 황금세대라고들 하니, 그 정도 난관쯤은 스스로 극복하고 논문을 완성하는 게 맞다고 봐.” 그녀가 코를 후비고 나온 이물질도 맹독인 듯, 순식간에 피슉 하고 공기 중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스테이시 세잔의 기침 소리가 울려 퍼졌다. 별야가 고개를 돌렸다. “안 그래? 혈류학과.” 혈류학과 자리에는 혈류학과 교수인 프레스턴 패튼 대신에 수석조교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무릎에 두 손을 올리고 허리를 곧게 편 그녀의 눈은 부담감으로 팽팽 돌아가고 있었다. “그, 저……! 잘 모르겠습니다! 저, 저 같은 게 감히 교수진 회의에 껴서 의견을 말해도 되는 건지…….” “꺄하하! 깡따구가 부족하네!” 최근 룬 리그에 있었던 전체 8위이자 혈류학과 대표, ‘일라이저 크로비스’ 건 관련해서 프레스턴이 키젠본부 측의 조사를 받고 있었다. 일라이저는 몸에 금지된 기생 언데드를 품고 있었고, 이 문제로 인해 프레스턴 교수가 책임을 지게 된다면 3학년 2학기에는 또다시 혈류학과 교수가 바뀔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었다. 관계자들은 참 혈류학과는 바람 잘 날 없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조용히.” 부총장이자 칠흑역학과 담당의 제인이 엄숙하게 입을 열었다. “채점은 본래의 기준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소환학과 교수 아론과, 저주학과 교수 바힐이 손을 가볍게 들어서 동의 의사를 밝혔다. “다음 논문 올려주세요.” 차작! 착! 조교들이 번개처럼 뛰어나와 다음 논문 복사본을 각 교수들의 테이블 앞에 내려놓았다. 제인의 입가에 비로소 옅은 미소가 그려졌다. <신세계 화이트랜드의 자원 ‘코랄’의 언데드 적용 기법 및 관련 제작 연구 - 시몬 폴렌티아> 모두가 팔랑팔랑 서류를 넘기며 깃펜으로 각각의 채점 포인트들을 체크했다. 곳곳에서 웃음이 일어나거나 ‘오’ 하고 작은 탄성도 튀어나왔다. “학자들이 다른 차원의 자원에 대한 새 연구를 너무나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가뭄에 단비와도 같은 내용이네요.” 스테이시 세잔이 말했다. “자원을 언데드가 먹게 한 다음, 그걸 내부에서 가공하고 늪 트름으로 코랄을 발사하는 거지? 독창적이네! 역시 우리 귀염둥이, 잘하고 있구만!” 별야가 흥분하며 말했다. “짜임재가 있어저 조환학을 잘 모르는 자람도 모두 쥡게 이해할 주 있어요!” 홍펭이 손뼉을 쳤다. 그런 시몬을 직속제자로 둔 아론은 딱히 첨언하지 않았지만, 시몬의 논문을 넘기는 손길이 너무나 가벼웠다. ‘대단해! 이건 졸업 논문 수준을 뛰어넘었어!’ 혈류학과 수석조교도 서류를 넘기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고오오오오오! 옆에서 뭔가 소름 끼치는 기운이 느껴졌다. 슬쩍 고개를 돌려보니, 바힐이 웃는지 화내는지 모를 얼굴로 시몬의 논문을 한 장 한 장 넘기고 있었다. 싱긋. 그러다 그녀가 바힐 아마가르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고, 바힐은 싱긋 웃어주었다. 등에 소름이 쫘아악 돋은 수석조교는 그저 이 자리에서 살아 나갈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집에 가고 싶다.’ 수석조교 자리까지 올랐지만, 자신은 역시 키젠 교수직을 할 그릇까지는 아닌 모양이었다. “그럼 긴말 없이 평가해 보도록 하죠.” 제인의 말에 모두가 깃펜으로 논문 위에 점수를 휘갈겨 쓴 뒤, 앞으로 내밀었다. 최하 점수는 0점이며, 최고 점수는 10점이다. 만약 졸업 논문으로서 수준이 미달된다면 다른 부분에서 아무리 뛰어나도 0점 평가를 피할 수 없다. 실제로도 0점 논문이 수두룩하게 나왔다. 그런데. 10점. 10점. 10점. 10점. 10점. 10점. 모두가 논문에 10을 써서 냈다. 그러나 딱 한 명. “평가 안 내리십니까? 바힐 교수.” 바힐이 깃펜을 내려둔 채 미식가처럼 음미하듯 눈을 감고 있었다. “형식과 체계를 파괴한 이 압도적인 논문을 감상했으면서, 교수님들의 평가는 여전히 형식에 얽매여 있군요.” 직장 동료들을 향해 일갈한 바힐이 멋들어진 필기체로 ‘필르시스’라고 논문 위에 휘갈겼다. 필르시스는 ‘완벽’을 말하는 오래된 고어였다. ‘또 저 반골 성향이…….’ 제인이 이마를 손바닥으로 가볍게 짚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렇게 통찰력 있는 논문을 쓸 줄 아는 저자가 소환수라는 틀에 얽매였다는 겁니다. 코랄을 다루기 위한 더 나은 방법이 분명히 있을 텐데, 논문의 저자는 가장 가깝고 익숙한 틀을 활용해서 이런 결과를 엮어냈다는 것에 대해 교육자로서 한탄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바힐은 그렇게 말하며 옆에 ‘불라’라는 글자를 덧붙여 ‘불라 필르시스’라는 평가를 완성했다. 그 뜻은 ‘부분적 완벽’. “우리에겐 이제 시간이 없습니다!” 바힐이 아론을 잠시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이 천재를 붙잡아둘 시간이 단 한 학기만 남았습니다! 우리 교육자들이 이런 인류사적 인재를 완벽하게 완성시키지 못한다면, 우리는 죄인으로 역사에 남겨지겠죠. 이 실책은 인류에 크나큰 대재해로 다가올지 모릅니…….” “말씀 잘 들었습니다, 바힐 교수님. 결국 합격을 주시겠단 뜻이겠죠?” 제인이 바힐의 말을 냅다 끊으며 불라 필르시스라고 쓴 그의 문서에 10이라고 쓴 뒤, 다른 조교에게 내밀었다. 바힐의 표정이 굳어졌고, 몇몇 교수들이 속이 시원하단 미소를 지었다. “시몬 폴렌티아 학생의 논문은 최고 성적으로 합격되었습니다. 그럼 다음 논문, 주시죠.” * * * 취업 평가에서 복귀하고 논문 발표회까지 무사히 끝냈더니, 어느새 떠밀리듯 방학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시몬은 이제 마지막 3학년 2학기를 앞두었다. 이제 곧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집에 가기 전에 군단의 지침도 세워두었다. 이번 방학 동안 군단의 목표는 ‘코랄 리치’ 부대의 완성. 각종 재료와 언데드 성분이 필요했는데, 군단의 에이션트 언데드와 7군단의 엘드릭 선단에서 충분히 구할 수 있는 품목이었다. 군단의 힘을 집중해서 마지막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코랄 리치 부대를 완성하는 게 목표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소식이 들려왔는데. -뮤르가 프로스트 필드를 공격했다고? 7군단의 마지막 에이션트 언데드, 뮤르가 모습을 드러내 공격하기 시작한 것. 물론 프로스트 필드에서 북신 자이로스를 당해낼 수는 없었고 순순히 물러났지만, 슬슬 뮤르가 움직이는 것에는 대처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시몬의 방학 동안 군단의 에이션트 언데드들은 영역 방어를 강화하면서 병력의 수를 늘리기 위해 각 영역으로 이동, 알라제를 비롯한 나머지 인원은 코랄 리치 부대의 완성을 최대한 앞당기기로 했다. 이어서 학생회 멤버들과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몬! 메이린! 딕! 이번 학기도 즐거웠어요!” “졸업 논문까지 통과! 3학년 커리큘럼도 별거 아니네!” 딕이 낄낄거리며 팔로 뒷머리를 받친 채 이야기하자, 빤히 바라보고 있던 메이린이 불쑥 말했다. “전선장교!” “적에겐 멸망을! 아군엔 승리…… 아악!” 아하하하하! 모두가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아마 딕의 이번 후유증은 상당히 오래갈 것 같았다. “그리고 시몬!” 메이린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시몬을 바라보았다. “방학 동안 뭐 할 거야?” 갑자기 다가와서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묻는 모습에, 시몬이 조금 긴장하며 답했다. “으음- 먼 곳으로 수련을 떠날까 싶어. 학교에서 배우는 것 말고도 또 배울 게 있거든.” “그래?” 메이린이 아쉬운 표정을 짓자 시몬이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방학 말 즈음 학교에 복귀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다 같이 만나서 들어가자.” “좋아요! 너무 좋아요!” 카미바레즈가 총총 뛰며 좋아했다. 딕이 콧잔등을 쓸며 말했다. “흐흠! 언젠가 시몬이 사는 레스힐에 한번 가봐야 하는데.” 시몬이 뜨끔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민망한 듯 웃었다. “나중에 제대로 초대할게.” 방학을 앞둔 레스힐은 무섭다. 그야말로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곳이었으니까. * * * 그렇게 시몬은 짐을 챙기고 기숙사를 나섰다. 돌아가는 길에 여러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소환학과에서 자주 만나는 피츠제럴드, 토토, 에슈 아르젤, 그리고 결사에서 탈출한 화이트. 1학년 A반 멤버인 반장 제이미 빅토리아, 클라우디아 멘지스, 신디 비바체. 에이젤이나 쥴, 엘리사를 비롯해서 같이 룬 리그에 참여한 Top10 멤버들. 든든한 협력자인 세르네와 카쟌. 2학년 삼총사인 사샤, 용병왕 아서, 몰리 공주. 마지막 학생회 멤버인 치엘라까지. 그리고 텔레포트 마법진으로 올라가는 길을 가던 중에 헥토르를 발견했는데, 헥토르는 고개를 돌린 채 말했다. -진 아르스칼트 교수님의 제의로, 방학 동안 군단과의 연결을 끊고 폐관수련을 하러 갈 생각이다. 다녀온 뒤에는 네놈에게 대응할 수 있는 힘을 갖출 거다. -응원할게, 헥토르. 그렇게 헥토르를 지나 언덕 중턱쯤 올라오니, 풀밭에 누워 자고 있는 신유령왕녀, 메리다 휴 이켈을 발견했다. 시몬이 그녀를 챙겨서 업어다 텔레포트 마법진까지 옮겨주었다. -나중에 유령궁……. 음냐음냐. -그래, 놀러 갈게. 방학 때 판타서스 선배님께 안부 전해주고. 여러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시몬은 문득 로레인과 인사를 나누지 못한 점이 아쉽게 느껴졌다. 로레인은 룬 리그 지휘관으로서 성과를 낸 이후, 네프티스의 본격적인 후계자 훈련을 받고 있다고 한다. 아마 취업 평가도 치렀을 텐데, 시몬은 그녀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무슨 일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라도 꼭 만나.’ 시몬이 마음을 다잡고는 텔레포트 마법진에 올라탔다. “…….” 휘오오오오오. 그리고 높은 산 언덕. 회색 로브를 두른 검은 머리의 소녀가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등을 돌렸다. * * * 째액! 짹짹! 두 발이 붕 떠오르는 감각이 꺼지자 시몬이 눈을 떴다. ‘와.’ 언제나 정겨운 풍경. 전쟁이니 결사니 하는 것과는 가장 거리가 먼 산골 중의 산골. 레스힐의 경관이 펼쳐져 있었다. ‘진짜 집에 왔다.’ 점심때인지 곳곳의 굴뚝에서 맛있는 냄새가 흘러나왔다. 시몬은 배를 만지작거리며 작은 오솔길을 걸었다. ‘엄마가 또 맛있는 거 준비해 주셨을까?’ “영주님!” “시몬 오빠!” 곳곳의 영주민들이 시몬을 알아보고 손을 흔들어주었다. 시몬도 그들에게 인사하며 밝게 웃었다. ‘좋다.’ 긴장이 거짓말처럼 풀린다. 오랜만에 군단이고 결사고 학교고 걱정 없는 고향에서 지친 심신을 달랜 뒤, 에너지를 충분히 회복하고 마지막 학기에 임하고 싶었다. 3학년 2학기에는 아마 큰일이 많이 벌어질 것이다. 결사의 본진에 쳐들어갈 수도 있었으니까. 피어도 말하길, 큰일을 앞두고 가장 필요한 건 휴식과 안정이라고 했다. 늘 그랬듯 피어의 배지도 반납했고 방학 동안 군단장으로서는 휴식이다. 철퍽. 철퍽. 익숙한 진흙탕 길을 넘어 시몬이 마침내 집 앞에 도착했다. 여러 감정을 느끼며 시몬이 문에 노크를 하려는 순간. “…….” 뭔가 살짝 불안한 걱정이 머리를 치고 들었다. 늘 방학 때 레스힐에서 뭔가 일이 발생했다. 예를 들면 레테가 떡하니 가출해서 와 있다거나, 현역 성녀이자 거물 중 거물인 이스라필이 와 있다거나 하는 일들. ‘별일…… 없겠지?’ 시몬이 조심스럽게 문을 여는 순간. 와아아악! 시끄러운 외침이 들렸다. “천한 여자! 그분이 오실 때까지 음식에 손을 대지 마라!” 시몬 또래의 한 프리스트 소년이 버럭버럭 외치고 있었다. 시몬의 동공이 미친 듯이 돌아갔다. ‘모, 모제?’ 룬 리그 최대의 적 중 하나였던, 신성연방의 모제가 시몬의 집에 와 있었다. “누가 천하다는 거예요! 하여간 하늘섬 사람들은 이래서 문제예요!” 마찬가지로 묘하게 낯이 익으면서도 초면인 것 같은 여성 프리스트가 버럭버럭 소리 지르며 싸우고 있었다. 그 사이에 있는 안나가 싸움을 말리는 모습이 보였다. 끼이익. 시몬은 조심스럽게 문을 닫은 뒤, 주변에 털썩 앉아 하늘을 보았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전혀 감이 안 잡히네.’ 뭐가 어떻게 됐던 이번 방학도, 편하게 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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