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260화 각 경기장 구역에서 강자들은 바로 표가 났다. 특히 1번 구역. “가, 가까이 다가갈 수조차 없어!” “셀린 가문이라더니 역시……!” 스피릿을 옷감처럼 휘감은 채 태연히 파도를 흘려내며 버티고 있는 그녀. 그녀의 주위에는 무수한 유령 병사들이 경호원처럼 득실거리고 있었다. 셀린 가문의 장녀이자 유리의 전 약혼자, 크리스티나 셀린. “죽어 죽어! 싹 다 죽어!” “맘껏 발버둥 쳐보렴!” 바로 옆의 2구역에서는 헌트 가문의 두 자매가 날뛰고 있었다. 파트너의 피를 뽑아서 상대에게 쏟아내는 혈류술사의 이단아들. 파도에 버티는 것보다는 다른 경쟁자의 수를 줄여 시험을 빠르게 끝내는 걸 목표로 하고 있었다. “이제 언니 피를 뽑을 차례잖아! 왜 자꾸 내 피만 뽑는데?” “아까 네가 내 피를 더 많이 뽑았잖아!” 팀워크는 그다지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 옆의 3구역. 그곳은 어느새 오래된 연못처럼 변해 있었다. 곳곳에 연잎이 떠다니고 있었고, 특수한 식물들이 뿌리를 내린 채 움직이고 있었다. “다들 고생하네.” 파도에 이리 떠밀리고 저리 떠밀리는 수험자들을 지켜보며, 연잎 위에 가부좌 자세로 떠 있는 후작 가문의 마일러 드 샤르모. “나처럼 바다에 관련된 흑마법이나 소환수를 마스터해 왔다면 시험도 편했을 텐데, 대체 왜 노력하지 않은 건지 이해가 안 돼. 이건 개개인의 실력을 떠나 나태함과 마음가짐의 문제야!” 뒤이어 접전지인 4구역을 지나 5구역. “도망쳐 봐야 소용없습니다!” 배질 포트시가 허공에 은을 펼쳐놓고 그것으로 창을 연성해 날려서 경쟁자들의 수를 마구 줄이고 있었다. 과거에는 유리를 존경했으나 현재는 외면하고, 오로지 로잘린 다르시아에 대한 사랑으로 똘똘 뭉친 인물이었다. “로잘린 아가씨! 어때요?” 로잘린을 짝사랑하는 그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물에 둥둥 떠 있는 로잘린이 ‘응 응, 잘하고 있어’ 하고 웃어준 뒤, 바닷물에 벗겨지고 있는 손톱의 매니큐어가 신경 쓰이는지 문질거리고 있었다. 얼굴에 물이 묻는 걸 질색하며 최대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귀족이라고 함장 자격시험이 우습게 보였나 보군!” 그 모습을 못마땅하게 지켜보던 한 네크로맨서가 물살을 일으키며 로잘린에게 달려들었다. 배질이 ‘위험해요!’를 외치며 은빛 창을 날려 보냈지만 네크로맨서는 빠르게 몸을 움직여 그것을 피한 뒤 로잘린에게 다가왔다. 그때 로잘린이 후 하고 손톱에 바람을 불더니 주먹을 움켜쥐었다. “?!” 투콰아아아아아악!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네크로맨서의 몸이 치솟았다. 그가 한참을 날아가 경기장 반대편 바닥에 툭 하고 쓰러졌다. 방금 일어난 건 마투로 인한 충격파. 주먹을 내지른 그녀가 미소 지으며 두 뺨을 감쌌다. “내 지갑은 잘 있으려나? 시험에 떨어져서 힘들어할 때 잘 구슬려서 얼른 결혼해야지!” 그리고 7구역. “…….” 첨벙 첨벙 첨벙! 양머리에 작은 뿔이 달린 소녀가 헐레벌떡 바닷물을 가르며 헤엄치고 있었다. 그 뒤를 다른 두 네크로맨서가 두 다리에 칠흑을 일으키며 쫓아오고 있었다. “머릿수를 줄여야 다음 시험으로 넘어가는 것 같으니까 어쩔 수 없지!” “원망하지 마쇼!” 막다른 곳에 몰린 그녀가 소심하게 전투 자세를 취했다. 두 남자가 그녀를 벽으로 밀어붙여 탈락시키려는 그때. 퍼어어어어어엉! 갑자기 거대한 파도가 일어나 그들을 몰고 지나갔다. 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바로 옆의 8구역에서 다가온 파도였다. “……아.” 바로 그 8구역. 유리 미그일로 분장한 시몬이 피곤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어쩌다 이렇게 됐지?’ 8구역에 존재하던 50명의 수험자 중 남은 건 단 한 명. 시몬 폴렌티아뿐이었다. ‘이렇게 눈에 띌 생각은 없었는데.’ 네크로맨서들의 좋지 않은 습관이다. 강자가 있으면 못 본 척 넘어갈 줄도 알아야 하는데, 굳이 굳이 또 연합을 해서 덤벼들길래 좀 큰 파도를 만들어 버렸다. 물론 시몬이 파도를 일으키기도 전에 대부분 다른 파도에 밀려 나가 자멸하고 있긴 했지만 말이다. 시몬이 손을 쓰지 않았어도 어차피 떨어질 인물들이었다. 다른 구역의 생존자들도 슬쩍 8구역을 건너다보았다. “저 자식은 뭐지?” “겉보기엔 비리비리해 보이는데……. 저놈이 8구역 유일한 생존자야?” 몇몇 강자들의 시선도 그쪽으로 향했다. “…….” 1구역의 크리스티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시몬을 노려보고 있었고. “자기들끼리 싸우다 자멸한 건가? 운 하나만큼은 최고로 좋네!” “빈민가에 태어났으면 진작에 굶어 죽었을 텐데 미그일 백작가에서 태어났으니 말 다 했지!” 헌트 가문 자매들은 비웃었으며. “…….” 마일러 드 샤르모와 배질 포트시는 이제 경계하는 눈으로 시몬을 지켜보고 있었다. 할짝! 현 약혼자 로잘린은 입술을 핥으며 즐거운 듯 웃었다. “다들 시험은 할 만하냐!” 그때 커다란 음성에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다. 부제독 아그라가 목제 의족을 움직이며 앞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따악 보니, 살아남을 놈들은 대충 살아남은 것 같네.’ 그녀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 두 번째 시험이다!” 덜컹! 덜커엉! 갑자기 불안한 소리가 시험장 전체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수험자들 모두 경계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우와아아아아아악!” “또 떨어진다!” 바닷물을 채워뒀던 마지막 경기장 바닥까지 완전히 열리며 수험생 전원이 경기장 밖으로 배출되었다. 쏴아아아아아! 경기장 바닥이 모두 열리고, 아래에는 대형 미끄럼틀 같은 길쭉한 경사면이 나타났다. 그 경사면으로 바닷물이 쏴아아 거품을 뿜으며 내려가고 있었다. 거기에 휘말린 수험자들도 차례차례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었다. ‘우와.’ 함께 내려가던 시몬의 눈이 커졌다. 경사로를 따라 내려가며 어두운 지하에서 점점 빛이 밝아지는 듯하더니, 이내 드넓고 방대한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시험 중이지만, 시몬은 이 광경을 잊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쏴아아아아아아아아! 이내 경사로에서 떨어진 수험자들도 차례차례 바다에 들어왔다. 그들이 푸하! 소리를 내며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여, 여기는!” “바다로 나왔어!” 정신 차리니 경기장 밖이었다. 전면에 방대한 바다가 펼쳐져 있고, 뒤가 경기장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있는 바다의 물살이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색이……!” 그들이 있는 물만 파스텔로 칠한 듯 옅은 하늘색이었다. 주위의 다른 바닷물은 모두 음침한 검은빛이 감도는 파란색이다. 이 하늘색 물살을 타면 힘들게 헤엄을 칠 필요 없었다. 그냥 칠흑이나 마나로 떠 있기만 하면 자연히 앞으로 나아가는 셈이다. 마치 ‘움직이는 길’과도 같은 느낌. 파란 바다 중간을 하늘색 붓으로 쭉 그어놓은 것처럼 길이 일직선으로 이어져 있고, 이 하늘색 물살의 가장 끝부분에 배 한 척이 기다리고 있었다. 저기에 3군단의 깃발이 매달려 있다. 틀림없는 ‘골인 지점’이었다. “가자아!” “저 배까지 가면 되는 거지?” 수험자들은 1차시험을 합격해서 긴장감이 풀렸는지 물살을 탄 채 이동하며 시끌벅적하게 떠들었다. “이거 재밌는데!” 한 수험자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칠흑을 이용해 평온하게 수면 위에 누웠다. 그때 다른 수험자들이 다급한 표정으로 뒤를 가리키는 모습이 보였다. 쏴아아아아아아아아! 거대한 바다뱀 같은 몬스터가 바다에서 일어나 아가리를 쩍 벌린 채 다가오고 있었다. “해양 몬스터다아!” 첨버어어엉! 퍼어어엉! 파란색 바다로부터 크고 작은 해양 몬스터들이 하나둘 튀어나와 달려들기 시작했다. “요, 요즘 바다가 이상해서 해양 몬스터가 근해까지 넘어온다더니! 진짜였어?”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라…….” 한 수험자가 바다에 손을 넣고 휘적거리다가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온갖 몬스터의 고깃덩어리나 내장 같은 게 가득했다. “이거, 시험 주최 측에서 의도적으로 몬스터를 불러온 거야!” 그 말대로. 하늘색 길 주위로 온갖 종류의 육식형 해양 몬스터들이 득실대며 몰려들고 있었다. 한 수험자가 침을 꼴깍 삼켰다. “길이 아니었어! 몬스터들의 식탁 위에 있는 거냐고……!” 수험생들이 비명을 지르며 해양 몬스터의 공격을 피해 정신없이 헤엄쳤다. 퍼어어어어엉! -그르르르르르르! 이번에는 거대 아귀를 연상케 하는 심해 몬스터가 길목을 틀어막고 입을 쩍 벌리기까지 했다. 그것이 입을 벌리고 숨을 들이마시자 수험자들 몇 명이 그쪽으로 빨려들기 시작했다. 다급히 화염마법이나 저주 따위를 발사했지만 이 몬스터는 어떤 공격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 “다들 침착해!” 그때 에스텔라 살롱 출신. 마일러 드 샤르모가 하늘로 힘껏 뛰어오르더니 흑마법으로 만든 말뚝을 괴물의 머리에 박아버렸다. 퍼어어억! 몬스터가 괴성을 지르며 피를 뿜더니 축 늘어졌다. 마일러가 자신이 만든 연잎 위에 착지하며 말했다. “다 함께 힘을 모아 노력하면 이 난관을 극복할 수 있을 거야! 골인 지점까지 가기 위해, 모두가 힘을 합치자!” 오오! 솔선수범하여 최선두에서 전투를 벌이는 마일러는 자연스레 리더가 되었고, 이에 동조하는 다른 수험자들도 함께하여 몬스터들을 쓰러뜨리고 길을 열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던 헌트 자매가 코웃음 쳤다. “착한 척 대장 짓 하는 건 여전하네! 마일러.” “그러게 말야. 우리야 편하지.” 마일러의 진심에 감명을 받아 따르든, 기회를 노리기 위해 따르는 척하든, 모두가 치열하게 해양 몬스터들을 뚫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한편. 쏴아아아아아아! 시몬은 서두르지 않고 하늘색 바다에 둥둥 뜬 채 물살의 힘으로만 이동하고 있었다. ‘빨리 가는 게 상책은 아냐.’ 몬스터들은 소란스럽고 피가 튀는 곳으로 몰려들고 있다. 늦게 가면 몬스터의 공격도 피할 수 있다. 그런 것도 장점이겠지만, 사실 시몬은 1차시험에 흥분해서 너무 눈에 띈 점을 걱정했다. ‘이번 시험에는 살짝 느긋하게 가자.’ 시몬과 같은 생각인지, 주위의 수험자들도 느긋하게 바다에 떠서 이동하는 중이었다. 다행히 뒷열 쪽은 몬스터들도 몰려오지 않았다. 전면의 소란으로 몬스터들이 가 있었으니까. 그런데. “저기 저 두 명! 뭐 하는 거야?” 하늘색 길이 중간에 끊기려 하고 있었다. 두 명의 남자가 하늘색 물결의 중간에서 마구 물살을 일으켜 하늘색 길을 헤치고 있던 것이다. 시몬은 바로 그들이 사용하는 기술을 알아보았다. ‘청파류!’ 그들은 청파류를 이용해 물결을 일으켜 하늘색 바닷길을 차단하고 있었다. 하늘색 바닷길이 뚝 끊긴 채 보통의 시퍼런 바닷물이 들어왔다. 늦게 오던 수험자들은 길을 잃은 채 망망대해에 남겨지게 된 셈이 됐다. “이게 무슨 짓이야!” “거기서 비켜!” 수험자들이 헤엄을 쳐서 다시 하늘색 길로 나아가려 했으나. <파천(波遷)> 두 남자 중 한 사람이 손바닥으로 물을 미는 시늉을 취하자, 물살이 살벌한 직선을 그리며 날아와 그들 몸에 부딪혔다. 풍덩! 그들이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한참을 날아가 더더욱 하늘색 선과 멀어진 파란색 바다에 떨어지고 말았다. “여긴 아무도 통과 못 한다.” 그 말에 다른 수험자들이 분노했다. “갑자기 뭔 짓거리야?” “죽고 싶지 않으면 거기서 비켜!” 수험자들이 각자의 흑마법을 일으키며 달려들었지만, 바다에서 청파류를 사용하는 네크로맨서 콤비를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파도가 몰아치며 수험자들이 하나둘 나가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모습을 지켜보던 시몬이 안경을 추켜올렸다. ‘베테랑이네.’ 동시에 의아함을 느꼈다. 저런 베테랑들이 함장 자격시험을 치르러 온 게 이상한 건 아니지만, 이들 같은 전력은 이미 다른 바다 관련 조직에 속해 있을 터. 굳이 3군단 시험에 온 이유가 궁금했다. ‘아마도.’ 기존의 일을 그만두고 여기 올 정도로, 엄청난 금액으로 매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시몬은 곧바로 그들의 시선을 느끼고는 고개를 들었다. ‘막고 있는 건 나 때문이겠지.’ 그들은 시몬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들어와 보라는 듯 손바닥을 움직이고 있었다. 시몬은 픽 웃으며 팔을 빙빙 돌렸다. 여기는 바다고, 청파류를 배운 마투사라면 세상 무서울 게 없겠지만. ‘몸풀기론 딱이네.’ 오늘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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