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017화 학과선정식 행사가 시작됐다. 길쭉한 일자형 테이블에 앉은 3학년들은 과연 어떤 후배가 자기 학과로 올지 기대하고 있었다. “2학년 전체 2위! 아서 블레만은 마투학과를 선택했다! 다들 박수우!” 선정식의 사회를 맡은 젊은 혈류학과 담당교수가 소리쳤다. 사방에서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왔다. 특히 마투학과 테이블에서는 거의 포효와도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울분을 토하듯 꺽꺽 비명을 질러대거나, 테이블 위로 올라와서 교복 재킷을 빙빙 흔드는 학생도 있었다. “용병왕! 드디어 우리 학과에도 거물이 오는구나!” “샤텔을 못 데려온 한을 여기서 푸네.” 용병왕 아서는 마투학과에 가기로 했다. 그는 마지막까지 소환학과와 마투학과를 두고 고민했지만, 시몬이 소환 무기의 성능을 끌어내는 것보다 자신의 역량을 갈고닦는 게 더 중요할 거라고 조언했고, 아서는 그에 따랐다. 물론 앞으로도 돌연변이 동아리에 남아서 소환 무기 사용법을 익히기로 했다. 시몬도 손뼉을 치며 그의 앞길을 응원해 주었다. “전체 18위, 버나 펠턴은 칠흑역학과로!” “전체 19위, 카르민 스카비스는 소환학과로!” 이어서 석차대로 나온 학생들이 자신이 선택한 학과의 테이블로 걸어갔다. 그나마 한 가지, 작년과 크게 바뀐 점이 있다면. “전체 100위, 이메트 가젠은 소환학과로!” “전체 101위, 던들리 샤밀란은 소환학과로!” 소환학과의 인기가 엄청나다는 점이었다. 놀랍게도 현재 소환학과가 칠흑역학과 저주학을 뛰어넘어 1위 지원률을 달성했다. 소환학과를 지망하지만 석차가 낮은 2학년 학생들은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지고 있었다. “야, 상위권 새끼들아! 눈치 챙기자!” “자리 순식간에 다 차겠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소환학과를 확정 지은 상위권의 2학년 학생들은 싱글벙글한 얼굴로 걸어갔다. 소환학과 테이블은 축제 분위기였다.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고, 새로 합류한 학생들을 축하하며 하이파이브했다. 다른 학과 테이블의 부러움 가득한 시선이 꽂혔다. 물론 2학년들이 꼭 거쳐 가는 과정이 있었다. “처음 인사 올립니다! 시몬 폴렌티아 학생회장님! 아, 아니! 제7군단장님!” 2학년들 모두 테이블에 앉기 전에 시몬에게 인사하러 오는 것. 똑같은 교복 차림의 학생들 중에서도 학생회장 코트를 두르고 있는 시몬은 유독 눈에 띄었다. 시몬이 빙그레 웃었다. “편한 쪽으로 불러도 돼. 어쨌든, 우리도 네가 학과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울게. 어려운 일 있으면 말하고.” 시몬이 손을 내밀자, 2학년이 감격한 눈으로 그 손을 맞잡았다. “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군단장이라는 정체를 밝힌 뒤에도, 여전히 2학년 330기 학생들만큼은 시몬에 대한 이미지가 압도적으로 좋았다. 반대 파벌을 중심으로 분위기가 뜨뜻미지근해진 몇몇 3학년들과, 배신의 군단장이란 이름값에 지레 겁에 질리는 1학년과는 다른 분위기다. 어쨌거나 새로운 후배들이 줄줄이 소환학과에 합류했다. 맞은편에 싱글벙글한 얼굴로 앉아 있던 에슈가 손을 흔들었다. “잠깐~ 후배야아.” 에슈가 부르자 시몬과 악수를 나누고 돌아가던 남학생이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답했다. “예! 선배님! 던들리 샤밀란입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소환학과의 악명은 알고 있지? 돈 많이 깨진다든가, 소환수 잃으면 손가락만 빨아야 한다든가. 그 석차면 칠흑역학과나 저주학과도 쉽게 들어갈 텐데 왜 이리로 들어온 거야?” 3학년들의 시선이 던들리에게로 향했다. 사실 다들 마음속으로는 궁금해하던 질문이었다. “아, 그야…….” 던들리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제 소환학과 성적이 좋기도 했고, 무엇보다 제가 존경하는 분들이 이 학과에 있어서 왔습니다! 로레인 선배님, 세르네 선배님, 헥토르 군단장님, 그리고 시몬 폴렌티아 군단장님이 다 있는 곳이지 않습니까! 거물들이 이렇게 한 학과에 집중된 경우가 없으니까요!” 다른 학생들에게 물어봐도 비슷한 대답이 나왔다. “교류전에서 시몬 선배님의 활약이 계속 눈에 아른거려서요!” “미래의 차기 지도자 두 분, 현역 군단장 두 분. 더 대답이 필요할까요?” 이런 학생도 있었다. “데스나이트! 데스나이트! 데스나이트 때문에요! 3학년들은 다들 데스나이트를 들고 있다면서요!” 2학년 여학생이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방방 뛰며 말했다. 질문을 던졌던 에슈는 말문이 막힌 채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고, 로레인과 시몬이 간신히 웃음을 참았다. “첫날부터 찍혔군.” 피츠제럴드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에슈는 애써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난 괜찮은데, 난 지인짜 괜찮은데! 3학년들이라고 다 데스나이트를 가진 건 아니거든! 그러니까 말조심하라는 조언을 하고 싶네.” “죄, 죄송합니다!” 2학년 여학생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때 토토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래도 그런 목표를 가지고 들어온 건 정말 좋다고 생각해!” “네?” “로망이든 뭐든 꿈을 끝까지 포기하지 마! 여기까지 왔잖아? 너도 반드시 데스나이트를 만들 수 있을 거야!” 여학생이 반짝반짝한 얼굴로 토토를 보았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녀가 고개 숙여 인사한 뒤 돌아갔다. 어쩐지 에슈가 툴툴거리는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었다. “데스나이트 소년이 데스나이트 소녀를 만난 셈인가? 좋아 죽네?” 토토가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아니, 좋아 죽는 게 아니라 나는 그저……!” 시몬과 로레인이 그 모습을 보면서 푸훗 미소를 지었다. 이내 시몬이 말했다. “이번에 2학년 소환학과를 담당하는 분이 외디프 교수님 맞지?” “맞아.” 외디프는 아론과 함께 시몬의 본드래곤 제작에 관여한, 그 재료의 품질에 환장하는 괴짜 교수였다. 그는 바쁜 일정 때문에 학과 선정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시몬이 난감한 듯 웃었다. “음, 그런데 데스나이트를 보고 왔다는 의견이 있을 줄은 몰랐네. 아론 교수님이 너무 2학년들 눈을 높여둔 게 아닐까 걱정인데.” “걱정 마.” 로레인이 생긋 웃으며 답했다. “안 그래도 외디프 교수님, 방학 동안 아론 교수님 따라다니면서 새로운 커리큘럼에 대해 배워 왔다고 하셨거든. 2학년 1학기 듀라한 제작에 2학기에 데스나이트 제작까지 똑같이 진행할 것 같아. 아론 교수님도 적극적으로 알려주고 계시고.” “다행이네.” 두 사람의 대화는 인사하러 온 2학년의 난입으로 끊겼다. 모두가 즐겁게 인사를 주고받고 있는 그때. “이번 2학년 새끼들은 개념을 말아먹었나.” 날카로운 음성이 울려 퍼졌다. 시몬과 로레인의 시선이 소리 난 방향으로 향했다. 방금 시몬에게 인사했던 2학년 한 명이 한 무리의 3학년 학생들에게 꾸중을 듣고 있었다. “야, 인상 쓰지 말고 똑바로 말해. 총과대가 높냐? 학생회장이 높냐?” “……아, 그.” 2학년의 동공이 쉴 새 없이 돌아갔다. “학생회장님이…… 더 높지 않나요?” “아니지! 학과에서는 총과대가 왕이야. 학생회장이 건드리지 못하는 고유의 영역이라고. 알아들어?” “아, 알겠습니다!” “근데 왜 헥토르에게 먼저 인사를 하러 오지 않고 저쪽에 먼저 가냐? 총과대 무시해?” “그, 그게 아니라 헥토르 선배님이 안 계셔서……!” 반7군단 파벌 학생들 사이에서 그런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었다. 정작 헥토르는 볼일을 보러 자리를 비운 뒤였다. 시몬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리려는데. 드르륵. 시몬보다 로레인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으로 어깨를 짚어 시몬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막은 그녀가 꾸중하던 3학년들을 향해 말했다. “거기, 무슨 일 있니?” 파벌들이 움찔하며 로레인을 바라보았다. “학과 선정식 첫날부터 그러는 거, 보기 안 좋아.” 시몬이 나섰다면 ‘학생회장이 뭔데 학과 일에 참견이냐’ 하며 자연스레 시비가 걸릴 거리가 만들어졌겠지만, 로레인이 나선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파벌들은 인상을 쓸 뿐, 더 뭐라 하진 못하고 2학년에게 돌아가라고 말한 뒤 자세를 바로 앉았다. 이내 로레인도 자리에 앉았다. 시몬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 로레인.”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냐.” 그렇게 화장실에 갔던 헥토르가 돌아온 뒤에야 반7군단 파벌들이 살아난 듯 수군거렸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헥토르가 인상을 팍 썼다. -그건 6군단과 내가 알아서 할 일이다. -하, 하지만 헥토르! 너희 무어 가문도 배신의 군단을……! -그 입부터 찢어놓을까. 헥토르가 눈을 시퍼렇게 뜨자 그들의 입이 쏙 들어갔다. 그들은 헥토르가 당연히 자신들에게 힘을 실어줄 거라 생각하고 일을 저질렀지만, 돌아온 건 싸늘한 분위기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학과 선정식 행사가 종료되었다. 2학년 1위이자 수석인 사샤는 현재 백신 제작 관련 건으로 펜타모니엄에 머물고 있었기에 참석하지 못했다. 대신 그녀는 서신으로 소환학과에 가겠다고 통보했다. 결과적으로 가장 먼저 자리가 다 찬 학과는 역시나 소환학과. 뛰어난 학생들이 다수 들어온 것으로 학과에 새로운 전성기가 열리려 하고 있었다. * * * 학과 선정식이 끝난 직후, 시몬은 새로운 학과대표들을 불러 모았다. 소환학과 총대표인 헥토르는 대놓고 불참, 대신 그의 오른팔인 피에르 버클러가 참석했다. 이어서 시몬은 학과 환영회가 있는 오늘 밤, ‘신고식’ 같은 불미스러운 관례가 이어지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 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피에르가 반박했다. -신고식이라는 말 자체가 모호하지 않나? 학과별로 후배들을 환영하는 방식이 모두 다른 건 잘 알 거야. 괜히 학과의 문제에 학생회가 관여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이렇게 말할 줄 알고 시몬은 딕의 조언대로 말했다. -이건 내 지시이기 전에, 제인 교수님의 뜻이기도 해. 이미 제인에게 신고식에 대해 보고하고, 똑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파수꾼들을 야간 순찰에 동원하게 해달라고 지시해 둔 뒤였다. 제인의 이름이 나오자 피에르도 그 이상 말하지 못했다. -그럼, 잘 부탁해. 3학년 정식 학생회장으로서 첫 활동. 앞으로 학생회의 명예가 걸린 만큼 절대로 실패할 순 없었다. 학생회 멤버들과 선도부들, 직속 하수인들까지 모두 동원해 불미스러운 관례가 일어나는지 철저히 감시했다. 당연히 3학년들 중에서는 신고식 폐지에 반발하는 자들도, 조용히 2학년들을 괴롭히며 재미를 보려는 자들도 있었다. 이때 말콤 랜돌프의 활약이 주요했다. -학생회 선도부다. 뭘 하는 거지? -아, 그, 다른 선배님들이……. -술자리로 돌아가라. 내가 알아서 하겠다. 말콤은 백 명이 넘는 도플갱어를 만들어 기숙사 전역의 으슥한 곳에 뿌려두었고, 신고식의 폐단을 철저히 막아나갔다. 시몬과 학생회 멤버들도 적극적으로 학과 기숙사마다 들르며 학과대표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등 눈에 띄는 모습을 보여주였다. 그 모습이 상당히 든든하게 느껴져서일까, 이미 ‘신고식’의 폐단을 듣고 잔뜩 겁먹고 있던 2학년들은 다시 한번 시몬의 영향력을 실감했다. -역시 시몬 선배님이야! -살았어. 진짜 흙탕물 퍼먹어야 하는 줄 알았는데. 3학년들도 대체로 ‘신고식’은 우리 대에서 끝내는 게 맞다는 의견에 동의했다. 그만큼 작년에 있었던 기강 잡기라는 명목하에 행해진 부조리는 생각하기도 싫을 만큼 끔찍했다. 반면 전 학과에 조금씩 존재하는 반7군단 파벌의 불만은 점점 더 커져갔다. -2학년들한테 환심 받으려고 꼴에 저러는 거지? -아, 우리가 작년에 조금 당한 건 어쩌라고! 자기만 이미지 개선하면 다인가? 갈등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 끔찍한 ‘학과 신고식’은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가끔 3학년들이 짓궂은 장난을 거는 정도가 전부였고, 2학년들은 3학년에게 악감정을 가지지 않은 채 산뜻한 마음으로 학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소식은 제인의 귀에도 들어갔다. * * * 부총장실. 타악. 보고서를 읽어본 제인이 서류를 내리며 미소 지었다. “수고했습니다, 학생회장. 백 년이상 전해져 내려오던 폐단을 막아내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 첫 임무는 무사히 해냈군요.” “감사합니다. 모두 교수님 덕분입니다.” 시몬도 미소 지으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공을 그녀에게 돌리는 겸손함까지. 제인이 서류를 읽을 때 쓰는 안경을 벗으며 입을 열었다. “학기 초, 교내에 여러 문제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특히 올해 1학년들은 대단히 악명이 높더군요. 학생회에서 각별히 신경 써주시길 바랍니다.” “네!” “그리고 미리 말해두지만, 결사 사태의 가장 큰 고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올해. 이번 최고학년 과정은 위험한 일도 많을 겁니다.” 그녀가 서류를 촤르륵 펼쳐두며 말을 이었다. “적응 기간이 끝나면 학생회 전원이 학교를 비우는 경우도 많겠죠. 따라서, 1학년 학생과 2학년 학생을 새로운 학생회에 영입하여 여러분의 공백에 활용하는 건 어떨까 합니다. 물론 정식 직무보다는 ‘감사’나 ‘대리’의 역할을 맡기고 싶은데, 학생회장의 생각은 어떤가요?” 시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요! 다른 학년 학생들이 학생회에 있다면, 해당 학년의 이해관계도 저희가 더 잘 고려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학년 말에 레오나드가 3학년 대표로서 학생회에 감사로 온 적이 있었는데,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렇게 말해주니 기쁘군요. 학생회 업무에 적합해 보이는 유능한 학생들을 몇 명 추려보았습니다.” 그녀가 학생 명단을 펼쳐서 시몬을 향해 내밀었다. “학생회를 구성하는 건 결국 학생회장의 몫. 시몬 학생회장이 직접 판단해서 선정해 주었으면 합니다만.” 시몬이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서류를 펼쳐 들었다. ‘새로운 학생회 멤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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