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86화 레오나드와 윌이 서로 마주 보고 섰다. 어쩐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뒤에서 지켜보던 선도부 3학년들은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다. 윌도 당황한 건 마찬가지인 듯 더듬거리며 말했다. "하, 하하! 어서 와, 레오나드! 다른 게 아니라 저 녀석이 교칙 위반으로......." "윌, 내가 분명 학년 간의 갈등이 최고조인 지금, 2학년들을 건드리지 말라고 했을 텐데." 레오나드의 동공에서 싸늘한 분노가 일렁였다. "그런데 대표인 내 지시를 어기고, 선도부장 직책을 받았다는 사실까지 숨기고, 심지어 전 학생회장이었던 2학년을 몰래 금지된 숲까지 데리고 와?" 윌이 진정하라는 듯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미리 말 못 한 건 미안한데. 이건 학과 일이 아니라 교내 공무라서......." "중간부터 다 들었어. 그 시간엔 나도 로체스트에 갔었는데 어떻게 처벌할지 들어볼까?" 결국 보다 못한 다른 3학년들이 다가왔다. "진정해 레오나드." "윌도 잘해보려고 한 거야." 동기들이 중재하려 했지만 레오나드의 차가운 눈빛은 변하지 않았다. 그때 윌도 까득 하고 입술을 짓씹었다. "너야말로 대체 뭐에 쫄아 있는 거냐, 레오나드!" 동기들이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윌이 레오나드에게 소리를 지르다니? 다른 사람들에겐 악명 높을지 몰라도, 레오나드에게만큼은 늘 충실한 오른팔을 자처하던 녀석이었다. "우리는 3학년이야! 이제 우리가 그토록 고대하던 328기의 시대가 왔다고! 뭐가 그렇게 겁이 나서 2학년을 감싸는 거냐? 이 자식들이 우릴 제대로 된 선배 대접 하는 거 봤냐? 어?" 불길처럼 일어난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그가 팔을 뻗어 시몬을 가리켰다. "너도 2학년 학생회장 체제가 마음에 안 드는 건 사실이었잖아? 이제 우리 동기가 새로운 리더가 되어서 규율과 질서를 세우면, 우리도 거기에 맞춰서 움직이면 되는 거야!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 거냐! 네가 그렇게 우러러보던 판타서스 선배가 남긴 말을 따라야 하니까? 그게 아니면 에이젤 그놈이......!" "윌." 레오나드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구제 불능인 티 좀 그만 내. 학과 동기가 아니었다면 상종도 하지 않았을 새끼가." 윌이 입이 벌어졌다. 지켜보던 시몬이나 3학년도 마찬가지였다. 늘 동기를 챙기고, 학과생들의 단합을 중시하던 레오나드가 저런 말을 내뱉는 것 또한 처음이었다. "가자." 레오나드가 시몬의 어깨를 붙잡으며 데리고 갔다. 그러고는 뒤를 돌아보며 경고했다. "조심해. 너희들은 소타와 학생회에 좋을 대로 이용당하고 있을 뿐이야." 빠드득. 윌이 이를 갈며 소리쳤다. "레오나드! 내 말 아직 안 끝났어!" 레오나드는 더 이상 뒤돌아보지 않았다. * * * 시몬은 레오나드와 함께 소환학과 기숙사에 돌아왔다. 이제 쉬러 갈 줄 알았는데, 레오나드는 할 말이 있다며 시몬을 데리고 계단을 올랐다. '여긴.......' 금단의 구역인 3층이다. 여기서부터는 3학년들이 생활하는 장소라서 한 번도 올라가 본 적이 없었다. "이쪽이야. 더 올라가야 해." 레오나드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앞을 가리켰다. 어느새 윌에게 보였던 그 차가운 분노는 옅어지고,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소환학과의 기숙사 건물은, 비정상적으로 커다란 고목이 솟아 있고 그 주위를 건물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다. 지하실에는 뿌리가 보이고, 1층 로비에는 그 나무의 하단이 보이며, 2층의 복도 중앙에는 몸통이 보인다. 그리고 3층으로 올라오니, 복도의 천장이 군데군데 뚫려 있고 가늘어진 나무줄기와 가지들이 하늘 높이 솟아 있는 모습이 드러났다. 2층까지가 정식 건물이었을까, 3층부터 4층까지는 방의 구조나 설계가 다소 난잡했다. 무엇보다 기숙사의 '옥상'을 대신하는 나뭇가지 위로 여러 방들이 얹혀 있는 형태가 보인다. '나무 위에 방이 이렇게 많았던가?' 시몬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레오나드가 빙글빙글 웃었다. "건물 밖에선 인식 장애 마법 때문에 잘 안 보이거든. 이 기숙사에서 생활했던 옛 선배들의 선물이지. 이렇게 4층까지 올라와야 제대로 보이는 방들도 있어." 레오나드는 시몬을 나뭇가지 위로 이끌었다. 가지에는 계단이 설치된 구간도 있었고, 줄을 붙잡고 올라가는 구간도 있었다. 심지어. 스으- 레오나드가 손짓하자, 나뭇가지가 스스로 움직여 새로운 길을 만들어냈다. 마법의 세계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다. "우리 기숙사만 유독 캠퍼스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지?" 앞서 걷는 레오나드의 앞머리가 바람에 휘날렸다. "실은 옛날에 이 근방은 전부 금지된 숲이었다고 해. 건물은커녕, 모두 풀과 나무로 뒤덮여 있었지." "처음 듣는 이야기네요." 레오나드가 튼튼한 가지를 손등으로 툭툭 두들겼다. "초대 소환학과 대표는 기숙사비를 낼 돈이 없어서 금지된 숲에 있는 이 고목 위에 아지트를 짓고 생활했나 봐. 그러다 보니 다른 학생들도 이곳의 자유로운 환경을 부러워했고, 하나둘씩 여기에 집을 짓고 같이 살게 됐지. 그게 소환학과 기숙사가 세워진 계기야." 그는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할아버지처럼 느릿하게 말을 이어갔다. "시간이 흘러 이 나무는 소환학과 학생들에게 뜻깊은 장소가 되었어. 당시 소환학과는 암흑제를 몇 번이고 우승시킬 만큼 강했고, 획득한 자금으로 금지된 숲 한복판에 기숙사를 세우기로 한 거야. 그 뒤에 캠퍼스로 향하는 길도 뚫은 거고." "그런 사연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시몬이 관심을 보이자, 레오나드도 기분 좋게 웃었다. "하하, 난 이런 해묵고 시시콜콜한 과거 이야기들을 좋아해. 그런 것들을 하나둘 알아가면 내가 지내는 이 장소가 더 특별하고 좋아지거든." 레오나드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무를 올라가고 있으려니, 곳곳에 3학년들의 모습이 보였다. 빨래를 널거나, 나무에 늘어져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러다 레오나드를 발견하면 손을 흔들어 보이기도 했다. 레오나드도 손을 흔들었다. "레오나드! 2학년 데려와서 뭐 하냐?" "같이 한 게임 할래?" "나중에." 시몬은 주위를 둘러보며 감탄했다. 이런 멋진 광경을 3학년들이 독차지하고 있었다니. 그래도 한 학기만 더 있으면 자신을 포함한 동기들이 이곳을 물려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설레는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시몬과 레오나드는 나무에서도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왔다. 나무의 꼭대기, 그곳에 낡은 방이 있었다. "바로 여기야. 초대 소환학과 대표의 아지트에 온 걸 환영해." 레오나드가 문을 열어준 뒤, 시몬에게 먼저 들어가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시몬은 조심스레 몸을 낮추고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와......!" 세상에서 가장 이상적인 아지트가 있다면 이런 느낌일 거라고 생각했다. 온기가 감도는 작고 따뜻한 방. 오렌지빛 조명 아래로 푹신한 쿠션과 솜이불이 바닥에 깔려 있고, 벽면에는 여러 빛바랜 사진들이 걸려 있었는데, 아무래도 전대 소환학과 대표와 지난 시간 동안 생활했던 선배들의 사진 같았다. "내부는 따뜻하네요." "마법이 걸려 있거든." 레오나드는 익숙한 듯 들어와서 철푸덕 바닥에 누웠다. 시몬이 엉거주춤하게 앉아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자, 그가 손바닥으로 이불 위를 툭툭 때렸다. "괜찮아, 나처럼 편하게 누워." "넵." 시몬은 사양하지 않고 자리에 누웠다. 자리에 누우니 천장에 붙어 있는 사진들도 눈에 들어왔다. 구식 마력촬영기로 촬영한 흑백사진부터 시작해서 비교적 최근의 형태까지. 레오나드가 팔을 뻗었다. "저기 녹색 머리카락의 선배님 보여?" "네, 보입니다." "저 선배님이 저번 암흑제때 기숙사에 방문한 그 영감님이야. 어떻게 소환학과가 저주학과한테 질 수 있냐며 혼내시던 그분. 240기였던가 그럴 거야." "아, 기억나네요." "그리고 저 여자 선배님은 매년 겨울마다 직접 짠 털옷을 보내주시는 분인데, 최근엔 손주가 입학해서......." 시몬은 레오나드의 이야기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으며 과거 여행에 빠져들었다. 아득하고 묘한 기분이었다. "한적한 날에 이 방에 와서, 이렇게 몇 시간이고 멍하니 누워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 레오나드가 눈을 감았다. "동시에 어깨가 무거워지지. 나는 저 선배님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을 학과대표일까? 나는 정말 우리 학과를 잘 이끌고 있는 걸까? 뭐 그런 생각도 나고." "......." 덜컥. 그때 문이 열리더니 레오나드의 스켈레톤들이 차를 가지고 왔다. 두 사람은 작은 걸상을 펼치고 그 위에 차를 내려놓고 잠시 티타임을 즐겼다. "이번 윌 건은 진심으로 미안하다." "아, 아닙니다. 선배님 잘못이 아닌데요." 레오나드는 조용히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찻잔을 내려놓았다. "시몬." "예." "모든 3학년들이 이번 발락 사태에 찬성하는 건 아니야." 그가 가방 안에서 어떤 종이를 꺼내더니 시몬의 앞에 내밀었다. 명단이었다. 자필로 쓴 이름과 서명이 적혀 있었다. "발락 학생회에 반대하는 3학년들의 명단이야." 처음 보는 3학년들은 물론, Top10에 해당하는 거물의 이름도 한 명 적혀 있었다. 시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건 설마......." 쿠데타 같은 건가? 갑자기 긴장감이 훅 몰아쳤다. 이런 걸 왜 나한테 보여주는 거지? "우리는 발락 학생회 전체를 부정해. 그가 학생회장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방 안에 진지한 분위기가 흘렀다. "저번 결투 사태로 에이젤이 죽을 뻔했고, 많은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었어. 하지만 에이젤의 빈자리를 채울 생각만 급급하던 학교에서는 이 상황을 숨기려고만 하고 있고, 징벌임무 같은 말도 안 되는 교칙으로 그의 죄를 지우고 기어코 학생회장에 세웠지." 그가 눈을 치켜떴다. "회장 자리에 누가 앉든 좋지만 발락만큼은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시몬." "네." "너는 특별해. 넌 그를 왕좌에서 끌어내릴 수 있는 정당한 도전권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어. 키젠 본부에서 인정해 줄 테니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거야." 그는 서랍장 아래에서 깃펜을 꺼내 내밀었다. "3학년이고 2학년이고 하는 문제는 이제 아무래도 좋아. 우리는 발락을 몰아내고 널 학생회장으로 추대하고 싶다." "......." 시몬은 깃펜을 받아들고 서류를 받았다. "제가 이 깃펜에 이름을 쓰면 어떻게 되는 거죠?" "우리 반대파 3학년들이 적극적으로 전면에 나서서 발락과의 대립을 주도해 나갈 거야." 레오나드가 말했다. "이번에 윌이 선도부에 오른 건 시작에 불과해. 소타 프쉬케가 권력을 휘두르는 신 학생회는 네가 돌아오는 걸 두려워하고 있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널 찍어누르려 할......." 타악- 시몬은 가지런히 깃펜을 내려놓았다. "죄송하지만 전 이런 정치나 알력다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 "이러시지 않아도 발락은 끌어내릴 겁니다. 제힘으로요." 레오나드가 눈을 감았다. "너 혼자 감당하기에는 힘든 싸움이 될지도 몰라. 누군가는 전면에 나서서 그 숱한 방해를 막아줘야 하지 않을까? 네가 온전히 성장에 집중하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필요할 텐데." "제안은 감사드리지만, 괜찮습니다." 시몬이 생긋 웃었다. "피켓시위에, 학년갈등에. 이 이상으로 학교에 혼란이 가중되는 건 원치 않아요. 발락도 저와의 승부를 피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 네 생각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레오나드가 서류를 뒤집었다. 그러곤 후련하다는 듯 웃었다. "조직의 힘이 필요 없다면, 내 개인적으로라도 널 챙겨야겠네." "네?" "이번 방학 동안 에이젤과 편지를 주고받았어." 그가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오래되고 허름한 천장에는 세월의 흔적으로 나무 사이가 벌어진 곳이 있었다. 그 공간으로 별이 뜬 밤하늘이 보인다. "즐거워 보이더라. 외부 사람들은 자신을 편견 없이 봐준다나 뭐라나. 그리고 여행을 해보니 느꼈대. 남의 시선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냥 자기 스스로 벽을 만들고 있었던 것 같다고." 시몬이 씩 웃었다. "잘 지내고 계신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그래. 그리고 에이젤은 네 걱정도 했어." 레오나드가 진지해진 눈으로 시몬을 보았다. "발락이 보복할 게 당연하다면서. 최대한 널 도와달라고 부탁하더라." "아." "물론 에이젤의 부탁이 아니라도 처음부터 그렇게 할 생각이었어." 레오나드가 깍지를 꼈다. "학과 건물과 기숙사에 있는 동안은 안심해도 좋아. 내가 어떻게든 소타의 방해를 걷어내 볼게. 물론 벤야도 협력해 줄 거고." 시몬이 미소 지었다. "감사합니다, 저도 최선을 다할게요." "그래. 하지만-" 레오나드가 팔짱을 꼈다. "소타 프쉬케를 견제하는 의미에서라도 몇몇 요주의 3학년들은 만나보는 걸 추천해. 나중에 내가 자리를 마련할게. 어때?" 한번 만나보는 정도야. 시몬은 레오나드의 체면을 위해서라도 그것만큼은 거절하지 않기로 했다. "누군데요?" "현 3학년 전체 2위." 레오나드가 눈을 감았다. "그녀가 우리 편을 들어준다면 든든할 텐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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