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33화 탈락자들이 모여 있는 캠프섬은 광란의 도가니였다. 모두가 화산성주를 잡은 시몬의 이름을 연호했고, 이번 시험에 활약한 학생들은 상기된 얼굴로 공치사를 나누는 중이었다. "잘했다 번리! 네가 희생해서 Top10들을 살린 덕분이야!" "엘리사! 우리 과대 일로 와!" 여러 이름이 오가고 있는 가운데, 그중에서도 거의 영웅 취급을 받고 있는 한 명이 있었다. "메리다!" "정말 고마워!" 마지막 순간에 화산성주의 화살을 맞고 탈락하긴 했지만,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시험 내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한 그녀였다. 학생들이 사방에서 둘러싸고 이불째로 헹가래를 치고 있었다. 이 와중에도 그녀는 만사 피곤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었다. "다아- 이 형님 덕분인 거 알지?" 딕도 어깨에 제대로 힘이 들어갔다. "내가 그때 시몬 대신 화살을 맞지 않았으면 어? 화산성주를 잡을 수 있었을까?" "아. 그래, 그래. 재수 없어도 오늘만큼은 인정이다." 다른 학생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걸어가던 딕이 고개를 돌렸다. "어? 쥴. 너도 탈락했었냐?" 나무에 등을 기댄 채, 마검을 끌어안고 있던 쥴이 입을 열었다. "메르디아나는 쓰러트렸으나, 중독증상을 막지 못했소." "그거 아쉽네." "아무리 칠흑을 많이 소진했다지만 방심했군. 시몬을 이기기 전에 다른 Top10들부터 차근차근 꺾어야겠소." "방금 시험 끝났는데 싸울 생각이 드냐, 너도 참." 다들 왁자지껄하게 웃고 떠들고 있는데, 연단 위로 마법진들이 연달아 펼쳐지기 시작했다. [도전자들의 소환을 시작합니다.] "온다!" 곳곳에 흩어져서 떠들던 학생들이 중앙으로 몰려들었다. 이내 연단 위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학생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여러 학생들 중에서도 헥토르를 비롯한 공략대원들. 그리고 봉인석을 점령하고 버텨서 마지막까지 도움을 주었던 로레인, 메이린, 카미바레즈, 카쟌이 가장 눈에 들어왔다. 저 한 명 한 명의 활약이 부족했다면 일어나지 않을 기적이었다. 그리고 가장 가운데, 샤텔과 함께 시몬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몬 폴렌티아다!" 영웅의 귀환에 장내가 떠나갈 듯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 모두가 두 팔을 번쩍 들며 함성을 터뜨렸고, 시몬도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마지막 전투 최고였어 시몬!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화산성주를 잡으러 한 녀석은 시몬밖에 없지 않냐? -내가 말했지! 우리 기수에 실력 좋은 놈은 많아도, 학생회장감은 저 녀석뿐이라고! 스포트라이트는 화산성주를 꺾은 시몬에게 집중되었다. 최근에는 신 학생회의 이간질로 시몬을 안 좋게 보는 여론도 있었으나, 이번 시험으로 그런 것도 깔끔하게 사라지게 되었다. 근처에 있던 Top10들도 하나둘 몰려들었다. "잘했다. 하지만 다음에는. 적이다." 샤텔이 말했다. "시몬! 나중에 회장직 복귀하면 약속 잊으면 안 돼! 알았지? 응?" "승부는 다음에 내겠소, 시몬." "미래를 본 대로 됐네요. 축하한답니다." 유령선 엘리사, 마검 사용자 쥴, 혈묘족 엘리시아까지. 모두가 시몬에게 다가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제멋대로에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Top10들까지 이제는 시몬을 중심으로 뭉치는 모습. "시몬." 흐아암- 마지막으로 졸음까지 이겨내며 다가온 메리다가 제 눈을 부빗거리며 말했다. "수고했어." "네 덕분이야, 메리다." 화려한 무대의 중심. 반면 그 중심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는 쓴 입맛을 다시고 있는 학생들도 있었다. 시험 초반에 다른 학생들을 공격하고, 전투를 벌이다 허무하게 떨어진 사람들. 늘 키젠에서 하던 대로 경쟁에 치중한 움직임을 보였고, 이에 따른 결과도 자신의 선택이니 후회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시모오온!" "아하하!" 이 승리의 순간에, 진정으로 온 마음을 다해 기뻐할 수 있는 동기들이 조금은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기분이 어때?" 신디 비바체가 슬쩍 옆을 바라보았다. 아세라즈가 흙바닥에 앉은 채 제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더 약 올리고 싶지만 뭐, 본인이 가장 잘 느끼는 것 같으니." 신디는 그 말만 남기고 사라졌다. '.......' 아세라즈는 눈을 질끈 감았다. 결국 그토록 떨어뜨리고 싶었던 시몬을 떨어뜨리지 못했다. 화산성주를 잡으려던 공략대를 가로막았다. 그들의 비합리적이고 무모한 행동을 비웃고 모욕했다. 그럼에도 결국 시몬의 손에, 타인의 선의에 구해졌다. '......나는.' 그리고 무엇보다 용서할 수 없는 것. 시험기간이 1분 남은 결정적인 순간. 찰나의 시간에 키젠 퇴학이 왔다 갔다 하는 바로 그 순간에. '.......'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속으로는 시몬을 응원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자괴감이 어마어마했다. '나는-' 도저히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어두운 나무 그늘 아래, 엎드려 좌절하고 있는 아세라즈의 너머로, 동기들과 함께 활짝 웃고 있는 시몬의 모습이 대비되어 보였다. * * * 잠시 후 부총장 제인이 학생들을 불러모았다. 네프티스는 시험을 조금 지켜보다가 다음 일정을 위해 떠났고, 뒷정리는 늘 그렇듯 제인의 몫이었다. "이번 단체시험에서, 학생 여러분이 보여준 단합과 희생에 교수진은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우리 키젠은 늘 경쟁을 중요시하며, 그 지침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겁니다." 그녀의 차분한 목소리가 확성 수정구를 타고 퍼져나갔다. "하지만 사사로운 감정에 매몰되어, 정작 중요한 목표를 도외시하는 행위는 칭찬하기 힘듭니다. 경쟁은 면죄부가 아닙니다. 그런 행위는 경쟁이 아닌 '분쟁'이며, 조직에 큰 해가 됩니다. 학생 여러분에게도 이번 일이 좋은 경험이 되었으면 합니다. 특히 자신이 해결하지 못할 때, 동료에게 다음을 맡기는 방법 또한 여러분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길 바랍니다." 학생들은 어깨동무를 하거나, 눈을 감거나, 귀를 막으며 벌벌 떠는 등 각자의 모습으로 제인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이제 가장 중요한 발표가 남았다. 스륵- 제인은 네프티스가 남긴 편지봉투를 열고, 행정 명령서를 꺼내 읽었다. "네." 무표정하던 그녀의 입가에 미세한 미소가 걸렸다. "시험 전에 총장님이 구두로 언급하신 모든 지시사항, 즉 '탈락자 퇴학 건'은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학생들의 승리입니다." 기다렸다는 듯 탄성이 터져 나왔다. 다들 방방 뛰어다니며 서로 얼싸안고 목이 터져라 기쁨의 함성을 부르짖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제인의 한 마디에, 학생들의 동작이 움찔 굳어졌다. "잊지 않았겠죠? 총장님의 지시사항에는 퇴학뿐만이 아니라, '점수제'를 폐지한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아!" "이 또한 행정명령을 적용하여 기존의 시험 방식으로 바로잡겠습니다. 원래의 방식대로, 키젠 본부와 교수진이 측정한 평가 기준으로 점수를 집계할 예정입니다. 점수는 승리에 얼마나 공헌했는지에 관합니다. 이는 2학년 전체 성적에 부가될 겁니다." 안 돼-! 그렇지! 곳곳에서 환호성과 곡소리가 터져 나왔다. 좋아하는 사람 반, 싫어하는 사람 반이었다. 물론 시몬은 좋아하는 쪽이었다. "잘됐네, 시몬." 메이린이 시몬의 팔꿈치를 툭 쳤다. "화산성주를 잡았으니 무조건 최고점 확정이네?" "정말 축하해요 시몬!" 카미바레즈가 날개를 파닥거리며 말했다. 딕이 코를 후비적거렸다. "이렇게 하는 게 맞지 뭐. 시험 취지도 파악 못 하고 아군 뒤통수친 놈들이나, 결전 끝에 화산성주를 잡은 시몬이나 똑같은 점수로 가는 건 키젠스럽지 않지." 웅성거리는 학생들 사이에서, 멀리서 지켜보던 메르디아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난 무조건 최하점이네. 3학년에는 과대랑 Top10 자리도 끝이구나.' 결국 역사는 승자의 이야기. 메르디아나 측의 계획이 성공해서 시몬이 탈락했다면, 신 학생회에게 약속받은 대로 다음 해 학생회장 추천권은 그녀들이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고, 본래 가지고 있던 Top10 자리마저 위태로워지게 됐다. "앞으로 어떻게 할...... 아세라즈! 아세라즈?"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세라즈는 어느샌가 모습을 감춘 뒤였다. "자, 조용!" 학생들이 기뻐하던 모습을 바라보던 제인이 네프티스가 보낸 편지를 품에 넣으며 말했다. "다들 수고했습니다. 이제 학교로 돌아가서 쉬도록 하죠." * * * 329기의 이번 활약은 암흑연합 전역에 알려졌다. 다음 키젠의 소식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학부모들과 네크로맨서들, 그리고 주민들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황금세대, 황금세대. 매년 입학생들에게 그런 립서비스는 흔히 해왔지만 이번 329기는 특별하긴 해. -당연하지. 성녀 사태, 혈천교 사태를 비롯하여 대륙의 굵직굵직한 사태들을 겪은 2학년들은 확실히 다른 기수들보다 성장의 질이 높았다. 이들이 3학년이 되는 때가 키젠의 새로운 전성기가 될 거라며 기대하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그렇게 329기 학생들은 모두 로크섬으로 돌아왔다. 학교에서는 단체시험의 피로회복을 위해 다음 날까지 공강을 선언했고, 학생들은 오랜만에 편안한 마음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끝이 없군.' 물론 교수들은 그렇지 않았다. 시험은 시험이고, 그들은 다음 수업을 준비해야 했다. 특히 소환학 담당교수인 아론은 숨 돌릴 틈이 없었다. 이제 데스나이트 제작의 마지막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앞으로 일주일 뒤면 완성작까지 나오겠군.' 이 일주일이라는 짧은 커리큘럼 동안 학생들의 데스나이트가 완성될지, 실패할지가 달렸다. 똑똑똑. 그때 문밖에서 노크소리가 들렸다. 공강일에 웬일인가 싶었지만 들어오라고 말했다. 달칵. 문이 열리고 산발이 된 머리를 늘어뜨린 여학생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가 꾸벅 고개를 숙였고, 아론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무슨 일이지? 아세라즈 미켈." "......." 퀭한 눈의 아세라즈는 두 손으로 뭔가를 공손히 내밀었다. <자퇴서> 아론은 그것을 놀란 눈으로 받아들었다. 긴 정적이 내려앉았다. "진심인가?" "......네." 아세라즈의 입에서 너덜너덜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계속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그래도 이 결심이 바뀌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찾아왔습니다." 전과도 아니고 자퇴라니. 심지어 그냥 학생도 아니고 Top10급 학생의 자퇴다. 어마어마한 파장이 일어날 만한 사태였다.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던 아론이 입을 열었다. "이번 단체시험에서의 일 때문인가?" "......." 아세라즈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도 해설로 들어와서 시험을 쭉 지켜봤다. 자네처럼 단체시험에서 저지른 잘못 때문에 힘들어하는 학생들도 분명히 있겠지. 하지만 완벽한 사람은 없다. 누구나 실수하고, 잘못하기 마련이다." 아론의 시선이 잠시, 책상에 놓인 액자 쪽을 바라보았다가 다시 돌아왔다. "단순히 한순간의 감정에 휩쓸려 자퇴하는 거라면, 교수로서 말리지 않을 수 없겠군." "아뇨." 그녀가 쓰게 웃었다. "전에도 자퇴는 늘 생각해 왔어요." "......." "그리고 아마, 이런 마음가짐으로 학교에서 뭘 배우고, 어떤 임무를 수행하든, 저는 제정신이 아닐 거예요. 일단 저 자신이 텅 비어버렸는걸요." 그녀의 삭막해진 눈동자를 응시한 아론은 침음을 흘렸다. 확실히. 이런 상태로 수업을 들어가 봐야 무의미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의 승리." 그녀가 책상에 내려놓은 자퇴서를 두 손으로 붙잡았다. "하지만 모든 학생들의 승리는 아니었어요. 이 시험에서 탈락자가 한 명은 나와야 한다면 그건 바로 저겠죠." 그러고는 자퇴서를 아론 쪽으로 밀었다.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감정은 좌절,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건 시간이었다. "......네 뜻이 그렇게 확고하다면 알겠다." 아론이 깃펜을 집어 들어 잉크통에 넣었다 뺐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자면-" 그러고는 담당교수 칸에 서명했다. "아세라즈 미켈. 너는 아직 젊다. 지금 겪은 일과 상황들, 그로 인해 형성된 마음과 가치관. 이 모든 것들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다. 이에 매몰되지는 말도록." 서명을 마친 그가 자퇴서를 내밀었다. "어떤 길을 걷던 행운을 빌겠다." 그녀가 자퇴서를 받아들고 교복 겉옷에 넣은 뒤, 마지막으로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교수님." 단체시험의 유일한 퇴학자. 아세라즈는 자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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