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65화 퍼억! 쩍! 꽈드득!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그래도 학생이기 이전에 현역 용병왕인 아서를, 별야는 언어 그대로 가지고 놀고 있었다. 꽈아앙! 별야의 발차기에 맞고 나가떨어진 아서가 벽 끝에서 끝으로 날아가 부딪혔다. 손에 쥔 검은 놓쳐서 바닥에 떨어뜨렸다. "아, 아서!" 몰리가 재빨리 뛰어갔다. "......맹독학 교수라며? 마투학 교수가 아니고?" 사샤도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바닥에 주르륵 쓰러진 아서는 마지막까지 전의를 불태우다가 결국 푹 고개를 떨구었다. "아, 재밌었다." 별야는 맛있는 디저트라도 먹은 사람처럼 이를 쑤시는 시늉을 하며, 자리에 털썩 앉았다. "맷집도 좋고, 패는 맛도 있고. 여기 경비 새끼들은 영 시시했는데 기분이 개운해졌어." 속옷 차림의 호텔주는 무서운 기억이라도 되살아났는지 벌벌 떨었다. 별야가 테이블에 놓여 있는 비싼 술을 들어 올렸다. 꿀떡 꿀떡! 그녀의 목구멍이 요란하게 꿀렁거렸다. 이내 크하-! 하고 추임새를 내며 입가를 쓱 닦았다. "아, 이런 날은 내 고향 초원의 마유주가 최고인데." 탕! 그녀가 술병을 내려놓고는, 나머지 두 소녀 쪽을 바라보며 삐쭉삐쭉한 상어이빨을 드러냈다. "니들도 봤지? 이 빨간 머리 녀석이 자기 입으로 지금은 방학이고, 괴도와 용병으로 만났다면서 먼저 덤벼든 거야." 사샤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앞뒤 사정도 안 듣고 달려든 바보왕은 어찌 됐건 좋지만요." 이 와중에도 아서는 신음을 흘리며 '바보왕이 아니라 용병왕이다'하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키젠 교수가 무력으로 호텔의 사유재산을 털다니, 제정신이세요?" "음?" "대답 여하에 따라 키젠 교수직도 내려놓으시고, 우리도 상대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우, 우리? 몰리 공주가 겁에 질린 얼굴로 사샤와 별야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니, 아까부터 뭔 소릴 하는 거야." 별야가 귀를 후비는 시늉을 했다. 대화가 평행을 달리고 있다고 생각한 사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 호텔에 예고장을 보내시고, 오늘 이곳의 돈을 싹 털겠다고 선언하셨잖아요." "예고장? 아아, 그거 예고장이 아니라 도전장인데." "......네?" 별야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술과 도박을 좋아하는 그녀는 방학을 맞아 유명 휴양지인 베리노에 놀러 왔고, 도박을 하다 보니 교수 노릇 하면서 얻은 막대한 양의 봉급을 싹 잃고 말았다. -아니, 확률적으로 이게 말이 돼? 격분한 그녀는 즉각 도박장의 딜러들, 같이 게임한 플레이어들, 그리고 책임자를 붙잡아 약을 먹여 진실을 실토하게 만들었고, 이내 이 모든 게 짜고 치는 '사기도박'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녀는 즉각 이 도박장의 총괄자이자, 베리노에 수많은 도박장을 보유한 '호텔주'라는 자에게 따졌지만, 호텔주는 상대하기는커녕 사람을 보내 별야의 입을 다물게 하려고 했다. 그냥 늘상 있는 진상손님 다루듯 한 것이다. 결국 별야는 자신에게 찾아온 용병들을 전부 박살 낸 뒤, '내 돈을 내놓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쳐들어가겠다.'라는 도전장을 그에게 냈다. "......그거 도전장이 아니라 협박장 아닌지요." 몰리가 조용히 정정했지만, 별야는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근데 돈 내놓으라니까 이놈이 경비만 더 늘리고 배 째라는 식으로 나오더라? 다 박살 내고 지금 이 새끼를 이렇게 내 앞에 무릎 꿇린 거지." 속옷 차림의 호텔주가 덜덜 떨며 고개를 조아렸다. 나름 베리노 최고의 권력자인데, 무슨 짓을 당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설명을 듣던 사샤가 눈매를 좁혔다. "사정은 알겠지만, 폭력으로 돈을 손에 넣은 건......." "그럴 줄 알고 여기 각서랑 증서들." 그녀가 가방에서 팔랑팔랑 종이들을 꺼내 테이블에 흩뿌렸다. "당연히 각서는 본인들이 직접 썼어." 사샤와 몰리가 다가가 확인했다. 사기도박임을 인정하며 돈을 돌려주고, 자잘한 재물손괴나 피해는 눈감아주겠다는 각서였다. 호텔주의 지장이 찍혀 있다. 뿐만 아니라, 그녀가 돈을 잃은 도박장의 웨이터나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내용의 서류를 받아냈다. "제인, 그 여자가 방학만 되면 잔소리를 하더라고." 별야가 귀를 휙휙 후비며 말했다. -사고 치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전부 문서로 남기십시오. 몰리는 각서들을 훑어보며 진땀을 흘렸다. "협박과 약물로 받아냈을 수도 있다는 의혹만 제외하면 각서 자체는 문제가 없어 보이네요. 역시 제인 부총장님 대단한 혜안......." "누가 협박했대! 앙?" 별야가 탕탕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치며 호텔주를 보았다. "내가 협박했냐?" "꿀! 꾸울!" "대답은 인간 말로 해!" "아닙니다!" 호텔주는 별야의 눈을 보자마자 까무러칠 것 같은 반응을 보였다. 아마도 뒤탈은 없을 듯싶었다. 나중에 마음이 바뀌어 문제를 제기하려고 해도, 키젠을 등에 업고 있는 그녀와 굳이 척을 질 이유는 없었다. "뭐야, 결국 싱겁게 끝났잖아."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명되고 상황도 일단락되자, 사샤는 하품을 한번 하며 식물형 소환수들을 아공간으로 돌려보냈다. "바보왕의 임무 따윌 돕는 게 아니었어. 시몬 오빠 일행이랑 초원에 갔으면 지금쯤......." 푸우우우웁-! 병나발을 불던 별야가 그 말을 듣고 갑자기 술을 뿜었다. 술은 그대로 앞에 있던 호텔주의 얼굴에 축축하게 묻었다. "너 지금 뭐라고 했냐?" 별야가 벌떡 일어났다. "시몬? 우리 귀염둥이가 초원에 갔다고?" "네, 뭐." 사샤가 시큰둥하게 답했다. "홍펭 교수님이 초원에 있는 본인 집에 초대해서 거기 놀러 간다는데요. 진짜 부럽더라구요." "......오호?" 그 말을 들은 별야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났다. * * * 문제의 지역에 가까워졌다. 시몬 일행은 조금 더 은밀하게 행동할 필요를 느꼈다. 메이린의 칠흑빙결계 마법은 거두고 육로를 이용해 접근했다. 날이 서서히 어두워지고 있다. 발소리를 줄이고 수풀을 조심스레 걷으며 한 발 한 발 나아갔다. 이제 카미바레즈의 후각에 의존할 필요도 없이, 시몬에게도 수상쩍은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와." 딕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게 다 뭔데?" 녹림이 우거진 초원 하부 내부에 거대한 고대도시가 숨어 있었다. 특이한 양식으로 구축된 정체불명의 건축물들이 들어서 있었는데, 특히 돌을 겹쳐서 계단식으로 쌓아 올라가는 피라미드와 흡사한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어쩐지 으스스하네요." 카미바레즈가 몸을 움츠리며 말했다. "기분 나빠." 메이린도 손등을 쓸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곳에 홍펭이 있을지도 모르니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시몬은 신속하게 움직여 도시의 울타리에 등을 기댄 뒤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인기척은 없어, 들어가자." 드디어 문제의 도시에 진입했다. 안에 들어오니 불길한 느낌은 더더욱 강해졌다. 주위를 휙휙 두리번거리며 걷고 있던 메이린이 시몬에게 조용히 물었다. "시몬, 여기가 네 역사서에 나온 그 고대문명의 도시 아닐까?" "내 생각도 그래." 한편 딕은 근처의 건축물로 다가가 손바닥으로 주위를 슥 쓸어보았다. 그러고는 손바닥을 빤히 바라보았다. "왜 그래요? 딕." "여기가 고대문명 시절의 도시인 건 알겠는데 말야." 그가 주위를 쭉 둘러보았다. "뭔가 관리가 된 것 같지 않아?" 확실히 그랬다. 긴 시간 동안 고대 도시가 방치되어 있었다면 잡초나 넝쿨 등으로 뒤덮여 있어야 정상이다. 이렇게 도시가 대놓고 드러나 있다면, 그동안 모험가들이나 고고학자들이 발견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시몬이 턱을 짚었다. "그럼 누군가 최근에 여길 사용했다는 거야?" "아마도." 역시 심상치가 않다. 네 사람은 더욱 신중하게 걸음을 옮겼다. 날이 점점 어두워질수록, 이 고대문명의 도시는 웅장하다기보다는 흉물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 같은 건 알 수 없었다. 내재된 본능에 가까운 불길한 감각이다. "그러고 보니." 시몬이 우뚝 걸음을 멈췄다. "야, 하지 마." 메이린이 경고했다. "이곳의 고대문명에는 인신공양을 하던 풍습이......." "하지 말라고! 멍충아!" 메이린이 시몬의 팔뚝을 찰싹 때리며 식겁한 표정을 지었다. 카미바레즈도 움찔하며 주위를 살폈고, 딕은 심각한 얼굴로 눈매를 좁혔다. "아니, 잠깐. 그럼 지금쯤 홍펭 교수님도......." 빠악! 이번엔 메이린이 풀스윙으로 딕의 뒤통수를 때렸다. 딕이 '억!' 소리를 내며 고개를 내렸다. "와, 또 사람 차별한다! 시몬은 '찰싹'인데 왜 나만 '빠악'이야!" "아니, 이 미친놈아! 할 말 안 할 말 쫌 가려서 하라고!" 두 사람이 투닥거리며 싸우고 있는 사이, 시몬이 앞을 가리켰다. "저기 누가 있는 것 같지 않아?" 한 탑 건축물의 꼭대기. 그곳에 사람이 묶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일행들의 표정이 바짝 굳었다. "호, 호, 홍펭 교수님?" "아냐, 실루엣은 남자 같은데." "내가 가볼게." 시몬은 빠른 걸음으로 유적 위를 뛰어 올라갔다. "시, 시몬! 조심해요!" "같이 가!" 세 사람도 뒤를 따랐다. 가장 먼저 유적 꼭대기에 다다른 시몬이 그에게 다가갔다. 미라처럼 비쩍 말라 있는 남자였다. 차림새나 외형으로 보면 초원 쪽 사람으로 보인다. 장대에 묶여 있었는데, 정말로 사람을 제물로 바치기 직전의 모습이다. "괜찮으세요?" 시몬이 그의 끈을 풀어주며 말했다. 하지만 그는 제대로 말도 못 하는 상황이었다. "!@@^! 2$@$@!" 이상한 말을 하면서 신음을 흘렸다. 시몬은 그를 부축하며 내려왔고, 다른 세 사람도 합류했다. 이내 유적에서 완전히 내려온 뒤, 딕이 그에게 수통을 넘기며 물었다. "왜 거기 묶여 있었던 거예요? 누가 그랬어요?" 그는 몹시 목이 말랐던 지 꿀떡꿀떡 물을 다 마셨다. 하지만 본능에 가까운 행동을 했을 뿐이었을까, 여전히 눈에 초점은 없었다. "혹시 홍펭 교수님 본 적 있어요? 홍펭 툰 소쿰 마르라트!" 시몬이 홍펭의 이름을 대자 그가 움찔했다. "바, 바친다! 바쳐!"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어느새 그의 해가 저물고 하늘이 어두워져 있었다. 그가 갑자기 입에 거품을 물며 발작을 일으켰다. "으아아아아아!" 그가 부축하고 있던 시몬과 딕을 내팽개쳤다. 그러고는 바닥에 엎어져 기어갔다. "제물 제물! 산 제물로! 어어어억!" 그는 허우적거리며 미친 듯이 숲속으로 도망쳤다. "자, 잠깐......!" "됐어 시몬." 딕이 시몬의 어깨를 붙잡았다. "차라리 여기서 도망치는 게 저 사람에겐 안전해. 그보다 홍펭 교수님이 여기 있을 가능성이 더 높아졌어." "아." 그때 카미바레즈가 팔을 들어 올렸다. "왜 그래? 카미!" "저기......!" 그녀의 손끝이 덜덜 떨렸다. "피가......!" 해가 지고, 이 도시에 완연한 밤이 찾아왔다. 그 순간 이곳의 모든 사원 꼭대기에서 피가 주르르륵 흘러내렸다. 마치 포도주처럼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피가 흐르는 사원에 사람의 형상이 하나둘씩 흐릿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몬은 어젯밤 불침번에서 자신이 본 그 사람과 같은 자들이라는 걸 눈치챘다. "다들 침착해, 이쪽이야." 여기 있으면 들킨다. 시몬은 패닉에 빠져서 기절할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멤버들을 챙기며 좁은 골목 쪽으로 들어갔다. 사원에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계속해서 모습을 드러낸다. 그들은 뭔가를 내리치고 쑤시면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때마다 퍽! 소리가 나며 피가 주르륵 흐른다. 밤의 도시가 온통 피범벅으로 변하고 있다. "으으으!" 메이린이 굳은 얼굴로 멈춰섰다. 사원과 탑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바닥까지 흥건히 고여 있었다. 카미바레즈가 조금 진정한 듯 말했다. "괜찮아요! 진짜 피는 아니에요!" "그, 그래? 그럼 저 빨간 건 대체......." "일단 움직여!"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들에게 들켜서 좋을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딕이 옆을 가리켰다. 이 근방에서 가장 큰 사원. 그곳에 입구로 보이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네 사람은 칠흑까지 밟고 뛰었다. -그륵! -기기긱? 그런데 사원 주위를 어슬렁거리던 정체불명의 피범벅 몬스터가 그들을 발견하고는 뛰어왔다. 뭐라 표현하기 힘든 끔찍한 외형이었다. "달려어!" 딕이 외쳤다. 선두의 딕, 중간에 메이린과 카미바레즈. 그리고 가장 후방의 시몬은 본 아머를 날리며 견제했다. 모두가 젖먹던 힘까지 다해 뛰었다. 이내 세 사람 모두 사원 안으로 들어갔고, 마지막으로 들어온 시몬이 왼발로 바닥을 강하게 디뎠다. '개문!' 촤르르르르르! 바닥에서 튀어나온 오버로드들이 문을 붙잡고 강하게 아래로 눌렀다. 그러니 돌문이 쿵! 소리와 함께 내려앉았다. "......." "......." 네 사람은 입을 틀어막고 숨도 쉬지 않은 채 멈춰 섰다. 벽 틈으로 문 앞에서 멍하니 있는 괴물들이 보인다. 그리 지능이 높은 건 아닌 듯, 이내 괴물들이 꾸물렁거리며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네 사람이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누......." 그때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모두가 움찔하며 몸을 움츠렸다. "누구세요?" 시몬이 고개를 돌렸다. 열 살이 채 안 되어 보이는 작은 소녀가 겁에 질린 얼굴로 벽에 붙어 있었다. '대륙어다!' 밖에서 벌어진 일 때문에 모두가 잔뜩 경계하고 있는 가운데, 시몬만이 빙그레 웃으며 앞으로 나와 대륙어로 말했다. "안녕, 우리는 홍펭 교수님의 제자들이야." 반응이 있다. 소녀의 작은 두 눈이 똥그랗게 뜨였다. 시몬은 그녀와 거리를 어느 정도 유지한 채, 자세를 낮춰서 눈높이를 맞추었다. "홍펭 툰 소쿰 마르라트. 알지?" 눈치를 보던 소녀가 자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홍펭 교수님의 초대를 받고 왔어. 어디로 가야 교수님을 뵐 수 있을까?" "......." 그 말을 들은 소녀가 고개를 푹 떨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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