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085화 ‘나와라, 베히모스.’ 우우우우웅! <묘소 생성> 시몬은 베히모스를 꺼내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지면에서 비석이 솟구쳐 오르고, 소환용 출격 마법진과 친위대 마법진을 신속하게 허공에 펼쳤다. “시몬! 데스나이트들이 이리로 오고 있어!” 메이린이 흑마법을 퍼부으며 소리쳤다. 하지만 시몬은 방어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어떻게든 버텨줘! 3분이면 돼!” 그러고는 등을 돌려 마법진에 집중했다. 시몬은 전적으로 메이린을 믿었다. 그런 믿음이 전해진 건지 메이린의 표정도 한층 결연해졌다. 안 되니 불가능하니, 그런 우는소리 할 시간이 없었다. 일단 해보는 수밖에 없다. <상아탑 고유 계승 - 엘리멘탈 마스터> 메이린이 급히 엘리멘탈 마스터의 마법진을 짜내고, 오로라를 몇 가닥만 뽑아내 제 머리에 얹었다. 반쯤 만들어진 마녀 모자가 웅웅 소리를 내며 술식을 대리 연산했고, 칠흑원소 마법이 준비되었다. 현재 메이린과 시몬에게 다가오고 있는 1군단의 데스나이트는 일곱. 접근을 허용 당하면 죽는다. 그녀가 두 손바닥을 앞으로 펼쳤다. <엘리멘탈 버스트> 콰콰콰콰콰콰콰콰! 등 뒤에 펼쳐진 마법진에서 온갖 흑마법이 포탄처럼 쏟아진다. 데스나이트들은 오러 블레이드를 휘두르며 다가온다. 마법을 만들기 위한 수식을 끊임없이 연산하면서도, 그녀는 네크로맨서답게 상대 분석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특징이 있어.’ 저 데스나이트들은 불이나 얼음 따위는 그냥 몸으로 부딪치며 과감하게 다가온다. 1군단 특유의 갑주가 상당히 튼튼하므로, 상대와의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칠흑원소 마법사의 입장에선 그런 접근이 가장 위협적이다. 하지만, 데스나이트들은 유독 칠흑으로 조형해서 날려 보내는 바람계 칼날에는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일일이 모든 바람 칼날을 검으로 쳐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이거야!’ 그녀의 눈이 번쩍 뜨였다. 엘리멘탈 마스터의 진정한 극의는 어떤 전장, 어떤 상대와의 전투에서도 맞춰 나가는 적응력. 메이린은 즉시 화염이나 얼음 등의 다른 마법진은 모두 입구를 닫고, 칠흑바람계 마법진만 집중적으로 가동해서 바람의 칼날을 무수히 쏘아 보냈다. ‘틀림없어! 언데드가 됐지만, 수백 년 전 기사 시절의 습성과 성향이 강하게 남아 있는 거야!’ 제국의 기사들은 5세부터 체계적으로 양성되며, 검술을 갈고닦는 과정에 수천수만 번의 대인 훈련을 한다. 눈을 감고도 상대의 검을 막아내는 경지에 이른 자들만이 기사가 될 수 있었다. 그러니 그 시절 기사들에게 한 번이라도 검에 베인다는 건 패배를 뜻한다. 날붙이에 베인다는 것에 극도의 거부감이 있고, 참격이라면 닥치는 대로 막아내야 한다는 그런 강박이 있을 터였다. ‘그런 언데드 특유의 착각을 이용해야 해!’ 분석을 마친 메이린은 과감하게 바람계 마법의 위력을 낮추고 칼날의 숫자를 더 늘려 퍼부어댔다. 조금씩이라도 전진하던 데스나이트들은 걸음을 아예 멈추고 칼날을 쳐내는 데 급급해졌다. 약화된 바람의 칼날은 개수는 많지만 위력은 떨어진다. 데스나이트가 그냥 몸으로 맞으면서 걸어올 수 있는 정도. 하지만 메이린은 저들이 그러지 못할 것을 확신하고 있다. 한 대라도 맞는다면 저 언데드들은 상황을 파악하고 접근하겠지만, 천 개의 검격이 날아와도 막아낼 실력이 있기에 그러지 못한다. 너무나도 뛰어난 검술이 발목을 잡는 격이다. 사실 저런 걸 보고 조율하는 게 네크로맨서의 역할이지만, 지금 저들의 ‘주인’은 이곳에 없다. 이 모든 걸 계산하며 메이린은 목숨을 건 상황에서도 과감하게 전략을 바꾸는 판단력을 보였다. ‘너무 잘 막는데?’ 술식 실수가 몇 번 났던 시몬이 살짝 초조해져서 뒤를 돌아보니 메이린은 기적이란 말이 떠오를 만큼 잘 막아주고 있었다. 쥴도 여전히 아슬아슬하지만 버텨주고 있다. 이제 나만 해내면 된다. 심적으로 안정되니 시몬도 더더욱 자신감을 가지고 마법진을 완성해서 묘소에 붙여 나갔다. “큭!” 그렇게 2분이 더 흐르고, 이제는 메이린의 칠흑이 고갈되어 간다. 시몬은 마지막 마법진까지 완성한 다음,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피어! 지금 출발할게요!” [크흐흐! 알겠다!] 헥터를 상대하고 있던 피어가 기다렸다는 듯 본 아머 상태로 날아와 시몬의 몸에 착착 달라붙었다. 이때 메이린도 힘이 다하며 휘청이고 있었다. 엘리멘탈 마스터 모드도 사라졌다. [잘했어 메이린. 지금부터는 나한테 맡겨.] 피어를 입은 시몬이 그녀의 뒤로 성큼 다가왔다. [실례할게.] “응? 잠깐……!” 와락! 시몬의 메이린의 몸을 깃털처럼 안아 들었다. 불쑥 몸이 들린 그녀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흡! 하는 소리를 냈다. ‘시몬이……!’ 이번엔 짐짝처럼 짊어지는 게 아니라 제대로 두 팔로 들어주었다. 이런 와중에도 그 사실에 감격하는 메이린이었다. 스으. 시몬은 메이린을 안은 채 가볍게 고개를 숙여 데스나이트의 오러 블레이드를 피한 뒤, 앞으로 뛰어나오며 발끝으로 다른 데스나이트의 손목을 걷어찼다. 동시에 몸을 던져 동굴 벽에 두 발을 디딘 뒤 힘껏 뛰어올라 또 하나의 투구를 걷어차며 비석 위에 올라섰다. ‘미친! 개멋있어!’ 메이린은 정신이 마비될 것 같은 감격 상태에 빠졌다. 매번 머릿속 망상에서나 떠올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었다. 시몬은 발끝으로 비석을 두 번 툭툭 찬 뒤 이내 말했다. [베히모스 전함, 출격.]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쿠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비석의 중앙에 연기의 문이 만들어지고, 그 안에서 형언하기 힘든 거체가 두 사람의 몸을 태운 채 앞으로 뻗어 나갔다. 함체의 출격으로 인한 충격파와 소닉붐으로 데스나이트들이 모조리 뒤로 떠밀려 날아갔다. 베히모스 전함은 동굴 벽을 선체로 뚫고 들어갔다. “꺄악!” 진동과 충격이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였다. 겁먹은 메이린이 두 팔로 시몬의 몸을 으스러질 듯 꽉 끌어안으며 소리 질렀다. “시, 시모온! 베히모스 전함을 이런 식으로 쓰는 거 맞아?” [나도 처음 시도해 봐.] “바보!” 시몬은 웃음을 터뜨리며 그녀의 몸을 안전하게 지탱해 주었다. [조금만 더 참아줘. 이제.] 끝없이 지면을 뚫고 전진하던 베히모스 전함의 끝에 마침내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밖이야.] 쿠르르르릉! 비로소 지면 한 귀퉁이를 뚫고, 베히모스 전함이 탈출에 성공했다. 거대한 암벽들이 떨어져 내리는 너머로 눈부신 태양이 보였다. “아!” 메이린이 탄성을 내지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깨끗할 정도로 푸르른 하늘이 보인다. 매일매일 보던 하늘이, 오늘처럼 이렇게 각별하게 보이던 적이 있었을까. 물론. 고개를 들면 손 닿을 거리에 보이는 그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손끝으로 피어의 투구를 밀어 올리며 얼굴을 드러낸 소년이 근사하게 웃었다. 햇빛이 내려오며 그의 얼굴을 더 잘 보이게 비추고, 바람에 청색 앞머리가 휘날린다. “무사해서 다행이야, 메이린.” 뭐라 형언하기 힘든 감정과 생각들이 휘몰아친다. 아마 죽을 때까지 오늘의 이 광경은 잊지 못하리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내려줄게.” 시몬이 무릎을 굽히며 조심스레 메이린의 다리가 바닥에 닿게 했다. 순간 내려가고 싶지 않다는 진한 아쉬움이 몰려오긴 했지만, 그래도 이제는 애가 아니니까. 메이린이 바닥으로 내려와 섰고, 시몬은 뒤를 돌아보았다. 바닥에 베히모스 전함이 뚫어놓은 커다란 구멍이 나 있는 게 보인다. “쥴!” 시몬이 마검을 검집째로 세워 든 채 흔들었다. “이쪽으로 와! 마검의 기운이 느껴지지?” 번쩍!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구멍 안에서 붉은빛이 일렁이고. 쿠화아아아아아악! 폭발적인 기운과 함께 쥴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확히는 쥴이 아니라, 완전히 쥴의 몸을 장악한 마검이었다. 터엉! 참격을 마구 흩뿌리며 하늘을 날아온 그가 베히모스 전함 위에 올라탔다. 그러곤 시몬을 노려보았다. [우리를 미끼로 쓰다니, 아직 힘이 남아 있다면 네 목부터 떨어뜨렸을 것이다.] “미안하게 됐어. 아까 중앙에서 버티는 건 쥴이랑 너밖에 할 수 없던 일이었어.” 그 와중에 태연하게 마검과 대화를 나누는 시몬이었다. 쥴의 마안이 시몬이 들고 있는 마검을 보았다. [그리고 그놈은 극도로 위험하다.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충고 고맙네.” 스스스스- 그때 천천히 마안이 감기며 쥴이 털썩 갑판에 쓰러졌다. 시몬과 메이린이 얼른 다가와 그의 상태를 확인했다. “괜찮아. 힘을 너무 많이 써서 잠시 정신을 잃었을 뿐이야.” 메이린이 말했다. 시몬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보다 우릴 쉽게 보내줄 생각은 없어 보이네.” 슈슈슈슈슈슈슈슈슉! 좁은 구멍 틈으로 시뻘겋고 출렁거리는 수십 개의 선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파이로 플라그로> 상아탑 출신답게 무슨 기술인지 파악한 메이린이 퍼득 외쳤다. “시몬! 플라그로 마법이야!” 가히 최악의 화염계 마법이라고도 불리는 기술이었다. 아무래도 내부에 있던 1군단의 리치들이 흑마법을 사용한 것 같았다. 구멍에서 빠져나온 붉은 선들이 주위로 넓게 흩어지더니 단숨에 전함을 향해 포망을 갖추듯 다가오는 모습은 퍽 공포스러웠다. “저건 피하거나 막지도 못해! 한번 타깃이 정해지면 끝까지 따라와서 상대가 재가 될 때까지 불태워!” “그래? 그러면-” 시몬이 손을 들어 올렸다. “적당한 타깃을 주면 되겠네.” <시몬 오리지널 – 강습대(強襲隊)> 촤아아아아아아아아! 전함 내부에서 쏟아져 나온 스컬윙들이 에메랄드빛으로 변하더니, 무서운 속도로 사출되었다. 그들은 하늘에서 몰려드는 플라그로를 향해 하나씩 빠르게 흩어졌다. 이내 강습대가 플라그로에 스스로 부딪히며 폭발했고. “돌아와!” 동시에 시몬이 손을 끌어당기는 동작을 취했다. 플라그로의 화염이 강습대를 불태우는 사이, 수십 기의 강습대의 몸통에서 소형 개체로 만든 소환마법진이 새겨진 두개골이 에메랄드빛 섬광에 휘감긴 채 돌아오고 있었다. 메이린이 놀라움에 입을 벌렸고, 시몬이 미소 지었다. <강습대 연계기 – 비상이탈> 촤아아! 촤아아아아아! 소형 개체로 만든 마법진을 잃으면 영구히 강습대 하나를 잃는 것이기에 시몬과 벤야가 고심을 거듭해 만든 탈출기였다. 소형 개체의 마법진이 무사히 돌아왔고, 플라그로도 모두 제거했다. [아아아아아아아!] 굴속에서 분노에 가득한 헥터의 외침이 들렸다. 시몬이 빙긋 웃으며 절대명령을 내질렀다. [성과는 거뒀어. 군단 전원 후퇴. 확보한 증거를 챙기고 일행들과 함께 마을에서 빠져나와.] 할 일은 필요 이상으로 해냈다. 뒤처리는 군단의 전력을 소모할 것도 없이 키젠에 맡기면 된다. 시몬이 새로운 통신 수정구를 들어 올렸다. “카쟌, 시몬이에요. 네프티스 님과 연락할 수 있을까요?” -……믿기지 않는군. 시몬의 보고를 들은 카쟌의 목소리에는 당혹감이 서려 있었다. 그야 당연했다. 마히할라라는 시골 마을에 역대 황제 중 한 사람의 무덤이 있었고, 거기서 1군단이 옛 황제의 병력을 언데드로 부활시키려고 한다는 소식을 들었으니까. 카쟌은 바로 본부에 해당 상황을 보고했다. 앞으로 수 시간 이내에 키젠 본부에서 직접 지휘할 마히할라 공략전이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시몬은 멀리서 전함을 탄 채 이동하고 있었다. 메이린과 쥴은 거의 쓰러지듯 누워 있었다. “쥴은 어때?” 시몬의 물음에 메이린이 어깨를 으쓱했다. “여전히 기절 중. 은근히 약골이네.” 두 사람이 킥킥 웃었다. “다시 한번 괜한 고생시켜서 미안해, 메이린.” “아니야~” 메이린이 웃었다. “네가 구해줬잖아. 그보다 시몬.” “응?” 메이린이 긴 머리를 휘어 넘기며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 “학교에 돌아가면, 주말에 같이 로체스트에 갈래?” 시몬이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웃었다. “좋아.” 태양이 점점 밝아지고 있고, 마히할라 곳곳의 하늘에 키젠의 텔레포트 마법진이 펼쳐지고 있었다. 잠시 경관을 바라보던 시몬이 고개를 내렸다. 뚜두둑. 뚜둑. 갑판에 놓여 있는 마누스의 두개골이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황제의 무덤이 있던 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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