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408화 시몬은 자리에 앉아 책상 위에서 깃펜을 움직이고 있었다. ‘바힐 교수님이 뭔가 특별한 해법이라도 주실 줄 알았는데.’ 바힐이 지시한 건 결국 콤펠로니아와 4대 저주의 복습이었다. 그래도 일단 시키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사각사각 깃펜을 움직여 수식을 분석해 나갔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지?” 그때 귓가에 목소리가 들렸다. 시몬이 고개를 돌리자, 저주학 과제 도전에 실패하고 수업을 들으러 온 학생들이 푸념을 늘어놓고 있었다. “오늘까지 합격 못 하면 강제 과목 전환이야.” “골치 아프네.” 이번 천년향에서의 합숙 과제에는 ‘로테이션 시스템’이 있다. 한 과목의 과제를 오래 수행하지 못하면, 벽에 막힌 학생들을 다른 과목의 과제부터 수행하도록 과목을 바꾸는 것이다. 물론 매주 순환할 때마다 해당 과목의 과제 내용도 바뀌기 때문에 사실상 손해였다. 다행히 시몬은 이미 공통과제인 마투학에 더해 맹독학까지 통과한 상태라 크게 상관은 없지만, 저주학에 묶인 나머지 모든 학생들은 초조해하고 있었다. ‘아직까지도 합격자가 0명이라니…….’ 맹독학보다 어려운 과제가 있을까 생각했는데, 저주학은 여전히 합격자 0명.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과제였다. “시몬-!”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카미바레즈가 박쥐 날개를 파닥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이거 드세요! 머리를 맑게 해주는 차예요! 아침에 다려봤거든요!” 그녀는 물통 뚜껑을 컵처럼 내려놓고, 그 안에 따뜻한 차를 따라주었다. 모락모락 향긋한 김이 피어올랐다. “정말 고마워! 카미는?” “저는 아까 마셨어요!” 시몬은 호록 하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정말로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며, 기분이 한결 개운해졌다. 생글생글- 그녀의 웃는 얼굴을 바라보던 시몬이 살짝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카미도 오늘까지 과제를 통과해야 하지?” “아, 네에.” 그녀가 ‘에헤헤’ 무안한 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잘 안 풀려서 다음 주에 다른 과목으로 가더라도, 그만큼 빨리 통과해서 만회해 보려고요!” ‘역시 카미. 엄청 긍정적이네.’ “물론-” 그녀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개미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시몬이랑 계속 같이 여기 오지 못하는 건 조금 아쉽지만요.” “그, 그러네.” “회장.” 그때 한 남학생이 다가왔다. 누군가 했더니 같은 소환학과 학생이었다. ‘비센테 보로메오, 분명 석차 195위였던가.’ 전에 아론이 소환학과 석차를 호명했을 때 200위인 에슈 바로 직전에 이름이 불렸던 남학생이었다. “혹시 이번 과제, 뭐라도 좀 찾아낸 거 있어?” 비센테가 간절한 얼굴로 물었다. 아무래도 본인의 석차가 졸업 안전권이 아니니 여러모로 초조해 보였다. 시몬은 잠시 책상에 놓인 노트로 시선을 옮겼다.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콤펠로 상태에서 그린 난해한 낙서 같은 문장이 보인다. “미안, 나도 아직 실마리라고 할 만한 건 없어.” “……그렇구만. 어쩔 수 없지.” 비센테는 터덜터덜 힘 빠진 걸음으로 걸어갔다. 주위의 학생들이 다가와 그에게 넌지시 어떻게 됐냐고 물어봤고, 비센트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학생회장도 뾰족한 수가 없다니.” “불가능해, 이건 진짜.” 동기들의 패색이 짙어지고 있었다. 벌써부터 포기하고 다음 과목 책이나 봐야겠다며 떠나는 학생들도 있었다. 시몬이 그 모습을 안타까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그때. “마지막까지 포기하면 안 돼요! 여러분!” 카미바레즈가 앞으로 나섰다. “마지막까지 머리를 맞대고 온 힘을 다해봐요! 제가 오늘 출혈 저주를 걸었을 때, 하루앓이가 새로운 반응을 보였거든요! 제 생각에는……!” 카미바레즈가 말을 꺼냈고, 패색이 짙어졌던 학생들도 비로소 하나둘 다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정보를 공유했다. 처음에는 경쟁적으로 임했던 과제였지만, 이제는 스무 명 가까운 학생들이 함께 힘을 합쳐 불가능한 난제를 해결하는 형식이 되어 있었다. ‘정말 많이 성장했네, 카미.’ 저 작디작은 그녀의 등이 오늘만큼은 무척이나 크게 느껴졌다. ‘나도 지지 말자.’ 시몬도 집중력을 가다듬고 다시 4대 저주의 수식 정리를 시작했다. 우뚝. ‘……잠깐만.’ 시몬의 깃펜이 일순 멈췄다. ‘불가능한 것, 이해하지 못하는 것.’ 시몬의 손이 다시 움직였다. 4대 저주의 수식은 거의 다 숙달했지만, 그중에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 미지의 수식이 하나씩 들어가 있었다. 시몬은 바로 그 특정 부분에 밑줄을 그었다. ‘그리고 이거.’ 이 4대 저주의 수식을 기반으로 만든 ‘콤펠로니아’ 또한 그랬다. 심지어 콤펠로니아를 기반으로 완성한 지금의 ‘임페라투스 콤펠로’ 또한 마찬가지다. 마법진에 들어가 있는 이해할 수 없는 요소. 처음에 이건 학생 때 배우지 않는 연구자급 이론이거나, 그냥 바힐이 천재 중의 천재인 만큼 어려운 내용을 썼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브린어로 작성됐다면, 브린어를 익힌 시몬의 눈에도 어느 정도 원리는 보여야 했다. 하지만 눈으로 보고도 왜 이런 모양과 문장이 이런 효과를 일으키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가 불가능한 룬어와 수식…… 설마!’ 시몬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향한 곳. 그곳에는 자신의 두 노트에 공통으로 적힌 낙서 같은 공식이 그려져 있었다. ‘이게 그런 의미였어?’ 촤아아앙! 시몬은 즉시 마법진을 펼쳤다. 필수 수식을 빠르게 배치하고, 마력 회로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마법진의 중앙에- 노트에 그려진 이 우스꽝스럽고 난해한 낙서를 칠흑으로 그려 나갔다. ‘바보 같아! 왜 이제 눈치챘을까!’ 이건 수식이 아니다. 낙서도 아니다. 그 자체로 효과가 있는 일종의 ‘그림’, 혹은 ‘문양’이었다. 저 난해한 그림이 허공에 그려지고, 그림의 꼭짓점이 마력 회로에 맞닿자 마력 회로가 번쩍이며 활성화되었다. ‘진리를 볼 수 있던 콤펠로 상태의 내가, 진리를 보지 못하는 현실의 나에게 전달하고자 한 가장 쉬운 방식!’ 마법진의 형태가 구체화될수록, 불이 꺼져 있던 마법진의 구성 요소들에 하나둘 빛이 났다. 아무런 의미와 형식이 없다고 생각하던 것들이, 의미를 이루고 존재를 이룬다. ‘불가능을 이해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흩어진 퍼즐 조각들이 빠르게 맞춰졌다. 시몬은 중앙의 그림을 다듬고, 그것을 중심으로 빠르게 주변 수식들을 조율했다. 그동안 공부하고 배운 것들이 순식간에 연결되며 하나의 완벽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이내 모든 톱니바퀴가 맞아떨어지는 순간. 화아아아아아악! 눈부신 빛과 함께 모든 마법진의 구성 요소에 빛이 들어오며 ‘생태계’가 완성되었다. 시몬이 숨을 헐떡이며 그것을 바라보았다. 너무나 아름다웠다. ‘내가…….’ 룬어를 창조한 순간이었다. * * * 타악! 시몬은 즉시 완성된 마법진을 축소해서 손바닥에 붙이고는, 하루앓이의 늪이 있는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주위의 학생들이 웅성거리며 시몬을 보았다. “뭐야? 방금 뭘 한 거야?” “오리지널 흑마법이라도 만든 거 아냐? 표정이 엄청 들떠 보였는데.” 시몬은 거의 날 듯이 달려서 하루앓이들이 득실거리는 늪의 현장에 도착했다. 오늘이 과제 마지막 날인 만큼, 마지막으로 저주를 시험해 보려는 학생들이 곳곳에 서 있었다. 그 주위에는 그들을 감독하는 조교들이 서류판을 들고 평가 중이었다. “리강 초프라 학생 실패입니다. 두 시간 수업을 수료하셔야 다음 도전이 가능하십니다.” “……네.” 한 학생이 고개를 푹 숙이며 돌아갔고, 다른 학생이 걸어 나왔다. “그럼 다음으로……!” 촤아악! 시몬이 바닥에 흙먼지를 일으키며 나타나 바닥을 박차고 멈춰 섰다. “시몬 폴렌티아! 저주학 합숙 과제에 도전하겠습니다!” 그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수석조교인 체헤클과 조교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고, 의자에 앉아 그저 그런 성과들을 지켜보던 바힐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학생…….” 조교가 시몬을 바라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앞에 다른 학생들의 차례가 많이 남았으니 조금 기다려 주…….” “차례, 양보하겠습니다.” 자기 차례였던 학생이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처억. 척. “저희도.” “넵. 저도.” 다른 학생들도 모두 차례대로 물러나며 시몬에게 길을 터주었다. 네크로맨서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발견의 환희를. 성공의 냄새를. 실패할 걸 알면서도 마지막 날이니까 뭐라도 해보려고 저주를 던지는 네크로맨서들 사이에서, 시몬의 강렬한 눈빛은 어둠 속에 빛나는 횃불처럼 눈에 띄었다. 시몬이 동기들에게 묵례하며 감사의 인사를 한 뒤 성큼성큼 걸어 나와 늪 앞에 섰다. 눈을 감고 가볍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었다. 그리고 마침내 눈을 번쩍 뜨며 두 손을 앞세웠다. 키이이이이잉! 손바닥에 새겨진 마법진이 허공으로 떠오르며 눈부신 빛을 발했다. 학생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거나 까치발을 세우며 웅성거렸다. “저게 뭐지?” “처음 보는 형식의 마법진이네.” 마침내 시몬이 새로운 룬어로 만든 저주를 발현시켰다. 세상에 없던 저주. 오로지 천년향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저주. <시몬 오리지널 – 모리보로스(Moriboros)> 화아아아아아악! 하루앓이에 검푸른색 줄기가 얽히는 듯한 형상이 일어났다. 이어서 시몬이 그 위에 또 다른 저주를 더했다. <버서크(Berserk)> 대상에 분노를 일으키는 저주였다. 알을 낳고 죽어가기 전의 하루앓이가 그 저주에 감정이 지배된 듯 몸부림치며 몸을 마구 뒹굴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 수명이 다해 하루앓이의 몸이 산산이 흩어져 사라졌다. “방금 ‘해체’됐다!” “어디로 소생되는지 잘 봐!” 모두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잠시 후, 해체된 하루앓이가 바로 인근의 늪지대에서 다시 나타났다. 모두가 손가락으로 그쪽을 가리키며 웅성거렸다. 막 소생된 하루앓이가 늪지대로 들어섰고, 바로 근처의 다른 하루앓이들이 접근했으나. -개글! 소생한 거칠게 발길질을 하며 다른 하루앓이들을 쫓아내고 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루앓이의 몸에 남아 있는 희끄무레한 칠흑. 그것은 틀림없이- “소생한 하루앓이에 버서크 저주가 남아 있어!” “해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모두가 자기 일처럼 손을 번쩍 들며 환호했다. 주위에서 저주를 연구하던 학생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달려왔고, 조교들은 감탄한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벅 저벅. 그리고 시몬에게 다가온 바힐이 짝짝 손뼉을 치며 미소 지었다. “드디어 첫 번째 성공자가 나타났군요. 시몬 폴렌티아, 저주학 과제 합격입니다.” * * * 그렇게 과제 도전을 마치고, 시몬과 바힐은 늪지대에서 나와 나란히 걸었다. “바힐 교수님.” “네.” “콤펠로니아와 4대 저주에 들어간 정체불명의 수식-” 시몬이 가만히 바힐을 응시했다. “이거 기존에 존재하던 수식이 아니죠? 교수님이 콤펠로 상태에 빠져 있을 때 작성하신 건가요?” “맞습니다.” 바힐은 순순히 인정했다. “콤펠로를 인위적으로 열어젖히는 건 이 세상의 지식으로는 불가능하죠. 제가 콤펠로 상태로 몰입했을 때 그 방법을 깨닫고 수식으로 집어넣은 겁니다.” “그렇다면-” 시몬이 말을 이었다. “여전히 바힐 교수님조차도, 콤펠로 상태에서 가져온 그 수식이 어떤 원리인지 증명할 수 없는 건가요?” 바힐의 미소가 섬뜩하게 비틀렸다. “예.” 시몬은 복잡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런 시몬을 보며 바힐이 천천히 걸음을 멈췄다. 앞에는 늪지대의 경관이 쭉 펼쳐져 있었고, 그곳에는 파라솔이 펼쳐진 테이블과 의지가 두 개가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해합니다. 증명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불가해의 지식을 활용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가.” 바힐이 의자 하나를 끌어당기며 시몬에게도 앉으라 권했다. “우리 인간은, 특히 지식인들은 늘 명확한 검증과 이해에 집착합니다. 그래야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죠.” “……그런 과정이 필요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물론, 검증된 것이라면 더 좋습니다. 하지만-” 바힐이 품에서 통신 수정구를 꺼내서 작동했다. “한 명의 인간이, 모든 원리를 완벽히 이해한 채 사용하는 물건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당신은 통신 수정구의 작동 원리와 전파변조에 대해 명확히 알고 이를 활용합니까?” 마침 통신 수정구에서 ‘교수님?’ 하고 묻는 체헤클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바힐은 별다른 대답 없이 통신을 종료했다. “버튼만 누르면 작동되는 기계들, 촘촘히 쌓아도 무너지지 않는 건축물들, 하늘을 나는 비공정들, 우리는 늘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쪼르르르륵- 바힐이 순식간에 아티팩트 주전자로 끓인 차를 시몬의 찻잔에 따라주었다. 시몬은 즉각 반론했다. “이것과 그건 다르죠. 아티팩트나 비공정의 작동 원리는 누군가는 알고 있으니까요. 설계한 당사자나 전문가들은 이를 검증할 수 있고, 시민들은 그들을 믿고 물건을 사용하는 겁니다.” “그런 원리라면, 당신도 콤펠로 상태의 당신을 믿고 사용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아!’ 시몬이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바힐이 그런 시몬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돌렸다. “보통의 사람들은 콤펠로의 세계를 몰라도 아무 문제 없을 겁니다. 오히려 모르는 편이 더 나을 수 있죠.” 바힐이 보고 있는 건, 끊임없이 죽고 소생하는 하루앓이들이었다. “하지만 불특정 누군가가, 우리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힘을 이용해 우리에게 해를 끼친다면 어떻겠습니까?” “!” “본래 불가해의 지식에 도달한 자들은 ‘허무’에 잠식되어, 그 힘을 사적인 용도로 휘두르지 못합니다. 그게 바로 세계의 균형이니까요. 하지만 근래 들어 그 지식만을 쏙 빼내어 허무에 잠식되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위해 휘두르는 자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바힐이 시몬을 바라보았다. “그런 경우, 그저 모를 뿐이니 당하기만 할 겁니까?” 시몬이 놀란 눈으로 바힐을 바라보았다. “혹시 교수님은 천년향을…….” 바힐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말을 이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상대가 ‘미지’로 공격해 올 때, 그저 몰라서 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는 이제-” 그의 눈빛이 넘실거렸다. “그들보다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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