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31화 [재미있는 흑마법을 쓰는구나.] 메리다의 무아몽중으로 주위가 온통 장난감 세상처럼 변해가고 있었지만, 화산성주는 남 일처럼 감탄하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러다 천천히 손바닥을 펼쳤다. 꿀렁꿀렁-! 손바닥 위로 용암이 일어나더니 긴 막대의 형상으로 변했다. 이내 그녀가 한 번 더 손바닥을 쥐었다 펴는 시늉을 하자 용암이 화살촉의 형태로 변했다. [몇 번 연습했지만, 여전히 어렵구나.] 화산성주가 된 진은 자신의 흑마법과 칠흑을 봉인했다. 이 시험 동안 허락된 건 오로지 화산성주의 힘뿐. 익숙하지 않았다. 쿠구구구-! 메리다도 그 사실을 아는 건지 초장부터 몰아쳤다. 천장이 장난감 창문처럼 열리고, 그 안에서 거인 곰인형의 팔이 내려왔다. 화산성주는 부드러운 동작으로 방금 연성한 화살을 활시위에 걸고 머리 위로 날려 보냈다. 푸화아아아아악! 뻘건 직선이 위로 솟구치자, 곰인형의 팔에서부터 머리까지 모조리 터져나가며 보라색 솜털이 뿜어져 나왔다. [그래도 대충 알겠느니라.] [흡!] 메리다도 지지 않고 무아몽중의 힘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장난감처럼 변한 공간에서 창문들이 추가로 열리고, 서로 다른 외형의 인형팔들이 화산성주를 붙잡으러 들이닥쳤다. 이에 화산성주도 재차 움직였다. 푸화아아아아아아아악! 푸화아아아악! 화살을 쏘는 손이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빠른지 제자리에 있는 그녀를 중심으로 화살들이 산탄처럼 사방팔방으로 쏟아지는 것 같았다. 장난감 팔들이 모두 갈라지고 불태워졌다. 숙련도가 붙자 이제 그녀는 활시위에 직접 화살을 소환해서 날리고 있었다. 끼리릭! 끼릭! 땡! 땡! 메리다는 지치지도 않는지 꿈속 세상의 장난감들을 끊임없이 보냈다. 심벌즈를 치는 인형, 태엽으로 돌아가는 장난감, 눈알 빠진 봉제인형과 흙탕물에 더럽혀진 공주 인형까지. 모든 장난감들이 팔을 벌리며 달려왔다. [번거롭구나.] 화산성주는 용암으로 검을 만들어 한 손에 붙잡았다. 활대 끝에도 용암으로 이루어진 칼날을 달았다. 이내 그녀가 뛰어오르며 육탄전으로 돌입했다. '와......!' 후방에서 흑마법을 준비하며 지켜보던 시몬은 전율했다. 무수한 인형 속에 뒤섞여, 무아지경으로 인형을 베어내는 그녀의 모습은 전신(戰神)의 환생을 보는 듯했다. 군단장이니 북부대공이니 하는 문제가 아니다. 진 아르스칼트 인간 그 자체의 강함. 도저히 누가 밀어붙이고 있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화산성주가 바닥에 사뿐히 내려왔고 반쯤 불탄 솜의 파편들이 잿더미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이런 소모전, 결코 메리다가 손해는 아니야.' 시몬은 마음을 가다듬었다. 화산성주도 뒤늦게 뭐가 이상하다는 사실은 깨달은 듯 자리에 멈춰 있었다. [졸음이 쏟아지는구나. 잠의 저주인가.] 그렇게 중얼거린 그녀는 제 갑옷을 손끝으로 팅팅 두들겼다. [이 갑옷을 입고 있는 한, 저주를 푸는 해주마법을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니. 그래, 그 수밖에 없겠지.] 그리고 이어지는 광경에, 시몬은 입을 벌렸다. 푸우우욱! 화산성주가 용암으로 이글거리는 창을 만들어 붙잡더니, 스스로 제 허벅지에 찍어버린 것이다. '무슨!' 푸우욱! 창 한 자루를 더 꺼내서 제 허리 쪽에 박아넣은 그녀가 태연하게 활을 움직였다. [이렇게 해서 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무엇이든 하는 철저한 군인으로서의 마인드. 흑마법을 못 쓰는 상대라고 해서 유리한 게 아니었다. 상대는 그 자체로 압도적인 강적이다. 다음은 시몬을 시험할 차례인지, 화산성주의 활대가 시몬을 향해 겨뤄지는 게 보인다. 수십 발의 용암 화살들이 기관총 세례처럼 쏟아졌다. 타닥. 시몬은 침착하게 몸을 날렸다. 그가 달리는 방향으로 화살들이 벌떼처럼 틀어박힌다. '내가 준비하는 건 세 가지 마법. 그중에 하나.' 시몬은 가장 먼저 완성한 첫 번째 마법을 사용했다. 그가 머리에 '관'을 눌러 썼다. <시몬 오리지널 - 친위대> 아공간에서 두개골에 뿔이 달린 콜로탄 스켈레톤들이 튀어나오고, 즉각 친위대 효과가 덧입혀졌다. "가라!" 콜로탄 스켈레톤들이 돌격용 장창을 들어올린 채 총탄처럼 쏘아져 나갔다. 친위대 특유의 고속이동과 돌진력에 올인한 새로운 특화 언데드. 시몬을 향해 화살을 쏟아붓던 화산성주도 무시할 수 없었는지 몸을 날렸다. 쿵! 쿠쿵! 좌우에서 날아온 콜로탄 스켈레톤 세 기가, 화산성주가 있던 자리에 자기들끼리 장창을 부딪쳤다. 그녀는 공중제비를 돌며 하늘로 빠져나갔다. 공세는 끝나지 않았다. 거대 장창을 든 친위대들이 에메랄드색 꼬리를 이끌며 유성처럼 돌진하고 있었다. 화산성주는 계속해서 도망치며 핀포인트 사격으로 친위대를 쏴 맞히거나, 활대로 장창을 흘리는 등 능숙하게 대처했다. 파악! 그녀가 친위대 하나의 몸통에 화살을 박아넣은 그때, 공중에서 팽이처럼 회전하며 에메랄드빛 검을 든 소년이 튀어나와 검을 휘둘렀다. 까아아아아앙! 검과 활대가 부딪히며 굉음을 토해냈다. 팽팽한 힘의 줄다리기가 이어지며, 시몬과 화산성주의 시선이 무기 너머로 교차했다. 그녀가 화살을 메겨 시몬을 맞히려는 순간, 사방에서 친위대가 장창을 들고 날아왔다. [귀찮구나.] 순간. 화산성주의 갑옷이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시뻘겋게 변했다. 놀란 시몬이 즉각 오른발로 활대를 걷어차며 뒤로 도망쳤고.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그녀의 몸에서 화산과도 같은 폭발이 일어나 달려드는 친위대를 휩쓸어 버렸다. "크으으윽!" 분명히 공격을 피했지만, 시몬이 제 몸을 붙잡은 채 극도로 고통스러워하며 바닥을 거칠게 나뒹굴었다. 그녀가 시커먼 폭발 연기 속에서 시몬을 활로 겨누었다. [아닌 척하지만, 소환수와 타격이 공유되는 사실이 보이느니라.] 그녀에겐 친위대를 보여준 적이 없었지만, 벌써 약점이 들통나고 말았다. 화산성주가 무력화된 시몬을 향해 용암 화살을 쏘아 보냈고, 그런 시몬의 앞으로 이불들이 방패처럼 펼쳐졌다. 카가가가가강! 쇳소리와 함께 화살이 이불에 막혀 튕겨 나갔다. 화산성주가 흠. 하고 입맛을 다셨다. [시몬, 괜찮아?] "......그래, 아직은 괜찮아." 들끓는 용암 속에 푹 담가졌다가 일어난 기분이었다. 시몬이 떨리는 다리로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수백 명의 운명이 달려 있다. 아마도 밖에서 모두가 가슴 졸이며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물러설 수 없다. "메리다." [응.] "한순간이라도 좋아. 화산성주를 제자리에 고정시켜 줘." 시몬이 제 허리에 손을 얹었다. 두 번째 흑마법이 완성되었다. "그 뒤는 내가 어떻게든 할게." [알았어.] 시몬이 허리에 얹어둔 손을 떼어내 힘차게 휘둘렀다. 공중으로 자줏빛 창들이 화려한 궤적을 그리며 치솟는 모습이 보였다. <카오스 스피어> <카오스 스팅어> 공중을 어지럽게 수놓던 자줏빛 번개들이 지상으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궤적에 랜덤성을 더해도 소용없느니라.] 그녀가 몸을 낮추고 회피자세를 취하는데. 쿠르르- 갑자기 바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지면이 블록처럼 바뀌어 있었다. 회전목마처럼 빙빙 회전하는 바닥, 컨베이어처럼 앞으로 나아가는 바닥, 뒤로 튕겨내는 블록까지 무작위로 뒤섞인 채 있었다. 빙빙 회전하는 바닥에 올라가 있는 그녀가 공중에서 쏟아지는 혼돈공세를 보며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그래, 해보자꾸나.] * * * 쿠르르르르르릉! 콰콰콰콰쾅! 시험장 바깥. 캠프섬에서는 탈락한 수백 명의 학생들이 마나 스크린을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여러 상황을 동시에 볼 수 있었지만 당연히 모두의 시선이 쏠려 있는 곳은 화산성. 메리다와 시몬, 그리고 화산성주의 전투였다. "계속 밀어붙여! 몰아붙여!" "잘한다! 제발!" 학생들이 땀에 젖은 주먹을 쥔 채 파르르 떨었다. "으아아아." "떠, 떨려서 도저히 못 보겠어." 누군가는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누군가는 아예 쪼그려 앉아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자기들끼리 끌어안은 채 서로를 달래며 보는 학생들도 있었고, 옷을 입에 문 채 질겅질겅 씹느라 옷이 찢어진 학생도 있었다. 자신의 키젠 퇴학이 걸린 전투. 도저히 제정신으로 지켜볼 수가 없었다. "힘내라 시몬! 일어나!" "메리다아아!" "20분 남았다고!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모두가 후끈한 열기를 뿜어내며 응원하고 있는 그때, 마법진의 빛이 일어나더니 누군가 캠프섬으로 들어왔다. [아세라즈 미켈이 탈락했습니다.] 아세라즈였다. 그녀는 결국 헥토르와의 격전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몇몇 학생들이 그녀를 보았지만 이내 별 관심을 두지 않고 다시 스크린을 응시했다. 비난받고 멱살이라도 잡힐 거라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담백한 반응이었다. '다 끝났구나.' 아세라즈가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떨구었다. 헥토르는 공멸을 각오하고 악착같이 덤벼들어 자신을 쓰러트렸다. 멘탈이 깨질 대로 깨져 버린 그녀는 헥토르의 터프한 공세를 막아낼 수 없었다. '내 실력 부족이네. 어쩔 수 없는.......' "기분이 어때? 탈락자."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신디 비바체가 인상을 굳힌 채 서 있었다. "꼼수를 제안했다가 역으로 당하고. 결국 네가 떨어뜨리려고 했던 시몬의 승리나 기다리고 있어야 할 상황에 놓인 기분이." "시몬의 승리?" 아세라즈가 냉소했다. "아직도 희망을 못 버렸나 봐. 진 아스르칼트를 학생 한두 명이 무슨 수로 이기는데? 하하하. 그녀가 실성한 웃음을 흘리며 신디를 가리켰다. "너희는 그냥, 자기 실력이 부족해서 탈락한 걸 타인의 승리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합리화했을 뿐이야! 인정하기 싫을 뿐이지!" 그 말을 들은 신디의 표정이 변했다. 그것은 분노하는 표정도, 일침을 듣고 찔리거나 부끄러워하는 표정도, 혹은 혐오하는 표정도 아니었다. "너 진짜-" 그것은 동정하는 표정이었다. "불쌍하다." "......뭐?" "세상만사 모든 게 네 계산대로 돌아가야만 하고, 그렇지 않은 건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런 망상은 네 일기장에서나 하든가. 그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고, 못 알아들으면 멍청하다는 둥, 나만 깨어 있다는 둥 잘난 척하는 거 진짜 꼴사나워." 아세라즈의 얼굴이 벌게졌다. "Top10인 내게 네가 뭘 안다고......!" "입 열면 더 추해지니까 그만둬. 그리고 쟤들은 포기 안 했는데?" 시몬과 메리다가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었다. 덜덜 떨면서, 입에서 헛구역질을 하면서도, 차라리 죽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을 고통을 느끼면서도, 죽을 힘을 다해 화산성주와 맞서고 있었다. "왜......." 그녀가 입술을 깨물었다. "남의 일에 왜 저렇게까지 하는데? 지금이라도 그냥 물러서면 퇴학은......!" 신디가 히죽 웃었다. "시몬은 모두를 지키고 싶다는 집념이 있는 거야. 만약에 네가 그토록 부정하던 방식으로 시몬이 널 구하게 되면-" 그녀가 손끝으로 아세라즈의 눈을 가리켰다. "네가 견딜 수 있을지 없을지 궁금하다 야." "......." "지켜볼까?" 신디가 차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내 다른 학생들처럼 폴짝폴짝 뛰며 시험에 몰입해서 응원하기 시작했다. 아세라즈는 털썩 자리에 주저앉아 마나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 * * [남은 시간 - 00:09:53] 쿠르르르릉! 콰라라랑! 사방이 온통 자줏빛 번개로 가득 차올랐다. 그사이에 엎드려 숨을 헐떡이고 있는 시몬이 보인다. '대공에게 혼돈이 걸린 것 같긴 하지만.' 그녀는 멀쩡한 모습이었다. 메리다의 슬립도 제대로 된 효과를 내지 못했다. 지금까지 유효타라고는 졸음에서 깨기 위해 화산성주가 스스로 자해한 두 개의 상처 정도뿐.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마지막. 세 번째 마법 완성이야.' 시몬이 하나 남은 엘리시아의 캡슐 주사를 스스로 어깨에 박아넣은 뒤, 아공간에 손을 뻗어 문제의 그 '깃발'을 꺼내 들었다. "이걸로 끝내겠습니다. 대공." 쿵! 시몬이 깃발을 힘껏 바닥에 내리찍었다. 깃발에서 쏟아져 나오는 흉악한 칠흑의 파도를 보며, 대공의 눈빛에 긴장감이 일렁였다. [무엇이냐 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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