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912화 렉사나는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을 보고도 믿기 힘들었다. 기껏 아공간을 차단했더니, 저 소년은 여기서 한참을 떨어져 있는 반대편 탑에서 자신의 소환수를 불러왔다. 연구실의 벽과 바닥을 찌그러뜨리며 혜성처럼 출현한 거대한 뼈들. 푸른 머리의 소년을 중심으로, 용의 뼈들이 수백 미터를 비행하여 수족처럼 속속 집결하고 있었다. 다리, 가슴, 날개, 심지어는 꼬리의 뼈들까지. '본 드래곤? 아니, 그럴 리 없어.' 정말로 본 드래곤이라면 아공간밖에 꺼내둘 리 없다. 연구동 쪽에서 나온 물건이기도 하니, 아직은 미완성인 형태가 틀림없다. 그렇다면 승산은 이쪽에 있다. "헤라본!" 그녀의 사념에 반응한 키메라 헤라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용의 입에 물린 한쪽 팔을 스스로 뜯어내고는, 성큼성큼 걸어가 남은 한 손만으로 옆의 테이블을 들어 올려 시몬을 향해 내던졌다. "내 옆에 붙어 있어, 사샤." 시몬이 사샤의 어깨를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오른손을 리드미컬하게 움직였다. 쿠구국-! 거대한 용의 가슴뼈가 공중에서 시몬과 사샤를 감싸듯 내려왔다. 균일하게 뻗어 있는 가슴뼈는 마치 쇠창살과도 같았는데, 일종의 방패 역할이었다. 살벌하게 날아오던 테이블이 쾅! 하고 가슴뼈에 부딪혀 튕겨 나갔다. 안전한 용의 몸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 "아." 졸지에 품에 안기게 된 사샤는 상기된 얼굴로 시몬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결연한 표정. 일말의 흔들림도 없는 심지가 꽉 박힌 눈동자. '미친 것 같아.' 심장이 콩닥콩닥 뛴다. 근사했다. 어쩜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이렇게 위험한 와중에도 도저히 시몬에게 눈을 뗄 수 없었다. 지켜보던 렉사나가 긴 숨을 내뱉었다. "본 드래곤은 확실히 놀랐습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미완성인 언데드로 펜타모니엄의 최고 걸작을 막겠다니." 렉사나가 팔을 세웠다. "학자들이 쏟아부은 시간과 돈이 우습게 보였나 보군요!" 키메라 헤라본이 쿵! 쿵! 쿵! 육중한 발소리를 내며 달려왔다. 시몬은 천천히 손끝을 들어 올렸다. "86번 뼈." 기둥 같은 뼈 하나가 시몬의 앞으로 날아왔다. "그대로 103번까지 연동." 덜그럭. 덜그럭. 뒤이어 육중한 용의 뼈들이 차례대로 날아오더니 자기들끼리 공중에서 조립되었다. 그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다리'의 형태를 이루어 바닥을 향해 내려왔다. "밟아." 쿠우우우웅! 돌진하던 헤라본이 내려오는 본 드래곤의 다리를 보고는 몸을 빼서 피했다. 빈 바닥에 내려꽂힌 용의 다리가 바닥을 무자비하게 박살 냈다. "계속해." 시몬이 손바닥을 연달아 내리그었다. 그때마다 용의 뼈가 떠올랐다가 내려오기를 반복했고 헤라본은 뒷걸음질 치며 피하는 수밖에 없었다. 위기감을 느낀 렉사나는 직접 사념으로 헤라본에 간섭했다. 용의 뼈가 텅 빈 바닥을 짓밟는 즉시, 타이밍에 맞춰 헤라본이 앞으로 뛰어나갔다. "220번 뼈에서 253번까지." 소년이 허공에 피아노 치듯 손짓하자, 균일한 형태의 길고 날렵한 뼛조각들이 그의 눈앞으로 촤르르 진열되었다. 이내 주먹을 움켜쥐자, 공중에 떠 있던 뼈들이 마치 하나의 부위처럼 이어졌다. 이번에는 '꼬리'였다. 부웅! 시몬이 손날을 휘두르자, 뼈들의 집합이 곡선을 그리며 휘둘러져 돌진하는 헤라본의 복부를 강타했다. 꽈아아아아앙! 몸이 기역 자로 꺾인 채 날아간 헤라본이 연구실 벽에 큰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말도 안 돼.' 렉사나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분명히 미완성일 텐데. 저 무거운 뼈를 무슨 수로 움직이는 거지? 어떻게 드래곤의 동작을 완벽히 재현하는 거야?' 그런 의문을 가지니 그제야 그녀의 눈에도 보였다. 뼈들을 띄우고 있는 용의 마법과, 뼈들을 서로 이어주고 있는 칠흑의 존재를. <용의 마법 - 생물 구축> 시몬이 꼬리를 움직이던 손을 주먹 쥐어 멈추고, 반대쪽 손을 움직였다. 이번에는 정확하게 내려온 다리뼈가 쓰러진 헤라본의 몸통을 찍어 눌렀다. 쿠구궁! -끄그극! 용에게 짓밟힌 헤라본이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내리누르는 압력이 어마어마한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렇게 나온다면!" 렉사나가 손에 든 장치를 작동시켰다. 철컹! 철컹! 치이이이이! 그녀의 연구실 전역에서 빗장 풀리는 소리가 들리고 연기 같은 게 새어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내 사방에서 네 발로 달리는 개 형상의 키메라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양산 개발 중이었던 도그 키메라. 숫자의 차이가 역전됐지만, 시몬은 집중력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지시했다. "움직여." 시몬의 지시에 아직 바닥에 어질러져 있던 용의 뼈들이 일제히 공중으로 떠올랐다. 각자의 방식으로 달려드는 개들을 쳐내거나 밀어내기 시작했다. 콰아앙! 그것은 마치 시몬을 지휘자로 두고, 각자의 방식과 음색으로 하나의 곡을 연주하는 악단 같았다. 팔을 형성해 개들을 움켜쥐어 폭사하고, 다리를 조립하며 짓밟고, 특히 미리 만든 꼬리뼈는 채찍처럼 휘둘러 단번에 열댓 마리를 튕겨냈다. 본 드래곤이 아니라, 진짜 드래곤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시몬은 가슴뼈를 더더욱 좁혀서 자신과 사샤의 방어에 집중한 뒤, 명령을 내렸다. "날개." 이번에는 이미 조립되어 있던 피막이 붙어 있는 한쪽 용의 날개가 내려왔다. 시몬이 눈을 감았다. '공기가 머금고 있는 열기를 느낀다.' 후으읍 숨을 들이마셨다. 사방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 퍼지고 핏줄기가 튀었지만 시몬의 집중력은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조언자급 드래곤, 미르미즈의 종족은 레드 드래곤이야. 열을 조종하는 생물.' 날개에 열기가 모이는 걸 느낀다. 이내 시몬이 눈을 게슴츠레 떴다. "날개치기." 화아아아아악! 날개가 한번 휘둘러지는 순간, 그 공기가 뜨거운 열풍으로 변해 전면으로 불어닥쳤다. 가까이 있던 개들은 순간적인 열기에 잿더미로 변하고, 뒤따라 키메라 개들이 일제히 열풍에 휘말려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화르르르르르륵! 화르르르륵! 방 안에 종이나 나무로 된 모든 것들이 불살라졌다. "윽!" 다급히 방어마법을 펼쳐 버텨낸 렉사나가, 후끈한 열기가 가신 뒤에 정면을 응시했다. "이럴 수가......!" 날개가 휘둘러진 방향으로, 벽과 바닥이 온통 부채꼴로 검게 그을린 모습. 믿을 수 없었다. 그 너머로 푸른 머리카락의 소년이 숨을 헐떡이며 이마에서 땀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다. 근사하다. 같은 네크로맨서로서 렉사나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사샤를 만나기 전에 그를 만났다면 그녀의 연구 대상도 바뀌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건 오지 않은 미래이고 가정법일 뿐이다. '이겨야 한다.' 하나를 주면 하나를 얻는다. 시몬이 날개에 집중하는 사이, 다리뼈의 힘이 풀렸고 키메라 헤라본이 빠져나와 시몬에게 돌진했다. "막아." <본 프리즌(Bone Prison)> 기둥만 한 용의 뼈들이 달려오는 헤라본의 몸에 철썩철썩 달라붙었다. 이내 강한 압력으로 조였지만, 헤라본은 뼈기둥을 붙잡고 역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드디어 힘이 빠졌다! 이길 수 있어!' 렉사나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시몬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표정이.......' 저 소년은 아직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손바닥을 펼친 채 뭔가에 잔뜩 집중하고 있는 모습. 저 뼈들이 다가 아니었다. 이미 뭔가를 움직이고 있다. '이번에는 뭐지? 다리? 꼬리? 아니면 날개?' 그녀가 급히 주위를 훑어보았지만 모든 파츠들이 가만히 멈춰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한발 늦게 뇌리에 스친 생각에 그녀의 심장은 철렁 내려앉았다. '잠깐! 그러고 보니 처음에 왔던 용의 머리는 어디로......!' 콰아아아아아앙! 연구실의 바닥이 박살 나며, 아래층에서부터 거대한 용의 머리가 튀어나와 입을 쩌어어억 벌린 채 헤라본에게 다가갔다. "후읍." 시몬이 눈앞으로 손가락을 쫙 펼쳤다. 손가락 마디 사이로 용의 머리가 키메라가 다가가는 모습이 보인다. 이내 시몬이 주먹을 꽈악 움켜쥐었다. "물어 죽여." 꽈드드드드드득! 용의 입이 다물어지고 사방에 핏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살점이 짓이겨지는 불쾌한 소리와 함께, 헤라본 키메라가 이빨 사이로 축 늘어졌다. 사념 연결이 강제로 끊긴 렉사나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마침내 시몬이 주먹 쥔 손을 내리며 힘겹게 미소 지었다. '이겼다.' 쿠쿵- 쿵- 드디어 공중에 떠 있는 몇몇 용의 뼈들이 힘이 다한 듯 바닥에 떨어졌다. 불리한 상황과 조건속에서도 모든 걸 극복하며 이겨낸 승리였다. '대단해.' 사샤는 감격에 찬 눈으로 시몬을 바라보았다. "괜찮아? 시몬 오...... 꺄악?" 갑자기 사샤의 몸이 뒤로 확 끌어당겨졌다.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렉사나가 저주를 사용해 사샤를 잡아당긴 것이다. "웃기지 마! 사샤는 나의 것이다! 누구도 방해하지 못......!" <엑사니미스(Exanimis)> 시몬도 지지않고 팔을 휘둘러 저주를 쏘아 보냈다. 캔슬레이션을 제때 맞추지 못한 렉사나가 저주에 맞고 튕겨 나가 바닥을 굴렀고. 사샤도 중간에 저주가 풀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지금부터는 육탄전이다. 시몬이 앞으로 뛰어나가며 저주를 연달아 발사했다. <시크니스(Sickness)> <사일런스(Silence)> 렉사나가 다급히 몸을 굴러다니며 저주를 피해 다니는 사이, 시몬은 순식간에 렉사나와의 거리를 좁혀들었다. "끄윽!" 상체를 일으킨 그녀가 전면에 널찍한 방어 마법진을 펼쳐냈다. 그 앞으로 뛰어든 시몬이 숨을 들이마시며 주먹을 당기고 있었다. "마투 따위로는 못 뚫......!" <홍펭 오리지널 - 천흉> 칠흑을 휘감은 주먹이 방어마법을 강타하자, 방어마법 너머의 그녀가 커흑! 소리를 내며 나가떨어졌다. 방어기를 뚫는 홍펭의 관통기. 정신없이 바닥을 구르며 쓰러지던 그녀가 오뚝이처럼 몸을 일으키며 두 팔을 떨쳤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녀의 양손에 대형 마법진이 펼치지는 즉시, 주위가 조명이 사라진 것처럼 극도로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렉사나 오리지널 - 커튼콜(Curtain call)>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그녀가 삼각형으로 일그러진 눈으로 시몬을 노려보았다. "아직 끝난 게 아니야! 나는-!" 그때 그녀의 시야로. 검지와 중지를 붙인 채 딱밤 튕기기 자세를 취하고 있는 시몬의 모습이 보였다. "끝난 거 맞아." <시몬 오리지널 - 파풍(爬風)> 이내 시몬이 손가락을 튕기는 것과 함께, 그녀의 이마에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컥! 하는 단말마의 비명이 울려 퍼지며, 어두워진 주위가 파풍의 충격파로 단번에 밝게 개어버렸다. 이내 털썩 두 무릎을 꿇은 그녀가 흰자를 보인 채 바닥에 쿵! 하고 엎어졌다. 시몬이 숨을 내뱉으며 팔을 내렸다. "저 키메라는 몰라도, 당신이 저주나 마투에 면역은 아니잖아." 승리를 움켜쥔 소년의 등 뒤로, 거대한 드래곤의 뼈가 그를 지키듯 팔로 감싼 채 공중에서 울부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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