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935화 -끼기기기기기긱! 좀비집사의 말은 단순한 과장이 아니었다. 그는 바닥에서 무한정으로 백귀를 일으키고 있었고, 아케뮤스가 범위 저주로 그것들을 억제했다. 좀비집사를 자유롭게 내버려 두면 전세는 급격히 기울어질 게 뻔했으니, 아케뮤스도 어떻게든 그를 붙잡아두는 모습이었다. [히든 카드 펀치!] 쩌어어어어어어어엉! 그리고 공격은 프린스가 맡았다. 프린스의 펀치를 방어 자세로 막아낸 좀비집사가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비틀거리며 한쪽 무릎을 꿇은 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나를 상대로 두 분이나 여기 있어도 되겠습니까?] [네가 제일 문제인데 당연하지!] 좀비집사가 말했다. [알라제까지 함께하여 그를 강화하고 있죠. 먼 과거에는 나라까지 무너뜨린 적이 있는 언데드입니다. 가만히 두면 7군단의 병력은 십수 분 안에 녹아내릴 겁니다.] 타악. 바닥에 착지한 프린스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뭐, 우리 쪽도 최강의 카드 하나 남겨뒀으니까 좋은 싸움이 되겠네.] [......예?] * 에이션트 언데드, 브루트가 종횡무진 돌아다니며 7군단의 진형을 초토화시키고 있었다. 언데드의 특성상 공포와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7군단은 브루트에게 계속해서 달려들었고 그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누구도 막지 못하는 전진. 그런 브루트의 앞을, 어느 순간 커다란 황금 성벽이 떡하니 가로막으며 나타났다. [분석 결과. 7군단의 대장. 헤르세바의 기술.] 브루트의 어깨에 올라타 있던 알라제가 정보를 읊었다. [전술적인 판단. 전투의 필요성 전무. 우회 필요.] [끅하하하하하! 성이다!] 물론 브루트는 말린다고 들을 자가 아니었다. 그가 훌쩍 뛰어올라 칼로 성벽을 긁어내기 시작했다. 성을 지키던 미라들이 브루트를 붕대로 휘감으려 했지만, 360도 전 방향으로 미친 듯이 대도를 휘둘러 참살하는 브루트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 이내 브루트가 황금 성벽을 종잇장처럼 찢어버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찢는다! 찢는다?] 적이 주위에 없자 브루트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그때, 알라제가 다급히 말했다. [회피! 회피 요망!] [이미 늦었지롱.] 천장에 철썩 붙어 있던 헤르세바가 대량의 모래를 이끌며 내려왔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 모래가 세 언데드들의 몸을 집어삼켰다. <헤르세바 오리지널 - 모래의 세계> 휘이이이이이잉-! 잠시 시야를 가렸던 모래폭풍이 가라앉으니, 주위의 경관이 순식간에 바뀌어 있었다. 눈을 뜬 브루트와 알라제가 정신없이 고개를 움직였다. 이곳은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사막 한복판. 위에는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뿐이었다. [안녕, 친구들. 내 공간에 온 걸 환영해!] 그리고 그 파란 하늘에 속눈썹이 긴 커다란 눈동자가 생겨나 두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개인 던전.] 알라제가 결론을 내렸다. [상대를 던전으로 데려오는 권능. 극도로 희귀.] [칭찬 고맙네.] [하지만 시간 끌기. 전세에 지장 전무. 브루트. 던전 밖으로 나가면 다시 학살 시작.] 그때 하늘의 눈동자가 반달로 접히며 웃는 형상으로 바뀌었다. [과연 그럴까?] 쩌적. 쩍. 알라제의 시선이 돌아갔다. 모래뿐이었던 반대쪽 지면이 점점 빙판처럼 얼어붙기 시작했다. 쩌저저저저저저저저저저저저적. 이내 사막의 절반이 순식간에 얼음으로 뒤덮였다. 거센 폭풍우와 눈보라가 휘몰아치며 설산의 광경이 펼쳐졌다. 꾸드드드드득! 그리고 그 가운데의 얼음이 뚫리고. 왕좌에 앉아 있는 갑옷 차림의 언데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드디어 나설 때가 왔나.] 마르고 큰 체형에, 뼈로 이루어진 흰 외골격이 갑주처럼 몸을 감싸고 있었다. 안면에는 곡선으로 휘어진 특이한 주름이 잡혀 있었으며, 턱이 길쭉하고, 주둥이가 튀어나왔다. 전 설귀 부대의 대장 자이로스. 그리고 현 프로스트 필드의 지배자이자 '북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와라. 빙하의 권속들이여.] 쿠르르르르르르르르르! 쩌저저저저저적! 지면의 얼음이 갈라지며 그 안에서 셀 수도 없이 수많은 북부의 언데드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거대한 괴물곰, 얼어 죽은 설귀, 머리 없는 빙산거인까지. 현재 본진에 들어와 있는 7군단의 전 병력을 합친 것보다 많은 수였다. [프로스트 필드의 북신.] 알라제가 분석했다. [과거 에이션트 언데드 단일 개체로 아르스칼트 가문의 2군단을 멸망의 위기로 몰아넣었던 전설적 존재.] 쿠쿵. 자이로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손에 든 혹한의 검을 세우고 적을 향해 겨누자 무수한 북부의 언데드들이 울부짖었다. 눈보라가 더더욱 거칠게 몰아쳤다. [오랜만에 등장이네요!] 북신의 네임드 언데드이자 심복인 '삼형제'들도 나타났다. 삼형제 중 하나인 우유장수 그레이슨이 미소 지었다. 그런 그녀의 옆으로 새로운 둘째와, 셋째가 무기를 쥔 채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북신의 군대뿐만이 아니었다. 빙하 지형의 반대편에 위치한 사막에서는 거대한 규모의 황금 도시가 일어나고 있었다. 건물에서는 문이 열리고 미라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심지어 붕대를 휘감은 독수리나, 거구의 사자 같은 대형 언데드들까지. 모래의 세계와, 얼음의 세계가 중앙의 브루트와 알라제를 포위한 채 다가오고 있었다. [브루트라는 언데드에 대한 소문은 들었다. 단신으로 나라를 파멸시켰다지.] 자이로스가 검을 세워 휘둘렀다. [자! 그럼 어디 나의 왕국도 무너뜨려 봐라!] [우리도 전진! 북신에게 밀리지 마!] 자이로스와 헤르세바가 동시에 명령했다. 북부의 언데드들과 미라 부대가 썰물처럼 몰려들었다. [아무래도 이건.] 병력에 압도당한 알라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심각하게 위험한 상황으로 판단됨.] * "여기는 중앙! 여기는 중앙 연구소! 3지부는 응답하라!" -여기는 제3지부. 무슨 일인가? "적의 공격에 중앙 연구소 전체가 함락당하고 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포탈이 열리지 않아 본가의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지금 당장 지원 병력을 요청한다!" -적의 숫자는? "두, 두 명이다!" 잠시 통신 수정구에서 말이 멈췄다. 지원을 요청하던 결사의 일원이 얼른 말을 이었다. "확실하다! 출입한 인원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지만 지금 싸우고 있는 적병은...... 두 명으로 판명된다!" -지금 장난하나? 당신 누구야? "정말이다! 둘이서 10개소 처단 부대를 전멸시켰다. 이대로는 이곳이 함락당하...... 크헉!" 그렇게 말하던 그가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응답하라! 중앙! 응답하라! 저벅. 저벅 저벅. 피와 전장의 현장. 그 가운데 두 명의 남자가 거침없이 걷고 있었다. 두 사람 다 어깨를 들썩이며 광인처럼 웃고 있었다. 모든 게 그저 우스워 죽겠다는 듯. 세상 만물을 비웃듯이. 무수한 피의 바다 위에서 광대 같은 걸음걸이로 걸어가고 있었다. "즐겁네요. 즐거워요. 이러고 있으니 옛날 생각이 아른거립니다, 아론 선배." 바힐이 손을 장난스럽게 휘저었다. 그의 손끝에서 쏘아진 한 줄기의 저주가 벽면과 천장에 부딪혀 수백 갈래의 저주로 흩어지더니 돌진하는 처단 부대에 내리꽂혔다. 결사의 부대원들이 눈이 돌아간 채 서로를 칼로 찌르고 흑마법을 퍼부었다. "옛날엔 자주 이렇게 같이 깽판치러 다니지 않았습니까." "같은 종자로 취급하지 마라. 사이코패스." 그렇게 말하는 아론의 입가에도 이죽거리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가 팔을 들어 올리자 하늘에 떠오른 거대한 언데드 비행선에서 시뻘건 스켈레톤들이 벌떼처럼 쏟아졌다. "물론 오랜만에 해방감을 느끼고 있는 건 인정하지." 상대는 결사. 장소는 던전. 그리고 명령은 순수한 '파괴'. 거기에 방금 세르네의 보고까지 들어왔다. 살아남은 화이트들을 모두 구한 뒤 안전한 곳으로 빠져나갔다는 내용이었다. 이제는 거칠 게 없다. 리미터가 해제되고 사회적 체면과 도덕적 관념을 벗어던진 두 남자가 물 만난 고기처럼 날뛰고 있었다. -지금이다! 베놈헤드를 보내! 쿠구구구구궁! 벽면을 박살 내고 뱀 형상의 실험체 언데드가 입을 벌리며 돌진했다. 척. 아론이 반대쪽 손을 휘젓자, 그의 소환수인 '리치'들이 흑마법을 사용했다. 아론의 옆으로 새까만 빙하의 기둥이 솟아올랐고. 스스스― 바힐이 기둥에 저주를 걸었다. 뱀들은 갑자기 눈이 돌아간 채 빙하의 기둥을 휘감다가 순식간에 얼어붙어 저체온증으로 늘어졌다. "하하하하! 형편없는 실험체군요!" 바힐이 10대 소년처럼 웃어댔고. "시끄러우니까 그만 웃고 제대로 싸워라." 아론도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대꾸했다. 해방감. 두 사람이 마음 놓고 진심으로 벌이는 파괴 행위에, 결사의 핵심시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무너져 내려가고 있었다. "선배. 1학년 때 프라우몬 교수 기억나십니까?" 바힐이 손을 휘두르자, 전시대에 정성껏 진열되어 있던 결사의 식물들이 일제히 사탕처럼 녹아내렸다. "질병 작물을 기르라는 수행평가를 시켜서 학생들이 앓아눕는 바람에, 다른 과목 수행평가를 못 치렀죠." "핍스 교수는 기억나나?" 아론의 빨간 스켈레톤들이 도끼를 들고 실험관을 다 깨뜨렸다. 그 안에 있는 모든 언데드의 코어까지 남김없이 파괴했다. "과제 미흡인 학생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보란 듯이 회초리로 때렸지." "우리 땐 그랬으니까요. 별명이 개구리 교수였는데." 바힐이 저주를 하늘로 쏘아 보냈다. 저주들이 하늘에서 퍼져 나가며 개구리 얼굴 모양의 폭죽처럼 퍼졌다. 이내 그 잔해가 비처럼 쏟아져 내려 결사의 기지를 저주 폭격했다. "핍스를 위해." "핍스를 위해." 낄낄낄낄낄! 하하하하! 두 남자가 장난기 넘치는 미취학 아동처럼 흑마법을 난사했다. 실험실이 불타고, 수백 년간 연구한 고서들도 불살라졌다. 주위의 벽면이 온통 '핍스를 위해'라는 낙서로 가득 찼고, 저주 때문에 개구리로 변한 결사의 병사들이 도망치다가 아론의 스켈레톤에게 밟혀 죽었다. "선배. 전방의 벽면, 300보 전방에 잔챙이 20명 옵니다." 바힐이 저주로 상대를 감지하고 말했다. 아론이 흑마법을 펼쳤다. 지면에 마법진이 펼쳐지더니, 커다란 비석이 솟구치고 주위의 연기가 휘몰아쳤다. "부탁한다. 바르바스." 이내 그 연기에서 거대한 본 드래곤이 튀어나오더니 바힐이 표시한 지점으로 입을 벌리며 브레스를 일으켰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시커먼 원통형의 브레스가 벽면을 뚫고 날아가 결사의 처단 부대를 불태우고 근처의 연구 시설을 모조리 파괴했다. "보고 있나." 아론이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나의 친우, 하르히스를 위해." "에이, 난 모르는 이름입니다. 둘이 공유할 수 있는 추억으로 하자니까 꼭 삐딱선을 타요." 바힐이 우습게 대꾸했다. 이내 두 사람이 경쟁하듯 팔을 휘둘렀다. "웰릭스를 위해." "아그리거를 위해." 압도적이라는 말로도 부족했다. 술 취한 듯 낄낄 웃어대는 단 두 네크로맨서의 화력 난발에 중앙 연구소가 무너져 내렸다. 사방에 불길이 치솟았고 폭음과 굉음이 울려 퍼졌다. 결사의 연구원들 전원의 기억에 악몽처럼 남을 만한 광경이었다. 척. "......." 그때 아론의 표정이 굳어지며 처음으로 걸음을 멈추었다. 뒤쪽으로 저주를 난사하던 바힐도 고개를 돌렸다. "기다렸다. 설마설마했는데 진짜 넘어왔군." 하얀 머리카락의 소년이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반가워, 아론 교수." 눈앞에 보이는 건 매그너스 알반. 제5군단장이 이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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