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032화 로체스트 항구. 쏴아아아아아-! 내리쬐는 햇볕이 뜨거운 정오. 한 어선이 거품 같은 파도를 밀어내며 항구에 정박했다. 항구에서 근무하던 직원들이 찌뿌둥한 몸을 풀며 리스트를 확인하고는 그쪽으로 걸어갔다. 덜컹! 이내 어선의 문이 열리고, 소금 냄새 풍기는 까무잡잡한 중년 남자가 배를 긁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항구 보안 검사원이 반갑게 인사하며 다가갔다. “로크섬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이 배 선장이요. 알더티 웨즐리.” “알더티 웨즐리 씨 확인되셨습니다.” 선장 알더티는 다 벗겨져 가는 머리를 긁적이며 뒤를 가리켰다. “로크섬에는 처음 와보는데, 내가 키우던 애완용 오크가 갑자기 시꺼멓게 타서 죽어버렸소. 어떻게 된 거요?” 그가 가리킨 방향에는 애완 오크로 추정되는 새까만 잿더미가 쓰레받기에 담겨져 있었다. 검사원이 쓰게 웃었다. “저런, 유감입니다. 로크섬 해역을 통과하실 때 신고되지 않은 일정 크기 이상의 수상한 생물이 감지되면 결계가 태워 버릴 수 있거든요. 미리 말씀하시지.” “우리 왕국법상 몬스터를 못 키우게 되어 있어서 말이요. 잘 가라, 코코.” 선원이 쓰레받기에 담긴 잿더미를 바다에 버리자 물고기들이 몰려들어 포식했다. 검사원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럼 어선에 싣고 오신 물건부터 확인해 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요.” 검사원이 배에 올라탔고, 선장이 그 뒤를 따르며 말을 이어나갔다. “내 평생 30년을 바다에서 보냈지만 그런 물건을 원하는 고객은 처음이요. 우리야 건지는 족족 소각하는 골칫덩이들을 돈 받고 사준다니까 가져오긴 했는데.” “확인해 보겠습니다.” 덜컹. 항구 검사원이 어선에 설치된 수조 탱크의 뚜껑을 두 손으로 힘껏 들어 올렸다. -구루루루루룩! -구롸롸롸롸롸롸롹! 시커먼 수조 내부가 햇빛으로 일순 밝아졌다. 바글거리는 시꺼멓고 넓적한 생선 같은 것들이 햇빛을 보고는 흥분하여 수면 위로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우왁!” 깜짝 놀란 항구 검사원이 수조 뚜껑을 손에서 놓고 뒤로 나자빠졌다. 뚜껑이 닫히는 바람에 빠져나오려던 검은 괴생명체들이 중간에 끼였다. 그것들이 몸을 비틀며 괴성을 질러댔다. “쓰읍, 들어가!” 선장은 익숙한 동작으로 괴생명체를 발로 걷어차 다시 수조 탱크로 돌려보냈다. “무슨 일입니까!” 소란을 듣고 다른 항구 직원들이 우르르 배 위로 올라탔다. 이내 갑판에서 팔딱팔딱 뛰어다니는 그 괴생명체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고작 다섯 마리 정도 빠져나왔지만, 그것이 벌인 일들은 대단했다. 입을 쫙 벌리고 그 안에서 작은 개체들을 갑판에 뿌려 버린 것이다. 갑판이 완전히 난장판이 된 모습. 작은 개체들도 정신없이 팔딱거리면서 미끈한 점액을 뿌리는 등 날뛰고 있었다. “이거 무리아귀 아니야?” “누가 이 끔찍한 걸 주문한 거래, 용도가 뭐야?” 항구 검사원의 외침에, 뒤쪽의 부하가 들고 있던 서류를 팔랑팔랑 넘기다가 한 페이지에서 멈추고는 말했다. “주문자가 소환학과 교수 ‘그레리온’이라고 되어 있는데요? 용도는…….” 서류를 훑어본 부하가 당황한 웃음을 흘렸다. “……학생들 체험학습용이라고.” 자리에 있는 모두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선장이 푸하하! 웃었다. “높으신 키젠 나으리들이 하는 일들을 보통 사람이 어찌 알겠소! 뭔가 이유가 있겠지!” * * * 잠시 후. 소환학관 건물 앞 공터. “하하하하하하! 마음껏 가져가라!” 온몸이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소환학 교수, 그레리온이 큰 소리로 외쳤다. 그가 옆에 있는 커다란 대형 수조를 손바닥으로 탕탕 내려치며 호쾌하게 말했다. “1인당 최대 10마리까지 지원하마! 인명에 해를 끼치는 것들이니 남김없이 사용하도록!” “넵!” 소환학과 학생들은 공터에 설치된 대형 수조 앞에서 무리아귀를 잡느라 고생하고 있었다. 다들 하나같이 손에 뜰채를 든 채 이리저리 뛰어다니거나, 의자 위에 올라가 허우적대는 중이었다. “잡았……! 우왁! 빠져나갔어!” “아, 힘들어 죽겠다 진짜.” 무리아귀는 몬스터답게 성격이 난폭하고 거칠었다. 뜰채로 건지자마자 미친 듯이 발버둥치다가 다시 수조 안으로 도망치기 일쑤였다. “잡았어!” 의자 두 개를 겹치고 그 위에 올라가 있던 토토가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가 뜰채로 무리아귀 한 마리를 힘겹게 들어 올린 순간. -구루룩! 무리아귀가 입을 벌리더니 소형 개체를 입에서 내뱉었다. 그것들이 토토의 얼굴에 들러붙어 뺨을 깨물거나 점액을 뿌리기 시작했다. 토토가 비명을 지르며 의자에서 떨어졌다. “하하! 다들 조심해라!” 그레리온이 팔을 휘저었다. “이들은 아직 완전히 다 자란 성체는 아니다만 몬스터는 몬스터! 배 위의 선원을 물가로 유인해 죽이는 악랄한 놈들이다! 뜰채에 올리자마자 저주를 사용해서 제압해라!” 학생들이 힘겹게 뜰채를 휘두르며 무리아귀와 씨름하고 있는 사이, 소환학관 건물의 2학년들은 창밖으로 얼굴을 내민 채 선배들의 수업을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도 1년 뒤에는 저런 거 하겠지?” “……3학년 과정은 대체 뭘까.” 구경났냐! 하는 누군가의 외침에, 창가로 훔쳐보던 2학년들이 도로 고개를 되돌렸다. 곳곳에서 난장판이 벌어진 모습. 그래도 3학년답게 한두 번 시행착오를 겪은 뒤에는 빠르게 적응했다. 자신만의 아이디어나 오리지널 흑마법으로 무리아귀를 확보해 나갔다.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레리온 교수님.” 뜰채로 간신히 하나 낚은 피츠제럴드가 부러진 안경테를 붙잡은 채 말했다. “어차피 칠흑으로 부패시켜서 언데드로 만들 거 아닙니까. 그냥 단체로 빙결계 마법으로 꽝꽝 얼리거나 독으로 무력화한 뒤에 들고 가도록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요즘 세대는 이런 편한 것만 찾는 마인드가 문제야!” 그레리온이 호탕하게 웃었다. “십 년 전 너희 선배들은 잠수복을 입고 심해까지 들어가서 무리아귀를 잡아왔다! 설사 몬스터라고 해도, 실험 재료를 쉽고 간단히 구할 수 있는 것이라 인지하는 건 타락하는 네크로맨서들의 전형이다! 정서상 좋지 않아!” 피츠제럴드가 납득이 되지 않는 표정으로 안경을 붙잡고 있자 그레리온이 덧붙였다. “냉동이나 독은 언데드화에 변수를 줘서 성능을 떨어뜨린다.” “납득했습니다.” 그렇게 무리아귀를 건져내는 데 성공한 학생들은 다음 장소인 야외 작업 테이블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제조를 시작했다. 무리아귀에 부패마법을 걸고 각종 흑마법적 조치를 취한 다음, 소환 마법진을 삽입했다. “으음.” 마찬가지로 테이블에 서 있던 시몬은 아론이 칠판에 그려준 마법진 모식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군집화 마법진은 구조가 복잡하긴 한데, 원리가 막 특별한 건 아니네.” 군집화 마법진의 원리는 간단히 말해, 생물이었던 시절의 습성이나 특징을 강하게 일으키는 것이었다. 스켈레톤 아처를 만들 때, 도구나 활을 다루는 몬스터를 이용해서 언데드가 되어도 활을 쓸 수 있도록 하는 느낌이다. 물론 난이도는 비할 바가 안 되지만. “그래서 특정 언데드만 군집화가 가능한 거다, 시몬.” 시몬의 그 말을 들은 건지, 아론이 성큼성큼 다가와 설명했다. “무리아귀나, 아틀라, 베히모스 같은 것들 말이다.” 시몬도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 보니 교수님의 언데드 전함의 재료는 ‘프라이드 아틀라’였잖아요? 내장된 언데드들은 틀림없는 인간형 스켈레톤이었는데, 형태가 상이한 언데드 간의 군집화는 어떻게 가능한가요?” “좋은 질문이다.” 아론이 손바닥으로 눈두덩이를 비비고는 말을 이었다. “뒤의 수업에서 더 자세히 알려주겠지만, 프라이드 아틀라에 내장된 숙주 잔해를 스켈레톤에 이식했다. 그러면 프라이드 아틀라는 스켈레톤을 자신의 부하로 인식하는 거지.” “아!” 결론을 말하자면 ‘군집체’의 본체는 반드시 특정 언데드여야 한다. 하지만 그 군집체의 지휘를 받는 소형 개체는 네크로맨서의 역량에 따라 약간의 자유도가 있는 셈. 짧은 순간 시몬의 머릿속에 온갖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높은 고공에 떠 있는 해골 전함에서 좀비를 쏟아내 시체 폭발을 구사하는 폭격기 컨셉, 스컬윙을 요격기로 이용하는 모함 컨셉까지 생각해 볼 만한 건 많았다. “그럼, 서둘러 작업을 시작해라.” “네!” 학생들은 열심히 무리아귀에 군집체 마법을 이식했다. 평소보다 시간이 배 이상 걸렸는데, 무리아귀의 내부에 있는 소형 개체들까지 전부 언데드화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마법진의 연동 주체를 술사인 네크로맨서 본인이 아닌, 본체인 무리아귀로 설정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처음 하는 과정이라 그런지 제작 실패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그렇게 숱한 실패를 뚫고 언데드 무리아귀 제작에 성공한 학생들은 마지막 코스가 있는 공터로 향했다. “자, 학생들! 무리아귀의 천적을 본떠 만든 모형입니다.” 조교들이 가져다 놓은 건 해파리처럼 생긴 몬스터 모형이었다. “본체인 무리아귀만 컨트롤해서, 내부의 작은 개체들이 이 모형을 공격하게 하면 성공이에요!” “네!” 바로 공터에서 학생들의 실습이 시작되었다. “저거 보이지? 공격해!” 에슈가 팔을 뻗으며 외쳤다. 그러나 그녀의 무리아귀와 소형 개체들은 주위에 흩어져 빙글빙글 돌거나 바닥에 털썩 눕는 등 제멋대로 굴었다. “왜 안 되는 거지? 공격하라니까!” 발을 동동 구르며 답답해하던 에슈가 이번엔 꽤 강하게 사념을 담아 지시했다. 다섯 번째 시도 끝에, 바닥에 엎어져 있던 본체가 드디어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 주위의 작은 개체들은 내버려 두고, 본체가 직접 달려가 해파리 모형을 이빨로 한번 덥석 깨문 뒤 다시 에슈에게 돌아왔다. 에슈가 머리를 붙잡았다. “으윽! 네가 직접 가면 안 돼! 아이들을 보내라니까!” 다른 학생들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정상적으로 완성된 언데드 무리아귀라면, 몬스터였을 때처럼 작은 개체만을 보내 사냥감을 공격하게 해야 했다. 하지만 작은 개체들은 쉬고 본체만 움직이고 있다. 이러면 의미가 없었다. 무리아귀는 사념에 부담이 가는 3티어 언데드인 것에 비해, 본체는 둔중하고 전투능력이 떨어졌다. 본체만으로는 써먹을 만한 언데드가 아니었다. “공격해! 무리아귀!” 토토도 자신이 만든 언데드 무리아귀로 훈련에 참가했다. 토토의 무리아귀가 목표물을 향해 입을 벌렸지만, 그 안에서 튀어나온 작은 개체들이 앞이 아니라 뒤로 몰려가 시전자인 토토를 깨물기 시작했다. 지켜보던 학생들이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실패했다면 상황에 맞게 조치하도록.” 실습을 지켜보던 아론이 다가왔다. “본체만 움직일 경우 본체의 마법진을 확인해라. 높은 확률로 회로에 문제가 있을 거다. 작은 개체들 하나둘만 공격에 성공한 경우에는 작은 개체들의 육체에 칠흑이 제대로 흐르고 있는지 확인해라. 본체가 공격 명령은 받아들였지만 작은 개체들이 멋대로 움직이는 경우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도록.” 피드백을 받아들인 학생들이 작업 테이블로 돌아갔다. 에슈도 쩝 하고 입맛을 다시며 다시 자신의 무리아귀를 불러들이며 중얼거렸다. “다들 쉽지 않나 보네.” 그렇게 말한 그녀가 슬쩍 시몬과 헥토르가 있는 뒤쪽을 돌아보았다. “대충 그림이 그려지지. 이런 흐름에선 또 조장만 엄청 잘하는 그림이…… 응?” 그러나 예상 밖의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 “…….” 군단장인 시몬과 헥토르 또한 덩그러니 자리에 쪼그려 앉은 채 무리아귀를 보며 이마를 감싸거나 한숨을 쉬고 있었다. “가라!” 다른 학생들이 전부 명령을 안 들어서 문제였지만, 시몬의 경우에는 달랐다. 공격 명령을 내리니 본체고 소형 개체고 죄다 앞다투어 우르르르 몰려가서 모형을 공격하고 있었다. 시몬이 끙 소리를 내며 고개를 떨구며 쓰게 웃었다. “……괜히 처음에 절대명령을 내렸네.” 현역 군단장인 시몬과 헥토르에게는 특별한 미션이 있었다. 그건 바로 소환형 무리아귀가 아니라 ‘군단화’된 무리아귀를 통제해서 본체는 움직이지 않고 소형 개체만 움직이게 하는 것. 보기보다 쉽지 않았다. 헥토르도 인상을 찡그리며 고생하는 중이었다. “웬일로 조장이 실패했네. 의외다.” 에슈가 놀란 얼굴로 중얼거리자 로레인이 앞을 가리켰다. “저 둘은 소환형은 벌써 성공하고 군단형으로 넘어간 거야.” “정말요?” 그 말대로, 구석에 시몬의 무리아귀가 작은 개체들을 보내 모형을 물어뜯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에슈가 ‘역시이!’ 하고 감탄성을 흘렸다. “으으음.” 시몬이 군단형의 무리아귀와 작은 개체를 가만히 내려다보며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묘하게 방법을 알 것 같기도 한데.’ “재미있는 훈련을 하고 있구나.” 그때 시몬의 고개가 들어갔다. “전공 소환학에서도 군단학을 병행해서 가르친다고 들어서, 잘하고 있는지 보러 왔느니라.” 소환학과의 세 번째 교수, 군단학을 가르치는 진 아르스칼트가 다가오고 있었다. 시몬의 눈이 커졌다. “진 교수님!” “흠-” 무리아귀를 가만히 보고 있던 그녀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잠깐 이야기 좀 하자꾸나, 건방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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