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042화 역사적으로 피의 각축장이었던 중립지대에는 여러 토착 무장 세력이 존재했다. 그중에서도 ‘결사의 약물’을 암시장에 유통하는 것으로 유력 세력으로 떠오른 유리테스파. 그런 그들의 아지트인 비밀 저택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퍼질러 앉아 있었다. “이것들 왜 이렇게 늦어?” 1층에 각종 암시장에 납품되는 물건들이 가득 놓여 있는 가운데, 머리가 삐쭉하게 솟은 사내가 손목에 찬 시계를 툭툭 두들겼다. “제때 물건 납품 못 해서 생기는 손해는 누가 책임질 거냐고. 어?” “유, 유리테스.” 삐딱하게 앉아 시가를 태우는 여러 남자들 중에서, 뚱뚱한 몸집의 남자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다가왔다. “어제오늘 심상치가 않아. 너도 알잖아! 갑자기 애들이 하나둘씩 연락 두절되고 있다는 거. 우리도 슬슬 손 떼고…….” 쨍! 유리테스가 테이블에 놓인 컵을 붙잡아 내팽개쳤다. 쨍그랑 소리와 함께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손을 떼? 이제 와서?” 그가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왜 그래야 하지? 이 도시의 실권자들은 모두 우리 돈을 먹고 있다! 실체도 모르는 놈들한테 왜 우리가 겁먹고 빌빌거려야 하냔 말이다!” “진정해 대장.” 다른 남자들이 유리테스를 말리고 있는 가운데, 구석 벽에 쪼그려 있던 입가의 긴 흉터의 남자가 시가를 태우다가 ‘응?’ 하는 표정을 지었다. “뭐시여 이거.” 벽면에 처음 보는 지네 같은 게 스르륵 지나가고 있었다. “이런 희한한 생물이 오르자바에 살았던감.” 유리테스가 그것을 보고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외쳤다. “제길! 도망쳐라!” “엉?” 푸화아악! 이미 늦었다. 지네가 뒤꽁무니로 독무 같은 것을 뿜어냈다. 근처에 있던 조직원들이 ‘윽’ 하는 소리를 내며 코와 입을 틀어막았다. “키젠이다.” 쾅! 대뜸 저택 문을 박살 내며, 로브 차림의 남학생이 쓰러진 문지기의 멱살을 붙잡은 채 질질 끌고 왔다. 이내 반대쪽 손으로 키젠 마크가 새겨진 수첩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결사와 연관된 용의자들을 전부 체포하겠다.” 그 뒤로 수많은 학생들이 앞으로 뛰어나오며 손가락을 뻗었다. <바운스(Bounce)> <패럴라이즈(Paralyze)> 연달아 저주가 섬광처럼 쏟아지며, 이에 얻어맞은 조직원들이 튕겨나가거나 테이블에 부딪히거나 쓰러졌다. 그대로 돌처럼 굳는 자들도 있었다. “가라!” “싹 다 붙잡아!” 뒤이어 학생들 사이로 무장한 스켈레톤들이 뛰쳐나왔다. 독연기 속을 가볍게 통과한 언데드들이 조직원들을 쓰러뜨리고 제압했다. “어, 언데드다!” “튀어!” <본 프리즌> 철컥! 철컥! 바가지 머리의 남학생이 손짓하자, 몇몇 스켈레톤들은 그대로 뼈로 분해되어 조직원들의 팔을 붙드는 수갑이 되었다. 창문을 깨고 나가려는 자들도 있었지만 한발 빠르게 뼈들이 날아가 창문에 창살을 쳐버렸다. “나머진 뒷문으로 나가!” 유리테스가 그렇게 외치며 계단으로 올라갔다. 그 말을 들은 조직원들이 얼른 뒷문으로 빠져나가려는데. 쿵! 문이 박살 나며 날렵한 갑주를 입은 기사형 언데드가 안광을 번뜩이고 있었다. 손에는 빛나는 펜싱소드를 세워 든 채 멋들어진 자세를 취했다. 조직원들이 겁에 질린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이, 이거 설마 그거 아니지?” “데스……!” 촤아아아아악! 문답무용. 뒷문으로 도망치려던 조직원들이 몸에서 피를 쏟아내며 쓰러졌다. 1층의 사람들을 순식간에 제압한 학생들이 휴우 하고 한숨을 쉬었다. “유리테스는?” “위로 올라갔어! 쫓아!” 그사이 유리테스는 헉헉 숨을 헐떡이며 빠르게 비밀 저택의 상층으로 뛰어 올라왔다. “무슨 소란입니까 보스!” 상층에 상주하던 한 무리의 조직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유리테스가 외쳤다. “키젠! 키젠 놈들이다! 데스나이트 서머너도 있어! 그분들께 받은 장비로 전부 죽여라!” “그, 그건 며칠 뒤 이 도시에 쓰려던 게…….” “상관없어! 다 죽여!” 유리테스가 다시 계단을 올라가고, 조직원들은 방 중앙에 놓여 있는 커다란 천을 걷었다. 금속으로 이루어진 두 기의 골렘이 기긱거리는 소리를 내며 중앙에 마법진을 번쩍 빛냈다. “마력 포격 준비해.” “그냥 바닥 조준하고 아래층으로 바로 쏴!” 두 기의 골렘이 가슴을 세우고 마법을 준비했다. 조직원이 즉시 작동 스위치를 눌렀으나. 피쉬익! 바람 새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주위의 남자들이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머리 없는 거구의 언데드 하나가 대검을 들어 올린 채 골렘의 앞에 서 있었다. 골렘이 아무리 출력을 일으키려 해도 소용없었다. “마, 마법이!” 코어를 개방한 조직원이 마법진을 펼치려고 했지만 전부 허물어졌다. 아니, 저 머리 없는 언데드에게 칠흑과 마나가 빨려들어 가고 있었다. “마법을 쓰고 싶다면 듀라한이 접근하도록 두지 마라.” 듀라한의 뒤에서 나타난 키젠 학생, 피에르 버클러가 슬쩍 웃었다. “업계 상식인데, 비네크로맨서들은 잘 모르려나.” 서걱! 콰드득! 듀라한이 대검을 젓가락처럼 휘둘러 금속 골렘을 박살 냈다. 다른 한 손에 들린 듀라한의 얼굴이 길길거리는 소리를 내며 웃고 있었다. 중립지대 거리를 주름잡은 어두운 조직, 그들의 비밀 저택 전체가 키젠의 네크로맨서들에게 농락당하고 있었다. “허억! 헉!” 모두가 제압당하는 동안, 보스인 유리테스는 저택의 끝까지 올라와 있었다. 그가 다급히 창가를 열어젖히며 통신 수정구를 들어 올렸다. “여기는 유리테스! 키젠에게 습격당했다! 즉각 도움을 요청한다!” 통신 수정구는 먹통이 된 것처럼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그가 발악하듯 비명을 내지르며 통신 수정구를 바닥에 내던져 박살 낸 뒤, 창가로 올라와 뛰어내릴 준비를 했다. “?!” 그런데 갑자기 눈앞으로 시커먼 게 지나갔다. 다닥다닥 모여 있는 비늘 같은 것이었다. ‘뭐야? 방금!’ 제 눈을 의심한 유리테스가 삐걱거리며 고개를 돌렸고. 크르르르르! 어디 고전 동화에서나 볼 듯한 거대한 검은 용이, 저택의 상층을 뱀처럼 휘감고 있었다. 이내 천천히 그것의 고개가 내려오더니, 창밖으로 빠져나가려던 유리테스를 파충류 특유의 일자 동공으로 쳐다보았다. “아아아아아아악!” 비명소리와 함께 그의 시야가 붉은색으로 뒤덮였다. * * * 초승섬 옆 중립지대의 항구도시 오르자바. 이곳에서 결사와 연결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리테스파가 키젠에 의해 전원 체포되었다. 헥토르가 이끄는 도시 수색 팀은 집요했다. 처음부터 결사에 관련된 문제라면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꼬리를 잡아서 수사해 나가다가, ‘결사의 약물’이 중립지대 시장에 풀렸다는 걸 알게 됐고 이를 납품하고 있는 유리테스파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바로 작전을 개시했다. 저택 밖에서 활동하는 조직원들부터 순차적으로 체포, 마지막엔 통신 장애 결계까지 펼친 뒤 일제히 저택을 급습해서 전원을 붙잡았다. 이후 항구도시 오르자바의 영주에게 해당 사실을 통보했다. <결사와 연관점이 있는 용의자, 유리테스 일당을 키젠에서 체포했습니다.> 오르자바의 영주는 자신들의 자치권과 절차를 생략한 외지인들의 체포 행위에 항의했으나 상대는 키젠이었다. 키젠이 결사와 관련된 문제만큼은 살벌하게 일 처리를 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 이상 뭐라 하진 못했다. 그래도 중립지대인은 중립지대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영주는 유리테스와 조직원들의 신원을 넘겨달라고 요청했고, 도시 수색 팀을 이끄는 헥토르는 단칼에 거절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행정절차에서 문제가 생길 우려가 컸다. 이곳은 엄연히 중립지대였고, 에프넬의 프리스트들이 이를 문제 삼으면 귀찮아진다. 키젠 학생들은 서둘러 붙잡은 조직원들을 심문했다. “아, 알고 있는 건 전부 말했습니다!” “우리도 진짜 몰라!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야!” 물론 이런 점조직 형태로 구성되는 파벌의 특성상, 밑의 부하들은 제대로 된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 결국 핵심은 보스인 유리테스였다. 하지만 그는 알아주는 독종이었고, 의자에 묶인 채 온갖 저주를 받고 있으면서도 낄낄댔다. “백날 해봐라. 이런 미적지근한 것도 고문이라고 하나?” 그나마 도시 팀에서 가장 저주 성적이 높은 학생이 온갖 종류의 저주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소용없었다. 유리테스 또한 코어를 개방한 네크로맨서라 어느 정도 내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어차피 입을 열면 ‘그놈들’에게 살해당할 텐데, 여기서 죽나 나중에 죽나 무슨 상관이겠나! 하하하!” 제아무리 엘리트 네크로맨서라지만 아직은 경험이 적은 10대 학생들. 고문이나 심문 같은 건 익숙지 않아서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어차피 너희들은 확실한 증거가 있지 않은 이상 중립지대 사람인 날 죽이진 못해. 결국 난 빠져나가겠지. 그리고-” 오히려 유리테스는 자신에게 저주를 건 여학생을 보며 혀를 내밀어 제 입술을 훑고 있었다. “이렇게 예쁜 아가씨가 나한테 이런 고통을 주는 거라면 오히려 흥분되는데.” 큭. 여학생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가하고 있던 저주의 강도를 높였지만, 유리테스가 피를 쿨럭이면서도 낄낄댔다. 애초에 기세에서 지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있던 피에르 버클러가 결국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됐어. 내가 불로 지져볼게.” “하하하하! 고문에 창의성도 없는 새끼들! 죽어라 해봐라!” 콰아아아아앙! 그때 대뜸 저택의 문짝이 날아가며 창문에 박혔다. 그곳에서 묵직한 발소리와 함께 거구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뭘 처 꾸물거리고 앉았나.” 총학과대표 헥토르 무어. 그가 살벌한 눈으로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왔다. “초승섬 팀의 보고에 따르면 베히모스들의 움직임이 앞당겨졌다. 지금 바로 움직여야 한다.” “아, 조금만 더 기다려 줘 헥토르. 이제 곧……!” “비켜라.” 헥토르가 피에르의 어깨를 밀치며 걸어와 유리테스 앞에 섰다. 유리테스가 실실 웃었다. “네가 그 ‘용’이지? 뭔 지랄을 해봐야 내가 입을 열 일은 없어.” “그런가.” 쩍. 일순, 유리테스가 보는 세계가 뒤흔들리며 귓가에 찡- 하는 소리가 울렸다. 목구멍에서 쓴 뭔가가 올라오며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쩍. 콧뼈가 뭉개지고. 코에서 핏물이 터져 나왔다. 쩍. 눈이 찢어지고 시야가 붉게 물든다. 헥토르의 곰 같은 손바닥이 유리테스의 얼굴을 연신 후려치고 있었다. 얼굴뼈가 언어 그대로 뭉개지고 있었다. “X발! 커헉! 하하! 설마 이딴 짓거릴!” 쩍. “고문이라고 하는……!” 쩍. 헥토르는 일말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눈으로 후려치기만 했다. 피가 사방에 뿌려지고, 헥토르의 얼굴에도 핏방울이 튀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고문이 아니었다. 그냥 그대로 때려죽일 셈이었다. 피에르가 다급히 외쳤다. “자, 잠깐만! 헥토르! 정보를 뽑아내야 해!” “필요 없다. 이미 정보는 다른 놈이 불었다.” 그 말을 들은 유리테스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럴 리가!’ 자신밖에 모르는 정보다. 나 말고 결사에 대한 정보를 아는 사람이 있나? 이건 뻔한 함정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다시 손바닥이 날아온다. 목 위부터는 거의 다진 고깃덩어리가 되고 있었다. 정신을 잃어도 진작에 잃어야 했지만 무슨 이유인지 그렇게 되지 않았다. 꽈득! 헥토르의 팔꿈치가 유리테스의 복부에 꽂혔다. 폐부에서부터 튀어나온 핏방울이 입에서 새어 나왔다. ‘허세다. 분명 이놈들은 날 못 죽이는……!’ 빠아악! 뒤이어 헥토르가 그의 가슴을 걷어차자 유리테스가 벽에 부딪혔다. 의자가 박살 나고, 자신을 묶어두었던 밧줄이 풀렸다. ‘병신 새끼!’ 그가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헥토르에게 뛰어들었다. 그의 손끝이 칠흑으로 물들었다. “죽……!” 그러나 헥토르는 기다렸다는 듯 유리테스의 다리를 걷어찼다. 뿌드득! 소리와 함께 그의 다리가 반대로 돌아가고, 유리테스가 비명을 질러댔다. 헥토르가 주머니에서 한 손을 빼 들어 쓰러진 유리테스의 뒤통수를 붙잡고 돌벽에 꽉 붙이더니, 그대로 걸어갔다. 끄드드드드드드드드득! 유리테스의 얼굴이 갈리며 그의 얼굴에 나온 피가 붓처럼 긴 일자를 그리며 지나갔다. 헥토르는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그러곤 방 하나를 빙 돈 뒤에야 고개를 들게 했다. 콧대가 완전히 갈려 뼈가 보일 지경이었다. 온 얼굴이 납작해졌다. “안 죽는군.” 퍽! 헥토르가 다시 안면을 벽에 박게 했다. “그럼 죽을 때까지, 백날이고 하겠다.” 퍽! 퍽! 퍽! 퍽! 퍽! “보! 보스! 이런 미친 새끼가!” 묶여 있던 조직의 행동대장이 공포에 질린 얼굴로 몸을 뒤흔들었다. 스으. 그때 헥토르의 무정물 같은 시선이 처음으로 그 조직원에게 향했다. 헥토르는 유리테스를 바닥에 떨어뜨리고는 저벅저벅 걸어갔다. “으, 으으으!” 조직원이 바들바들 떨었다 유리테스는 간신히 눈동자를 굴려 앞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눈앞에 펼쳐지는 일에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덥석! 헥토르가 조직원을 한 손으로 붙들어 올리더니. 쩌어어어억! 이내 머리가 용처럼 변해 그를 통째로 집어삼켜 버린 것이다. “아아아아악!” 목구멍 사이로 삐져나온 두 다리가 뒤흔들며 저항했지만, 이내 검은 용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꿀꺽하고 목으로 뭔가 커다란 덩어리가 지나가는 게 보인다. ‘지, 진짜 괴물이었……!’ [흔적은 내가 지우겠다. 유리테스는 이곳에 있던 적이 없다.] 헥토르가 멍하니 있는 다른 두 동기들에게 말했다. [초승섬으로 출발한다.] “으, 응!” “먼저 갈게, 헥토르.” 다른 두 학생이 서둘러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린다. ‘설마……!’ 헥토르를 보는 유리테스의 눈에 공포감이 싹튼다. 이제 학생으로 보이지 않는다. 아니, 그 전에 같은 인간으로 보이지 않는다. 생물에 대한 공포로 저것은 다른 별개의 먹이사슬 위에 군림하는 존재. 저벅 저벅. 헥토르가 다가와 이번엔 유리테스의 다리를 붙잡고 일으켜 세웠다. 그러고는 거대한 아가리를 쩍 벌려 머리부터 목구멍으로 집어넣기 시작했다. 먹힌다. 죽음 따윈 두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괴물에게 ‘먹힌다’고 인지하자 전신이 뇌의 통제를 벗어나 바들바들 떨린다. 뺨에 축축한 목구멍이 닿는다. 느껴진다. 시야가 새까매지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는 그 순간. “@%#^!!” 생존 욕구가 움텄다. 참을 수 없었다. 뇌가 그냥 이대로 죽으라고 명령해도 몸이 거부한다. 입이 움직인다. “!!%!$!!!” 그러나 저 괴물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몸에 감각이 없어지고 빛이 사라지려는 그때. 쑤우우욱! 갑자기 어둠이 빛으로 바뀌며 우탕탕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바닥을 뒹군다. 어느새 다시 방으로 돌아온 피에르 버클러가 그의 허리를 붙잡은 채 헉헉대고 있었다. “그만, 그만해! 헥토르!” 피에르가 유리테스를 바라보았다. “빨리 말해. 죽기 싫으면!” “그……!” 타액으로 뒤범벅된 유리테스가 눈물 콧물을 쏟아내며 미친 듯이 머릿속에 있는 모든 것을 입으로 내뱉기 시작했다. 이미 자신은, 유리테스가 아니다. 나는 고기다. 먹잇감이다. “베히모스! 베히모스가 올 거야!” 그러니 무엇을 말해도 되리라. “그러니까 아으! 그렇게 되는, 거야! 결사 놈들의 목적은 초승섬의 보물이야! 그걸 이용해서!” 뇌를 거치지 않고 모든 언어를 내뱉는 유리테스를 가만히 지켜보던 헥토르가 몸을 돌렸다. 이내 방문으로 빠져나와 계단을 내려갔다. 아래층에서 가슴 졸이고 기다리던 학생들이 벌떡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과대!” “뭐라도 알아냈어?” 퉷! 헥토르가 일순 입을 크게 벌리더니 아까 삼켰던 회색 점액질의 조직원 하나를 뱉어냈다. 조직원은 숨이 붙어 있었지만 패닉에 빠진 것처럼 덜덜 떨었다. “준비해라.” 헥토르가 입가를 쓱 닦으며 창밖을 보았다. 쏴아아아아-! 어두워진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위험한 건 초승섬만이 아니다.” * * * 쏴아아아아아아! 시몬은 알리타를 처음 만난 호수에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침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알리타는 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길 걸까, 목이 바싹 바싹 말랐다. ‘내가 직접 찾아가야 하나?’ 시몬은 이마를 감싼 채 잠자코 기다렸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아!’ 저 멀리서 알리타가 터덜터덜 호수로 걸어오고 있었다. 시몬은 기쁜 마음에 뛰어갔다. “알리타! 괜찮아?” “시몬.” 그녀가 입을 열었다. “주민들에게 물어봤어. 그 결사라는 자들에 대해.” 하지만 시몬은 알리타의 이야기를 듣고 있지 않았다. “…….” 그녀의 몸에 이상한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시몬은 그게 뭔지 알고 있었다. ‘비브론.’ 비르론의 몸에 그려진 무늬와 똑같은 무늬. 시몬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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