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958화 창문을 통과한 햇빛이 찬란한 색깔로 부서지는 성당의 연단 위. 시몬과 리사라는 나란히 꿇어앉아 손을 맞잡았다. ‘이 타이밍에 우수성사라, 어쩐지 긴장되는데.’ 시몬이 슬쩍 실눈을 뜨고 입을 열었다. “흠흠. 리사라 자매님, 어쩐 연유로 제게 우수성사를…….” “지금까지 유클리드 사제님을 쭉 지켜봐 왔어요.” 긴장한 듯 시몬의 목울대가 꿈틀댔다. ‘지켜봤다고? 지금까지?’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호밀리 부인의 개등 수업 때요. 어쩌면 그렇게 찬란하고 순수한 신성을 사용할 수 있는 건지. 정말 ‘우리와 같은’ 선발생인가 싶었어요.” 그녀가 용의자라고 생각하니 모든 말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시몬은 천천히 꿇어앉은 한쪽 다리를 세우고 힘을 주었다. 어떤 상황에서든 대처할 준비를 했다. “하지만 유클리드 사제님과는 달리, 부끄럽게도 제 신성은 하늘섬에 올라온 뒤로 미약해지고 있어요.” ‘응?’ “원래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에프넬 학생이 되고 하늘섬에 올라온 이후, 제 신성은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어요.” 그녀의 눈에 눈물이 자그맣게 맺혔다. “위대한 어머니께서 저를 나쁘게 보시는 걸까요? 왜 제 힘을 걷어가시는 걸까요? 제가 뭔가 잘못한 게 있을까요?”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이내 목소리에 물기가 섞였다. “그런 게 고, 고민이라서…… 죄송하믑니다.” 잠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녀가 눈을 감은 채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사제님?” 시몬이 소리를 내지 않자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 그래도 눈은 뜨지 않는다. 기도, 성사, 미사 등에 눈을 뜨는 건 금지되어 있었으니까. 시몬은 다소 어안이 벙벙했다. ‘진짜 그냥 고민 상담이었냐고.’ 최근에 너무 범인을 찾아내겠다는 강박이 강해서 그녀를 의심하고 말았다. 시몬은 얼른 다시 자세를 고친 뒤 흠 하고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자매님.” 우선 진심을 담아 사과했다. “그런데 3학년 선배님들이나 성녀님도 아닌, 같은 선발생인 제게 그런 중요한 고민을 털어놓는 이유가 있을까요?” “아, 그…….” 그녀의 두 뺨이 노을처럼 물들었다. “개, 개등 시간에서 본 사제님의 신성이 너무 찬란해서요!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아요. 혹시 여신님의 사랑을 받는…… 비결 같은 게 있나 해서…….” ‘철저하게 자신이 신성이 약해지는 이유를 외부에서 찾는 것 같네.’ 자신이 신성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고 조언할 입장도 아니지만, 묘하게 답을 알 것 같았다. “그럼 리사라 자매님의 이야기를 먼저 들려주시겠어요?” “네?” “외부에서 온 선발생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까 ‘원래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라고 말씀하셨죠? 리사라 자매님께 어떤 사정이 있는지 먼저 알아야 할 것 같아서요.” “아, 네!” 리사라는 신성연방의 프리즈펠이라는 이름의 극북부 지역에서 온 소수민족 출신이었다. 그녀는 마을의 유일한 신성 사용자였다. 주민들이 병에 걸리면 치유하고, 언데드가 출몰하면 쫓아냈으며, 결계를 펼쳐서 추위를 막기도 했다. -리사라는 대단해. 우리 일족의 보배야. -높으신 곳에 있는 성녀만 성녀요? 리사라는 우리의 자랑이자, 프리즈펠만의 성녀라오! 성녀라는 말에 리사라는 손사래를 쳤다. 감히 자신이 그런 위대한 존재에 빗대어지는 건 불경스럽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리사라의 소문을 듣고 에프넬에서 사람이 찾아왔다. 그들은 리사라가 학교에서 신앙을 체계적으로 배우면, 여신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며 마을을 설득했다. 결국 마을에서도 리사라의 미래를 위해 보내주기로 했다. 이런 외진 마을 출신이 하늘에 오른다며 누구보다 그녀를 자랑스러워했다. 리사라는 그렇게 고향을 떠나 에프넬의 선발 9번으로 입학했다. 그녀 본인도 더 성장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있었지만. “하늘섬에 올라오니, 제가 우물 안 개구리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녀가 고개를 푹 숙였다. “마을에서는 저만 신성을 쓸 수 있었지만, 밖으로 나오니 훨씬 더 대단한 프리스트들이 많았어요. 유클리드 사제님도, 메릴 자매님도, 그리고 베르시 자매님도요! 역시 여신께서는 제 자만을 심판하시려고…….” “아니.” 어느새 보통 때의 말투로 돌아온 시몬이 단호하게 말했다. “잘 들어, 리사라.” 그리고 한 손을 떼서 두 손으로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그녀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다른 이유를 찾으려 해서는 안 돼. 네 신성이 약해지는 이유는, 여신에게 외면받아서 그런 게 아니라 네가 너 자신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야.” “하, 하지만……! 신성은 여신께서 신도들에게 빌려주는 작은 기적이잖아요! 제 부진은 분명 여신님의…….” “하지만 그 기적을 일으키는 건 너 자신이야. 스스로 바뀌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원망만 하는 네게, 여신께서 제대로 된 힘을 빌려주고 싶을까?” 그녀가 의표를 찔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믿어. 다른 누구도 아닌 너 자신을.” 시몬이 두 손으로 그녀의 손바닥을 펼치도록 했다. “신성을 일으키는 건 너야. 지금의 네게 필요한 건 여신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너 자신에 대한 믿음이야.” “…….” “일족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려. 네 힘으로 그들을 치료해 주었을 때 그들이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네가 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사람이었는지. 네가 사랑하던 사람들의 눈빛을 떠올려 봐.” 그녀의 표정이 일순 바뀌었다. “그리고 내 말을 따라 하면서 신성을 일으키는 거야.” 시몬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다.” 그녀의 입이 뒤따라 열렸다.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다!” 화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러자. 눈부시게 깨끗하고 거대한 신성이 그녀의 손바닥에서 피어났다. 깜짝 놀란 그녀는 성사 중인 것도 잊고 눈을 떴다. 주위를 가득 하얗게 채운 리사라의 신성이 서서히 방 안에 퍼져 나가고 있었다. “아.” 그녀는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리고. “됐지?” 눈부신 신성 너머로 활짝 웃고 있는 시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예쁘고 따뜻한 신성이네.” 리사라의 얼굴이 귀 끝까지 빨개졌다. *** 하늘섬 거리 탐방이 모두 끝나고, 선발생 10명은 처음 모였던 광장으로 하나둘 집합했다. “네, 수고했어요! 아주 잘했어요!” 디저트 가게에서 급하게 나오느라 입가에 케이크 크림을 묻힌 리리넷이 후배들의 임무 결과를 확인하고 있었다. 시몬과 리사라도 막 광장에 도착한 참이었다. ‘성당에서 나온 뒤로는 한마디도 못 했네.’ 시몬이 힐끗 리사라 쪽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리사라가 자신을 피하고 있다. 시선이 마주치면 화들짝 놀라거나 홱 고개를 돌려 버렸다. ‘내가 우수성사 때 좀 위험한 발언을 했나? 3학년이나 이단심문관한테 알리면 곤란한데.’ 하지만 리사라가 성사에 있었던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막 일러바칠 성격은 아니었다. 시몬은 괜한 고민을 사서 하는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그보다. -밖으로 나오니 훨씬 더 대단한 프리스트들이 많았어요. 유클리드 사제님도, 메릴 자매님도, 그리고 베르시 자매님도요! 4번 베르시의 이름이 나왔다. 시몬이 후드를 벗고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가장 놀라고 경악했던 선발생. 그녀는 어떤 인물인지 궁금했다. 이야기를 미루어 보면 리사라는 베르시의 힘을 가까이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친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저기, 리사…….” “마침 딱 맞춰 왔네.” 원래 시몬과 짝이었던 3번 마리첼로가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쌀쌀맞은 그녀는 시몬에겐 시선을 주지 않은 채, 리사라에게만 조용히 말했다. “여기, 메릴 자매님이랑 같이 임무는 다 수행했어.” 그녀가 체크리스트 수첩을 건넸다. 리사라가 그것을 받으며 말했다. “저, 저희도 무사히 다 끝냈어요.” “응, 정말 정말 고마워.” 그렇게 말한 마리첼로가 죄책감 가득한 표정을 짓더니, 와락 리사라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진심으로 미안해. 자매님을 저런 쓰레기와 같이 두고 싶진 않았는데.” “…….” 그녀가 리사라에게서 떨어져 나와 말을 이었다. “저 개차반 자식이랑 한시도 같이 있고 싶지 않았거든. 자매님에게 정말 큰 빚을 졌어. 이 은혜는 내가 꼭…….” "유클리드 님을!“ 리사라가 손에 쥔 수첩을 구기며 말했다. “내 앞에서 나쁘게 말하지 말아요!” 날카로운 외침이 광장에 울려 퍼졌다. 마리첼로는 그대로 석상처럼 굳어져 버렸고, 그 외침을 들은 다른 선발생이나 리리넷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앗!” 뒤늦게 자신의 목소리가 너무 컸다고 자각한 리사라가 제 입을 가렸다. 그러다 놀란 표정의 시몬과 눈이 마주쳤고, 얼굴이 목덜미까지 빨갛게 변했다. “소리 질러서 죄송합니다!” 그러고는 후다닥 옆 골목으로 도망쳐 버렸다. 선발생들이 수군거렸다. “싸웠나 봐.” “……리사라 자매님이 저렇게 화내는 거 처음 봐요.” 마리첼로는 완전히 넋이 나간 얼굴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리리넷이 입가에 묻은 케이크를 쓱 닦고는 손뼉을 짝짝 치며 외쳤다. “자, 형제자매님들 조용히! 돌아왔으면 임무 체크 받으러 오세요!” 결국 원래 한 조였던 시몬과 마리첼로가 수첩을 들고 함께 리리넷에게 검사를 맡았다. “체크리스트는 문제없어 보이지만-” 수첩에 서명을 한 리리넷이 마리첼로를 보며 눈을 찡긋했다. “다음에도 정해진 조를 자기 멋대로 바꾸면 혼낼 거예요?” 이미 다 알고 있었던 모양. 마리첼로는 ‘죄송합니다’ 하고 고개를 숙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몬과 마리첼로가 검사를 마치고 걸어갔다. “당신.” “?” 마리첼로가 시몬을 노려보며 말했다. “무슨 비열한 수로 저렇게 착한 리사라 자매님을 구워삶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안광이 사납게 번뜩였다. “나는 안 속아. 당신의 본색을 알게 되면 다들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네.” 그렇게 말한 그녀가 성큼성큼 걸어서 먼저 돌아가 버렸다. 시몬이 ‘끙’ 소리를 내며 팔짱을 꼈다. ‘유클리드.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애가 저러는 거냐고.’ *** 신성연방에 와서도 약간의 루틴이 생겼다. 낮에는 열심히 수업을 듣고, 여러 학생들의 정보를 얻으며 성녀와 살인자에 대해 조사한다. 수업이 끝난 뒤에는 저녁을 먹고 우수성사를 주고받으며 동기들과 친해지도록 노력한다. 저녁 식사 뒤에는 근처의 인적 없는 숲으로 들어가서 결계를 치고 그동안 배운 신성에 대한 지식으로 새로운 혼돈마법과 보이드의 연습을 시작한다. 훈련을 마치고 모두가 잠든 새벽에는 도서관에 간다. 오늘도 도서관에 갈 예정이었다. 아직 데스나이트에 대한 정보도 다 얻지 못했고, 신성이나 에프넬에 대한 비밀도 완전히 파헤치지 못했으니까. ‘슬슬 새벽에 나갈 준비를 해볼까.’ 쭈욱 기지개를 켠 시몬이 작성한 수첩을 베개 뒤에 넣어두고는 침대에 누웠다. 두 시간 정도 잤다가 일어나서 도서관에 갈 생각이었다. ‘딱 두 시간만.’ 그렇게 시몬이 눈을 감고 잠들려 하는 사이. ‘!’ 갑자기 몸에 오한이 쭈욱 일었다. ‘뭐야 방금!’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 벌떡 일어난 시몬이 주위를 빠르게 휘휘 둘러보고는 성큼성큼 창가로 열어가 창문을 크게 열어젖혔다. 휘이이이잉! 거칠게 창문이 열리고 찬바람이 불어왔다. 저 멀리 야경으로 반짝이는 에프넬 도시가 보이지만, 이 숙소의 근방은 온통 어둠에 잠겨 있다. 적막이 가득하다. 시몬이 창가로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그때. 아하하하하하! 다른 방에서 학생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쿵쿵 하고 발소리도 들린다. ‘으음, 이상한 기운을 느꼈는데…….’ 멍하니 있던 시몬이 픽 하고 웃었다. ‘벽 너머 소음 때문에 악몽이라도 꾼 건가.’ 시몬은 마지막으로 창밖을 한번 둘러보고는 탁 소리가 나게 창문을 닫았다. 그리고 시몬이 닫은 창가 뒤로. 절그럭. 엉망으로 엉켜 있는 미역 같은 머리카락이 드리워진다. 그 옆으로는 비쩍 마른 미라 같은 기이한 팔이 지붕을 딛고 있었다. 살가죽이 말라붙어 뼈가 훤히 드러난 몸체 위로 치지직 노이즈 같은 게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지붕 위에 몸을 디딘 채 조용히 움직였다. 삐거걱. 고개가 삐걱거리며 180도로 돌아가 시몬이 잠든 창가를 보았다. 그러다 입가를 벌리고 잇몸이 다 드러나도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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