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26화 샤텔 마에르의 합류, 그리고 시몬과 헥토르의 분전으로 공략대에도 힘이 붙었다. 수백, 수천 마리의 용암 몬스터들을 힘으로 돌파해가고 있었다. 점점 더 화산성과 분화구가 가까워졌다. 하지만 그만한 대가도 치렀다. [호웰 오뉴라가 탈락했습니다.] [스틴저 리스모그가 탈락했습니다.] 실시간으로 탈락자 수가 늘어났다. 50명대에 맞춰 출발한 공략대의 수는 어느새 30명대까지 줄어들어 있었다. "끝이 없네, 진짜." 딕이 벌게진 얼굴로 헉헉 숨을 내뱉었다. 이제는 맹독 포션이나, 준비해 둔 장비들도 거의 다 떨어진 상태. 주위의 다른 동기들도 칠흑이 고갈된 건 마찬가지였다. "피해! 위에서 또 암석이 떨어진다!" 누군가의 외침이 들린다. 딕은 이제 고개를 들 힘도 없었다. 목소리가 멀리서 들리면 무시하고, 가까이서 들리면 일단 몸을 날리고 본다. 쿠우우웅-! 딕은 이번엔 후자를 선택했다. 후끈한 열감이 얼굴을 훑고 지나가며, 자갈들이 머리에 마구 부딪히고 귀에 윙윙 이명이 감돌았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용암 유성은 샤텔도 막지 못한다. 주위의 학생들도 모두 몸을 던지고, 바닥을 구르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사이 또 하나의 탈락자가 발생했다. 화산 폭격이 끝나고, 뒤이어 기다렸다는 것처럼 용암 몬스터들이 몰려들었다. 딕이 그 모습을 보고 외쳤다. "샤텔! 부탁해!" 샤텔은 무신경한 얼굴로 몬스터들의 방향은 보지도 않고 팔을 뻗었다. 지면에서 새까만 산사태가 부채꼴의 형태로 분사되었고, 몬스터들은 모두 흙더미에 휘말려 산비탈에서 떨어져 나갔다. '진짜 쟨 미친놈이네.' 딕이 클클거리며 웃었다. 얼굴 표정이 원래 저런 건지, 아니면 참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샤텔은 피곤한 기색 한번 보이지 않았다. 시종일관 저 표정이다. '그나마 시몬이 샤텔을 데려와 줘서 천만다행이지만, 문제는.......' "딕! 괜찮아?" 같은 A반 출신이던 스콧이 뛰어왔다. 딕이 뒤를 돌아보았다. "어어, 난 괜찮......!" 퍼어어어어억-! 스콧의 이마에 새빨간 직선이 날아와 꽂히는 게 보인다. 그의 몸이 공중으로 날아가 멀고 먼 절벽 끝자락으로 떨어지는 모습이 보인다. [스콧 스나이더가 탈락했습니다.] 딕은 그를 잡아주려고 뻗었던 팔을 허무하게 늘어뜨리며 고개를 돌렸다. '문제는 바로 저거란 거지.' 화산성에서 날아오는 정체불명의 원거리 공격. 아무래도 화살로 추정되는데, 너무 빨라서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다. 애초에 반응조차 할 수가 없으니 그냥 표적으로 정해지면 끝이다. 파괴력이 강하다면 명중률이라도 낮아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백발백중. 저 공격이 한번 나갈 때마다 키젠 학생 하나가 쓰러지고 있다. 심지어 저 화살은 사거리도 길어서, 거의 군도 전체에 닿는 것으로 보인다. 화산성주는 앉은 자리에서 시험장에 있는 모든 학생들을 일방적으로 공격할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화살과 다음 화살 간의 딜레이가 있다는 거. 들쑥날쑥해서 시간을 딱 말하긴 어렵지만, 갈수록 딜레이가 짧아지고 있어. 그리고 타깃은 무작위 공격일 확률이 높아. 아마 노리고 쏘는 건 아니겠지. 공략대의 Top10들을 우선해서 제거하지 않는 걸 보니 더더욱.' 쐐애애애애애액-! 그렇게 계속 앞으로 전진하다 보니 화산성에서 또 하나의 화살이 날아갔다. 이번에는 공략대가 아닌, 다른 섬에 있는 상대에게 쏜 것 같았다. 출력장치를 보니 학생 한 명이 탈락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문제는 저게 시몬이나 샤텔을 노린다고 생각한다면.' 끔찍했다. 어떻게든 손을 써야 했다. 하지만 문제는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공격이라는 점이다. 시몬이 말한 것처럼 정말로 화산성주가 그 유명한 '진 아르스칼트'라면 애초에 막으라고 쏘는 공격이 아니다. 학생이 현역 군단장의 공격을 막는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기도 하고. "딕?"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말에 딕의 고개가 돌아갔다. 어느새 다가온 시몬이 그의 어깨를 짚고 있었다. "괜찮아? 표정이 안 좋아 보이는데." 딕이 애써 익살스럽게 웃었다. "아, 별거 아냐. 아침에 먹었던 샌드위치가 올라와서." "조금 쉬어." 시몬이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다가오는 용암 몬스터에게 날리려고 본스피어를 조립하고 있었다. 퍽! 그보다 딕이 한발 앞섰다. 석궁에 '아이스 인챈트'를 걸고 몬스터의 미간을 쏴 꿰뚫어 버렸다. "이런 건 우리한테 맡기고 너나 좀 쉬면서 칠흑을 아껴둬, 시몬." 딕이 숨을 헐떡이며 석궁을 내렸다. "화산성주를 잡아야지." "......그래, 알겠어." 시몬과 헥토르는 '라바골렘'이라는 보스 몬스터를 사냥한 뒤, 체력과 칠흑을 비축해 두고 있었다. 그러나 Top10 두 사람이 전선에서 빠진 공백을 메꾸는 건 아무래도 쉽지 않은 게 사실이었다. "다들 뭐 하는데!" "마투새끼들 다 뒤졌나! 나한테 공격 오게 하지 말라니까!" 모두가 힘겹게 분투하고 있었지만 슬슬 전세가 악화되는 게 눈에 보인다. 앞장서서 돌격하던 학생들이 이제 몸을 사리거나 슬금슬금 피하고 있다. -여기서 탈락당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퇴학만큼은 절대 안 돼.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탈락과 퇴학의 공포가 밀려드는 것이다. 공포는 전염병처럼 빠르게 퍼져 나간다. 선두의 학생들이 몸을 사리기 시작하니, 화력 담당이던 중후방의 학생들에게 공격이 날아들고, 그들이 몸을 사리면 선두의 학생들이 더욱 위험해지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분위기를 반전시켜야 했다. "내가 갈게, 딕." 시몬도 당연히 그런 상황을 알고 있는지, 앞으로 걸어갔다. "이대론 화산성주에게 가기도 전에 전멸이야." 말려야 했다. 말려야 했지만 시몬의 결심을 무르게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젠장!' 딕이 입술을 짓씹으며 고개를 든 순간. '......!' 화산성에서 붉은 원이 일렁이는 모습이 보인다. 저건 바로 그 화살 발사의 전조다. 그리고 발사될 방향은 직감적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온몸에 소름이 끼치고, 전신에 닭살이 돋기 시작했다. '하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붉은 원의 크기를 미루어 보아 발사 준비 40%. 딕이 시몬의 팔을 덥석 붙잡더니 뒤로 거칠게 끌어당겼다. 발사 준비 60%. 놀란 시몬이 휘청거렸고, 그사이 딕이 앞으로 뛰쳐나왔다. 발사 준비 80%. 아마 100%는 보지 못할 것이다. 두 팔을 벌리고 시몬의 앞으로 뛰어나온 딕이, 저 앞에 몸을 사리며 뒷걸음질 치는 동기들을 향해 외쳤다. "야 이 새끼들아아아아아아!" 직후 통증이 밀려든다. 갈비뼈가 와장창 부서질 것 같은 통증과 함께 몸이 거칠게 뒤로 밀려나고 있다. 시몬이 뒤에서 받쳐주었는지 밀려나는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다. 이내 근처에 있던 샤텔까지 지면에 바위를 일으켜 밀려나는 시몬의 등을 떠받쳐 주었다. "......!" 공략대의 모든 학생들이, 갑작스러운 외침에 잠시 행동을 멈추고 시몬과 딕 쪽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본 광경. 그것은 두 팔을 번쩍 벌린 채 시몬의 앞으로 튀어나와 대신 붉은 화살을 맞은 딕의 모습이었다. 커헉! 고통이 적용된다는 건 사실이었다. 진짜 '죽었다'고 생각할 만큼 고통스러웠다. 목소리를 내는 것도 힘들었지만, 떨리는 입을 억지로 벌렸다. "대가리가, 있으면......! 생각을 해!" 딕이 악에 받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까지 왔으면 도망도 못 가! 우린 무조건 여기서 다 뒈져! 결국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야! 전부 다 뒈지고 퇴학당하거나, 아니면 우리가 뒈지더라도 이 시험에서 승리하거나......!" 생존 혹은 승리. 쿨럭거리는 딕의 입에서 피거품이 흘렀다. 라이프 게이지는 0%. 동시에 캠프섬으로의 소환이 진행되는지 그의 몸에서 마법진의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제발, 새끼들아! 실력이 부족한 것 같으면 어? 수업 때 처자던 스스로를 X나 원망하면서, 죽어도 이 새끼들을 위로 올려보내!" 딕이 시몬과 헥토르, 샤텔을 가리키며 외쳤다. "니들이 해결 못 할 것 같으면, 이 자식들이 해결해 주는 데 모든 걸 배팅하라고! 몸 사릴 궁리하지 말고! 수단과 방법 가리지 말고!" 점점 소환의 빛이 거세지는 와중에도, 딕이 발악하듯 외쳤다. "이겨야 할 거 아니냐!" "......!!" 소환의 빛이 뒤덮는 순간, 딕이 피를 줄줄 흘리며 제 머리를 가리켰다. "키젠답게 이기는 것만 생각해!" 정적이 내려앉았다. 점점 사라져 가는 딕이 마지막으로 시몬을 바라보며 웃었다. "뒤는 믿고 맡긴다." 싸아아아아아아- 딕의 몸이 완전히 레흘론 군도에서 사라졌다. 시몬은 덜덜 떨리는 동공을 움직여 손목의 출력장치를 바라보았다. 믿기 싫었지만. [딕 헤이워드가 탈락했습니다.] 현실이었다. '날 구하려고.' 입가가 바싹 마르고 속이 뒤집혔다.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마그마가 올라오고, 화산 유성들이 떨어지는 격렬한 전장에서, 찰나의 정적이 주위를 무겁게 내리눌렀다. 하하. 아하하하. 그때 어딘가 정신줄을 놓은 듯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두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러네, 응. 그러네." 신디 비바체가 웃고 있었다. 그녀가 머리끈을 풀었다. 긴 머리가 자유롭게 휘날리고 그녀의 눈매가 매섭게 일그러졌다. 허공에 펼쳐둔 마법진에서 스피릿이 흘러나와 그녀의 몸으로 끊임없이 빨려 들어갔다. "승리에 배팅하려면, 지금뿐이란 거지." <고스트 테일> 그녀의 뒤에서 스피릿으로 이루어진 열 개의 긴 꼬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내 그녀가 공중에 떠오른 채로 흑마법을 시전하자, 몰려들던 용암 몬스터들이 동시에 스피릿 목줄에 속박당하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아, 저 새끼." 한 남학생도 씩 웃으며 몸에 붙여둔 마법진을 작동시켰다. 그의 몸에 검은 칠흑이 휘감겼다. "주제에 잘난 척 폼 잡긴." <흑의(黑衣)> 터어어어엉! 그가 앞으로 뛰어나갔다. 다른 학생들도 하나둘 마법진과 술식을 짜 올리기 시작했다. <서먼 듀라한> <칠흑 체내 분화> <혈귀화> 학생들이 하나둘 칠흑을 쏟아붓는 비장의 기술을 꺼내고는 자세를 다잡았다. "가자!" 오오오오오오오오오! 공략대의 사기가 폭발했다. 눈이 시뻘게진 학생들이 격렬한 함성을 지르며 돌진했다. 죽여! 죽여! 돌파해! 비키라고! 광란의 돌진. 용암 몬스터들이 빼곡하게 형성한 포위진이 거짓말처럼 무너지기 시작했다. 방금 전만 해도 궁지에 몰린 학생들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의 기세였다. 사방에 터져 나오는 흑마법의 폭발음으로 화산의 소음마저 묻혀 버렸다. 학생들이 빠르게 적진을 돌파하기 시작하자, 샤텔 또한 영역장악의 범위를 더 확장시켰다. 시몬은 그저 묵묵히 뒤따랐다. 피가 들끓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인내해야 했다. 그때. 키이이이이잉-! 화산성에서 다시 한번 붉은 원이 일그러졌다. 다시 한번 화산성주의 화살이 날아올 징조였다. 이번 타깃은 헥토르. 그를 향해 화살이 날아왔다. 앞서 달리고 있던 헥토르가 다급히 걸음을 멈췄다. 퍼어어어억! 그런데 한 남학생이 스스로 헥토르의 앞으로 뛰어나왔다. 쿠당탕탕탕! 화살에 대신 맞은 그가 거칠게 돌바닥을 굴러다녔다. "너......!" 헥토르가 입술을 깨물었다. 공략대에 참가한 헥토르의 파벌 학생 중 하나였다. "뭘, 나 칠흑 다 쓴 지 오래야." 그가 이마에 손을 얹으며 충성하는 자세를 취했다. "나 퇴학은 피하게 해주라." 촤아아아아- 그의 몸이 소환되어 사라졌다. 그가 사라진 바닥을 바라보던 헥토르의 눈에 실핏줄이 생기며 주먹과 다리에 혈관이 툭툭 불거졌다. "헥토르." 시몬의 부름에, 헥토르가 고개를 돌렸다. 시몬은 눈이 번들거리고 주먹을 움켜쥐고 있었다. 그 또한 인내하고 있는 모습이다. 순간의 차오르는 감정을 이겨낸 헥토르가 훅! 하고 숨을 내뱉었다. "쓸데없는 짐이나 짊어지게 하고." 쿵! 쿵! 헥토르가 다시 앞으로 굳건히 달렸다. "짐값은 학교에서 받아내겠다." 그가 진정한 것 같자 시몬은 속으로 안도했다. 두 사람이 잠시 멈춰 있는 사이 먼저 앞서나간 학생들을 따라잡느라 한참을 걸려야 할 정도로, 선두 학생들의 진행속도는 빨랐다. "아하하하하! 유령선은 다 잃었지만, 이렇게라도 싸울 수는 있거든!" 엘리사가 유령들이 이끄는 대포를 준비했다. "화력은 내가 책임진다! 계속 가!" 퍼어엉! 퍼어어어엉! 스피릿이 담겨 있는 수십 발의 포탄이 날아가 용암 몬스터들을 박살 내고 폭사시키기 시작했다. 그녀의 화력지원 덕분에 학생들은 더더욱 빠르게 전진할 수 있었다. [보스 몬스터, 라바골렘이 등장했습니다.] [보스 몬스터, 라바골렘이 등장했습니다.] [보스 몬스터, 라바골렘이 등장했습니다.] 학생들의 진군이 빨라지자, 그것을 막기 위함인 지 세 마리의 보스 몬스터들이 한꺼번에 튀어나왔다. 시몬과 헥토르가 협공해서 잡았던 보스 몬스터가 무려 셋. 하지만 물러설 분위기는 아니었다. "들이받아!" "가로막는 건 다 죽여!" 학생들이 자폭이라도 할 기세로 보스 몬스터에게 뛰어들려는 그때.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아-! 갑자기 새까만 검격이 그어지고, 라바골렘의 가슴에 커다란 검상이 생기더니 피처럼 용암을 뿌리며 쓰러져 갔다. 학생들이 움찔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이 기술은......!" 그들이 뒤를 돌아보았다. 후방에서, 새로운 얼굴의 학생들이 하늘에 떠 있는 소환수를 타고 날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선두에 있는 건 마검을 움켜쥔 소년이었다. "지, 지원이다!" 시몬도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왔구나.' 시몬은 그 학생들 중에서, 민트색 머리카락이 비쭉 튀어나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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