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216화 시몬은 히에로미르의 전이기를 탈취해서 사용하자는 완전히 새로운 전략을 제시했다. 시몬이 이야기를 하는 내내 일행들은 넋이 나간 듯 멍하니 이야기를 들었다. “자, 잠깐만.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손바닥을 펼쳐 보인 다비나가 당혹감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전이기의 사용법은 알아?” “몰라.” 시몬이 해맑게 웃었다. “그래도 직접 가서 살펴보면 어떻게든 될 거야.” “…….” 잠시 회의실에 정적이 흘렀다. 다들 조금은 얼빠진 얼굴로 시몬을 바라보았다. 시몬이 이야기를 하는 태도가 너무나 진지했기에, 농담이나 허세 같은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저게 천재의 사고방식인가.” 쥴이 마검 손잡이에 이마를 올리고 중얼거렸다. “뭐, 뭔가 이상한 분.” 본인이 만든 개집에 들어간 아렌디아가 삐걱삐걱 낱말을 토해냈다. “제가 듣기엔 아주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님다.” 레테가 손을 들고 발언했다. 일행들이 넌 왜 쟤 편을 드냐는 표정으로 레테를 휙 돌아보았다. “전이기는 결국 그 쌍둥이 구원자의 공간 능력을 증폭하는 원리의 장치지 않슴까? 공간계 기술이라면 저나 시몬도 쓸 줄 알아요. 남들보다는 그 원리를 잘 파악할 수 있겠죠.” 그 말을 들은 쥴은 이제 포기했다는 듯 눈썹 사이를 어루만졌다. “우리 쪽 학생회장이야 늘 그랬다 쳐도…… 에프넬 측도 마찬가지였군.” “후후! 이해는 잘 안 되지만 시몬 폴렌티아의 계획이니 뭔가 믿고 싶어지는구나!” 카미바레즈는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기억을 잃었지만 시몬의 확신에 찬 분위기에 바로 호응하는 모습이었다. 다비나가 타이르듯 말했다. “아니, 대장. 사람 목숨 한두 개가 걸린 게 아닌데…….” “너무 걱정 마. 전이기는 플랜 B에 불과하니까. 진짜 플랜 A는 이거.” 시몬이 테이블에 내려놓은 안테나 달린 기기를 가리켰다. “대륙에서 틀림없이 지원 병력이 올 거야.” “저는 오히려 그쪽이 더 의문스럽슴다.” 레테가 뚱한 표정으로 턱을 괴었다. “저쪽 세계와 이쪽 세계의 시간에 차이가 날 수 있다는 건 들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지원이 너무너무 늦어요. 저쪽에서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슴다.” “그렇다면 더더욱 전이기를 사용한 플랜 B에 집중해야지.” 시몬이 어깨를 곧게 펴며 손을 꽉 움켜쥐었다. “만약 우리끼리 히에로미르와 시엘을 쓰러뜨리면 옐로우랜드에 있는 내보내는 전이기도 사용할 수 있을 거야. 그러면 자력으로 여기서 벗어나 대륙에 돌아갈 수 있겠지.” 이건 자력 탈출 계획이었다. 전이기 때문에 이곳으로 왔으니, 반대도 충분히 가능했다. 시몬과 레테는 대륙의 공간좌표도 숙지하고 있었다. “그럼! 결정하겠다!” 혁명군 대장 카미바레즈가 손뼉을 짝 치며 몸을 일으켰다. “우리는 지금부터 두 팀으로 나눈다! 전이기로 가서 그것을 작동시킬 ‘전이기 팀’과, 더 시티에 남아 히에로미르에 대한 반란을 일으킬 ‘혁명 팀’이다!” 꿈틀 꿈틀. 개집에서 기어 나온 아렌디아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우리 의도를 숨기겠다는 생각이시네요. 전이기 팀이 전이기까지 도달하는 동안, 반란으로 히에로미르의 시선을 붙잡아두는 게 혁명 팀의 역할.” “그렇다!” 카미바레즈가 날개를 파닥거리며 아렌디아에게 고개를 끄덕여 준 뒤 다비나를 보았다. “다비나! 언제 반란을 일으키는 게 가장 효과적이지?” 다비나가 손가락 세 개를 펼쳤다. “3일 뒤.” “어? 그렇게 빨리?” “3일 뒤가 그 끔찍한 ‘변절자 투표’가 이뤄지는 날이거든.” 그녀가 손가락을 튕겼다. “마침 타이밍도 좋아. 히에로미르는 시몬과 레테를 찾으려 혈안이 되어 있고, 대부분의 수색꾼 병력을 더 시티 밖으로 보내 수색을 강화한 상황이야. 더 시티의 감시 능력이 약화된 지금이 찬스.” “오호.” “변절자 투표 기간에는 주민들도 무척 예민해. 잘만 하면 여론을 등에 업을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전이기 팀 작전이 성공해서 저쪽 병력이 이리로 넘어오면, 다 함께 힘을 합쳐서 히에로미르를 몰아내는 거야! “저, 저기……!” 아렌디아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모두의 앞에 섰다. “더 시티가 혼란스러울 때 제가 감옥에 가서 시그문드란 분을 탈출시켜도 될까요?” “좋다! 그것도 상부에 혼란을 일으킬 수 있겠구나!” 카미마레즈가 흔쾌히 동의했다. “시그문드 아한델……. 마침 아렌디아가 있으니 데려오기만 하면 최고의 전력이 될 거요.” 쥴도 동의했다. 셀레스티얼 프로텍터와 시그문드의 조합은 최고라는 건 쥴이 직접 겪어봐서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럼 팀 배분은 다음과 같이 하겠다.” 카미바레즈가 척 하고 손끝을 세웠다. “시몬과 내가 전이기 팀! 나머지는 혁명 팀으로……!” “누구 멋대로!” 레테가 발끈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연히 공간계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제가 시몬과 같이 가야 하지 않겠슴까! 시몬이 모르는 부분을 제가 짚어줄 수도 있구요!” 카미바레즈도 지지 않고 까치발을 든 채 레테를 노려보았다. “혁명 팀은 히에로미르를 직접 상대해야 할지도 모른다! 최고 전력 두 명이 모두 전이기 팀으로 가는 건 전력 낭비다!” “애초에 당신은 시몬의 피가 목적이잖아!” “무, 무, 무슨 소릴 하는 거냐! 너야말로 불순한 목적이 있을 게 뻔하다!” 두 사람이 으르렁대며 싸우기 시작했다. 그때 다비나도 태연히 손을 들었다. “나도 시몬이랑 같이 가고 싶은데.” 빠직. 두 사람이 살기 섞인 눈으로 다비나를 바라보았다. 다비나는 흠칫했지만, 애써 콧노래를 흘리며 창밖을 보았다. “아니, 뭐, 다른 이유는 아니고. 나는 현지인이니까 전이기까지 가는 지리에 빠삭하잖아? 그리고 시몬이랑 같이 지하 투기장에 다녀와 봤는데 나름 합도 잘 맞았고.” “…….” 고오오오오! 레테와 카미바레즈가 싸늘한 시선으로 시몬을 노려보았다. ‘또 네놈이냐’, ‘그럴 줄 알았다’ 같은 경멸의 눈빛이 가득했다. 시몬이 억울해하며 입을 열었다. “아니, 나는-” “당신은 조용히 해요. 입 한번 뻥긋하면 턱을 앞니까지 밀어버린다.” 레테의 협박에 시몬이 얼른 입을 다물었다. 쥴도 손을 들었다. “그럼 공평하게 내가 시몬과 같이 가겠소. 무(武)에 대해 이런저런 물어볼 것도 있고.” “놀러 가는 거 아니거든요!” 누가 시몬과 같이 갈 것인가에 대한 첨예한 논쟁이 벌어졌다. 그때 시몬을 제외한 모두의 시선이 아렌디아 쪽으로 홱 돌아갔다. “아.” 시선이 집중된 그녀가 다시 후다닥 개집으로 들어갔다. 레테가 허리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그러면 아렌디아 자매가 딱 정해주면 되겠네요.” “그거 좋지! 아렌디아면 공평하지!”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아렌디아가 슬슬 한 명씩 눈치를 살피다가 말했다. “저는…….” * * * 그렇게 시몬 일행은 전이기 팀과 혁명 팀의 구성을 정했다. 누구에게도 미움받기 싫었던 아렌디아는 다분히 합리적인 이유를 제시했다. -그래도 전이기를 쓸 수 있느냐 없느냐가 핵심 문제니까 역시 시몬처럼 공간계 능력에 조예가 있는 사람이 같이 가야……. 레테는 아렌디아를 향해 상큼하게 웃어주었고, 카미바레즈는 쳇 하고 혀를 찼다. 사실 더 시티에 일으킬 건 반란이다. 혁명군의 핵심 중 핵심인 카미바레즈와 다비나가 빠지는 건 비효율적이긴 했다. 지침이 정해졌고, 바로 행동으로 돌입했다. -출발하죠! -응. 전이기 팀은 바로 출발했다. 어쩐지 기분이 좋아진 듯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걸음을 옮기고 있는 레테와, 그녀를 따라가는 시몬. 그리고 카미바레즈의 혁명군과 지하 투기장을 장악한 쥴이 바쁘게 움직였다. 특히 혁명군은 지금까지 차곡차곡 준비해 온 정보들을 풀며 대규모 여론 부채질을 시작했다. 마침 변절자 투표로 주민들의 분위기는 흉흉한 상황. -미키가 죽었다던데. -어차피 전부 파리 목숨이잖아. -우리 블록 사람들이 날 보는 눈이 심상치 않아. 어쩐지 나한테 표가 쏠릴 것 같아. 다비나는 불안에 떠는 주민들을 자극시켜 분노와 용기와 일깨우고, 변절자 투표에 빈 종이를 써서 내자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혁명군 대원들도 얼굴을 가린 채 시위를 시작했다. <변절자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히에로미르의 탄압이 변절자를 만들었다!> <없는 변절자를 찾는다는 핑계로 우리를 괴롭힌다면 우리는 스스로 변절하겠다!> 그렇게 시위를 벌이다 수색꾼들이 오면 퇴각했지만, 투표를 앞두고 점점 더 분위기에 불이 붙어갔다. 카미바레즈는 각종 공장 책임자들, 외곽 지역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협력을 강화했고. 쥴은 다시 지하 투기장으로 돌아왔다. -마성! 그때 패배하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그럴 리가 있겠소. 지금 바로 결집 회의를 소집하시오. 쥴은 지하 투기장의 사람들을 모아놓고 다비나가 내어준 자료를 보였다. <지하 투기장 정화 계획> 더 시티 상층부에서 지하 투기장을 습격해 참여한 모든 인간과 도망자들을 말살하겠다는 대규모 학살 계획. 실제로 히에로미르가 준비하고 있는 계획이기도 했다. 지하 투기장 사람들은 올 게 왔다는 듯 눈을 질끈 감았다. -역시 투기장을 해체하고 본업으로 돌아가는 게…….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수 없소. 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이곳에 당도한 지는 오래되지 않았으나, 나는 이곳이 좋소. 비록 남들의 손가락질을 받는다고는 하나 이곳 지하에도 지하만의 법, 문화, 환경이 있었소! 이 모든 걸 그냥 포기할 생각이오? -그, 그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뭘 묻고 그럽니까! 당연히 힘을 합쳐 싸워야 합니다! -히에로미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무수히 많을 터! 쥴은 자연스럽게 지하 투기장의 사람들을 이끌고 혁명군과 손을 잡도록 유도했다. 그렇게 변절자 투표를 앞두고 분위기가 점점 달아올랐다. * * * 그렇게 이틀이란 시간이 숨 가쁘게 흐르고 변절자 투표 디데이까지 하루를 앞둔 날. 중간 점검을 위해 혁명 팀이 다시 본부에 모였다. 카미바레즈, 쥴, 다비나, 아렌디아가 혁명군 본부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더 시티 서부 블록 사람들은 어떻소? 카미바레즈.” “우리가 혁명을 일으키면 동조해 준다고 약속했다.” “나도 문제없을 것 같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던 쥴이 고개를 돌렸다. 똑딱똑딱. 아렌디아는 시그문드가 돌아왔을 때 입힐 새로운 갑옷, ‘셀레스티얼 프로텍터’를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다. 레테는 아렌디아가 기억을 잃기 전에 만들었던 완성형 버전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고, 그녀는 계속 혁명군 본부에서 작업하며 그 감각을 떠올리는 중이었다. “내일이 거사인데 태평하네.” 보다 못한 다비나가 입을 열었다. 작업할 때만큼은 진지한 아렌디아가 태연히 맞받아쳤다. “제가 여러분과 함께 있는 건 혁명이나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목적 때문이 아니에요. 오로지 시그문드 아한델을 만나기 위해서죠.” 그녀가 망치를 내려놓고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나는 나대로 목표를 이룰 테니 각자 맡은 역할만 잘하죠.” “그 말이 맞다.” 카미바레즈가 기지개를 쭉 켜며 말했다. “이제 내일 사건들을 쭉쭉 일으키면서 히에로미르를 혼란에 빠뜨려 보자고.” “…….” 그때 마검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쥴의 눈이 충혈되듯 부릅떠졌다. “왜 그래 쥴?” 척! 쥴이 손바닥을 펼쳐 일행들의 말을 막고는 눈을 감았다. 시각을 잃고 장님으로 살 때의 감각이 살아 있기에, 쥴은 눈을 감을 때 감각이 가장 많이 살아난다. 잠시 본부가 조용해졌고, 다비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래? 마성. 갑자기 무섭…….” 덥석! 쥴이 즉시 다비나의 손목을 붙잡아 있는 힘껏 잡아끌었고. 화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거대한 보라색 섬광이 지나가며 방금 다비나가 있는 방향을 박살 내며 지나갔다. 모두가 대경실색하며 자리에 엎어지거나 엎드렸다. “포, 포격?” 고오오오오오! [안녕하신가.] 저벅 저벅. 모두가 식겁한 눈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금 포격으로 뚫린 구멍으로 거구의 남자가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당신은……!” 결사의 구원자이자 이 세계의 지배자. 히에로미르가 눈앞에 있었다. [시몬 폴렌티아는 어디 있나? 변절자들.] * * * […….] 쓰윽 쓰윽. 더 시티 전체가 주민들의 시위와 수색꾼의 체포 작전으로 시끌벅적한 이때. 조용히 길거리를 청소하는 여성이 있었다. 마치 이 세상이 벌어지는 일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듯, 유난히 청소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스으. 그녀가 잠시 거리의 빗자루질을 멈추고 하늘을 보았다. 하늘에 거대한 전함들이 떠 있었다. [우리가 나서야 할 때인 것 같네요. 집사님.] 슥. 그리고 반대편에서 나타난 남자가, 그녀가 묶은 앞치마의 리본을 정성스럽게 고친 뒤 고개를 끄덕였다. [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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