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917화 임무평가 복귀 첫 수업부터 야외수업 일정이었다. 소환학과 학생들은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한 묘지에 도착했다. 랭거스틴의 버려진 공동묘지였는데, 묻혀 있는 사람들의 출처도 몰라서 키젠에서 교육목적으로 사들인 곳이었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를 떨었다. 워낙 사건 사고가 많았던 임무평가 기간이었기에 할 이야기는 산처럼 쌓여 있었다. "안녕, 로레인." 시몬도 오랜만에 보는 검은 머리카락의 여학생에게 다가갔다. 그녀도 빙글 몸을 돌려 인사했다. "안녕, 시몬." 남들은 평소와 같은 인사라고 생각하겠지만, 시몬은 어쩐지 그녀의 목소리에서 활기가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무사해 보여서 다행이야. 이번 임무평가는 어땠어?" "재밌었어." 초크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살짝 해방감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온 힘을 다 냈거든." "......하하." 전에 카쟌을 만났을 때 대충 이야기는 들었다. 그녀는 차기 암흑연합 총수가 될 후계자이기에 언론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통제하지만, 사실 전과로 따지면 이번에 손꼽힌 3대 유망주 못지않았다고 한다. 그녀의 눈썹이 살짝 내려갔다. "리버론에서 많이 다치지는 않았니?" "아, 응. 멀쩡해." "연합을 위해 힘써줘서 고마워. 드래곤들과의 분쟁이라니, 내가 갔어야 하는 일인데." 시몬이 손사래를 쳤다. "아냐. 아냐. 나도 그런 상황을 다 알고 간 건 아니었어. 참! 그보다 네프티스 님은 어디 계신 줄 알아?" "우리 엄마?" 잠시 입술에 손을 올리며 생각에 잠겨 있던 그녀가 말했다. "신성연방 쪽에 가셨다고 했어." '윽.' 역시 죽음의 마녀.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륙 반대편에 있었다. 상당히 바빠 보인다. "당분간 만나기 힘들겠네." 네프티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주고 싶었는데 쉽지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아래쪽에서 슬쩍 인기척이 느껴졌다. "질투 나게 둘이서만 뭐 해요?" '흐억!' 갑자기 시몬과 로레인의 사이에서 불쑥 솟아오른 건 미래 상아탑의 탑주, 세르네 아인다르크였다. 그녀가 머리를 쳐올리자 폭포수 같은 백금발 머리카락이 풍성하게 출렁였다. '어떻게 바닥에서 튀어나온 거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시몬이 애써 웃으며 말했다. "아, 세르네. 안녕." "안녕하세요- 리버론의 영웅님." 그녀가 특유의 여우 같은 눈웃음을 흘렸다. "대영지를 구한 활약은 멋지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쉽고 섭섭한 거 있죠? 리버론 다음에는 우리 상아탑에도 한 번 방문할 줄 알았는데요." "상아탑 쪽은 메이린이 직접 갔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문제는 해결됐어?" "아, 그거 사실 별거 아니었어요. 사람들을 조종해서 결사의 문제로 피해가 큰 척 소문을 부풀린 거예요." "뭐?" 시몬이 순간 벙찐 표정을 지었다. 지금 내가 무슨 이야기를 듣고 있는 거지? "시몬을 우리 상아탑에 방문시키려는 고육지책이었는데, 하여간 메이린은 도움이 안 된다니까요." "너 진짜......." 역시 세르네는 정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오호호 교태로운 웃음을 흘리며 재잘재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졸지에 뒤로 밀려나 세르네의 등만 보게 된 로레인이 불퉁한 표정을 지었다. "자, 학생 여러분 모여주세요! 이제 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 장송학 조교가 소리쳤다. 흩어져서 떠들던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옆에서부터 진 아르스칼트와 수석조교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수석조교는 바퀴 달린 칠판을 밀고 있었다. 진은 여전했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군 제복 차림에, 뒤로 묶은 머리를 휘날리며 걸어왔다. 몇몇 남학생들은 푹 빠진 표정을 지었다. "진짜 그림이다." "그 유명한 북부대공이 우리 교수란 게, 가끔 꿈인지 진짠지 혼란스럽다니까." 그러다 조교들의 시선이 닿자, 그들이 얼른 입을 다물었다. 진은 분필을 붙잡고 '묘소'라고 크게 썼다. '바로 저거구나.' 시몬의 눈이 빛났다. 이번 수업의 주제는 '묘소'에 대해서였다. "본래 묘소는 장송학 쪽이라기보다는 전공 소환학 쪽이지만 내가 가르치게 됐느니라." 그렇게 말한 그녀가 톡톡 분필을 칠판에 두들겼다. "그대들이 좋아하는 아론 교수가 아예 가르칠 내용까지 지침을 세워두고 갔느니라. 내가 대공이라고는 하나, 이곳에서는 임시 교수 신분이니 까라면 까야 하지 않겠느냐." 그녀의 농담에 곳곳에서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론 교수가 말하더군.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기 전에, 반드시 그 근본과 유래를 알려줘야 한다고. 좋다." 이내 표정을 고친 그녀가 분필을 고쳐 쥐었다. "그대들은 역사상 가장 기술 발전의 혜택을 받고 있는 세대의 네크로맨서들이니라. 그중에서도 네크로맨서들에게 커다란 변혁을 일으킨 기술들이 몇 가지 있지. 그게 무엇인 줄 아느냐." 한 여학생이 번쩍 손을 치켜들었다. "에슈 아르젤입니다! 데스나이트......! 아닌가요?" "아니다." 안경 쓴 남학생이 안경을 고쳐 쓰며 손을 들었다. "피츠제럴드 잉겔스입니다. 소환술식입니다." "아니다. 그 정도는 먼 과거에도 있었느니라." 잠시 몇몇 막 던지는 대답이 돌아왔다가, 어느 순간 가장 크고 굵은 팔이 들어 올려졌다. 시끌벅적한 소리가 일순 가라앉고 그 팔의 주인이 말했다. "헥토르 무어입니다. 아공간입니다." "정답. 상점을 부여하겠다." 아- 알았는데. 곳곳에서 아쉬움에 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수석조교가 출석부를 체크했고, 그의 파벌들이 활짝 웃으며 헥토르의 등과 팔뚝을 때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 너희들은 익숙하겠지만 아공간 기술은 비교적 최신 기술이니라. 예전에는 고위 네크로맨서들의 전유물이었고, 십수 년 전만 해도 아공간이 이토록 상용화될 것이라는 건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지. 이제는 1학년 신입생 입학 준비물이 될 정도까지 왔다만." 학생들이 슬쩍 시선을 주고받으며 미소 지었다. "그렇다면 아공간이 제대로 상용화되기 전에는, 일반 네크로맨서들은 어떻게 소환수를 보관했다가 꺼내 썼을까." "에슈 아르젤입니다악!" 이번에야말로 에슈가 번쩍 손을 치켜들며 제자리에서 일어났다. "묘소입니다!" "정답이니라. 오늘 수업 주제를 말한 것뿐이니 상점은 없다." 아하하하!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목덜미가 빨갛게 물든 에슈가 다시 제자리에 쭈그려 앉았다. "시체를 싣는 미트웨건, 몬스터를 체내에 보관하는 모르보로 등 여러 수단이 있다만, 가장 유명한 건 '묘소'다." 그녀가 오른팔을 들어 옆을 가리켰다. 그러자 저 멀리 떨어진 지점에 뭔가가 번쩍이더니, 그리 크지 않은 크기의 '비석'이 지면에서 솟구쳤다. "민간인들이 '네크로맨서'하면 가장 흔히 떠오르는 장면이겠지." 퍼억. 퍽. 이내 비석을 중심으로 지면이 갈라지더니 좀비들의 팔이 튀어나왔다. 이내 하나둘 바닥을 뚫고 좀비들이 일어났다. 멋진 시범에 학생들이 손뼉을 쳤다. "이런 기본적인 묘소도 있고." 처억! 그녀가 이번에는 왼쪽으로 강하게 팔을 뻗었다. 이번에는 사람 키보다 더 큰 비석이 퍼석! 소리를 내며 솟구치고, 그 주위로 흐릿한 안개가 펼쳐졌다. 학생들이 술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지켜보았다. 이내 그 안개가 지면 한쪽에 모여들더니. 화아아아아악! 그곳에서부터 소형 낚싯배 크기의 괴물 생선이 입을 쩍 벌린 채 튀어나와 입을 콱! 닫고는 그대로 떨어져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학생들이 와! 소리를 내며 탄성을 토해냈다. "이렇게 덩치가 큰 언데드의 운용도 가능하느니라." 시몬의 눈이 번쩍였다. '이 기술은 분명.......' 아론이 전투에서 리치 같은 고위 언데드를 일으킬 때 쓰던 기술 중 하나였다. 그것 역시 묘소였다. "물론, 아공간이 있는데 왜 묘소까지 배워야 하냐고 생각하는 학생들도 있겠지." 진이 저벅저벅 걸어가 손짓했다. 앞에 앉아 있던 토토 아모리가 움찔하더니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저, 저요?' 하고 물었다. 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토토가 후다닥 앞으로 나왔다. "묘소와 아공간은 운용법에서 큰 차이가 있느니라." 그녀가 손끝을 움직였다. 그러자 안개가 스르르 올라와 토토의 몸을 둘러쌌다. "막아보거라." "흐갹!" 연기에서 튀어나온 언데드 팔이 토토의 뒤쪽 다리에 닿자, 토토가 자지러지는 소리를 냈다. 그가 다급히 뒤를 돌아보았지만 안개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번에는 앞에서 팔이 튀어나와 토토의 옆구리에 닿았고, 뒤이어 머리, 등, 허벅지까지 손들이 연달아 튀어나와 토토의 몸에 닿고 갔다. "흐긱! 악! 허업!!" 겁먹은 토토가 통통 튀며 자리에 쓰러지고, 주위는 웃음바다가 되었다. 진이 안개를 거두며 말했다. "어땠나?" "바, 반응하지 못하겠어요!" "그래, 이런 부드러운 운용은 아공간으로선 불가능하다. 묘소만이 가능하지. 뿐만 아니라 묘소를 운용해야만 쓸 수 있는 묘소 전용 언데드도 존재한다. 그리고 덩치가 큰 언데드 운용, 특수 전술, 장애물 극복, 출현과 동시에 명령을 내리는 데는 묘소만 한 게 없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비석에 원격으로 장송 마법진을 그렸다. "묘소에 '장송'을 걸어서 내부의 동일 언데드를 한 번에 강화할 수 있지." 이내 연기 끝에서 처음에 토토를 건드렸던 좀비의 팔들이 모두 시뻘게진 채로 솟구쳤다가 내려왔다. 전보다 훨씬 힘과 속도가 빨라진 모습. 학생들이 탄성을 쏟아냈다. "물론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니라. 묘소도 엄연히 소환수의 일종이라 일반 소환수처럼 정신력이 소모되고, 시전자에게 정신적 부담을 많이 주지. 또한 적에게 비석이 깨지면 당분간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느니라. 아공간과는 달리 장기 보관이 불가능해서, 전투 전에 미리 세팅해야 하는 불편함도 있다." 그녀가 팔짱을 꼈다. "아공간과 묘소는 각자 장단점이 있느니라. 하지만 두 가지 모두를 할 줄 알지만 한 가지를 주로 쓰는 것과, 모르고 하나만 쓰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다. 키젠 학생이라면 묘소는 필수적으로 배워둘 필요가 있느니라." 학생들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고, 진이 뒤쪽으로 손짓했다. "이곳 공동묘지에 다수의 '묘지기'들이 어슬렁거리고 있다. 이를 손에 넣고, 묘소를 사용하기 위한 준비를 하도록. 기말고사 직전에 치를 대형 수행평가에서도 묘소에 관해서 평가하겠느니라." 그 말을 들은 학생들의 눈에 총기를 넘어선 그 이상의 뭔가가 번뜩였다. 다들 하나둘 앞다투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 * * -한 번만 설명할 테니 잘 들어라. 진은 이 공동묘지에서 나타나는 '묘지기'라는 몬스터에 대해 칠판에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했다. 묘소 언데드는 대부분이 자연형 언데드로서 무덤과 비석에서 출몰한다. 분류상은 망령 언데드이지만, 본체가 비석이기에 스피릿이 없어도 보거나 다룰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흔한 게 바로 묘지기였는데, 비석에 붙어 있는 작은 임프 같은 모양새다. 이들은 무덤의 비석이나 바위 따위에 깃들어 있으며, 자신의 몸을 연기처럼 바꾼 뒤 비석 아래에 묻혀 있는 관을 둘러싼 채로 머무른다. 계속 방치하면 시체를 훼손시키거나 자연형 언데드로 일으키는 주범이었다. 바로 이들을 붙잡아 언데드로 부리는 게 핵심. 이들은 따로 코어가 없으니, 미리 준비한 비석에 집어넣어서 부려야 했다. 수석조교들은 즉석으로 묘지기들을 붙잡을 저주를 가르쳐 주었고, 이내 학생들이 흩어져 이것들을 직접 잡아 와야 했다. "아, 어딜 도망쳐!" "저주가 안 걸리는데?" 다들 처음이라 그런지, 가장 약하고 능력이 떨어지는 묘지기를 붙잡는데도 우왕좌왕했다. 그러는 가운데. "옳지." 시몬은 자연스레 묘지에서 한 묘지기를 데려온 다음, 저주를 걸어서 자신의 사역마로 다루는 모습이었다. 지켜본 학생들은 이미 시몬의 천재성이 익숙한지 고개를 끄덕이며 지나쳤다. "다 된 학생은 이쪽으로 오십시오." 수석조교가 외쳤다. "2인 1조로 묘지기를 비석에 집어넣겠습니다!" 먼저 완성한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시몬도 마찬가지였다. 수석조교는 빠르게 빠르게 무작위로 두 명을 묶어서 한 조로 만들고 다음 장소로 보냈다. "피츠제럴드 학생은 비브리아나 학생으로. 네. 그리고 다음, 시몬 학생은......." 거기까지 말한 그녀가 옆에 다가온 학생을 보았다. "화이트 학생과 함께하면 되겠네요." 시몬이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바로 뒤에서, 하얀 머리카락과 흐리멍덩한 눈의 소년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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