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058화 철푸덕! 철퍽! 바닥에 펼쳐진 깔개 위로 베히모스의 장기와 부산물들이 콸콸 쏟아졌다. 그 모습을 본 상인들이 눈을 빛냈다. 마치 동공이 동전 모양이라도 된 것 같다. “머리가 뜨거울 지경이군! 베히모스가 시장에 나온 게 얼마 만이야!” “이렇게 다 합쳐서 200골드 주겠소!” “나는 300골드!” 초승섬 곳곳에서 장사판이 벌어졌다. 사실 베히모스의 뿔과 외피 같은 특정 부위는 상당히 고가에 팔린다. 겉보기엔 쓸데없어 보이는 부위라도 그것이 베히모스의 부산물이라면 네크로맨서들이 언데드 재료로 어떻게든 사용하니, 수요는 늘 있는 편이다. 하지만 베히모스 사냥은 위험하기도 하고 하는 사람도 없기에 늘 공급만 적던 상황. 그런데 이번에 그 물량이 한 번에 풀리고 있다. 상인들의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상인들 사이에서 경매가 열리고, 숱한 경쟁이 붙었다. 학생들도 괜찮은 가격에 물건을 팔 수 있었다. 초승섬 원주민들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런 뼈 부산물이나 내장 같은 걸 왜 저렇게 비싸게 사는 거지? 이해가 안 돼.” 같이 있던 에슈가 훗 하고 웃었다. “키메라 제작의 핵심이니까.” “키메라?” “그런 게 있어! 언데드 공학 인공생물이랄까?” 어찌 됐건 그냥 버려야 할 물건을 돈을 받고 팔게 됐으니 학생들도 적극적으로 판매에 임했다. 수염이 길쭉하게 난 상인이 금화 주머니를 들어 올렸다. “이 베히모스의 신장은 20골드 주겠소!” 한 여학생이 으음- 하고 눈을 게슴츠레 떴다. “다른 부위들 시세는 100골드가 넘는 것 같은데…….” “허허! 베히모스의 신장은 거의 쓸 데가 없소! 아가씨도 한번 생각해 보시오! 이런 걸로 무슨 언데드를 만들겠소!” 상인이 깔개 아래의 시커먼 덩어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무리 봐도 그냥 먹물을 뭉쳐놓은 것 같은 외형. 여학생이 큿흠 하고 헛기침했다. “그나마 영양가가 풍부하니 몬스터 농장에 사료 정도로 쓰이는 거요! 20골드도 많이 쳐줬소이다! 내 아가씨가 아름다우시니 25골드로 쳐드리리다!” “그럼 그럴까요.” 결국 고민 끝에 여학생이 돈 주머니를 받으려 팔을 뻗는 그때. “스토옵.” 갑자기 상인의 등 뒤에서 그늘이 드리워졌다. 어느새 나타난 딕이 인상을 팍 구기고 있었다. “어이쿠, 깜짝이야!” “잘 모른다고 이렇게 가격을 후려치면 되겠습니까. 상단주님.” 딕이 여학생 쪽을 향하며 손가락을 휘휘 저었다. “베히모스의 신장은 티버시 포션의 재료로 쓰여. 본래는 베히모스가 아니라 오우거로 대체하고 있는데, 베히모스 재료가 들어간 건 효능이 좋아서 가격이 월등히 높지. 핵심 부산물이야.” “포션의 재료구나!” “그래! 그러니까 제대로 값을 받아야겠지?” 딕이 실실 웃으며 네 손가락을 펼쳤다. 상인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아, 알겠소 40골드에 합……!” “정가 400골드요. 누굴 후려치려고.” 결국 상인이 크흑 하고 입맛을 다시며 400골드를 지불했다. 여학생이 믿기지 않는 듯 큰돈을 받고 좋아하자, 딕이 엣헴 헛기침을 하며 옆으로 다가왔다. “25골드에 넘길 걸 400골드로 불려줬는데 내게 떨어지는 건 뭐 없을까?” “……그럴 줄 알았지. 어쨌건 도와준 건 고마워. 네 몫이야.” 딕은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소환학과 동기들이 상인들의 혓바닥에 넘어가지 않고 정가로 팔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물론 자신의 수완으로 수고비를 살짝 챙기기는 했다. “심장과 폐는 혹여나 절대 팔지 않도록 해라.” 소환학과의 교수 아론도 나섰다. 소환학도가 자금에 무엇보다 민감한 걸 알았기에 순순히 이번 거래를 허용했지만, 절대 팔지 말아야 할 재료들을 정리해서 학생들에게 알려주었다. 딕도 손바닥을 비볐다. “거래 금지 목록 작성하고, 돌아가는 길에 한 번 더 확인하겠습니다. 아론 교수님.” “부탁하지.” 자금이 들어오고 가슴이 든든해진 건지, 학생들의 베히모스 작업에도 조금 더 힘이 붙었다. 시몬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뿌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역시 학생회장.” 피츠제럴드가 안경을 추켜올리며 다가왔다. “베히모스 완성까지 앞으로 돈 들 일이 많을 텐데, 덕분에 다들 부담을 덜었다. 고맙다.” “아냐, 난 아이디어만 냈고 전부 딕이 준비한 건데 뭘.”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딕이 주도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동기들이 딕이 아니라 시몬에게 감사 인사를 하러 온다는 점이었다. -키젠 오래 다니다 보니 저 사기꾼이 도움이 되는 일도 있네. -그러니까 말야. 대체로 딕에 대해서는 이런 반응. 시몬이 땀을 삐질 흘리며 피츠제럴드를 보았다. “근데 다들 딕에게 당한 게 많은 것 같다?” “두말하면 잔소리.” 안경테를 붙잡은 피츠제럴드의 손이 한 차례 떨렸다. “그 녀석이 내 세이렌 키메라의 약점에 대한 정보를 마구 팔아댄 이후로, 한때 내 결투평가 승률이 급감했던 적이 있었다.” “아.” “심지어 시험 출제에 대한 핵심 정보를 녀석에게 구매했다가, 전혀 다른 내용이 시험에 나오는 바람에 시험을 망친 적도 있었지.” 뭔가 쌓인 게 많이 보이는 피츠제럴드였다. “그, 그건 안됐긴 하지만 외부 시험 정보를 사는 건…….” “안다. 전부 내 탓이지. 하지만 누구나 그랬듯 1학년때는 절실했으니까. 결론은 키젠 생활을 한 녀석들 중에 딕 헤이워드에게 사기나 손해를 보지 않은 학생이 없을 거란 사실이다.” 피츠제럴드가 슬쩍 시몬을 바라보았다. 시몬은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없는데? 1학년 때부터 도움을 받았으면 받았지.” “의외로군.” “내가 딕에게 사기를 안 당한 게?” 피츠제럴드가 고개를 저었다. “그 녀석이 ‘친구’로 생각하는 사람이 한 명은 있다는 사실이 의외란 이야기다.” 그 말을 들은 시몬이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든 물건값을 깎으려는 상인을 압박하며 정가로 되돌리려는 딕의 얼굴에는 유쾌한 웃음기가 가득했다. * * * 어느 정도 베히모스 부산물 판매가 끝난 뒤, 아론이 학생들을 불러 모아 입을 열었다. “주목. 다행히 이번 거래로 각자 자금이 확보됐을 테니, 미뤄왔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아론이 문서를 펼쳐 들었다. “너희도 알겠지만 언데드 육체 구축 같은 기본 작업은 공동으로 진행한다만, 그 이후의 작업은 개인의 성향에 따라 달라질 거다.”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후반부 작업은 본인이 만들 베히모스 전함의 컨셉에 맞춰, 어떤 종류의 기능이나 마법진을 장착할 것인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베히모스의 방대한 칠흑 에너지를 이용하여 전함 자체가 화력을 담당하는 ‘주포형’ 베히모스의 경우, 골조 및 뼈 강화 작업은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게 들어가는 대신 주포를 구축하기 위한 막대한 구축 작업이 필요하게 된다. 이 주포형으로 예를 들자면 본체에 ‘무기’를 장착하는 느낌이기 때문에, 학교 수업에서 진행하기보다는 네크로맨서 엔지니어의 도움을 받는 게 효율적이다. 반드시 술사가 관여하지 않아도 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다른 베히모스들도 학생들의 옵션에 따라 추가 비용을 더 넣거나 줄일 수 있다. 뼈의 강도 강화 작업을 얼마나 할 건지, 어떤 재료를 사용할 건지, 어떤 기능을 넣을 건지, 이는 개인의 성향과 취향이 갈리는 부분이기에 학교 수업에서 공통적으로 진행하기에는 문제가 많았다. “물론 교내에서도 언데드 공방과 제작툴을 사용할 수 있다. 키젠 학생은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겠지만,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베히모스 전함이 완성되겠지. 너희들의 개성을 부여하고 싶다면 언데드 제작 장인이나 엔지니어를 찾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베히모스 전함을 강화하기 위해, 돈을 쓰고 싶으면 쓰라는 이야기였다. “아직 골조 작업까지 시간이 남았지만, 미리미리 사람과 물건을 섭외해 놓으라는 의미에서 이야기했다. 알아두도록.” “네! 교수님!” 학생들이 즉각 떠들썩해졌다. 수첩을 꺼내거나 연락처를 뒤지곤 했는데, 키젠 3학년 정도 되면 자신의 단골 언데드 공방이나 관련 커뮤니티 정도는 보유하고 있었다. 다들 여러모로 고민하는 모습이다. “시몬.” 그때 딕이 실실 웃으면서 다가와 통신 수정구 하나를 휙 던졌다. 시몬이 팔을 뻗어 그것을 받았다. “이게 뭐야?” “네가 원하는 것.” 딕은 그렇게만 말하며 히죽 웃었다. “거리가 워낙 멀어서 통화 중에 잡음이 있을 수 있겠지만 연락은 될 거야. 장거리 전용 통신구거든.” “?” 시몬은 의문을 가지고 통신 수정구를 작동시켰다. 중간에 여러 번 통신이 거쳐지는 듯한 음성이 들리다가 이내 새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네! 벤야 바닐라 직통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시몬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벤야 선배님!” * * * 시몬은 바로 벤야와 이야기를 나누고 약속을 잡았다. 키젠을 졸업했지만 벤야의 활기찬 성격은 여전했다. 현재는 언데드 공방 바닐라 그룹의 부회장이 되었지만, 여전히 언데드 제작을 계속하고 있다고. 이번에는 베히모스 전함 개조를 의뢰하고 싶다는 시몬의 말에 벤야의 목소리에도 화색이 돌았다. 맡겨준다면 꼭 자신이 맡아서 해보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구체적으로는 어떤 베히모스 전함을 생각하고 있어? “아, 네! 베이스는 군단화된 언데드 전함이지만, 여기서 제 오리지널 흑마법을 적용하고 싶은데요!” 시몬은 자신이 생각한 컨셉을 말했고, 벤야는 숨소리도 내지 않은 채 이야기를 들었다. 이내 감탄성을 터뜨리며 말했다. -매번 느끼지만 천재는 천재구나? 바로 견적을 준비해 볼게! “감사합니다!” 이번 초승섬 일정이 끝나면 바닐라의 공방으로 가기로 약속을 잡았다. 그곳에서 마무리 작업이 끝나면 내가 커스텀한 꿈의 베히모스 전함을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통화를 마치자마자 아론이 다가왔다. “바닐라 측과 합동 작업을 하기로 했군.” “네, 교수님!” “현명한 판단이다. 바닐라는 비싸지만 늘 그럴 만한 가치는 하지. 그보다 합동 작업 전에 군단형 전함 상태를 체크해 보고 싶다만.” “바로 가시죠!” 시몬과 아론은 바로 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지역으로 왔다. 초승섬에 위치한 한 습하고 어두운 절벽 아래. 그곳에서 시몬의 베히모스 전함이 준비 중이었다. 시몬과 헥토르는 다른 학생들과 조금 다른 형태의 베히모스 전함을 준비하고 있다. 소환형 전함이 아니라 군단형 전함이 베이스였으니까. 혹시 모를 사태에 배치한 7군단의 언데드 병력을 지나 도착하니, 쩍 벌어진 베히모스 뼈의 형체 안으로 오염된 마나가 고여가고 있다. 일반적인 자연형 언데드의 탄생을 재현하듯, 자연형 언데드의 코어를 형성하는 작업이었다. 베히모스는 워낙 덩치가 거대하기에 이런 작업을 거치는 것이다. 아론이 턱을 쓸었다. “코어의 크기가 아직은 작지만 순조롭군.” “네! 크기가 커지기 시작해서 자연형 언데드처럼 되면, 바로 군단화로 넘어가려구요.” “전함의 컨셉은?” 시몬이 바로 자신의 청사진을 설명했다. 근처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주워서 그림으로 그려가면서 열정적으로 이야기했다. “교수님이 말씀하신 소환형과 군단형, 양쪽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베히모스를 만들 겁니다. 평시에는 군단형 언데드지만, 제가 베히모스 쪽을 향해 손을 뻗으면-” 시몬이 손을 척 뻗어서 베히모스를 가리킨 시늉을 한 뒤에 설명을 더했다. “네! 이렇게 소환형이 되고, 제 오리지널 흑마법을 비롯한 내장된 기능이 발휘되도록 할 겁니다.” “어떤 기능을 추가할 생각이지?” 그렇게 시몬의 이야기를 듣던 아론이 특유의 힘 빠진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론상 무적이군.”
Please login to track prog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