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06화 에이션트 언데드. 통칭 '뱀공주', 라미아. 제5군단의 가장 핵심적인 에이션트 언데드로, 5군단 해상전 전력의 핵심인 '데드나가'들을 이끈다. 군단장 매그너스를 지극히 섬기며 군단 내에서는 참모 역할을 맡고 있다. 매그너스가 늘 비정상적이고 파격적인 움직임을 보인다면, 그것을 현실적인 수단으로 가다듬어 주고 가공하는 건 라미아의 역할이었다. 매그너스도 그런 그녀를 지극히 아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동굴에 라미아가 있다고? 매그너스나 다른 에이션트 언데드도 없이 혼자서?' 함정의 냄새가 풀풀 나지만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시몬은 앞장서서 해저동굴을 걸었고, 다른 제7군단의 에이션트 언데드들이 그 뒤를 따랐다. 해저동굴은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바닥은 해수로 축축하게 젖어 있고, 가끔 웅웅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기도 했다. 이 벽이 무너지면 바로 바닷물이 쏟아질 거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등골이 오싹하기도 했다. [여전히 밖은 아무 낌새도 없사와요.] 에르제베트가 거미줄을 손끝으로 퉁 하고 건드리며 말했다. 이 거미줄은 해저동굴 입구까지 이어져 있고, 무슨 일이 생기면 그녀가 바로 알게 될 것이다. "틈틈이 밖의 상황을 확인하고,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보고해 줘." [네, 군단장님!] 걸을수록 해저동굴의 통로는 좁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넓어진다. 덩달아 긴장감도 점점 차오른다. 이 앞에서는 과연 어떤 전투가 벌어질까? 파멸의 대검과 헤르세바를 쥔 두 손이 땀으로 흥건해지고 있었다. [도련님, 이제 도착했습니다.] 공기의 흐름을 읽은 아케뮤스가 말했다. 과연, 아케뮤스의 말대로 조금 더 걸으니 탁 트이고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바닥은 온통 물웅덩이가 고여 있었고, 바위에는 이끼가 가득하고 정체불명의 해초들이 흔들리고 있다. 그야말로 바닷속 왕국에 들어온 느낌. 아무래도 여기가 이 해저동굴의 마지막 장소인 것 같았다. 시몬은 통로에서 빠져나와 내리막길을 두 발로 미끄러뜨리며 이동했다. [시몬! 저길 봐!] 같이 내려오던 프린스가 정면을 가리켰다. 이곳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곳. 마치 자연적으로 형성된 해초의 왕좌와도 같은 바위 위에 자그마한 뭔가가 앉아 있는 게 보였다. 데드나가였다. 그런데 몸집이 무척 작다. '갓 태어난 나가의 새끼가 언데드화한 건가?' [조심해라 소년! 저건 그냥 데드나가가 아니다!] 피어가 외쳤다. [저 녀석이 바로 에이션트 언데드다!] "네?" 우웅! 침입자를 감지한 작은 데드나가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아니, 하늘을 난다기보다는 마치 바닷속에서 둥둥 부유하는 느낌 가깝다. 이내 그것의 눈동자가 뒤집히며 흰자가 드러났다. 에이션트 언데드의 고사리 같은 작은 두 손이 아래로 향하는 순간, 시몬은 등허리에 소름이 돋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쿠르르르르릉! 시퍼런 벼락같은 게 맹렬한 굉음을 일으키며 쏟아진 것이다. 시몬과 7군단의 대장들이 일제히 몸을 날려 피했다. '뭐야 저거.' 시몬이 식은땀을 흘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것이 떨어진 바닥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며 물이 고여 있었다. 스파크 대신 물방울이 거칠게 튀어 올랐는데, 동굴 벽과 바닥을 가볍게 허물어뜨릴 정도였다. '물로 이루어진 벼락?' 시몬이 두 다리를 벌리고 자세를 다잡았다. [크흐흐! 내 눈으로도 보고도 믿기 힘들다만.] 피어가 입을 열었다. [저 에이션트에게서 먼 옛날에 봤던 뱀공주, 라미아의 기척이 느껴진다!] "뭐라고요?" 그 말을 들은 시몬의 눈썹이 들썩였다. "잠깐만요 피어! 그럼 저 데드나가가 5군단의 라미아라는 거예요? 제가 듣기로는 더 큰 걸로 알고 있는데요!" [이상한 건 그뿐만이 아니다. 방금 기술에서 느껴진 바로는 매그너스의 칠흑은커녕, 군단의 칠흑도 느껴지지 않는군.] 시몬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데드나가라는 '특수 언데드'를 다루는 건 오로지 5군단의 뱀공주 라미아뿐이다. 그래서 일부러 여기까지 찾아 온 거다. 그런데 갑자기 유아기로 돌아간 것 같은 형태의 라미아가 보이고, 심지어 5군단도 아니라고 한다. 정말로 피어의 말대로 저게 라미아라면, 왜 매그너스와의 계약이 해지되어 있는가. 그리고 왜 어려진 모습으로 돌아가 이런 해저동굴에 틀어박혀 있는가. [당장 알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일단 붙잡아서 정보를 얻는 수밖에 없다, 소년!] "그래야겠네요." 시몬은 얼른 정신을 차리고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우우우우웅! 에이션트 언데드가 고사리 같은 손을 움직이자, 다시 한번 수 갈래가 넘는 물벼락이 쏟아졌다. 이 넓은 공간 전체를 폭격하는 위력. 시몬은 피어의 본 아머에 힘을 주고 고속도약하여 폭격의 범위에서 아슬아슬하게 벗어났다. 스스스스스- 스스스스- 그리고 이 공간의 바위 뒤, 좁은 벽면의 틈으로 데드나가들이 끊임없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침입자들을 막기 위해 병력이 충원되고 있었다. [시몬! 이제 어떻게 해?] 프린스가 동굴의 벽면을 밟고 달리면서 물벼락을 피해내고 있었다. "어떻게 하긴." 시몬이 공중으로 헤르세바를 띄워 올리고는, 양손으로 파멸의 대검을 붙잡았다. "싸우자! 물론 저 녀석은 반드시 생포해야 해." * * *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라미아로 추정되는 에이션트 언데드는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온전히 누리고 있었다. 바위틈이나 좁은 구멍에서 데드나가 병사들을 무수히 불러냈고, 자신은 강력한 광역공격을 끊임없이 연사했다. 쿠르르르릉! 쿠르르르르르릉! "흡!" 몰래 접근하려던 시몬에게 두 갈래의 물벼락이 쏘아져 왔다. 다급히 파멸의 대검을 들어 올려 막아냈지만 몸이 한참이나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조심해라 소년! 제대로 직격당하면 전신이 찢겨나갈 거다!] "네!" 생포가 목적이니 함부로 참격을 날리거나 공간을 벨 수도 없었다. 그리고 문제는. 키이이이이이이이이! 라미아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공중에 떠오른 작은 에이션트 언데드의 이마 앞에 칠흑의 구가 생기더니, 그곳에서부터 물벼락이 미친 듯이 쏟아졌다. 그것은 사방을 무차별로 폭격했고, 아군 데드나가가 휘말리는 건 물론, 벽면이나 천장까지 부수기 시작했다. 쿠르르르르르르! 그렇지 않아도 위태롭던 해저동굴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떨렸다. 바위만 한 파편이 천장에서 떨어졌다. [꼬맹아! 이제 알겠어!] 헤르세바가 황금의 막을 일으켜 지붕을 만들며 말했다. [우리를 이 동굴을 유인한 뒤에, 동굴째로 무너뜨려서 일망타진하려는 게 매그너스의 목적 아닐까?] 시몬은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 매그너스가 시몬을 노리는 이유는 '원한'이 아니라 '탐욕'이다. 그의 목적은 시몬에게서 7군단의 에이션트 언데드들을 빼앗는 것. 해저동굴째로 전부 무너뜨려 버린다면 자신도 중요한 부하를 잃는 건 물론,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게 된다. "어쨌거나 시간이 없어." 지금 이대로라면 이 해저동굴이 못 버틸 것이다. 시몬이 뒤를 돌아보았다. "조금 무리해서라도 돌파해서 붙잡아야겠어요. 아케뮤스!" [도련님의 명에 따릅니다.] 펄럭! 아케뮤스가 두 쌍의 날개를 추가로 뽑아내 몸을 감쌌다. 그의 몸통이 꿈틀거리며 변화를 시작한다. 끼에에에에에에에에-! 괴조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불길한 칠흑이 해저동굴을 뒤덮을 기세로 뿜어져 나간다. 이내 아케뮤스가 날개로 몸을 감싼 그대로 라미아를 향해 빛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쿠르르르릉! 라미아도 물벼락을 쏘아댔다. 셀 수도 없이 많은 물줄기가 아케뮤스에 내리꽂혔지만 아케뮤스는 그저 순수한 힘과 내구도만으로 돌파했다. 콰르르르르르르르릉! 라미아가 폭주를 거듭하며 물벼락의 수를 배로 늘린 뒤에야 간신히 아케뮤스의 돌진을 멈춰 세울 수 있었다. 물벼락과 아케뮤스가 힘겨루기를 하듯 팽팽하게 나아갔다 밀려났다를 반복하는 가운데. [잘했어 아케뮤스!] 아케뮤스의 등 뒤에 업혀 있던 프린스가 옆으로 빠져나오며 주먹을 휘둘렀다. [히든카드 펀치!] 그의 주먹에서 충격파가 뻗어 나갔고, 라미아가 처음으로 방어마법을 사용했다. 자신의 몸 앞에 물의 벽을 일으킨 것이다. [빈틈이네요.]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라미아의 짧은 두 팔에 거미줄이 휘감기더니 강제로 끌어당겨졌다. 어느새 뒤로 돌아온 에르제베트가 손을 휘젓고 있었다. [꼬맹이 하나가 너무 번거롭게 군다니까요.] 쿠웅! 라미아의 몸이 동굴 벽에 맞닿는 순간, 동굴벽이 흐물거리며 황금의 벽으로 변했다. 라미아의 두 팔과 몸통이 금빛 쇠고랑으로 연결되었다. 헤르세바가 외쳤다. [지금이야! 꼬맹아!] 마침내 시몬이 돌진했다. 라미아가 발악하듯 쏘아 보내는 물벼락을 대검으로 연달아 가르며 도착한 그가 팔을 뻗어 라미아의 가슴 중간에 나와있는 코어에 손을 올렸다. "무슨 상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우우우우우웅! 시몬이 눈을 감고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멈추게 하려면 이 방법밖엔 없어!" 시몬의 칠흑이 라미아의 코어로 파고들었다. 5군단의 칠흑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피어의 말을 듣고도 계속 긴가민가했지만 정말이었다. 군단의 에이션트 언데드라면 거부반응이 느껴졌어야 했으나, 그런 게 전혀 없었다. "크윽!" [끼이이이이이이!] 라미아가 더더욱 거세게 폭주했다. 에이션트 언데드들이 시몬을 보호하기 위해 몸을 감쌌다. 피어와 아케뮤스가 시몬을 감싸 물벼락을 대신 맞아주었고, 헤르세바는 황금벽을 일으켜 천장에서 떨어지는 잔해물을 받아냈다. 대장을 지키러 몰려드는 데드나가들은 에르제베트가 거미줄로 막고, 프린스가 펀치로 날려 버렸다. 그렇게 영겁과도 같은 수십 분이 흘렀다. "허헉 헉!" 시몬이 땀을 홍수처럼 흘리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칠흑을 너무 쥐어 짜내서 그런지 몸에 힘이 하나도 없고, 시야가 노랬다. 다행히 라미아의 상태는 점점 안정되었다. 더 이상 그 괴팍한 물벼락을 쏘아 보내지 않고 잠자코 있었다. "된...... 건가?" 시몬이 고개를 들어 올려 라미아를 보았다. 폭주해서 시꺼멓게 변질되었던 눈동자가, 푸르스름하게 변했다. 말똥말똥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스르륵- 그때 황금화의 지속시간이 끝나며 속박되어 있던 라미아가 풀려났다. 에르제베트가 깜짝 놀라며 거미줄로 다시 포획하려 했지만 시몬이 팔을 들어 막았다. 둥실둥실. 라미아가 바다에 떠다니듯 둥실거리며 다가오더니 시몬의 얼굴에 찰싹 달라붙었다. 그러고는. 할짝할짝. 혓바닥으로 시몬의 뺨을 핥기 시작했다. 이내 얼굴을 부비기도 하며 애정을 표했다. 지켜보던 에이션트 언데드 모두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거기에. 쿠웅! 쿵! 데드나가들이 일제히 무기를 버리고 몸을 낮추며 시몬에게 복종하듯 몸을 숙이고 있었다. 시몬은 두 손으로 라미아를 붙잡아 똑바로 바라보았다. -끼융? 라미아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라미아에게서 느껴지는 검푸른 마력. 낯선 언데드에서 익숙한 칠흑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건 틀림없이 시몬 자신의 칠흑이었다. "지, 진짜 이렇게......." 시몬이 맥이 탁 풀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쉽게 얻어도 돼?" 정신을 차리니. 새로운 에이션트 언데드가 시몬의 손안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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