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964화 날이 밝았다. 시몬은 8번 에이툴라의 우수성사를 기다렸지만, 늦은 새벽까지 그녀의 호출은 없었다. 심지어 아침 수업에도 나오지 않았다. ‘무슨 일 있나? 걱정되네.’ 하필이면 그녀가 우수성사를 요청한 시점에 이런 일이 벌어지니 기분이 찜찜했다. 바로 리리넷에게 달려가 자초지종을 물어보았지만, 그녀도 ‘병가’라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 자세한 사항은 모른다는 답이 돌아왔다. ‘레테가 움직이고 있어. 수업이 끝나면 무슨 일인지 알게 되겠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신인 예배회 첫 ‘수호학’ 수업이 시작됐다. 시몬도 잠깐 수사에 관한 건 내려놓고 수업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번 수업의 임시 교수로 참가한 건. “나는 브로데릭이라고 하네. 어린 형제자매들이여!” 3학년이 아니라, 진짜 현역 수호학 교수였다. 브로데릭은 메릴과 비슷한 느낌의 까무잡잡한 피부에, 얼굴에는 검은 수염이 덮여 있는 남자였다. 탈의한 반신 쪽엔 잘 단련한 근육이 드러났으며, 흔히 프리스트들이 성무를 집행할 때 목에 두르는 장식용 목도리인 ‘영매’만을 한 벌 착용했다. 목을 두른 영매의 두 가닥이 가슴 부분을 절묘하게 가리고 있었다. 한 손에는 아령을, 다른 한 손에는 경전을 든 모습이 인상적이다. 브로데릭은 오자마자 메릴과 손을 맞잡고 인사했다. “프루토 막무스! 우리 고향 출신이 여기 있었군! 자매는 어디 출신인가?” “프루토 막무스! 1번 메릴입니다. 나비하치 출신입니다.” “아! 내 처남이 거기에서 수수 농사를 짓고 있지.” 정말로 같은 지역 출신인 듯 간단하게 메릴과 방언으로 인사하며 스몰토크를 나누기도 했다. “그럼 수업을 시작하겠네!” 그가 앞으로 걸어 나와 목소리를 높였다. “수호학이란 무엇인가? 수호학은 프리스트의 생명줄이라네! 뭐라고?” “생명줄입니다!” “그렇네! 명색이 프리스트라면 자신을 지킬 수단은 가지고 있어야지. 공격이든 회복이든 그런 건 나중의 문제일세. 일단 내가 살아야 뭘 할 수 있지 않겠나! 현명한 프리스트라면 수호학을 전공하는 게 정답일세!” 종종걸음으로 다가온 리리넷이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교, 교수님. 이건 정규수업이 아니라 신인 예배회…….” “차탓아이!” 브로데릭 교수가 정체불명의 단어를 내뱉으며 손을 세웠다. “지금 이 몸이 강의하고 있지 않나! 질문은 나중에 받겠네.” 리리넷의 말을 끊은 그가 다시 활짝 웃는 얼굴로 돌아와 선발생들을 바라보았다. “수호학은 여신께서 인간에게 내려준 가장 위대한 산물이네! 심지어 최초의 성인이 제자들에게 가장 먼저 가르친 것도 수호학이었지! 이 어찌 첫 번째 학문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교수님. 가장 먼저 가르친 건 치유학…….” “경전 고비 18장 31절 말씀! 위대한 율법가 사무엘 가라사대, 국경을 긋는 것으로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다! 사무엘이 신의 방벽을 일으켜 최초의 경계를 그었고, 불경한 자들은 이를 넘어오지 못했다네!” “교수님, 신의 방벽이 아니라 신의 궤적이에요. 그리고 18장이 아니라 19절 말씀인…….” “차탓아이!” 그가 다시 손을 세워 리리넷의 말을 막고는 그녀를 돌아보았다. “리리넷 자매! 이제 막 하늘에 입성한 선발생에게 빛의 가르침을 주는 것을 방해하다니. 자매는 큰 죄를 짓고 있네!” 그녀도 지지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 전에 예배회 기간의 선발생에게 ‘전공 제안’을 하는 건 룰 위반이거든요!” “리리넷 자매! 저 뒤 바위 위에 올라가 연계방어 훈련 30세트 실시!” 리리넷은 명령대로 백마법 연습을 하면서도 절규하듯 외쳤다. “교수니임! 이러시면 나중에 제가 다른 교수님들한테 혼나요!” “음흐흐!” 가볍게 학생회의 말을 무시한 브로데릭 교수가 입꼬리를 올렸다. “수업을 계속하지!” 그렇게 수호학의 위대함과 대단함, 수호학을 전공으로 선택해야만 하는 이유를 한 시간 내내 들었다. 선발생들의 표정이 시간이 지날수록 혼미해졌다. ‘본인 학문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나시네.’ 수업 내내 ‘수호학’이란 말을 남발했는데, 일종의 세뇌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하도 듣다 보니 이제 정말로 수호학을 전공해야 하나 같은 생각이 들었다. “수호학의 개념은 아주 폭넓지! 자신을 지키는 백마법 기술들의 총체라네! 이렇게 단순히 신성을 모아 자신의 전면을 방어하는 방패마법!” 그가 두 다리를 교차하고 어깨를 앞으로 당긴 채 두 팔을 굽혀 이두근이 두드러지게 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전면에 파창! 하고 거대한 신성의 방패가 펼쳐졌다. “단체를 지키는 결계마법!” 그가 두 팔을 목 뒤로 당기며 등 근육이 두드러지게 하는 자세를 취하자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의 선발생들까지 모두 뒤덮는 영역의 방어마법이 펼쳐졌다. “상대의 공격을 되돌려주는 반사마법!” 그가 포즈를 바꾸자 결계가 줄어들며 그의 몸에 딱 맞는 옷처럼 바뀌었다. “리리넷 자매! 와서 쏴보게!” “네, 넵!” 쉴드 연습을 하고 있던 리리넷이 후다닥 달려와 신성화살을 수십 발 만들어 쏘아 보냈다. 브로데릭 교수는 포즈를 그대로 유지했지만, 신성화살들이 그의 몸에 생채기도 내지 못하고 부딪혀 날아갔다. “반사시키는 방향도 자유자재지!” 심지어 날아가는 신성화살들이 모두 일정한 위치로 방향이 틀어져 풀밭에 꽂혔다. 그리고 뭔가 했더니 풀밭으로 튕겨 나가 바닥에 꽂힌 신성화살로 ‘수호학’이라는 글자를 만들었다. ‘이 아저씨, 진심이다.’ 시몬은 식은땀을 흘렸다. 에프넬 교수들은 키젠과는 달리 교수 간 경쟁이나 실적 싸움이 크지 않다고 들었지만, 이 사람은 특이했다. 본인의 전공 수업에 어떤 사명이라도 가진 것 같았다. 그 외에도 브로데릭은 다양한 시범을 보였다. 같은 수호마법이라고 해도, 상대의 마법에 따라 사용법이 달랐다. 방출형 마법을 막는 방패, 파장형과 방사형 막는 방패, 관통형 마법을 막는 방패까지 다양한 방패들을 꺼내며 시범을 보였다. 저 이상한 포즈에 시선을 팔리지만 않는다면 상당히 유익한 수업이었다. “자! 그리고 이쯤에서 내 최강의 수호마법을 보여주지!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건 아니니 눈 크게 뜨게나.” 그가 두 손을 착 모으고는 연달아 새로운 포징을 취했다. 처억! 척! 척! 포징이 열 차례가 넘어가는데 준비동작이 상당히 현란했다. 이내 그가 다시 기본자세로 돌아와 두 손을 맞부딪히고 눈을 부릅떴다. <브로데릭 오리지널 – 낙원의 재현>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시몬은 순간 자신에게 덮이는 신성마법을 눈치챘다. 그리고 옆을 돌아보는 순간 소름이 끼쳤다. 주변의 선발생들, 그리고 풀 한 줄기, 길가의 돌멩이, 나뭇잎 하나하나, 전부 수호마법으로 코팅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게 근방의 숲 전역까지 퍼져 있었다. “이것이 이 몸의 낙원!” 브로데릭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식은땀을 흘렸다. “그 무엇도 상처를 입지 않는 세계의 완성일세!” 풀 하나 즈려밟지 못하고, 돌멩이 하나 걷어차지 못한다. 일종의 광역 무적기와도 같은 기술. 프리스트 단신의 몸으로 가히 성녀의 권능에 비견되는 수준의 백마법을 펼쳐냈다. ‘이 사람, 강하다.’ 어느 순간 웃음기가 싹 빠진 시몬은 등 뒤에 식은땀이 흘렀다. ‘키젠의 교수 중에서 대체 누가 이 사람을 상대할 수 있지? 바힐 교수님 정도? 어떻게 이런 강자가…….’ 시몬의 생각이 복잡해진 가운데, 이 화려한 백마법을 보게 된 선발생들은 감격에 가득 찬 표정이었다. 이내 브로데릭이 ‘낙원의 재현’을 거두고 후후 웃음 지었다. “자! 복습하겠네! 수호학은 프리스트의 무엇이다?” “생명줄입니다!” “여신이 인간에 내려준-” “가장 위대한 산물입니다!” 그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라티아(grátĭa)! 바로 그렇다.” 와아아아아아! 선발생들이 감격하며 눈물을 글썽이고 환호했다. 그리고 저 옆에 주저앉은 리리넷이 다른 의미에서 울먹이고 있었다. “교수님…… 선발생에게 전공 권유 금지…… 이러시면 제가 라흘 교수님한테 죽어요 진짜.” “하하! 다소간의 외압이 있더라도 이 몸이 막아줄 테니 걱정 말게!” 그가 선발생들을 돌아보며 외쳤다. “이론은 여기까지일세! 혹시 질문 있는 선발생 있나?” 2번 스웨이가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들었다. 그를 본 브로데릭이 이를 드러냈다. “스웨이 형제! 만나고 싶었네! 아버님은 잘 계신가? 함께 에프넬에 다니던 시절엔 나의 둘도 없는 라이벌이었지! 물론 지금도 그렇…….” “질문이요.” 아버지 이야기 나오자 칼같이 차단한 스웨이가 입을 열었다. “수호마법 쓸 때 그 바보 같은 포즈는 왜 취하는 겁니까.” 와, 저걸 물어보다니. 안 그래도 궁금했던 시몬의 눈이 번쩍 뜨였다. 다른 선발생들도 귀를 기울였다. 질문을 받자 잠시 눈을 감고 있던 브로데릭이 이내 씩 웃으며 답했다. “퍼포먼스일세!” 역시 이상한 사람이다. 어쨌거나 이론에 대한 설명이 끝나고, 드디어 메인 훈련. 선발생들이 직접 수호마법을 사용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홀리 쉴드 30회 실시!” 브로데릭은 기본기를 상당히 중시하는 성향의 교수였다. 이번 수업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수호마법인 ‘홀리 쉴드’부터 연습시켰고, 이 정도는 시몬도 알고 있었기에 선행학습 이슈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수업에 임할 수 있었다. 조용히 선발생들의 사용하는 수호마법을 지켜보던 브로데릭이 팔짱을 끼고 한숨을 쉬었다. “그만.” 학생들이 일제히 동작을 멈추고 자세를 바로 했다. 브로데릭이 두 손가락을 세웠다. “수호학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두 가지 있네.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선발생들이 앞다투어 손을 들었다. “견고함입니다!” “방어력이에요!” “내구성이죠!” 결국 다 비슷한 의미의 답들이었다. 브로데릭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저었다. “올해도 정녕 답을 아는 선발생이 없단 말인가!” 브로데릭이 한탄했다. 우등생인 메릴은 자존심이 상했는지 말했다. “교수님. 외람되지만 교과서 1페이지에 수호학의 핵심은 견고함이라고…….” “책에 모든 믿음이 있는 게 아니지.” 브로데릭이 웃음기 없이 단호하게 답했다. 모두가 우물쭈물하는 가운데. 스윽. 시몬이 손을 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향했고, 브로데릭도 끼고 있던 팔짱을 풀고 입을 열었다. “오, 그래. 답을 알겠나?” “속도와 통찰입니다.” 브로데릭의 표정이 묘하게 굳어졌다. 메릴이 그게 무슨 답이냐며 시시덕거리는 그때. “그렇게 생각한 이유가 궁금하군. 정답보다 ‘이유’가 더 중요하다네.” 브로데릭의 말에, 시몬은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수호마법은 일종의 방패라고 생각했어요. 방패를 드는 건 후행 동작. 공격이 있어야 방어가 있습니다. 상대가 날리는 화살을 보고 그 화살을 막기 위해 방패를 들어야 하죠.” 우웅. 시몬이 손바닥에 홀리 쉴드를 펼쳤다. “미리 방패를 꺼내 들고 있으면 상대는 그쪽으로 화살을 쏘지 않아요.” “!” “즉, 상대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속도. 그리고.” 시몬이 연달아 옆으로 같은 홀리 쉴드를 다양한 버전으로 펼쳐 보였다. “상대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받아내기 위해, 공격에 대한 분석이 선결되어야 하죠. 즉 통찰입니다.” 잠시 정적이 일어났다. 흐흐. 큭. 브로데릭의 입꼬리가 들썩거리더니, 입에서 비실비실 웃음 새어 나왔다. “형제여, 이름이 뭐라고 했지?” “유클리드입니다.” “이제 막 학교에 입학한 꼬마가 말은 노련한 베테랑처럼 하는구나! 정답이다!” 곳곳에서 살짝 탄성이 일어났다. 시몬은 살짝 가슴이 철렁했지만, 애써 웃었다. “한 가지 더 묻겠다만.” 그가 확 시몬의 목에 팔을 둘렀다. “속도라는 답은 상식적으로 고찰하면 알 수 있으니 그렇다 쳐도, 통찰이란 답은 어떻게 떠올렸지?” “아, 그게…….” 시몬이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적절하게 이 나이대에 맞는 답변을 해야 했다. 머리를 필사적으로 굴리던 시몬이 이내 입을 열었다. “교수님이 앞서 여러 종류의 수호마법을 보여주셨잖아요. 방출기를 막는 방패, 관통기들을 막는 방패 같은.” “그렇지!”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그 가르침이 떠올랐습니다. 교수님이 괜히 같은 종류의 백마법을 여러 번 보여주시는 건 이유가 있다는 생각에…….” 허흑! 명치라도 맞은 것처럼, 브로데릭이 팔로 제 어깨를 감싸며 휘청했다. 허허허헛! 허헣. 음흐흐흐흐흐! 시몬이 뭐라고 답을 할 때마다 그의 반응은 사뭇 격렬했다. 뒤로 빠르게 후다닥 물러나 몸을 배배 꼬며 이상한 웃음을 흘리기도 했고, 잠시 팔을 뻗어 시몬의 말을 멈추게 한 뒤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진정하다가 다시 말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좋아 죽으려는 얼굴이었다. “유클리드 형제여.” 이내 모든 답을 들은 그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후다닥 돌아왔다. “네, 네!” “이제는 자네의 정체가 무엇인지 아무래도 상관없네. 형제는-” 목소리가 주변에 들리지 않을 만큼 줄어들었다. 동시에 그의 눈에 강렬한 소유욕이 일렁였다. “수호학을 전공해야만 해. 반드시!” 수업이 뒷전이 된 브로데릭이 시몬을 끌고 다니며 마구 질문 공세를 퍼붓기 시작했다. 선발생들은 병풍처럼 남겨진 채 웅성거렸고, 스웨이는 시몬이 쩔쩔매는 꼴이 웃긴지 입을 크게 벌리며 웃어댔다. 메릴은 교수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시몬에게 격렬한 질투심을 불태웠다. ‘음.’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리리넷이 조금 얼떨떨한 얼굴로 시몬과 브로데릭을 지켜보고 있었다. ‘교수님 얼굴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네. 레테 성녀님을 처음 가르칠 때도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견수의 개념을 이야기해 보게! -교수님이 가르쳐 주신 부분에서 생각해 보면……. 그녀가 턱을 짚었다. ‘유클리드 사제님도 교수가 듣기에 말을 너무 예쁘게 해. 그림으로 그린 듯한 완벽한 제자. 교수한테 사랑받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체득하고 있는 사람 같아. 마치…….’ 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에프넬 같은 대형 학교를 이미 한번 다녀본 학생이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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