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056화 쾅! 시몬의 발길질에 걷어차인 베스티올라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컥! 커흡! 소리를 내며 입에서 피 섞인 침을 흘렸다. [멀었다.] 시몬이 저벅저벅 다가왔다. 다시 한번 다리를 들어 올리자, 베스티올라가 입에서 피를 튀기며 발악 같은 외침을 내질렀다. “자, 잠깐! 나는! 중립지대 오르자바의 영주 베스티올라다!” [……?] 시몬은 계속 지껄여 보라는 듯 동작을 멈추었다. 베스티올라는 다급히 증명서를 들어 올렸다. “암흑연합민이 중립지대인을 공격하는 건 중립지대 협약에 어긋난다! 무엇보다 바이트론 영지에 쳐들어와서 이곳의 고용인들과 차남인 나를 해하려고 해? 이걸 그냥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나!” 시몬이 말이 없자, 베스티올라는 자신감이 붙었는지 목소리를 높였다. “나를 건드리면 네놈은 끝이다! 사람들은 배신의 군단장이 본색을 드러냈다고 생각하겠지! ‘배신’의 본색 말이다! 네가 결사를 쥐어패면서 쌓아온 그 얄팍한 이미지도 한 번에……!” [잠깐.] 베스티올라는 도중에 말을 끊는 시몬의 행동에 그를 바라보았으나, 돌아온 것은 제 안면을 향해 오는 시몬의 발바닥이었다. 쩍! 하는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베스티올라가 코에서 쌍코피를 뿌리며 나가떨어졌다. [하던 건 마저 해야지.] “크흑! 끅!” 베스티올라가 눈물을 줄줄 쏟아내며 입가를 더듬거렸다. 이빨 몇 개가 후두둑 바닥에 떨어졌다. [사무관답게 행정과 법률 쪽으로 빠질 궁리를 하는 건가. 나쁘지 않아.] 베스티올라가 꺼이꺼이 웃어댔다. “그래! 얼마든지 죽여봐라! 너는 이제 무고한 영주를 죽인 최악의 범죄자로 정식 군단장 자격이 박탈당하고, 목에 현상금이 걸릴 테지! 죽음의 마녀도 너를 잡으러 움직일 거고, 키젠의 눈치만 보며 입맛만 다시던 네크로맨서들이 군단장의 자격을 노리고 덤벼들 거다! 네 군단은 영역을 잃고 떠돌이 신세가 되다가 사라지겠지! 네가 쓰러뜨린 5군단의 매그너스처럼 말이다!” 내가 배신의 군단장을 잡았다! 비브론도 못 잡은 배신의 군단장을 내가 잡은 거나 다름없다! 베스티올라는 그렇게 말하며 텅 빈 앞니를 드러낸 채 하하하! 웃었다.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네가 중립지대 오르자바의 영주라고?] 시몬이 품을 뒤적거리다가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그건……!” 이 서류에는 오르자바의 영주가 유리테스 파벌에 각종 이권을 주고 거래를 허용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물론 서명은 ‘영주 대리의 사무관’, 즉, 베스티올라의 것이었다. ‘다들 조사하느라 애써줬지.’ 지금 키젠 학생들은 부상당한 몸을 이끌고 오르자바의 영주성을 비롯한 모든 장소를 샅샅이 뒤지고 있다. 시몬이 나선다니 다들 열심히 베스티올라를 잡아낼 증거를 찾아내 주었다. [결사의 약물을 유통하던 유리테스는 모든 걸 실토했다.] 시몬이 다음 서류를 그의 발밑에 떨어뜨렸다. 의자에 묶여 있는 유리테스의 마력 촬영구 사진과 그의 발언이 나와 있었다. <우리는 결사로 추정되는 자들의 지원을 받았으며, 신성연방과 중립지대에서 오는 재료들을 배합하여 통칭 ‘결사의 약물’을 조제한 뒤 일반 포션병에 담아 각 지역에 납품했다.> 베스티올라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페이지를 다음 장으로 넘겼다. <이 모든 건 사무관 베스티올라의 허가와 주도 아래 이루어졌다.> “이, 이건 거짓이다! 조작된 서류야!” 얼굴이 시뻘게진 베스티올라가 서류를 벅벅 잡아 찢으며 발악하듯 소리 질렀다. “그래! 그 상아색 머리카락의 여자! 그 여자가 내게 손을 썼던 것처럼 유리테스에게도 거짓 진술을 강요한 게 틀림없어! 네크로맨서 특수 범죄로 키젠 측의 수사를 요청하겠다!” [거짓 진술이라.] 시몬이 피식 웃으며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아까부터 웅웅 울리고 있던 통신 수정구를 꺼내서 작동시킨 뒤, 피어의 투구를 살짝 밀어 올렸다. “늦게 받아서 미안해요, 카쟌! 어떻게 됐어요?” 이내 통신 수정구로부터 낮은 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 말대로였다. 우리 도둑길드가 베스티올라가 보유한 암흑연합 내 창고에서 대량의 물건들을 확보했다. 바로 같은 시각. 지하실에서 시몬의 통화를 받고 있는 카쟌이 눈 밑을 벅벅 긁으며 시몬과 통화하고 있었다. 지하 공간에는 여러 손톱자국이 어지럽게 그려져 있었고, 얼굴이 탱탱 부은 용병들이 밧줄에 묶인 채 꿇어앉아 있었다. 그리고 도둑길드의 조직원들이 돌아다니며 확보한 물건을 끌차에 실어 밖으로 옮기는 중이었다. 카쟌은 걸어가며 근처의 포대를 툭툭 발로 찼다. “단순한 곡물로 위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결사의 약물 원액이었다. 이쪽의 맹독학 전문가로부터 교차 검증이 끝났다.” -수고하셨어요 카쟌! 매번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카쟌이 고개를 까닥했다. “별 이야기를 다 하는군. 널 돕는 게 내 일이다.” 다시 바이트론 저택. 카쟌과 통화하던 시몬이 빙글빙글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학교에서 봐요. 좋은 와인 가지고 마투학과 기숙사 옥상으로 갈게요.” -……와인, 거절하지 않지. 카쟌과의 통화를 마친 시몬이 다시 손끝으로 피어의 투구를 내리며 베스티올라를 바라보았다. [이제 상황 파악이 됐나?] 베스티올라가 흠칫했다. 학교 지인과 통화할 때는 밝고 활기찬 소년의 목소리였다가, 다시 그 꿈속에서 나올 듯한 공포스러운 목소리로 바뀌어 있었다. [한 가지 더. 주민들에게 네 영주직이 곧 박탈될 거라고 말하니, 네가 영주 아들을 밀어 베히모스의 입 안으로 떨어뜨리는 광경을 봤다는 목격자들이 나타났다. 그들 모두 증언해 주기로 했다.] “아, 아니야!” [이제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은 없겠지. 온갖 권리와 특혜로 세상을 조롱하던 너도 대가를 치를 때다.] “가, 가까이 오지……!” 아아아아아악! 저택에 베스티올라의 비명이 오랫동안 길게 울려 퍼졌다. * * * 주먹으로도 펜으로도 완전한 승리. 시몬은 핏덩이가 된 베스티올라를 볼드윈 왕국 내 키젠 지부에 던져놓고 그를 체포하도록 했다. 결사의 약물 사건의 관계자라고 하니 그곳에 근무하던 까마귀 요원이 입이 찢어져라 웃으며 반겨주었다. 그리고 주변에 상주하고 있던 기자들이 즉시 시몬의 사진을 마력 촬영구로 촬영하고, 그날 저녁에 기사가 나왔다. <배신의 군단장, 숨 가쁘게 새로운 공적 추가! 중대 혐의자인 결사의 일원 체포!> <용의자는 중립지대 사무관이자 바이트론 가문의 차남. 결사의 일이라면 고위 가문도 거침없이 박살 내는 군단장의 결단!> 그리고 피어의 본아머를 입은 시몬이 핏덩이가 된 베스티올라의 옷깃을 붙잡은 채 질질 끌고 가는 모습이 대문짝만하게 신문에 실렸다. -대단한데! 정식 군단장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또 해냈어! -다른 건 몰라도 결사 문제만큼은 일 처리가 확실한걸.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던 역할을 해내니 대중들도 크게 환호해 주었다. 결사의 대항마라는 이미지도 더더욱 강화될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 시몬은 다시 텔레포트 마법진과 비공정을 번갈아 타면서 아론이 있는 중립지대의 초승섬에 복귀했다. 혹시나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으면 어쩌나 했는데. “어서 와, 회장!” “시몬!” 동기들은 벌써 수영복 차림으로 폭포 수영장에서 뛰놀고 있었다. 베히모스가 오다 말아서 그런지 별장들도 모두 무사하다. 다들 활짝 웃거나 손을 흔들며 반겨주고 있었다. ‘너희들도 참.’ 시몬도 놀고 있는 동기들을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왔나, 회장.”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첸드라가 반겨주었다. “몸은 괜찮아? 첸드라.” “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그보다.” 그가 손바닥을 펼쳤다. “약속 지켜줘서 고맙다.” 시몬도 씩 웃으며 그의 손에 하이파이브를 하고 지나갔다. 주위에는 여러 모습이 보였다. 저 멀리서는 수업 진도가 밀린 도시 팀 학생들이 아론에게 수업을 듣는 모습이 보였고, 별장이 파괴되지 않아 싱글벙글한 얼굴의 별장 관리원이 과일주를 쟁반에 받쳐 들고 학생들을 위해 서빙하고 있었다. 다들 큰 전투를 치렀고, 베히모스도 확보한 뒤라 기분이 풀려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전과는 다른 광경이 하나 보였는데. “이거! 머리띠라고 해! 머리띠!” “븨리띄!” 폐쇄적이었던 초승섬의 원주민들이 이곳에 머물며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었다. 에슈가 마구 손짓하며 대륙어를 가르쳐 주었고, 세 명의 비슷한 나이대 소녀들이 눈을 반짝이며 따라 하고 있었다. 몇몇은 불판 위에 고기를 굽는 피츠제럴드 앞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기다리고 있었고, 커다란 물웅덩이 위에는 키젠 학생과 원주민들의 헤엄 경주가 벌어졌다. “시몬.” 등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시몬이 뒤를 돌아보았다. 알리타가 뒷짐을 진 채 웃는 얼굴로 걸어오고 있었다. “아! 알리타!” “어서 와, 내 포용의 맹약자.” 두 사람이 서로 악수하며 인사했다. 이내 주위를 산책하듯 가볍게 같이 걸었다. “다친 곳은 없어? 알리타.” “응, 덕분에.” 시몬이 슬쩍 그녀의 몸에 그려진 기하학적 무늬를 바라보았다. “그거 아직 안 지웠네.” “물로 잘 지워지지도 않고, 내친김에 ‘족장’의 상징으로 하려고. 네 말대로 공물이었던 족장으로서 여길 이끌어 나갈 거야.” 그렇게 말한 그녀가 훗 하고 웃으며 옆을 돌아보았다. 키젠 학생들과 허울 없이 어울리는 원주민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비브론이 결사이자 흑막이었다는 사실을 말해도 주민들을 설득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들 베히모스가 더 오지 않는 걸 보고 믿어줬어. 이제 죽음이 의무가 아니게 됐으니까. 늘어난 수명 동안 우리가 뭘 할 수 있고 뭘 해야만 하는지 고민해 볼 거야.” “잘됐네.” 시몬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희소식이 있어. 알리타.” “?” 시몬은 베스티올라가 결사 관련 문제로 체포되었고, 영주직이 박탈당한 것을 알리타에게 알려주었다. 다음 영주는 오르자바의 수비 사령관. 그는 주민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려고 한 강직한 인물인 만큼, 충분히 좋은 영주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누가 되든 베스티올라보단 나으리라. “암흑연합도 이에 동의하고, 새 오르자바의 영주에 힘을 실어주는 대신 한 가지 조건을 걸었어.” 시몬이 검지를 세웠다. “초승섬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외부인으로부터 지켜줄 것.” “아……!” 알리타의 동공이 흔들렸다. “왜 이렇게까지 도와주는 거야? 우리는 아무것도…….” “보답을 바라고 한 일은 아니야.” 시몬이 시원스레 웃었다. “우린 결사를 잡기 위해 움직였고, 초승섬은 이에 협력했어. 당연히 따라오는 부수적인 결과라고 생각해. 우리가 노력해서 이루어진 게 아니라 잘못된 것들이 잘 바로잡힌 것뿐이지.” 그녀가 눈가를 쓱쓱 비볐다. “아, 진짜 안 울려고 했는데.” “하하하.” 시몬이 보기엔 마냥 동생뻘인 소녀인데, 저렇게 어른스러운 척하고 있으니 기특했다. 이내 알리타가 말했다. “정말 고마워, 시몬 폴렌티아.” “시몬! 알리타!” 저 멀리서 수영복 차림의 에슈가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복귀하기 전에 같이 놀자!” “응, 갈게.” 두 사람이 함께 폭포 위에 펼쳐진 자연 수영장으로 달려갔다. 평화로운 한때였다. * * * 움직일 수 없는 부상자 두 명은 로크섬 병동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다행히 깨어났고, 이들은 아론이 추가 보충수업을 해주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남은 인원은 초승섬에서 조금 더 머무른다. 알리타와 원주민들도 물론 협조해 주기로 했다. “그럼 지금부터.” 아론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언데드 베히모스 전함의 제작을 시작하겠다.” 학생들이 결연한 눈으로 손을 풀었다. 그들의 앞에는 각기 산더미만 한 베히모스의 사체가 하나씩 바닥에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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