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298화 다니엘라, 흑철성주, 그리고 부제독 아그라. 전혀 종잡을 수 없는 조합의 세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조직에서 키젠 학생들이 어떤 활약을 했는지, 그리고 이번 발표회에는 누구를 체크하거나 영입하고 싶은지 이야기했다. 대화를 적당히 받아주는 척하던 다니엘라 빌렌느가 안경을 고쳐 쓰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건 그렇고, 전혀 논문 발표회의 분위기가 아니군.’ 키젠 교복을 입은 학생이 나타났다 하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 명함이나 연락처가 적힌 쪽지를 몰래 건네주려고 하는 등 난리도 아니었다. 물론 이번 행사는 어디까지나 학술적인 의미가 강한 논문 발표회이기 때문에, 사전 접촉 행위가 용납되지 않았다. 감시탑처럼 눈을 부릅뜨고 있는 하수인들에게 발각되면 바로 퇴장이었다. 그러는 사이 옆에서는 언성이 높아지고 있었다. “어떤 키젠 학생이 굳이 위험하고 천한 바다에서 일하려고 하겠소! 흑철성채라면 모를까!” “육지 놈들이 뭘 알겠나! 그렇게 꽉 막히고 폐쇄된 성채 안에 닭장처럼 지내는 것보다 자유로운 바다가 훨씬 낫지!” 흑철성주와 부제독 아그라는 나란히 걸으면서도 싸우고 있었다. 다니엘라는 그 둘은 잠시 내버려둔 채 옆을 보았다. 한 여학생이 본인이 제작한 소환수와 논문의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언데드 사피로스의 개선 방안에 대한 연구> “네! 사피로스의 성질을 살려본 거예요! 이렇게 하면 뼈가 튀어나와서 마치 칼날처럼 변하는 느낌으로…….” 다니엘라가 손을 턱에 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키젠은 키젠. 확실히 논문의 수준 자체는 높다. 다만…….’ 혁신적인 내용이나 오리지널리티가 부족했다. 물론 이해는 된다. 혁신적인 내용을 다루면 그만큼 리스크가 커지니까. 학생들은 감점을 당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졸업하기 위한 논문을 쓰게 되기 마련이었다. ‘경쟁으로 빚어낸 키젠 엘리트 특유의 단점이겠지.’ 그런 생각을 한 다니엘라가 이런저런 학생들의 발표를 눈에 담으며 걷고 있는 그때. 오오오오오오오오! 한쪽에서 커다란 탄성이 터져 나왔다. 고즈넉한 수묵화를 연상케 하는, 검게 물든 대지가 거대한 요새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곳곳에서 검은 바위들이 불쑥 솟아오르더니, 그 바위들이 순간적으로 골렘들을 형성했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이 흑마법을 시연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거인 혼혈, 키젠 전체 4위의 샤텔 마에르였다. <골렘의 마법적 동력과 필드 마법의 역할에 관한 연구 - 샤텔 마에르> 놀라운 퀄리티와 스케일. 구경하고 있던 관중들은 환호하며 손뼉을 치고 있었다. “대, 대단하군! 저 녀석이 바로 룬 리그에도 나온 그 거인혼혈 샤텔인가!” 흑철성주가 탐욕이 일렁거리는 눈으로 샤텔을 바라보았다. “바다에서 써먹을 인선은 아니네.” 팔짱을 낀 부제독 아그라가 아쉬운 듯 혀를 찼다. 다니엘라는 샤텔의 압도적인 흑마법 시현에는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옆으로 걸어가 테이블에 놓여 있는 논문을 펼쳐 들었다. 사용한 수식과 룬어, 논문의 형식과 다루는 논지에 대해 확인했다. 비로소 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앞서 말한 단점들도 상위권의 학생들에겐 통용되지 않나. 상당히 독창적인 구조다.’ 그렇게 샤텔이 관중들 앞에서 흑마법을 시현하고 있을 때, 한 스카우터가 참지 못하고 말을 걸었다. “샤, 샤텔 학생! 혹시 앞으로 어떤 직종이나 업무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 말에 다른 스카우터들이 황급히 그를 제지했다. “어허!” “이보시오!” 하지만 그들의 귀는 쫑긋 세워진 채 샤텔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샤텔은 묵묵히,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종족의 처우에. 힘을 보탤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 그 말을 들은 스카우터들은 수첩을 들고 미친 듯이 깃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급히 아종족 부서를 신설해야 한다고 메모했고, 또 어떤 이들은 아종족 채용과 복지 정책 강화에 대한 아이디어를 적었다. 샤텔의 한마디가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리고 한편. 휘오오오오오오오! 조금 떨어진 곳에는 또 다른 마법 시현이 한창이었다. 이곳에도 사람들이 몰려들어 그 광경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었다. 멀리 떨어진 네 방향에 마법진들이 웅웅 소리를 내며 작동하고 있었고, 이 마법진들의 힘으로 강한 바람이 일었다. 바람의 흐름을 파악하는 용도의 종이비행기들이 띄워져 있었는데, 순환하는 상승기류에 올라타 빠르게 목적지로 이동하는 모습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바람마법의 순환적 활용과 코스트 절감에 대한 연구> 발표자는 전체 3위이자 유급생이기도 한 에이젤 브링어였다. “……아, 음. 네 네!” 모자를 푹 눌러쓴 그는 긴장이 역력한 얼굴로 연구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었다. 스카우터들도 관심을 보였지만, 에이젤에게는 학자나 연구자들이 더 열정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대단하군.’ 다니엘라도 감탄했다. 마나나 칠흑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단 네 개의 마법진으로 저런 대규모의 흑마법을 순환으로 유지하는 모습은 경이로웠다. 같은 칠흑 원소계 사용자로서 찬사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 논문은 천재성이 너무 짙어.’ 다니엘라가 에이젤의 논문도 살폈다. 논문에는 제대로 된 데이터나 인용 없이 자신의 관점을 중심으로 설명했다. 학술적인 요소가 있거나 남을 이해시키기 위한 내용은 아니다. 흑마법의 전개부터가 천재적인 감각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니 사실상 에이젤만이 쓸 수 있는 마법이었다. ‘이런 논문을 쓴 자라면 필연적으로 오만하고, 자존감이 비대한 인물일 것 같은데.’ 다니엘라가 고개를 들어 보니, 사람들과 시선을 마주하지 못한 채 말을 더듬거리고 있는 에이젤 브링어의 모습이 보였다. “15페이지에 나오는 전환 수식의 증명 부분이 이해가 어렵소!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겠소?” “……아, 그.” 에이젤이 그의 시선을 눈을 돌려 피한 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저는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경이 이해가 안 되는데요.” 이야기를 들은 다니엘라가 미소 지었다. 성격은 소심해도, 자신의 지식과 실력에 대해서만큼은 확고한 타입. 이명이 유약한 악마라더니. 정말 딱 맞는 말이었다. “아니! 아그라 부제독 아니십니까!” 마침 같이 다니던 아그라가 아는 사람을 발견했다.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오오! 시몬 폴렌티아의 스카우터였던가? 여기서 보니 반갑군!” “네! 롤랜드 탈보트입니다!” 이번 취업 평가에서 시몬을 도와 대활약했던 스카우터 롤랜드였다. 그가 손수건으로 정수리에 흥건한 땀을 한번 닦는 사이, 그녀가 말했다. “일이 바쁜가 본데?” “예. 그야 스카우터로서 가장 바쁜 시기니까요! 그래도 이번에 시몬 학생회장과 같이 다니면서 크게 느낀 바가 있었습니다! 저와 일하는 모든 업체에 시몬 폴렌티아 확보를 제1순위로 지정할 것을 요청했죠!” 그 말을 들은 다니엘라가 호기심을 품고 다가왔다. “시몬 폴렌티아는 프로 스카우터로서 보기엔 어떤 인재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롤랜드는 마치 아주 잘 물어봐 줬다는 듯 깊은 미소를 지었다. “군단장이라는 배경과 학생회장이라는 직위를 떠나 실력과 멘탈, 인성을 고루 갖춘 인재입니다. 이런 인물은 어떤 어려움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죠. 어딜 들어가든 세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겁니다.” 설명을 듣는 세 사람의 눈이 반짝였다. 그때 롤랜드가 턱을 쓸며 말을 이어갔다. “사실, 이 정도 되는 인물이라면 어딜 들어가기보단 독자 세력을 갖출 거라고 예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의 신세력과 미리 좋은 관계를 만들어놓는 것도 중요하겠죠.” “독자 세력?” 흑철성주가 헛웃음을 흘리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는 건 무모하지! 조금 더 배우고 경험을 쌓고 나서야 그럴 수 있지 않겠나!” “저도 스카우트로서 그랬으면 좋겠습니다만, 결국 선택은 학생회장 본인의 몫이죠! 30분 뒤에 시몬 학생회장의 논문 발표가 시작합니다! 같이 가시죠!” 에이젤과 샤텔의 발표가 끝났는지, 이미 전체적인 사람들의 발길은 시몬 폴렌티아가 있는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걷는 사이 반가운 사람들이나, 아는 사람들이 보였다. “마홈스 자작도 온 건가! 의외군!” “켄드릭 장군도 왔소!” 거물들이 속속 등장하는 건 물론. “다니엘라! 자네 여기 있군! 하하하하!” 매번 방학식마다 만나는 뱀파이어 로드, 디트리히 혼 우르슬라가 거대한 망토를 휘날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다니엘라의 어깨에 친근하게 팔을 둘렀고, 다니엘라도 부드럽게 웃었다. “다시 뵙습니다. 카미바레즈 아버님.” “오! 그래! 그래! 맨날 그놈의 로드 로드 하는 소리만 듣다가 그렇게 불러주니 참으로 듣기 좋군! 하하하하!” “이곳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다니엘라는 그의 방문이 다소 의외라고 생각했다. 뱀파이어 로드의 집단은 뱀파이어들만 들어갈 수 있고, 현재 키젠 3학년 중에 뱀파이어는 카미바레즈뿐이었으니까. “딸아이 논문 발표라기에 달려왔다! 그리고!” 그가 다니엘라의 생각을 알고 있다는 듯 씩 웃었다. “예외가 될 만한 자가 있는지도 찾아보려고 왔지!” “그렇군요.” 시몬의 발표 장소를 향해 갈수록 점점 더 아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아그라가 이마를 짚었다. “쟤는 왜 여기 와 있어?” 에스텔라 살롱 출신이자 유리의 약혼자 크리스티나 셀린이, 셀린 재상의 등을 떠밀며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엘리사의 논문 발표를 보러 가야 하지 않겠느냐.” “아니죠!” 크리스티나가 결연한 얼굴로 말했다. “그런 바보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아버지 눈으로도 확인해야죠! 시몬 군단장님은 반드시 우리 셀린가가 데려오거나 연을 맺어야 해요!” 그 옆에는 전 4군단장이자, 여전히 유령궁을 지배하고 있는 유령왕녀 테네리페 에체베리아가 걷고 있었다. 그녀는 양손에 디저트를 가득 든 채 걸어가고 있었다. “여기 여기! 시몬 연회 보러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해? 아, 그리고 로크섬의 새로운 디저트 집 추천해 줘!” 심지어. “미그일 변경백!”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나타나 흑철성주가 놀라운 듯 환호했다. 수행인들을 데리고 걷고 있던 미그일 변경백이 민망한 듯 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평소 영지 밖에 잘 나오지도 않는 양반이 여긴 무슨 일로 왔소?” “……그동안 인상적인 일을 여럿 겪어서 그런가.” 다니엘라 일행들에게 슬쩍 눈인사한 변경백이 고개를 돌렸다. “시몬 폴렌티아가 어떤 남자인지 궁금해서 왔소.” 아그라가 혀를 찼다. “죄다 시몬 폴렌티아에 관심을 가지는 건가.” 모두가 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콰아아아아아아아아! 하늘 위로 보랏빛 섬광이 뻗어 나가 구름을 관통하는 모습이 보였다. 모두가 떠들썩하게 환호성을 내질렀다. “시몬 폴렌티아 학생회장의 발표회가 시작됐다!” “서둘러!” 모두가 냅다 그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시몬의 발표회장. 벌써 압도적인 수의 관중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바로 그곳에 푸른 머리카락의 소년이 자세를 낮추며 인사했다. “이렇게 찾아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곳에는 거대한 메탈 라미아가 입을 벌린 채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부터 논문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모두가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메탈 라미아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다니엘라는 늘 그랬듯 시연은 잠시 뒷전으로 둔 채 시몬이 쓴 논문부터 확인했고. ‘이건……!’ 그의 가슴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뭔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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