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271화 브랭크에게 매수된 한 무리의 용병들이 마을을 걸어가고 있었다. 다들 하나같이 어깨가 떡 벌어진 덩치에 흉터가 가득한 얼굴이었다. 그들은 손에 물감통이나 스프레이, 악취가 지독한 가축의 분변이 든 똥통을 들고 있었다. 길거리의 주민들이 인상을 썼다. 코를 잡으며 도망치듯 거리를 벌리는 주민도 있었다. “저기 엘드릭 선단의 건물이 보인다!” 펄럭펄럭! 지붕 위에 엘드릭 선단의 깃발이 아닌, 새로운 깃발이 휘날리는 게 보인다. 그들이 헹 하고 가소롭다는 웃음을 흘렸다. “어이구, 주인이 바뀌었어? 선단을 팔면 다 끝나는 줄 알았나 본데?”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지!” 마침 건물 앞에 한 남자가 행주로 더러워진 벽면을 박박 닦아서 낙서와 오물을 지우는 모습이 보였다. 배가 툭 튀어나온 험상궂은 용병이 피식 웃으며 앞으로 나왔다. “똥통!” 철퍽. 옆의 부하가 얼른 가축의 분변이 든 통을 내려놓았다. 용병은 커다란 국자 같은 도구로 그것을 한 움큼 펐다. “아이구! 아침부터 낙서 지우느라 고생 많으십니다 선생님! 제가 한번!” 촤아! 그가 다리를 크게 앞으로 내디디며 허리를 힘차게 돌렸다. “도와드립죠!” 그가 큼직하게 푼 분변을 선단 건물의 벽면을 향해 날렸고. 덥석! 이에 행주로 낙서를 지우던 남자가 바닥에 놓인 밀대 걸레를 붙잡았다. 그리고는 뒤를 돌더니 귀신같은 움직임으로 밀대 걸레를 풀스윙하여 날아오는 오물을 그대로 받아쳤다. 퍼어어어억! 모든 용병들이나 멀찍이서 지켜보던 주민들의 입이 떠어억 벌어졌다. 방금 분변을 던진 용병이, 자기 얼굴에 떡하니 그 분변을 돌려 맞은 것이다. 남자가 ‘크흡’ 소리를 내며 숨을 쉬자 콧구멍으로 분변이 들어갔다. [제가 특히 중요시하는 것들이 세 가지 있습니다.] 타악. 밀대 걸레를 늘어뜨린 청소복 차림의 남자가 외눈 안경을 치켜올렸다. [청결, 정돈, 치장. 당신들은 그 세 가지와 정반대되는 몰골이군요.] “이놈이!” 용병들이 스릉! 스릉! 허리춤에서 무기를 꺼냈다. 그때 한 나이 든 용병이 진땀을 흘리며 말했다. “……저 남자, 심상치 않구먼. 사람이야? 언데드야?” 창백한 회색 피부와 몸 곳곳의 큰 상처, 그리고 느껴지는 지독한 칠흑. 보통의 인간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네이프 엘드릭 놈, 프로 네크로맨서를 고용했군!” 오물이 묻은 용병이 쓱 하고 손으로 묻은 덩어리를 걷어내 시야를 확보한 뒤 말했다. “그래서 뭐 어쩌란 거냐! 놈은 마을 한복판에서 우릴 함부로 공격하지 못해! 던져라!” “옙!” 파앗! 팟! 즉각 용병들이 온갖 종류의 오물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청소복 차림의 남자가 외눈 안경을 치켜올리더니 밀대 걸레를 빙글빙글 돌려 멋들어진 자세로 붙잡았다. 그리고. 따악! 딱! 따악! 신출귀몰한 속도로 뛰어다니며, 단신으로 건물에 날아오는 오물이나 색깔도료 따위를 모조리 튕겨내기 시작했다. 용병들이 역으로 자신이 던진 오물을 맞으며 픽픽 나가떨어지기 시작했다. 발밑으로 물감이나 양동이가 쏟아지는 등 난리도 아니었다. 하하하! 멀찍이서 구경하는 마을 주민들이 속 시원하다는 듯 웃어댔다. 그들도 내심 용병들의 무법자 같은 행동에 지쳐 있던 상태였다. “무, 무슨 저런 괴물 놈이!” 대장 용병이 뒷걸음질 치고 있는 그때. 터업. 갑자기 두툼한 손에 어깨가 붙잡혔다. 그가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커다란 덩치에 청소용 앞치마를 입은 하얀 좀비들이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용병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아무래도.] 좀비집사가 외눈 안경을 치켜올렸다. [청결 교육이 필요하겠군요.] 그로부터 한 시간 뒤. “브랭크 선단주! 이쪽입니다!” “뭐, 뭐냐?” 오한 선단의 브랭크가 다급히 건물 밖으로 뛰어나왔다. 오한 선단의 건물 지붕에 온갖 프릴 달린 분홍색 발레리나복이나 메이드복으로 갈아입혀진 용병들이 리본으로 묶인 채 매달려 있었다. 로프마다 정성스레 리본 모양 매듭이 걸려 있었다. 삐익! 빽! 숨을 쉴 때마다 그들의 입에 물린 장난감 빨대가 소리를 냈다. 브랭크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이런 멍청한 놈드으으을! 크아악!” “서, 선단주!” * * * 한편 시몬이 사들인 엘드릭 선단에서는 모든 계획을 척척 준비하고 있었다. “안녕! 제군아!” “벤야 선배님!” 바닐라 그룹의 총책임자, 키젠을 졸업한 벤야 바닐라가 직접 엘드릭 선단의 조선소에 방문했다. 그녀는 거의 30명이 넘는 소속 엔지니어들을 데리고 왔다. 이를 지켜보는 선단 직원들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첫날부터 언데드 관련 업계 최고인 바닐라와 계약을 하다니!” “바닐라는 예약이 5년 넘게 잡혀 있다고 들었는데!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가볍게 시몬과 재회의 포옹을 한 벤야가 그 말을 듣고는 후훗 웃었다. “세계정복 동지인 제군이가 부르면 만사 제쳐두고 와야죠! 이런 게 바로 피보다 진한 학연이랄까요?” “학연?” “……베, 벤야 선배님!” 시몬이 조용히 귓속말로 속닥속닥 위장 신분 사실을 알렸고, 벤야가 얼굴이 붉어진 채 어색하게 웃었다. “같은 동네 학교에 잠시 다녔던 것도 학연이면 학연이죠! 오호호!” “아, 그러시군요! 고향 친구신가 봅니다!” 직원들이 별 의심 없이 물러나자 벤야는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혀를 비쭉 내밀었다. “임무 중일 수도 있다는 거 생각 못 했네. 미안해. 키젠 졸업한 지 1년도 안 지났는데 나 벌써 감 완전 떨어졌다!” “하하! 그럴 수도 있죠.” “어이, 오랜만이야!” 그때 마침 벤야 휘하 세 명의 언데드 장인들이 나타났다. 시몬의 눈이 반짝였다. “디에고 경! 마르코 경! 로드리온 경!” 1학년 시절에 시몬의 고래 언데드 데이모스 제작을 도와준 장인들이자, 바닐라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자들이었다. 네 사람은 반갑게 재회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룬 리그 재밌게 봤다! 네가 ‘그 사람’이었다는 것도 참 놀랄 노 자였다니까! 근데 이번에는 또 뭐야? 바다에서 쓸 함선을 개조해 달라고?” “네! 제가 3군단에 있으면서 이것저것 본 게 있거든요!” 마침 엘드릭 선단의 조선소는 상당히 넓었다. 대규모 제작을 진행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스케일. 시몬은 엘드릭이 기존에 보유한 배들을 최대한 개조해서, 암흑 항해술을 기반으로 한 강력한 언데드 함대를 만들 생각이었다. “여기 자재나 원목 써도 됩니까?” “얼마든지요!” 중요한 재료들도 멀쩡히 있었고, 배의 조립도도, 건조가 진행 중인 배도 그대로 있었다. [어머나, 의외네요.] 양산을 쓴 채 시몬의 조금 뒤에서 조선소를 둘러보던 에르제베트가 고개를 돌려 네이프를 보았다. [500골드에 여길 넘길 생각을 할 만큼 선단 상태가 안 좋았으면서, 조선소 시설은 팔지도 않고 그대로 아껴뒀네요.] “조선소는 선단의 심장이니 말입니다.” 네이프가 그렇게 말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새로운 프로젝트에 열을 올리고 있는 시몬과 벤야, 재료와 비품을 확인하며 들뜬 얼굴의 엔지니어들. 아공간에서 재료를 꺼내고 있는 송장거미들, 벌써부터 제작 방향성을 두고 싸우는 에이션트 언데드 알라제와 디에고, 그들을 말리는 선단 직원들까지. 시끌벅적하고 북적북적한 분위기였다. 에르제베트가 푸훗 웃었다. [아저씨의 눈물은 별로 보고 싶지 않았사와요.] “죄송합니다.” 쓱쓱. 네이프가 뿌옇게 흐려진 시야를 소매로 닦으며 말했다. “나이가 드니 느는 건 눈물뿐이군요.” [그런데 정말 괜찮겠사와요?] 에르제베트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3군단의 분노를 살지도 모르는 결정이와요.] 위장 임무 중이지만, 시몬은 네이프에게만큼은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자신이 7군단, 그것도 배신의 군단장이라는 사실을. 바다에서 3군단의 이름은 절대적이다. 차후에 군단과의 분쟁이 일어나면 바다의 3군단이 아닌 7군단의 소속이기에 온갖 문제가 일어날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네이프는 부드럽게 웃었다. “제게 손을 내밀어준 건 7군단입니다. 저희 식구와 직원들을 건사하게 하고, 미래를 보여준 것도 7군단이죠. 저는 시몬 폴렌티아 군단장께 목숨을 바쳐 충성할 겁니다.” [그 말 잊지 말아요. 혹시 결심이 흔들리면 찢겨 죽을 줄 아시와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때 시몬의 ‘에르제!’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에르제베트는 방금 찢어 죽인다며 협박하던 모습은 홀라당 벗어버린 채 ‘네에, 군단장님!’ 하고 발랄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리곤 거울을 보고 흐트러진 곳은 없는지 점검하고는 뛰어갔다. [무슨 일이와요? 군단장님!] “이 조선소, 다른 사람들이 작업을 방해하거나 보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가리고 싶은데.” 에르제베트가 눈을 찡긋했다. [소녀에게 맡겨주시와요!] * * * 그리고 그날 저녁. 브랭크가 고용한 새로운 용병팀이 이동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실패란 없다! 이번에야말로 엘드릭 선단 놈들에게 한 방 먹이는 거다!” “가자!” 이전에 갔던 용병들이 호되게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이번에는 꽤 실력 있는 네크로맨서들도 동반하고 있었다. “조선소는 선단의 심장과도 같다지.” 용병대장이 굳은 얼굴로 수풀을 헤치며 앞장섰다. “놈들의 심장을 불태워 주자. 하룻밤 사이에 잿더미가 된 조선소를 보면 네이프의 표정이 볼 만하겠지!” “맞습니다!” 혹시나 목격자가 있을지도 모르니, 그들은 마을의 평지로 가는 게 아니라 산을 넘어 이동하고 있었다. 그만큼 이번 계획은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상대는 실력 있는 네크로맨서라 들었다. 특히 한 눈에만 안경을 쓴 남자를 조심해라!” “대장! 저쪽이 조선소 방향입니다!” “그래!” 용병대장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어디 한번 불태워 볼…… 어?” 시커먼 어둠 속. 조선소는 아예 보이지 않았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공포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무시무시하게 엉킨 거미줄이었다. 그것은 마치 하얗고 검은 덩어리와도 같았고, 그 위로 송장거미들이 사냥감을 찾듯 느릿느릿 기어가고 있었다. 어두운 밤하늘과 함께 보면 상당히 끔찍한 언데드의 소굴 같은 광경이었다. “그…….” 부하가 입술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 “그냥 돌아가는 게…….” “멍청한 새끼들!” 용병대장은 공포와 어둠의 그늘 속에서 거침없이 성큼성큼 걸어갔다. 이내 거미줄 앞에 선 그가 흑마법진을 펼치고, 횃불 자루에 칠흑이 일렁이는 검은 불꽃을 만들어냈다. “오히려 일이 편해졌지! 거미줄째로 전부 태워 버리면 그만이다!” 그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하지만 검은 횃불이 거미줄에 닿으려는 순간, 불길한 소리가 하늘을 찢었다. 홰액! 순간적으로 용병대장의 몸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그가 손에 쥐고 있던 횃불만이 허망하게 바닥에 떨어졌다. 주변의 거미줄만이 그의 마지막 순간을 증언하듯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아아아아아악! 비명이 하늘 위 아득하게 울려 퍼졌다. 놀란 용병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었다. 키릭! 키릭! 키리릭! 어느새 그들의 머리 위에 거미줄이 펼쳐져 있었고, 거미들이 기어다니고 있었다. 그중에서는 여자도 있었다. 우아한 여체에 혹하기도 잠시, 등 뒤에 자리 잡은 여덟 개의 거미 다리를 눈치챌 즈음이면 여인의 얼굴에서 빛나고 있는 여러 개의 눈동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머나, 너희들.] 입술을 할짝이는 그녀의 눈에는 분노가 일렁거리고 있었다. [봤구나? 이 꼴을.] 모든 용병들이 돌처럼 굳어지고 말았다. “저, 저저저저, 저는 못 봤……! 으아악!” 이어지는 용병들의 비명은 아주 오랫동안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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