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081화 얼마나 깊이 들어가고 있는 걸까. 어둠은 점점 더 짙어지고, 공기도 슬슬 평소보다 숨을 쉬기 불편할 만큼 희박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보통의 공간은 아니다. ‘……등 아파.’ 지면이 울퉁불퉁한 곳에서 끌차로 끌려가니 여간 고생하는 게 아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 어둠에 적응한 시야로 거대한 광장이 드러났다. 지금까지는 땅굴 같은 좁은 길목으로 이동해 왔는데, 이제 지하에 홀 같은 넓은 공간이 나타난 것이다. 곳곳에는 빈틈없는 금빛 갑주를 입은 자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빛을 고체로 응축한 듯한 창을 들었고, 갈기가 휘날리고 있는 투구 아래는 투명한 유리 같은 것으로 얼굴이 가려져 있었다. 메이린은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시몬의 이야기를 들어서 알았다. ‘1군단의 언데드 병사들!’ 그들은 일하고 있었다. 각종 장비를 이용해 벽을 뚫고 주위를 발굴하고 있었다. 벽을 일정 부분 뚫으니 그 안에 ‘관’ 같은 게 튀어나왔다. 그것을 끄집어내 뚜껑을 열고 유골을 확인한 뒤 대기하고 있던 광차에 실어 보냈다. 저렇게 끄집어낸 관들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메이린은 어깨를 파르르 떨었다. ‘그럼 이 공간 전체가 거대한 공동 무덤인 거야?’ 무덤의 발굴, 그리고 발굴한 유골을 어딘가로 끌고 가는 1군단. 아무래도 언데드로 만들려는 것 같았다. 살아 있는 사람 같다는 1군단 특유의 언데드 말이다. ‘……이상해.’ 암흑연합에서는 기본적으로 평시에는 인간을 언데드로 만드는 걸 금지하고 있다. 물론 그런 도의적인 부분을 떠나서 아무리 강한 인간을 언데드로 만들어도 전생의 힘을 제대로 이끌어내는 건 쉽지 않다. 백발백중 활을 잘 쏘던 죽은 사냥꾼을 좀비로 만들면 활을 제대로 잡지도 못하고, 세상을 호령하던 뛰어난 전술가를 스켈레톤으로 만들면 글자 하나 쓰지 못한다. 현대 네크로맨서의 소환수가 대부분 몬스터의 시체로 이루어지는 건 이유가 있는 셈이다. 몸에 각인된 동작보다, 뇌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는 인간의 시체는 효율이 떨어지니까. 물론 타락형 데스나이트나, 오러를 사용할 수 있는 기사로 만드는 듀라한 등 특수한 제조법을 사용하는 예외는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렇다. 그런데 지금. 저들은 오래된 지하무덤 속 유골들을 닥치는 대로 가지고 가고 있다. 메이린은 더 자세히 보려고 고개를 살짝 들었다. ‘대체 여기서 뭘 하는…… 앗!’ 그녀는 간신히 비명을 지르려는 것을 참았다. 그녀가 실려 가는 끌차의 머리 위로 거대한 해골이 로브 자락을 휘날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놀랍게도 리치였다. 이들도 다른 1군단의 병사들처럼 로브 위에 화려한 갑주를 걸쳤으며 유리 같은 지팡이를 들었다. 얼굴은 후드와 보호대로 가렸지만, 움직이나 동작이 아무리 봐도 사람 같다. 시몬에게 들은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영락없이 인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타입의 언데드. 1군단장은 대체 정체가 뭐야?’ 그때 앞에서 끌차를 끌고 가던 갑주 차림의 남자가 쓱 뒤를 돌아보았다. 메이린은 얼른 아무렇지 않은 척 드러누웠다. “이 여자, 방금 밖을 본 것 같은데.” “그럴 리가 없어. 마검에 정신을 장악당한 데다가 약까지 먹였다고.” 두근 두근 두근. 메이린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심장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는 않을까 두려웠다. “확인해 볼까.” 절걱. 남자가 메이린의 얼굴을 향해 팔을 뻗었다. 손이 점점 다가오자 겁에 질린 메이린이 이를 악물고 참고 있는 그때. [%&@^@!] 누군가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메이린에게 팔을 뻗던 남자가 쯧 하고 혀를 차고는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알았다고! 보채기는.” 그들은 확인하는 걸 그만두고 다시 끌차를 밀었다. 방금 누가 말했는진 모르겠지만, 메이린은 속으로 크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내 메이린이 도착한 곳은 어떤 제단 앞이었다. 몸이 저릿저릿한 칠흑이 이곳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두 기사가 메이린을 끌차에서 내리게 하더니, 양옆에서 그녀의 팔을 붙잡고 연행하듯 걸었다. 그녀는 조심스레 실눈을 떴다. ‘저건!’ 드디어 그토록 찾아 헤맸던 그 ‘마검’이 보인다. 검신이 상당히 길다. 중앙에 붉은 보석이 두 개 박혀 있고, 으스스한 기운을 사방으로 뿜어냈다. 그리고 익숙한 얼굴들도 있었는데, 첫날 밤에 사라진 요리사와 둘째 날 밤에 사라진 새신랑이었다. 요리사는 에너지가 다 빠져나간 미라처럼 비쩍 마른 몸뚱이로 제단 한쪽에 버려지듯 쓰러져 있었다. 그 옆에는 마찬가지로 비쩍 말라가는 새신랑이 마검을 한 손으로 쥐고 머리 위로 치켜든 채 우두커니 있었다. ‘……내가 어제 검 들면서 취했던 포즈인데, 이거 예행연습이었어?’ 저 마검을 든 새신랑이 상당히 고통스러운 표정인 게 신경 쓰였다. 그렇게 두 기사에게 끌려온 메이린은 마침내 마검 앞에 무릎이 꿇려졌다. ‘다리 차가워.’ 뒤로 손목이 묶인 밧줄의 감각을 느끼며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이대로 대기하다가 저 새신랑의 힘이 다하면 자신이 마검을 들 차례일 것이다. 마검은 계속해서 불길한 기운을 생성해 주위로 흩뿌리고 있었다. 자세한 원리는 모르겠지만, 마검의 힘이 이곳의 시체가 있는 곳을 밝히고, 1군단의 언데드들이 그 지점의 시체를 발굴해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 같았다. ‘요리사는 아직 살아 있어.’ 그녀가 쓰러진 요리사 쪽을 힐긋 확인했다. ‘더 늦기 전에 조치해야 해. 하지만…….’ 주위의 1군단의 병력이나 기사들이 너무나 많았다. 특히 리치는 상대하기 상당히 까다로운 상급 언데드였다. 정말로 나 혼자서 이길 수 있을까? 의문이 몸을 타고 흘렀지만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굳게 먹어야 했다. 쿵! 결국 새신랑이 한계에 달했다. 제단 바닥에 검을 꽂은 그가 말라비틀어진 채로 쓰러져 계단을 뒹굴었다. 임시 주인이 또 한 명 나가떨어지자 마검이 불길한 빛을 퍼뜨렸다. [나를 쥐어라.] 새 주인을 찾기 위한 마검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아까 데려왔던 기사들이 메이린의 손목을 묶은 밧줄을 자르고는 몸을 일으켜 등을 떠밀었다. 그러고는 자기들은 휘말릴까 봐 뒤로 빠르게 멀어졌다. ‘흥.’ 메이린은 한심하다는 듯 그들을 돌아본 뒤 천천히 마검의 앞으로 다가갔다. [가까이. 조금 더 가까이.] 그녀가 마검의 앞에 섰다. 경각심을 가지고 있으니 마검의 유혹에 저항하는 건 일도 아니다. 메이린은 여유롭게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지형지물, 바로 상대해야 하는 근처의 적, 남아 있는 적의 수. 그리고 얼마나 버티면서 어느 타이밍에 엘리멘탈 마스터 모드를 켤 것인지까지 계산했다. [나를 쥐어라.] 마검이 계속 유혹하고 있었지만, 메이린은 손잡이를 쥘 듯 말 듯 하면서 팔만 움직이고 있었다. 수상쩍게 생각하던 기사 한 명이 갑자기 챙! 하고 검을 뽑아 들었다. “역시! 저 여자! 아직 의식이 남아 있……!” <다크 플레어> 퍼어어어어어엉! 한때 메이린을 상징하던 칠흑 화염 마법을 날린 그녀가 빙그레 웃었다. “이미 늦었거든?” 기사가 불덩이에 부딪혀 바닥을 나뒹굴며 괴로워했다. 또 하나의 기사가 검을 뽑아 몸을 날렸다. 휘이이이이잉! 엄청난 돌진 속도. 순식간에 그녀의 앞에서 나타난 기사가 그녀의 머리를 향해 검을 내려쳤지만. 우뚝! 어느새 검에 딱딱한 서리가 껴 있었다. 검뿐만이 아니라 팔은 물론 갑주의 절반이 얼어붙어 있었다. <다크 글레이셔> “안됐네.” 그녀가 몸을 빙글 돌리더니, 마투 시간에 배운 멋들어진 발차기로 투구를 가격했다. 그의 몸이 한참을 날아가 바닥을 뒹굴었다. [Ⳗⴠⴀ!] [Ⳗⴠⴠⴀ!] 소란을 감지한 내부의 1군단의 언데드 병사들이 방패를 세우고 창을 치켜들었다. 내부의 병력들이 질서정연하게 움직여 그녀를 포위해 왔지만 메이린은 주눅 들지 않고 두 팔을 펼쳤다. 한 손에는 칠흑 화염계가, 다른 한 손에는 칠흑 빙결계가 맺혔다. “자신 있으면 와보든가!” 스스슥! 그런데 그녀의 왼손이 강제로 움직이고 있었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왼손이 흐릿한 채찍 같은 것에 휘감긴 채 강제로 마검 쪽으로 당겨지고 있었다. ‘이런!’ 저 멀리 흑마법을 쓰며 킬킬거리는 리치가 보였다. 그녀의 손이 마검에 닿았고. “!!” 주위가 일그러지며 시야가 시커멓게 물들었다. 무언가를 생각할 수도, 떠올릴 수도 없었다. 그렇게 그녀의 이성이 마검에 의해 정복되기 직전. 부웅! 몸이 크게 휘청했다. 찰나의 순간 발밑에 펼쳐둔 얼음에 미끄덩하며 중심을 잃은 그녀가 크게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녀의 손이 자연스레 마검의 손잡이를 놓치는 것으로, 메이린은 이성이 돌아오며 번쩍 정신을 차렸다. ‘됐어!’ 얼음에 숱하게 미끄러지던 경험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마검에 닿으려는 순간에 발밑에 얼음을 깐 자기 자신의 기지에 감탄하며 메이린이 몸을 일으켰다. 엉덩이가 좀 아픈 것 치고는 큰 성과였다. [Ⳗⴠⴀ!] 리치가 격분하며 지팡이를 휘두르자, 다시 한번 칠흑 채찍이 일어나 메이린의 몸을 휘감았다. 거의 강제로 마검에 닿게 할 생각인 것 같았지만 메이린은 급히 무영창으로 마법을 시전했다. <프로즌 아머> 꽈드드! 그녀의 몸이 그대로 얼음에 얼어붙었고. <연계기 - 강제 분쇄> 쩌어어어엉! 얼음이 깨져 나가며 그녀를 휘감은 채찍을 박살 내버렸다. 동시에 1군단의 병사들도 몰려오고 있었지만 연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점화> <연쇄 폭발> 얼음 파편 사이로 무수한 불꽃의 점들이 일렁이더니. 화르르르륵! 폭발했다. 얼음 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어 나가 다가오던 병사들의 갑옷을 찢거나 방패를 들게 하며 돌진을 강제로 멈추게 했다. ‘엘리멘탈 마스터만 켜면 두려울 게 없어!’ 키이이잉! 4원소의 빛이 일렁이며 그녀의 전신을 휘감기 시작했다. 하늘에 펼쳐진 마법진에는 오로라가 흘러나와 그녀의 머리 위로 챙이 큰 마녀 모자를 엮어냈다. <상아탑 고유 계승 – 엘리멘탈 마스터> ‘단숨에 지팡이까지!’ 덥석! 그러나 이번에는 바닥에서 리치의 팔이 직접 튀어나와 메이린의 팔을 붙잡았다. 아까부터 상당히 집요했다. 리치가 다시 한번 그녀의 팔을 억지로 마검의 손잡이 닿게 하려고 했다. ‘큭!’ 방심했다. 엘리멘탈 마스터를 켜느라 이런 건 생각 못 했다. 그녀의 표정이 공포와 절망으로 물드는 그 순간. -메이린! 머릿속에 시몬의 음성이 떠올랐다. 메이린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시몬?’ <군단기 – 비월> 그 순간.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뒤엉켰다. 포위한 채 몰려들던 1군단 병사들의 창, 날아오는 화살, 커다란 리치의 팔, 그 모든 것이 잘려 나간 채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무형의 망토가 크게 펄럭이며 공중으로 치솟았다가 다시 내려오는 순간. 절그럭! 절걱! 쿠웅! 모든 것이 바닥을 기고 있었다. 어찌 잊겠는가. 저 등을. 망토를 두른 커다란 등. 몇 번이고 상상한 그 모습이었다. ‘피온 님?’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번엔 하늘 위로 초대형 아공간이 지옥문처럼 열린다. 그 너머로 분노에 찬 함성을 내지르는 7군단의 모든 언데드들이 시커멓게 쏟아져 나와 주위의 1군단의 언데드들을 상대한다. 스르르르르릉! 피온이 가볍게 파멸의 대검을 휘둘러 쏟아지는 빛의 화살들을 모조리 찢어발긴 다음, 손에 든 마정석 덩어리를 하늘로 던져 올렸다. 즉시 연기에서 쏘아져 나온 용의 머리가 그것을 삼키더니 검푸른 브레스를 사방에 뿌렸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 다가오던 1군단의 병사들이 불타오르고, 무덤 전체가 초토화된다. 불을 뿜는 용 너머로 에이션트 언데드들이 안광을 번뜩이며 날아올라 1군단의 정예들을 상대한다. 도착한 지 고작 10초. 그 시간 동안 순식간에 전장을 장악했다. 메이린이 몸을 떨었다. 스으. 그때 군단장이 고개를 돌려 메이린을 돌아보았다. 해골 투구 너머로 소름 끼치는 시뻘건 안광이 뿜어져 나온다. 메이린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저……!” 메이린이 뭐라 말하려는데, 군단장이 몸을 던졌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메이린의 등을 노리고자 집요하게 지면에서 몸을 일으킨 리치의 두개골을 발차기로 걷어찼다. 두개골이 바닥에 떨어지고 군단장이 그것을 짓밟는다. 콰득! 한 번의 발길질에 거대한 금이 가고. 빠득! 꾸드득! 두 번의 발길질에 두개골이 완전히 박살 났다. 멈추지 않고 소환 마법진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 밟았다. 메이린은 그 무지막지한 폭군 같은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정말 피온 님이 시몬이라고?’ 진실을 알면서도 멍할 수밖에 없다. 그 순간 군단장이 살기를 흩뿌리며 다가왔다. 메이린이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친 그때. 덥석! 군단장이 메이린의 몸을 안았다. “!!” 메이린은 어깨를 떨었다.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거짓말처럼 그 품이 따뜻하고 포근했다. [다시는-] 그 살벌한 음성도 이제는 따듯하게 들린다. [네 목숨을 담보한 이런 작전, 하지 마.] 시몬 폴렌티아. 그리고 피온. 비로소 그 모든 이미지가 겹쳐지며 메이린의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져 나왔다. 전에 만났을 때는 못 했던 그 행동. 이번에야말로 메이린은 손끝을 들어 올려 피어의 투구를 밀어 올린다. 제일 먼저 날렵한 턱선이 보인다. 잘생긴 입술과 오뚝한 코가 드러나고 마침내. 걱정 가득한 시몬의 눈이 온전히 드러난다. 그녀가 눈물을 글썽이며 답했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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