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37화 학생회실. 콰당탕탕-! 부회장 소타 프쉬케가 테이블을 붙잡고 통째로 넘겨 버렸다. 회의 테이블이 바닥에 나뒹굴고, 올라가 있던 물건은 물론 주위의 의자까지 도미노처럼 쓰러졌다. "허억! 헉!" 소타가 숨을 헐떡이며 근처에 등을 기댔다. 한 가닥 삐쳐나온 앞머리가 축 내려와 그의 입가에 닿았다. 후우우- 하고 긴 숨을 토해내자 앞머리가 흔들리며 눈 앞을 가렸다. 쿵! 또다시 밀려오는 분을 참지 못하고 벽을 주먹으로 내리친 그가 역정을 냈다. "이게,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어?" 3학년이 2학년에게 패배했다. 그것도 모두가 보는 앞에서 일방적으로 당했다. 소타도 직접 관중석에서 혼령화 상태로 경기를 지켜보았는데,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판타서스가 졸업하고 이제 좀 편해지나 싶었는데, 이번엔 그 여동생이 문제냐? 망할 잠쟁이 휴 이켈놈들!" 그가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데, 학생회실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또 한 따까리 시작하셨어? 부회장." 신 학생회 서기, 3학년의 루크레치아였다. 그가 박살 난 책상과 엉망이 된 방 안을 보며 휘유- 하고 휘파람을 불었다. "난리 났네." "난리가 난 건 이 빌어먹을 만큼 비상식적인 학교야!" 소타가 분노한 노성을 토해냈다. "이건 반역이야! 도전이라고! 우리 3학년의 권위에 대한 도전! 그리고 고메스 그 멍청한 새끼는 왜 판타서스 여동생의 결투를 받아들여서 사태를 이렇게 키워?" "사태를 키운 건 고메스가 아니지." 딸칵. 문이 열리며 한 여학생이 걸어 들어왔다. 볏짚처럼 꼰 머리에 빨간색 안경을 썼으며, 교복 옷깃에는 금빛 배지가 달려 있었다. 신 학생회 총무. 3학년 전체 7위의 에이베스 퀸타나르였다. "사태를 키운 건 바로 너야. 소타." "에이베스......!" 소타의 표정이 긴장감으로 굳었다. 에이베스가 박살 난 원목 테이블을 보며 혀를 차고는 말했다. "네가 고메스를 써서 저주학과 애들을 무리하게 굴리려다가 탈이 난 거잖아. 권위에 대한 도전? 그것도 글쎄. 우리 2학년 애들 나름대로 착하고 말 잘 듣던데? 너처럼 피해의식에 찌든 것들이 의심할 뿐이지." 하 씨. 소타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털썩 소파에 앉았다. "X발, 그래서 학생회를 다시 329기에 넘겨주기라도 할 거야? 어?" "그럴 수는 없으니 너랑 내가 한자리에 있는 거겠지." 키젠 학생회 소속으로 졸업. 이 커리어는 앞으로의 네크로맨서 생활에서 상당히 큰 의미를 갖는다. 조금만 더 버티면 앞으로의 커리어가 완전히 달라질 정도니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럼 잔소리하려고 왔냐?" "보고하려고." 에이베스가 안경을 추겨 올렸다. "방금 비슷한 사태가 하나 더 터졌어. 2학년 칠흑역학과의 샤텔 마에르가, 우리 동기 케빌을 공식 결투에서 쓰러트렸다네." "......!" "방식도 같아. 케빌이 2학년들을 통제하려다가 과대인 샤텔이 공식결투를 신청." 딸칵. 그녀가 아공간에서 메모리얼 수정구를 꺼내 박살 난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흐릿한 수정구의 겉면에서 심판이 '경기시작'을 선언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꽈아아아아아앙-! 경기는 샤텔의 주먹 한 방에 케빌이 인사불성이 되는 것으로 끝났다. "저 개 병신 새끼들이!" 쾅! 쾅! 쾅! 얼굴이 시뻘게진 소타가 박살 난 테이블을 연신 걷어차며 '아아악!' 짜증 섞인 목소리를 냈다. "이건 100% 배후에 누군가 있어!" 소타가 두 팔을 거칠게 벌렸다. "그 놈이 아세라즈 사건을 이용해서 학생회를 공격하고! 내가 3학년들을 이용해 분위기 잡을 걸 예상해서 메리다와 샤텔을 부추긴 거야! 많고 많은 2학년들 중에서 하필이면 메리다와 샤텔이 결투를 신청해? 그것도 오늘 하루에 두 건이나? 이건 계획된 사태야!" 그의 눈이 시뻘게졌다. "내가 그 새끼 어떻게든 찾아내서 죽여놓고 만다." 에이베스가 손을 내저었다. "보복이 중요한 게 아니야. 결국 이 모든 갈등은 발락이 시몬을 이기면 끝나는 거잖아? 그냥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둬. 더는 3학년 얼굴에 먹칠하지 말고." 서기 루크레치아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베스의 말이 맞아. 발락은 강해." "학생회란 새끼들이 분위기 파악 못 하고 태평한 소리나 하고 앉았네!" 소타의 이마에 핏줄이 돋아났다. "지금 2학년이 3학년을 이긴 전례가 계속 세워지는 마당에, 뭐? 그냥 내버려 두라고?" "......." "시몬 폴렌티아는 지금 데스나이트를 만들고 있다고! 데스나이트를! 이게 무슨 의미인지 몰라? 그뿐만이 아니야! 발락을 잡는답시고 별야 교수의 맹독학 수업으로 저항계도 높이고 있......!" 벌컥! 노크 소리도 없이 문이 좌우로 크게 열렸다. 신 학생회 멤버들 모두가 놀란 눈으로 돌아보았다. "다들 오랜만이다." 세 명의 3학년을 데리고 당당히 들어오는 남학생이 인사했다. 소타가 이를 갈았다. "레오나드! 네놈이 감히 여길......!" "소타." 현 3학년 전체 3위. 레오나드가 걸음을 멈추고 소타를 이글거리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한 학과의 총 학과대표로서, 이번 사태에 대해 정식으로 항의하고 싶은데." * * * 키젠 캠퍼스가 발칵 뒤집힐 만한 사태가 연달아 이어졌다. 2학년 전체 5위의 자퇴, 그리고 메리다와 샤텔이 3학년과의 공식 결투를 신청했고 심지어 승리했다. 지금까지의 신 학생회의 성향을 미루어 봤을 때, 시몬은 고삐 풀린 소타 프쉬케가 대대적인 괴롭힘을 주도할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 당연하지. 다들 이 사태가 벌어진 이유를 버젓이 알고 있는데 그걸 꼬투리 잡아서 보복한다고? 그건 진짜 진짜 쪽팔린 짓이야. 딕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이 사태가 계속 시끄러워지면 애들 싸움 선에서 안 끝나. 교수님들 귀에 들어가면 진짜 일이 복잡해지니까 참을 수밖에 없을 거야. 딕의 말대로 보복하는 것보다는 사태 수습에 신경을 쓰는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신 학생회는 잠잠했다. 결국 평소와 같은 일상을 맞이했다. 그리고 주말이 끝난 오늘부터 아론의 소환학 전공수업은, 드디어 가장 중요한 데스나이트 제작을 앞두고 새로운 시즌에 들어갔다. <출장 수업 개시> <필요 준비물은 아래 서류를 참조할 것.> 시몬은 오랜만에 정성껏 머리를 빗어서 뒤로 넘기고, 새것처럼 빳빳하게 다린 교복을 차려입은 뒤 기숙사 밖을 나섰다. 이번 목적지는 소환학과 건물이 아닌 행정실 쪽이었다. 학과생들은 모두 굳은 얼굴로 거울을 보거나 옷차림새를 점검하고 있었다. "대박. 안에 봤어? 진짜 드워프야!" 에슈가 통통거리며 뛰어왔다. 로레인이 빙그레 웃었다. "우리 학교에도 드워프는 있지 않아?" "아, 1학년에 한 명 있었죠? 그래도 걘 혼혈이잖아요! 순혈 100% 드워프는 처음 봐요!" 에슈는 실컷 수다를 떤 뒤 토토의 옆자리에 털썩 걸터앉았다. 어쩐지 토토가 긴장한 얼굴로 허리를 펴는 모습이 보인다. 그때 조교의 목소리가 들렸다. "헥토르 무어 학생. 들어와 주세요." "예." 헥토르 또한 평소의 풀어헤친 모습이 아닌, 귀족답게 극도로 단정한 옷차림으로 방 안에 들어갔다. "역시 과대! 꾸민 모습도 멋있어!" 에슈가 제 뺨을 감싸 쥐고 속삭이듯 말했다. 옆자리의 토토가 바로 시무룩해지는 모습이다. "그나저나 의외네." 시몬이 화제를 돌렸다. "키젠 학생증은 무적의 여권인 줄 알았는데, 입국심사라니." 로레인이 말을 받았다. "드워프들의 세계는 워낙 폐쇄적이니까, 어쩔 수 없나 봐." 지금 학생들이 앞둔 건 입국심사였다. 저쪽에서 행정관들을 직접 키젠에 파견 보내왔고, 입국절차를 마친 뒤 문제가 없으면 텔레포트 마법진으로 이동하는 방식이었다. 그랬다. 소환학과 학생들은 지금, 데스나이트 제작의 마지막 단계를 위해 드워프들의 왕국으로 가려 하고 있었다. "대륙의 그 누구도 드워프 왕국의 위치를 제대로 모른대!" 에슈가 흥분한 얼굴로 말했다. "오로지 드워프들이 허가한 텔레포트 마법진으로만 이동할 수 있거든! 암호화된 좌표로 이동하는 방식이라 기록도 남지 않고, 전체 방문객 숫자도 엄격히 제한되어 있대!" "보안으로 유명하지. 드워프들의 세계." 시몬도 맞장구쳤다. 에슈가 음음하고 고개를 한 차례 끄덕인 뒤 눈을 크게 떴다. "그보다 이제 얼마 안 남았어! 데스나이트만 손에 넣으면 3학년들도 우릴 함부로 못 대하겠지? 힘내자, 데스나이트 소년!" "아! 응!" 심사를 앞두고 긴장한 토토는 뻣뻣하게 굳어 있는 모습이었다. 에슈가 힘내라는 의미에서 등을 툭툭 때렸지만, 오히려 더 긴장했는지 역효과인 것 같았다. "시몬 폴렌티아 학생!" "예." 시몬이 넥타이를 고쳐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레인과 에슈, 토토가 각자의 개성대로 파이팅을 외쳐주었다. 시몬은 조교의 안내에 따라 방 앞에 멈춰 섰다. '드워프 세계의 입국심사라.' 입국심사 같은 게 처음이기에 시몬은 살짝 긴장했다. 이내 조교가 똑똑 문을 한 차례 노크한 뒤 시몬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아.' 드워프 두 명이 떡하니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넓은 방 안이 꽉 차 보였다. 외모는 동화책에서 보던 그대로였다. 작은 키에 굵직한 몸, 자욱하게 자라난 수염과, 인간들이 보기엔 다소 불퉁스럽고 고집스러운 인상. 진짜 드워프가 눈앞에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신기하네.' 대륙에서 '드워프'들은 여러 이종족 중에서도 가장 신비한 이미지다. 대장장이와 장인의 종족. 평생을 지하나 동굴에서 살고 지상에 올라오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평생 한 번이라도 보기 힘들다. 역사적으로도 굵직한 영향력을 많이 끼쳤는데, 드워프 세력이 편을 들어주는 세력은 대부분은 역사의 승자가 되는 경향이 짙었다. 강력하고 뛰어난 무구들을 지원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네크로맨서의 시대가 된 지금도, 키젠은 드워프들과의 관계를 무척 중시하고 있다. "@&(-@?" "@$%%&." 시몬을 보자 드워프 언어로 몇 마디씩 주고받은 두 사람이, 시몬에게 앉으라 권했다. 시몬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인 뒤 자리에 반듯하게 앉았다. 이내 드워프의 입에서 걸걸한 음성이 튀어나왔다. "이름이 시몬 폴렌티아요?" "예." 단순히 입국절차에 대해 이름을 물었을 뿐인데, 뉘앙스가 독특하다. '대체 왜 이름이 그따위요?' 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어디까지나 억양의 문제일 뿐이었다. "불드윈 왕국의 레스힐 영지 출신이란 거요?" "예, 맞습니다. 볼드윈이요." 심문 같은 분위기지만, 별거 아닌 간단한 질문 몇 가지가 이어졌다. 드워프들도 프로필에 나와 있는 내용을 건성건성 몇 가지 물어보더니 대뜸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상당히 값비싸 보이는, 가공되기 전의 황금 덩어리였다. 그가 허어허어 입김을 불고, 헝겊으로 겉면을 뽀득뽀득 소리가 나게 닦더니 테이블에 툭 올려놓았다. 반대편 드워프는 뜬금없는 마법진 판 같은 것을 펼치더니 시몬의 앞에 내밀었다. "손을 대보쇼." "네? 아, 네." 시몬은 의아한 눈으로 판 위에 손을 올렸다. 그 순간. "......!" 주위가 온통 연기처럼 뿌옇게 물들었다. 귓가에서 소리가 이상한 속삭임이 들렸다. 시몬은 이 공간에서 단 하나를 볼 수 있었다. 바닥에 떡 하니 놓여 있는 '황금'. 시선이 고정된다. 사고가 흐려진다. 전신의 세포가 황금에 집중하고 있다. 황금이 속삭이고 있다. 나를 가져. 나를 손에 넣어. 이 세상에 황금과 나 둘만이 남은 것 같다. 침이 꼴딱꼴딱 넘어가며 팔이 파르르 떨린다. 시몬이 솟구치는 탐욕에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때. 텁. 오른쪽의 드워프가 시몬의 손을 붙잡고 떼어주었다. 그제야 시몬은 정신을 차렸다. "합격이오. 고고한 정신과 깨끗한 영혼을 가졌군!" 시몬이 숨을 헐떡이며 손을 내렸다. "실례했소. 우리 도시에 오는 자들 중에 재물을 탐내는 도둑놈들이 많이 꼬여서. 이해하시오." 이것도 역시 입국심사 과정이었던 모양. 짐작은 했었지만 저항할 수 없었다. 순간 아무 생각이 안 들었으니까. 이내 비슷한 몇 가지 테스트를 더 거쳤다. 드워프들은 상당히 만족스러운 눈치였는지, 시몬의 입국심사가 끝나자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까지 청했다. 이내 시몬이 뒤쪽의 문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먼저 입국심사를 마친 학생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심사 전에 학생들에게 심사 내용을 발설하면 안 되기에 이렇게 구분해 둔 것이다. 그런데 한쪽에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어째서 저 학생은 안 된다는 겁니까. 이야기가 다르지 않습니까!" "심사에 떨어지면 어쩔 수가 없소!" 시몬이 통과한 방과는 반대편 방. 그곳에는 조교들과 두 명의 드워프들이 잔뜩 굳은 얼굴로 말하고 있었다. "우리는 절대로! 저 정체 모를 부정한 존재를 우리의 왕국에 들일 수 없소!" 그는 화이트를 가리키고 있었다.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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