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222화 우뚝 솟아 있는 언덕 위에 설치된 기계 ‘전이기’. 대륙의 장소 일부를 화이트랜드로 옮기는 기현상, 배니쉬를 일으킬 수 있는 장치였다. 이 전이기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기에 근방엔 항시 많은 병력이 주둔하고 있었다. 게다가 히에로미르의 명령으로 군대가 더 증원된 상태. 방비는 만전이었다. 하늘에는 코랄 주포가 내장된 여섯 척의 공중 전함이 대기하고 있었고, 지상군이라 할 수 있는 수색꾼의 숫자는 까마득하게 많았다. 그리고 이번에 화이트 블록에 합류한 수색대장 워턴 또한 이쪽 방어에 투입되어 있었다. 스으. 바로 그 워턴도 마침 망원경으로 보고 있었다. 저 멀리 푸른 머리카락의 남자와 하얀 머리카락의 여자가 걸어오는 모습을. ‘지, 진짜로 왔어!’ 워턴이 손에 든 망원경을 내리며 입술을 떨었다. ‘진짜 시몬 폴렌티아와 레테 성녀야! 어쩌지? 어쩌지?’ [예상대로 나타났군.] 후욱- 마스크 너머로 무거운 울림이 들린다. 두꺼운 털 망토를 두른 채, 검은 갑주를 입은 남자. 더 시티에서도 히에로미르 다음가는 서열 2위의 권력자이자, 최고 군사령관으로 전 육군을 통솔하는 카르보스 장군이었다. [단둘이서 이 숫자를 상대할 생각인가. 무모한 것을 넘어서 어리석군.] “절대로 방심하면 안 됩니다!” 워턴이 꽥 소리 질렀다. “저들 한 명 한 명이 ‘군대’를 소유하고 있다구요! 특히 시몬 폴렌티아의 언데드 군단은 대륙에서도 최흉의 군대로 악명이 자자합니다! 그들이 지나간 길에는 풀 한 포기 자라나지 않을 정도라구요!” [안심해라. 그 망자들의 군대는 지금 더 시티에 있다.] 후욱- 마스크 너머로 입김을 흘리며 카르보스 장군이 말했다. [반면 우리는 3개 군이 결합한 대병력이다. 아무리 강자라 하더라도 개인이 군대를 상대로 가능한 일은 한정되어 있다.] “그, 그렇긴 하지만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고나 할까……! 그……!” [무슨 뜻인지는 충분히 이해했다.] 팔을 들어 말을 막은 카르보스 장군이 몸을 완전히 돌려 워턴을 응시했다. 워턴은 온몸이 목각인형처럼 딱딱하게 굳어지는 걸 느꼈다. [하지만 네게는 그 발라 모르티페르라는 능력이 있으니, 시몬 폴렌티아만큼은 확실히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하마.] “마, 말씀하신 대로예요!” 그녀는 히에로미르 앞이든 카르보스 장군 앞이든 본인의 가장 큰 쓸모라고 할 수 있는 발라 모르티페르를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이제 주위 사람들은 ‘발라’라는 말만 나와도 귀에 딱지가 얹힌 듯한 표정을 짓곤 했다. “범위 안에만 들어온다면 확실하게! 숨통을 콱!” [재확인하지만, 혹시나 아군이 휘말릴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녀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발라 모르티페르도 결국은 사악함을 무찌르는 퇴마의 기술! 칠흑 사용자에게 타격이 전달될 뿐이지 칠흑을 가지지 않은 장군이나 병사들은 멀쩡할 거예요!” [좋다. 혹여나 몸을 사리는 일은 없도록.] 그의 목소리가 흉흉해졌다. [그런 기미가 보인다면 내가 네 목을 치겠다.] “그럼요!” 워턴은 속으로 움찔했지만 애써 화사하게 답했다. [물론 여기까지 올 일도 없겠지만. 우리 군의 화력으로…….] 갑자기 카르보스 장군이 입을 다물었다. “왜 그러세요?” [공간이 변동하고 있다.] 카르보스의 목소리는 전처럼 낮고 음침했지만, 약간의 놀라움이 섞여 있었다. [히에로미르 님과 같은 공간의 힘, 누군가 이곳으로 오고 있다.] “네?” 그 말대로. 시몬과 레테의 앞에 간이 포탈이 열리며 새로운 지원군이 합류했다. * * * “도우러 왔습니다, 시몬.” 바힐 아마가르가 나타났다. 시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륙에서 오는 첫 지원군의 정체가 바힐 교수님!’ 이런 장소, 이런 상황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니 일단 반가움부터 밀려들었다. 시몬이 활짝 웃으며 다가와 그의 손을 붙잡았다. “도우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수님! 어서 오세요!” 평소 보기 드문 시몬의 환대에 바힐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지만, 평정을 되찾듯 입가는 금방 일자로 변했다. “좌표가 대륙에 잘 갔나 보네요! 다른 분들은요?” “약간의 딜레이가 있지만 곧 도착할 겁니다.” 약간의 딜레이. 하지만 대륙에서는 그 약간의 시간도 이곳 화이트랜드에서는 며칠이 걸릴 수도 있었다. 시몬이 바로 핵심을 물었다. “대륙에서는 시간이 얼마나 흘렀나요?” 시몬과 레테가 화이트랜드에 도착한 뒤 흐른 시간은 약 2주 정도. 그리고 먼저 갔던 카미바레즈를 비롯한 동료들은 2주 더 먼저 왔으니 총 4주가 지난 셈이었다. “과연, 그렇군요.” 학생의 실력은 질문의 질에 있다던가. 바힐도 시몬의 영특함에 만족스러운 얼굴로 답했다. “사태 발생 뒤 6시간 정도 지났을 겁니다.” ‘아!’ 시간 간격이 어마어마했다. 다음 인원이 오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그보다 시몬 학생. 지금 중요한 건 그쪽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적의 군대가 눈앞에 있는 상황에서 지원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 있나? 시몬이 긴장한 얼굴로 바힐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룬 리그.” “네?” “룬 리그에서 시몬 학생이 사용했던 저주.” 바힐이 입가를 쭉 찢으며 시몬의 두 어깨에 터업 손을 올렸다. “완벽했습니다!” 잠시 흐름을 따라오지 못한 시몬이 멍해졌다. 바힐의 말이 빠르게 이어졌다. “내가 시몬 학생에게 전수한 헥스(Hex)는 프리스트가 일으키는 신성을 무시하고 즉발적인 효과를 내는 저주였습니다. 하지만 에프넬 교수가 가르친 수호마법을 상대할 때 시몬 학생이 순간적으로 헥스 마법진에 변화를 가한 뒤 방어마법을 관통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걸 보았습니다! 네크로맨서의 칠흑을 기억하는 성질은 그야말로 습관과도 같은 것이기에 변주와 변질이 극도로 까다로울 터. 그것을 급박한 상황에 즉시 떠올려 실현하는 기지, 저주학에서 배웠던 학습 응용력, 과감한 결단력까지! 이건 마치……!” “갑자기 불쑥 넘어와서 무슨 소릴 하는 검까!” 졸지에 가만히 서 있던 레테가 소리 지르며 앞을 가리켰다. 공세가 시작되었다. 가장 전면의 수색꾼들이 일제히 코랄 박격포를 어깨에 짊어지고 그들을 향해 날리고 있었다. “하지만 시몬 학생이 사용한 헥스에는 몇 가지 보완점이 있습니다. 우선 동작.” 전쟁이고 뭐고 이미 ‘레슨’을 시작한 바힐에게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가 시몬과 눈을 마주하며 오른손을 스윽 들어 올렸다. “즉발 사출형 저주를 너무 많이 사용한 잔상이 남아 있습니다. 손끝에서 쏘아내는 저주는 빠르지만 적에게 방향을 읽히기 좋지요. 헥스는 이렇게.” 그가 들어 올린 손을 가볍게 들썩이자. 촤라라라라라! 날아오던 미사일들이 모조리 샤방샤방한 장난감 인형이나 캔디, 프릴 따위가 되어 바닥을 나뒹굴었다. 공격을 시도한 수색꾼들이 기겁하며 웅성거렸다. “이렇게 방향을 알지 못하도록 동작에 가동작을 집어넣고, 저주를 퍼뜨리듯 사용하는 게 헥스의 사용법입니다.” “어, 교수님. 지금은 일단……?” “수업에 집중하십시오. 손을 쓰는 동작 중에 어떤 부분이 가동작으로 들어갔죠?” 답하지 않으면 폭발할 것 같은 바힐의 눈동자에, 어깨를 붙잡힌 시몬의 눈이 팽팽 돌아가며 답했다. “소, 손끝으로 겨냥하는 순간이 아니라…… 팔을 앞세우기도 전에 이미 저주는 발동되어 퍼진 것 아닌가요?” “정답. 정답입니다!” 총명하다. 황홀할 만큼 총명하다. 방금의 답도 그렇고, 어쩜 이렇게 교육자의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 같은 답만 쏙쏙 골라 할 수 있단 말인가. 거기에 마지막에 가볍게 툭 던지는 새로운 화두까지. 나를 둘로 나누어서 하나는 가르치고 하나는 가르침을 받게 해도 이런 조화가 가능할까? 참으로 대단한……. 투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상념을 깨뜨리듯, 하늘의 공중 전함에서 주포 사격을 개시했다. 거대한 보랏빛 섬광이 세 사람을 태워 버릴 기세로 다가오고 있었다. ‘타이밍이 빨라!’ 시몬과 레테가 그 모습을 보며 다급히 방어마법을 준비하려는 그때. “감히-”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 바힐에서부터 어마어마한 칠흑의 파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가 눈을 감은 채 서서히 오른팔을 들어 올린다. 팔이 점점 하늘로 올라갈수록 대기가 뒤흔들린다. “교수님! 저 공격은 위험해요!” “피하셔야 함다!” 시몬과 레테가 외쳤지만 바힐은 그저 마법진도 없이 팔을 들어 올릴 뿐이었다. 이내 그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손바닥을 불끈 주먹 쥐자. 파화아아아아악!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세 사람을 향해 내려오는 굵직한 세 갈래의 보랏빛 섬광이, 방금 뽑힌 무수한 파스타 면발처럼 변한 채로 흐물렁거리며 하늘로 비산했다. “……!” 시몬은 눈앞의 상황을 뇌가 제대로 받아들였나 의심했다. 마치 추상화와도 같은 광경. 죽음의 섬광이, 누군가 파스타 그릇을 하늘로 집어 던진 것처럼 무수한 파스타 면발로 갈라져 흩뿌려진다. 세상이 온통 흐물거리는 면발로 가득 차올랐다. “수업을.” 바힐이 눈을 치켜떴다. 그의 양 동공이 붉게 물들었다. “방해하지 마십시오.” 끄그그그그그그그극! 이번엔 수천 미터 상공에 위치한 거대한 코랄 전함들의 움직임이 비틀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운항 및 부유 기능이 오작동했는지 멋대로 기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향 지시등 불능! -8번 부스터 오프! -3호 함장! 함장! 뭐 하나! -연락 불능! 연락이 모두 끊겼습니다! -위험해! 쿠쿠쿠쿠쿵! 전함들이 서로 얽히고설킨 채 부딪히고. 투콰아아아아악! 후속으로 주포 공격을 준비하던 전함이 다른 전함이 들이받는 것으로써 머리 부분이 하늘로 향했다. 그대로 주포가 쏘아져 나갔고, 바로 위에 있는 전함을 꿰뚫고 지나갔다. 쿠구구구구구궁! 그 공격으로 공중 전함 한 척이 추락하기 시작한다. -지시등이 말을 안 듣습니다! -함을 버리고 도망쳐! 시커먼 연기와 불꽃을 휘감은 전함 한 척이 지면을 향해 아군 진형을 향해 내려온다. 줄지어 서 있던 수색꾼들이 비명을 지르며 대피했다. 마침내 전함이 바닥에 부딪히고. ―――――――――――!! 폭발하고 만다. 맹렬한 소음과 불꽃이 전장 한쪽에서 번쩍이며 솟구친다. 더 시티의 병사들 입장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를 상황. [저자가 그 바힐 아마가르인가.] 지휘부에서 지켜보는 카르보스 장군은 바힐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화이트랜드의 군대가 언젠가 대륙을 침공할 것도 알고 있었다. 그때 코랄 전함 한 척이 능히 대륙 4개 영지의 전력을 상대할 수 있을 거라는 보고를 들었다. 하지만. ‘고작 한 사람에게.’ 두 번째 전함도 충돌의 충격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아마 전력을 평가한 결사의 일원의 말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저 바힐 아마가르라는 자가 비정상적으로 강력한 것이리라. 괜히 1급 위험인자가 아니었다. 결사에서 1급 위험인자 앞에서 포탈 사용을 중단하는 이유가 있었다. 저런 것은 다른 차원에 들이닥치면 그것만으로 모든 걸 뒤엎는 외래종이 될 터. [차라리 여기서 쓰러뜨리는 게 나을 수도 있겠군.] 그가 허리에 찬 검의 손잡이를 한 차례 쥐었다가 놓았다. 그가 워턴을 바라보았다. [그렇지 않나?] “그, 그렇죠! 네!” 대답은 시원하게 했지만 워턴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암흑연합의 바힐 아마가르가 왜 여기 있냐고!’ * * * “부탁이 있습니다. 교수님!” 시몬은 전이기를 차지해야 하는 사정을 바힐에게 설명하고 협력을 구했다. 방금 화이트랜드의 군대는 바힐의 힘을 보았고, 모든 시선이 그에게 끌려 있다. 바힐이 군대를 상대하는 동안 시몬과 레테는 빠르게 적진을 돌파해 전이기를 확보할 생각이었다. 바힐은 시몬을 가르치는 것 외의 다른 일에는 시큰둥해 보였지만. “바힐 교수님이 보여준 이번 저주! 정말 대단했어요! 조금 더 실전에서 보고 싶습니다!” 그 말에 바힐은 반색하며 미소 지었다. “그래요. 가끔은 저주의 진가를 보는 것도 훌륭한 수업이 될 수 있겠죠.” 우웅! 바힐이 오른팔을 뻗어 저주 마법진을 펼쳤다. “원하는 바를 이루고 오십시오. 그사이 제가 보여 드리겠습니다. 저주 저항으로 똘똘 뭉친 네크로맨서도, 신성과 정화를 가진 프리스트도 없는 이 쾌적한 순백의 세상에서-” 화아아아악! 저주 마법진이 비대해지기 시작했다. “저주가 어디까지 위대해질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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