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040화 “결사와는 어떤 관계십니까?” 마을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가만히 시몬을 바라보던 검은 털옷을 뒤집어쓴 족장, 비브론이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어떤 의도로 묻는지는 모르겠다만.” 그의 눈이 게슴츠레 떠졌다. “무엄하군. 목숨이 아깝지 않나.” “제가 이곳에 온 이유는 하나.” 시몬이 태연히 말을 받았다. “결사라는 자들을…….” 거기까지 말한 시몬의 동공이 뒤쪽으로 돌아갔다. 갑자기 마을에 거세게 휘몰아치는 태풍과 함께, 비브론이 시몬의 후방에서 나타나 주먹을 당기고 있었다. “죽어라.” 마치 바람을 옷처럼 휘감고 있었다. 거대한 태풍의 흐름을 이끌며 비브론의 주먹이 내질러졌고. 투콰악! 시몬도 물러서지 않고 주먹을 내질러 받아냈다. 두 주먹이 꿍! 하고 부딪히는 순간, 일순 주먹을 중심으로 대기가 일그러지는 듯한 착시가 일어나며 그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허억!” “꺄아아아악!” 주민들의 어지러운 비명소리가 들렸다. 사방에서 집이 통째로 날아다니고 사람들은 놀라서 뒤로 물러나 나무줄기를 붙잡고 버텼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 휘몰아치는 바람에 들썩거리는 목의 염주를 내리누르며 비르론이 씨익 웃었다. ‘알겠네.’ 시몬도 애써 입꼬리를 올리며 생각했다. ‘초승섬 원주민에게는 비밀스러운 무기도, 기술도 없어. 이 사람이야. 이 사람이 4위계 네크로맨서를 죽인 거야.’ 이런 원주민 마을에서 나타났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대륙급의 강자. 더더욱 그의 정체가 수상쩍어졌다. “큰소리치는 이유가 있었구나. 오만은 강자의 특권이지.” 비브론 또한 시몬의 강함에 놀란 반응이었다. 그가 시몬과 주먹을 맞댔던 반대쪽 손의 주먹을 천천히 움켜쥐었다. “과연 세상은 넓구나!” 촤아아아아아아아악! 시몬이 어깨를 기울여 그 공격을 피했다. 주먹이 뺨을 스치고 지나가며 긴 상처를 그려냈다. ‘진심으로 죽일 생각이야.’ 다짜고짜 공격에 살의까지. 그렇다면 이쪽도 평화롭게 갈 이유는 없다. 발을 지면에 붙이고 미끄러지듯 비브론에게 밀착한 시몬이, 무릎을 세우고 비브론의 머리를 향해 발차기를 날렸다. 후웅! 그러자 허공에서 태풍이 일어나 시몬의 발을 밀어냈다. 하지만 시몬은 다리에 칠흑을 실어 태풍을 뚫고 기어이 족장의 콧등에 발뒤꿈치를 꽂는 데 성공했다. 쩡! 절구 찧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시몬이 다리를 회수하며 몸을 회전시켰다. <취타> <천흉> <착검> <촉파> 시몬의 각기 다른 마투기가 비브론에 적중한다. 비브론이 비틀거리며 물러서자 시몬이 앞으로 뛰어들며 두 주먹에 칠흑을 끌어올렸다. ‘틈을 주지 않는다! 템포를 완전히 장악해!’ <홍펭 오리지널 – 맹사(猛射)> 두두두두두두두두두! 3학년 들어 홍펭에게 새롭게 배운 마투의 비기. 전신을 극한으로 사용해서 쏟아붓듯이 내뻗는 공격이었다. 시몬의 주먹이 폭포수처럼 비브론의 몸에 쏟아졌다. 얻어맞는 비브론의 고개가 연신 흔들렸으나 표정은 너무나 태연했다. 심지어 얻어맞는 도중에도 천천히 오른팔을 뒤로 당기고 있었다. 시몬의 동공이 그 모습을 포착했다. ‘압도적인 힘을 실은 일직선 스트레이트! 그렇다면.’ 시몬이 지면을 거칠게 짓밟았다. <홍펭 오리지널 - 연풍> 콰콱! 지면으로부터 발생한 강렬한 돌풍이 흙과 모래를 품고 올라와 두 사람의 몸을 가렸다. <연계기 – 인거> 솟구친 돌풍이 시몬의 몸을 향해 강한 압력으로 잡아당겨진다. 주먹을 날리려던 비브론의 균형이 일순 무너졌고, 그가 내지른 스트레이트는 종이 한 장 차이로 시몬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쩌어어어어어억! 그와 동시에 그림 같은 시몬의 카운터 펀치가 비브론의 안면에 틀어박혔다. ‘완벽하게 먹혔어.’ 이건 사람인 이상 쓰러지는 게 맞다. 그렇게 확신했으나. ‘!’ 일순. 시몬의 솜털이 쭉 솟구치며 마치 작은 개미가 태산을 때린 듯한 감각이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시몬은 카운터로 들어간 펀치를 더 밀어넣지 않고, 빠르게 끊은 뒤 몸을 날렸다. 후콱! 시몬이 있던 자리로 비브론의 주먹이 떨어졌다. 태풍이 휘몰아치며 주위의 흙먼지가 황사 회오리처럼 변했다. ‘처음엔 분명 타격이 먹혔는데, 갑자기 바뀌었어!’ 마치 스위치가 켜진 것처럼 사람이 달라졌다. 시몬은 자신의 주먹을 바라보고 있었다. 손목이 불가능한 방향으로 꺾인 채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분명 무모한 짓은 하지 않았고, 처음에 타격이 먹힌 걸 확인한 뒤에 결정타를 날렸다. 그런데 이 꼴이다. 스으. 뒤로 물러나는 시몬의 모습을 본 비브론이 왼손을 펼쳐서 총구로 조준하듯 두었다. 일순 전신의 근육이 한껏 조여지고, 활시위를 한계까지 잡아당기는 듯한 팽팽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확실히 죽어라.” 후콰아아아아아악! 그가 주먹을 내지르자, 주먹이 뻗어진 방향으로 타원이 연달아 펼쳐지고, 방대한 충격파가 쏟아져 나왔다. 주먹을 내지른 방향이 온통 흙먼지로 뒤덮였다. “크윽!” 간신히 충격파의 반경에서 빠져나온 시몬이 칠흑을 밟고 달렸다. 비브론이 연달아 주먹을 휘둘러 태풍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쿠쿠쿵! 콰콰콰콰콰쾅-! 마을의 안전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폭격과도 같은 공세. 처음엔 어떻게든 싸울 만하다고 생각했지만, 비브론의 스위치가 켜지고 아까의 공격이 무력화된 순간부터 쉽사리 이기지 못할 적으로 변했다. 그렇다면 이쪽도 스위치를 켜야 했다. “피어!” [크하하하하하! 나설 차례군!] 아공간이 열리고 피어의 뼈들이 시몬의 몸에 차곡차곡 입혀졌다. 마지막으로 팔에 뼈가 달라붙고 파멸의 대검이 손에 쥐어지는 순간, 힘차게 대검을 휘둘러 쏘아지는 충격파를 양단했다. 쩌어어어어어엉! “!” 충격파가 반으로 찢어지는 광경에 비브론의 눈에도 이채가 서렸다. “달라졌군.” [그건 피차 마찬가지 아닌가?] 처억. 시몬이 파멸의 대검을 비스듬하게 기울였다. 비브론도 어깨에 얹고 있던 털옷을 붙잡아 내팽개치고는 자세를 낮추었다. 시몬이 먼저 돌진하려고 다리에 힘을 주는 순간. “두 사람 다 그만하세요!” 뒤늦게 귓가로 꽂히는 목소리가 들렸다. 온몸과 마음을 전투에 최적화하고 있던 시몬이 이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돌렸다. 비브론도 인상을 굳힌 채 시선을 움직였다. 두 사람의 가운데로 알리타가 두 팔을 펼친 채 나타났다. “무슨 짓이지? 네까짓 게 신의 집행을 막는 건가?” “마을이!” 그녀가 울먹이며 말했다. “다 부서지겠어요!” 그녀의 말대로였다. 시몬은 최대한 주위에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문제는 비브론이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터져 나오는 방대한 태풍과 충격파였다. 마을이 온통 박살 나고, 짓이겨졌다. 사람들이 겁에 질린 눈으로 떨고만 있었다. “시몬! 부탁해!” 그녀가 간절한 눈으로 시몬을 바라보았다. 시몬은 잠시 우두커니 있다가 척. 하고 검을 어깨에 짊어졌다. 결사와 관련된 일이라 그런지 너무 머리가 뜨거워졌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어.’ 더 싸우면 사람들이 다칠 것이다. 친절하게 대해준 사람들의 마을에서 더 이상 폐를 끼칠 수는 없다. 시몬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날 처음 보는 순간의 네 눈을 기억한다, 족장.] “…….” [다음에 내가 7군단장으로 왔을 때는.] 시몬의 입에서 으스스한 피어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제대로 된 대답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스르르르- 시몬의 몸이 어둠 속에 물들어 사라졌다. 비브론이 흠 하고 웃은 뒤 자신의 힘으로 초토화된 마을을 바라보았다. “하여간에 도움이 안 되는 것들. 빨리 빨리 움직여서 수습해라.” “예, 예! 족장님!” * * * 자리에서 이탈한 시몬은 마을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비브론이 쫓아온다면 계속 싸웠겠지만 그는 쫓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뒤에서. “…….”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진 알리타가 시몬의 등을 강박적으로 떠밀고 있었다. 미는 손에 그다지 힘은 없었지만 시몬은 계속 걸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내 주위를 휘감은 이상한 나무줄기가 보이던 광경이 사라지고 평범한 숲과 초승섬의 경관이 드러났다. 어느새 날이 저물고, 하늘에는 별과 달이 떠 있었다. “알리타.” 시몬이 피어의 투구를 붙잡아 올리며 얼굴을 드러낸 채 입을 열었다. “미안해. 내가 마을에…….” “아니야.” 알리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을이 부서지도록 공격한 건 족장님이었으니까. 너는 일부러 사람들을 지키려 공격을 대신 받거나 유도했잖아.” 시몬의 눈이 동그래졌다. 전부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결사란 자들.” 알리타가 고개를 들어 시몬을 빤히 바라보았다. “네가 하루빨리 찾아내야 하는 사람들인 거지?” “그래.” 그렇게 대답하는 일순, 결사 사태로 일어난 무수한 비극이 머릿속에 빠르게 지나갔다가 돌아왔다. “반드시.” “알겠어, 족장님이 신계에서 일찍 돌아오시는 바람에 계획이 틀어졌지만, 내가 마을 사람들한테 한 명 한 명 찾아가서 물어볼게. 오늘은 돌아가.” “부탁해. 내일 그 장소에서 보면 될까?” 알리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몬도 고개를 끄덕이며 등을 돌리려다 ‘아’ 하고 뭔가 생각난 듯 그녀를 보았다. “아까 나와 싸웠던 족장 비브론 말야.” “비브론 님.” “음, 그래. 아무튼 그분은 원래 이 마을 사람이야?” 그녀가 쓴웃음을 지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지만, 비브론 님은 이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분이야. 네가 찾고 있는 결사라는 자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 거야.” 시몬이 눈에 힘을 주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면 인간이잖아. 인간이 너희들에게 ‘신’ 중 하나로 추앙받는 이유가 뭐지?” [크흐흐! 과연 소년! 예리한 질문이군!] 피어가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음성으로 칭찬했다. 조금 망설이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비브론 님은 베히모스에게 잡아먹힌 뒤, 살아 돌아온 유일한 인간이야.” “……!” “가장 높은 하늘의 신께 선택받은 거지. 그 뒤로 우리의 족장이 된 거고.” 이야기 자체는 납득이 된다. 저 정도의 강자가 좁은 섬에서 불쑥 튀어나온 것도, 중립지대를 휘어잡는 게 아니라 작은 섬의 족장직에 만족하는 것도 아직 젊으니 그렇다고 치고 넘어갈 수는 있다. 하지만 찜찜한 것. -신이 먹을 고기를 주는 만큼, 언젠가 우리도 고기가 되어 신께 먹힐 각오를 해야겠지만. 못 들은 척 넘어갔었던 알리타의 말. 그리고 노인이나 나이 든 사람이 없는 마을. 비브론도 잡아먹혔다는 말까지. “고기가 되어 신께 먹힐 각오를 해야 한다는 건 무슨 뜻이야?” “…….” 역시 들었구나. 하고 조그맣게 중얼거린 알리타가 고개를 들었다. “오늘은 여러모로 힘드네. 내일 다 이야기해 줄게.” “알리타?” “내일.”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그 호수에서 만나.” * * * 그날 늦은 밤. 시몬이 초승섬 원주민들을 만나고 있는 사이, 근해 섬 조사팀인 8조도 늦게까지 수색을 지속하고 있었다. “이 섬도 없어! 싹다 뒤졌는데 아무것도 없네.” “돌아가자.” 쏴아아아아아! 섬을 수색한 학생들이 배를 타고 초승섬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파도가 심상치 않았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통신 수정구를 든 학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어. 알았어.” 그가 고개를 들어 다른 조원들에게 말했다. “비도 오고 파도가 강해서 위험하니까, 오늘은 야영하고 내일 아침 일찍 복귀해서 수업 들어오라는데?” “어쩔 수 없지.” 학생들이 다들 아공간에서 천막을 꺼내 야영 준비를 시작했다. 한 학생이 지친 얼굴로 바위에 털썩 앉았다. “아니, 진짜. 결사가 어디 있다는 거야 대체. 뭘 하긴 하는 거야? 코빼기도 안 보이잖아.” 휘이이이잉! 그때 천막을 치고 있던 한 남학생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그가 잡고 있던 천막이 바람에 날아갔지만 꿈쩍도 하지 못했다. “야! 뭐 하는 거야?” “저, 저기……!” 그가 밤하늘을 향해 팔을 뻗었다. “눈이……!” 고오오오오오오! 어두운 새벽 구름을 뚫고, 시퍼런 한 쌍의 눈동자가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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