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402화 “……이런, 조정에서 사람이 왔군.” 소년이 머리를 긁적였다. “간혹 있는 일이니 그리 놀랄 건 아니오. ‘도술’로 만드는 일종의 의식이지.” “신기하네.” “……흠, 그보다 저걸 보니 슬슬 돌아가지 않으면 소인이 없다고 의심하는 사람이 생길 것 같소.” 시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지. 그럼 내일 보자.” “알겠소. 그대도 학교 훈련인가 뭔가 하는 거 잘하시오.” “참, 이름을 못 물어봤네. 나는 시몬이야.” 소년이 훗 하고 웃었다. “류운이라 하오.” 그렇게 류운과의 만남을 뒤로한 채, 시몬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무사히 훈련장에 복귀했다. 맹독학과 과제는 이틀째였지만 여전히 합격자가 0명이었다. 시몬은 이번에 수확한 바구니를 가지고 개인 공방으로 들어왔다. ‘류운이 가르쳐 준 독을 정리하면 오늘 하루 다 끝나겠네.’ 시몬이 기지개를 쭉 켜고는 새로운 재료를 꺼낸 뒤, 류운이 알려준 정보를 바탕으로 약초의 종류와 성분들을 잘 정리했다. ‘이건 열을 가라앉히는 거고, 이건 소화를 돕는 약이라고 했던가?’ 그렇게 정리를 마치고 약초를 다듬으니 해가 저물고 있었다. * * * 다음 날 아침, 그리고 합숙 훈련 맹독학과의 셋째 날이 밝았다. 시몬은 별야에게 눈도장을 찍은 뒤 바로 훈련 현장을 벗어나 어제 갔던 류운과의 약속 장소인 커다란 나무 앞에 도착했다. “어서 오시오!” 류운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거래한 대로 류운은 약초의 이름과 효능이 적힌 책을 넘겨준 뒤, 시몬이 준 음식을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시몬은 책에 적힌 약초들의 성분과 조제법을 빠르게 노트에 필사했다. “너무 맛있소! 어떻게 그대의 세계에선 이런 걸 만들 수 있는 거지? 그대들이 가진 지식이 진심으로 경탄스럽소!” 시몬이 빙긋 웃었다. “어때? 네가 일찍 죽었다면 이런 걸 맛볼 기회도 없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아?” 류운이 흠칫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팔짱을 끼고 고개를 돌려 버렸다. “맛있는 것 좀 먹은 정도로 세월에 대한 내 괴로움이 무뎌지진 않소!” “알았어, 알았어.” 시몬이 다시금 깃펜을 열심히 움직이는 사이, 류운이 조금은 누그러진 표정으로 답했다. “하, 하지만…… 분명 지난 수백 년보다, 새로운 것들을 경험한 어제오늘이 더 값지다는 건 인정하오.” 그 말에 시몬이 씩 웃었다. “다행이네. 거래가 마음에 들어서.” 그렇게 책에 적힌 모든 정보를 필사했지만, 시몬은 아쉬움을 느꼈다. 류운이 가져온 책에 실린 식물은 대부분 사람의 몸에 이로운 효과를 주는 약초였다. 물론 독초에 대한 내용도 있었지만 생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기에는 강도가 약했다. 잠시 깃펜의 깃털 끝을 뺨에 톡톡 두들기며 고민에 잠겨 있던 시몬이, 입가에 시럽을 잔뜩 묻힌 채 팬케이크를 먹고 있던 류운을 바라보았다. “앗!” 그것을 한입 달라는 뜻으로 생각했을까. 류운이 급히 남은 팬케이크를 몸으로 가렸다. “그렇게 봐도 안 줄 거요! 이건 우리 둘의 거래이지 않소!” “안 뺏어 먹을 테니 걱정 마. 그보다 이곳의 사람들도 몬스터들처럼, 죽으면 다른 곳에서 뿅 하고 부활해?” 류운이 인상을 굳혔다. “뭘 묻나 했더니…… 불사의 고리에 얽힌 생물들은 예외 없이 몸이 수복되고, 소생하오. 인간도 다를 이유가 없지!” 그렇게 답한 그가 허리 양쪽에 손을 얹었다. “그보다 불쾌하군! 우리는 어차피 되살아날 뿐일 그런 시시한 행위를 ‘죽음’이라고 하지 않소! 죽음은 훨씬 위대한 거요!” “……그, 그래?” “천년향의 사람들에게 ‘소생’이 얼마나 간단히 쓰이는지 알면 놀랄 거요! 몸이 불편하거나 병에 걸리면 그냥 높은 곳에서 떨어졌다가 다시 소생해 오기도 한다오!” 그가 시몬이 바구니에 담아온 약초를 흔들어 보였다. “이런 약초 같은 것도 고통이 싫어서 엄살 피우는 사람들이나 쓰는 거요.” 문득 팟 하고 아이디어가 떠오른 시몬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면 혹시 말이야.” * * * 맹독학과 과제 넷째 날. 그리고 합숙 5일 차 아침이 밝혔다. 공통 과제인 마투학과를 통과한 학생들이 몇 명 합류하긴 했지만, 맹독학과 과제의 합격자 수는 여전히 0명이었다. 아무리 새로운 맹독을 만들어도 단목마의 강력한 수복을 뚫고 ‘해체’에 이르게 하는 강력함까진 이르지 못했다. 바로 그때. “별야 교수님.” 시몬이 나타났다. 한 학생의 맹독 조제를 봐주고 있던 별야가 반갑게 맞이했다. “우리 귀염둥이! 나한테 애걸복걸하면서 물어보러 올 줄 알았는데, 합숙 내내 혼자 사부작사부작! 맹독은 잘 만들고 있냐?” “예.” 시몬이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단목마를 완벽히 무너뜨릴 독을 만들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주위의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별야가 삐쭉삐쭉한 상어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그거 기대되는걸! 바로 갈까?” 별야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걸 수석조교에게 맡긴 뒤, 두 명의 조교들을 대동한 채 시몬과 함께 단목마들이 사는 분지로 내려왔다. “샘플이랑 조합식 써놓은 건 조교에게 제출해. 아, 조합식을 다른 애들이랑 공유하진 않았겠지?” “네, 물론이죠.” 시몬은 가지고 있던 독 샘플 하나와, 조합식이 적힌 노트를 뜯어서 조교에게 건넸다. 이후에는 별야가 지켜보는 가운데 능숙하게 열매에 독약을 넣고 단목마가 다니는 길목에 내려놓았다. 얼마 안 가 주위를 기웃거리던 단목마 한 마리가, 떨어진 열매를 보고 다가와 잘근잘근 깨물어 먹었다. “아주 궁금한데.” 별야가 입술을 매만졌다. “우리 귀염둥이가 얼마나 강력한 독을 만들어 왔을지 말이야.” “사실 그렇게 강력한 독은 아닙니다.” “엉?” 별야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시몬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일단 한번 지켜보시죠.” 열매를 먹고 낮잠을 자려는 것처럼 드러눕던 단목마는, 갑자기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초조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극도의 불안증세였다. 강력한 수복 능력 때문에 모든 일에 무덤덤한 단목마가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저놈 왜 저래? 무슨 독을 쓴 거야?”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한 별야가 조교가 들고 있던 조합식을 빼앗아 보았다. 그녀가 ‘호오’ 하고 탄성을 흘렸다. “천년향의 재료와 대륙의 독을 배합했군. 이거 혹시…….” “예상하신 대롭니다.” 시몬이 손끝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켰다. “대륙 쪽의 맹독은 시신경에 문제를 일으켜 시야를 차단하는 종류입니다.” “증상은 백내장이나 황반변성? 결국 수정체에 문제를 일으키는 일시적인 실명 현상 아냐? 천년향의 생물이라면 이 정도의 안구 문제는 금방 회복할 텐데.” “하지만 이 독에는 천년향의 재료도 섞여 있죠.” 시몬이 태연히 말했다. “증상은 ‘환각’입니다.” 천년향에서만 자라는 몽요버섯은 복용자의 상황을 환각으로 변환해 끊임없이 같은 장면을 반복적으로 되돌려 보여주는 효과가 있다. 보통은 섭취 직후에 이 환각이 시작되는데, 환각에 걸린 사람은 자신이 몽요버섯을 먹는 장면을 수백 수천 번 반복해서 보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천년향 사람들은 이를 ‘먹보 버섯’이라고도 불렀다. “보시다시피 천년향 생물의 ‘수복’으로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는 금방 회복됩니다.” 잠깐 당황했던 단목마는 이내 가만히 기다렸다. 곧 문제가 된 신체 부위가 수복될 테고, 몸이 원래대로 돌아올 것을 아니까. 무려 천 년 가까이 반복되던 일이었다. 그런데 몸이 수복됐어도, 이번에는 시야가 회복되지 않는다. 이야기를 듣던 별야가 손뼉을 짝 쳤다. “눈은 멀쩡해도 몽요버섯 성분이 계속 어두웠을 때의 환각을 보여주는 거군? 마치 시야를 잃은 것처럼!” “예, 물론 일시적인 환각이라 길어도 20분이면 끝납니다.” 별야가 턱을 슥슥 쓸었다. “그래, 그래. 창의적인 독 배합을 만들어낸 건 인정인데…… 그게 죽음이랑 무슨 상관이지?” 쿠우웅! 별야가 그렇게 말하기 무섭게 격렬한 진동음이 들렸다. 별야와 조교들이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쿠우웅! 눈이 먼 단목마가 극도의 불안증세를 보이며 자신의 머리를 암벽에 들이받고 있었다. 머리에 피가 나고 있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천년향의 생물이 어떤 성향을 가졌는지 생각하셔야 합니다.” 시몬이 설명을 시작했다. “불사의 생물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뭘까요?” “궁금하네, 뭔데?” 시몬이 답했다. “시간의 무게입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왔던 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 알고 있죠.” 쿠웅! “죽음이라는 도피처가 없으니, 좋든 싫든 이곳의 동물들은 앞으로도 이곳에서 영원히 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눈이 멀거나, 귀가 들리지 않거나, 고통이 계속된 채 영원히 살아야 한다면 어떨까요.” 쿠웅! “시간은 영겁의 지옥이 됩니다.” 눈이 멀었다. 그래도 늘 그랬듯 곧 회복될 거라 믿는다. 하지만 ‘수복’이 진행되었는데도 눈이 보이질 않는다.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야 한다. 그것도 영원히. 그것은 단목마에게 극도의 공포를 가져다주기 충분했다. -푸히히히힝! 심지어 늘 눈치만 보던, 힘이 가장 강한 우두머리에게 달려들었다. 우두머리가 격분하며 단목마를 뒷발로 걷어찼고 단목마는 몸에 큰 상처를 받은 채 비틀거리며 쓰러진다. 다친 몸이 수복된다. 하지만 이번에도 쑤시는 몸의 상처만 수복될 뿐, 시야가 회복되지는 않는다. 더더욱 공포에 질린 단목마가 달린다. 결국 단목마가 뛰어든 곳은, 분지 중앙에 있는 호수였다. 꼬르륵- 단목마가 물에 잠기며 물방울이 올라왔다. 잠시 후, 호수 아래에서 노란빛이 번쩍인다. 단목마는 다른 곳에서 다시 되살아날 것이다. “이상.” 시몬이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50㎖ 소량의 독액으로, 저는 단목마의 수복을 뚫고 죽음을 선사했습니다.” 잠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조교들이 멍하니 서 있는 가운데, 별야가 서류판으로 이마를 덮은 채 어깨를 들썩이며 숨죽여 웃었다. 하! 하하! 그러다 ‘하아-’ 하고 긴 숨을 내뱉으며 서류판을 내리더니 씩 웃었다. “합격이다, 시몬 폴렌티아. 다음 과제로 넘어가도 좋다.” * * * “역시 회장이야!” “고마워!” 유일한 합격자가 된 시몬은 동기들에게 구체적인 배합식은 알려주지 않았지만, 자신이 알아온 천년향 재료의 효능을 필사하는 걸 허락했다. 정답의 성분을 공유하는 게 아니었으니 별야 교수라도 막지 않을 것이다. 모두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맹독학 과제를 일찍 완수하고 산비탈길을 내려가 숙소로 향하는 사이, 시몬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우리는 어차피 되살아날 뿐일 그런 시시한 행위를 ‘죽음’이라고 하지 않소! 죽음은 훨씬 위대한 거요! 그랬다. 별야 앞에선 거창하게 죽음을 선사했다고 말했지만, 사실 이 세계의 기준으로는 진정한 죽음을 만들어낸 게 아니었다. 시몬은 몬스터를 해체시켜서 소생시켰을 뿐, 생과 사의 고리에서 벗어나게 만든 건 아니었으니까. ‘다음 과목에서는 조금 더 죽음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숙소에 도착했다. 이제 막 오후가 될 무렵이었고, 시간이 많이 남았기에 주위에 학생들은 없었다. 그런데 입구 앞에 조교가 파일을 든 채 깃펜을 끄적거리며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 학생.” 조교가 시몬을 보며 상냥하게 인사하고는 깃펜을 들었다. “축하드려요. 앞선 합숙 과제를 통과하셨나 보네요. 이름이…… 아, 후후.” 물론 시몬은 유명인사라, 채 답하기도 전에 조교는 그의 이름을 쓰고 있었다. “마투학과 과제와 맹독학과 과제를 성공적으로 통과하셨네요. 일과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았으니 바로 다음 과목의 합숙 장소로 이동하시겠습니다. 위치를 알려 드릴게요.” * * * 별야의 수업 장소가 높은 산이었다면, 이번엔 강을 따라 쭉 내려가야 했다. 졸졸 흐르는 깨끗한 강과 낙엽이 떨어지는 경치에 기분이 좋아졌다. 시몬이 태연히 걸어서 목적지에 걸어가는 사이. 그곳의 교수진과 조교진도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제1목표 도착했습니다. -알겠다. 시몬은 그런 이야기가 오가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 마침내 그가 강이 둥글게 흐르는 넓은 벌판에 도착했다. ‘와!’ 넓은 논밭이 모습을 드러냈고, 무수한 학생들이 숨을 헐떡인 채 엎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금발의 남자가 보인다. ‘이번 과목은.’ 시몬이 침을 꿀꺽 삼켰다. ‘바힐 교수님의 저주학이구나.’ 별야 교수처럼 이곳의 학생들도 상당히 많았다. 여기서도 합격을 거의 못 하고 있는 모양. 짜악! 그때 바로 그 바힐이 큰 소리로 손뼉을 쳤다. 주목의 저주라도 걸려 있는지 유독 손뼉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고, 모든 학생들의 시선이 모였다. “전 학생 집중해 주시길 바랍니다.” 바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4일 차까지 합격자 0명.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실망이군요.” 곳곳에서 학생들이 고개를 푹푹 숙였다. 바힐이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 지금 시각을 기점으로 약간의 ‘룰’을 변경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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