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09화 기말고사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시몬은 보충수업이라는 명목의 특훈을 소화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칠흑역학, 저주학, 마투학 모두 서로 다른 방향에서 시몬의 성장을 이끌어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색다른 보충수업이라고 한다면. '나이스! 하나 더 찾았다!' 아론의 중급 소환학이었다. 시몬은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고고학자들이 드나드는 '발굴장'에 나와 있었다. 옷도 고고학자들처럼 갈색 점퍼로 맞춰 입었다. "학생, 이쪽 일에도 재능 있는데요?" 얼굴이 꺼멓게 변한 발굴자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시몬은 방금 찾아낸 뼈를 간이 선반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감사합니다." "천천히 하라구, 천천히." 시몬은 이어서 어깨에 멘 가방에서 각종 도구들을 꺼냈다. 솔로 뼈 표면에 묻은 흙을 조심스레 털어낸 다음, 마법진 판 위에 올렸다. 그리고 나침판을 연상케 하는 아티팩트를 들어 올렸다. 찰칵. 버튼을 누르자 바늘이 휘리릭 움직이며 180도로 돌아갔다. 시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당첨이다.' 시몬은 이내 허리를 쭉 펴고 지금까지 모은 결과물들을 만족스럽게 바라보았다. "대퇴골도 얻었나. 준비는 다 끝난 모양이군." 마침 아론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그 또한 시몬처럼 갈색 점퍼 차림에 안전모를 쓰고 있었다. "네! 이번 뼈는 '용의 인자' 함유량이 최고수치에 달했어요!" 이렇게 먼 곳까지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온 이유. 바로 본 드래곤 수업을 위해서였다. "여기서 바로 수업을 시작하겠다." 아론이 자리에 걸터앉았다. "우리가 이번에 다뤄볼 재료는 드레이크다. 알고 있겠지?" "네. 흔히 퇴화된 용이라고 부르잖아요?" "그래, 본 드래곤 제작에서 가장 첫 입문단계라고 할 수 있지." 아론이 팔짱을 꼈다. "우선 큰 전제부터 설명하마. 본 드래곤 제작에는 중요한 두 가지 요소가 있다. 첫 번째는-" 우우웅! 어두운 발굴장이 한 차례 크게 번쩍이더니 마법진 하나가 펼쳐졌다. 다른 수식 없이 중앙에 떡 하나 있는 이질적인 언어가 보인다. "용의 룬어다." 지금까지의 룬어가 외견적이든 기능적이든 어떤 통일성이 있었다면, 용의 룬어는 그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마치 기존에 존재했던 마법체계를 비웃는 듯한 형태. 비유하자면 전설 속 동양 대륙의 글자를 연상케 했다. "그리고 이 용의 룬어를 작동하는데 필요한 게 바로-" "그 '용의 인자'라는 말씀이시죠?" "정답이다." 아론은 시몬이 수집한 뼈 하나를 손에 쥐더니, 그대로 마법진을 향해 던졌다. 스으응- 날아가던 드레이크의 뼈가 마법진에 닿는 순간, 갑자기 중력이 사라진 것처럼 공중에 두둥실 떠올랐다. "오!" "뼛속에 남아 있던 용의 인자가, 용의 룬어에 만나 반응한 거다." 아론이 그렇게 말하며 두 번째 뼈를 잡아 던졌다. 스응- 이번에도 마법진에 닿아 공중에 머물렀지만, 곧 힘이 다한 듯 마법진에서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용의 인자 함유량이 떨어지는 뼈는 이렇게 반응이 약하지. 오로지 용의 인자가 남아 있는 뼈만이 이 용의 룬어로 작동시킬 수 있다. 이게 본 드래곤의 기본이다." 잽싸게 노트에 필기를 마친 시몬이 깃펜 깃으로 제 턱을 툭툭 건드렸다. "본 드래곤의 핵심이 '용의 룬어'. 그리고 '용의 인자'가 깃들어 있는 뼈만 용의 룬어의 통제를 받는 거군요." "정확하다." "그럼 대륙에 널려 있는 드레이크를 잡으러 가지 않고, 일부러 이런 발굴장까지 온 것도......." "그래." 아론이 고개를 끄덕이며 주머니 속에 손을 넣었다. "현대의 드레이크들은 모두 '퇴화'가 심하게 진행되어 용의 인자가 남아 있지 않다. 물론, 드레이크들은 드레이크 나름대로 바뀐 생태계에 적응하고 살아남느라 이렇게 변화한 거겠지만, 이제는 '용'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일게 마물에 불과하지." "신기하네요." "생존을 위해 스스로의 '격'을 떨어뜨린 거다. 야생뿐만 아니라 인간 세상에도 흔히 일어나는 일이지." 그가 턱짓으로 뼈를 가리켰다. "이번엔 네 차례다." "네!" 시몬이 집중력을 끌어올리며 두 손을 세웠다. 그동안 내내 연습해온 용의 룬어. 그중에서도 가장 기본. 손바닥으로부터 칠흑이 꿀렁이며 흘러나왔다. 칠흑은 허공에 펼쳐지며 마치 이렇게 묻는 것 같았다. -뭘 만들 거야? 말만 하라는 듯, 칠흑의 기억하려는 성질이 시몬의 명령을 기다린다. 하지만 시몬은 일반적인 흑마법을 쓰려는 게 아니다. '비운다.' 머릿속을 텅 비운다. 이건 완전히 새로운 양식의 룬어다. 여태까지 배운 이론이나 지식, 경험 따위는 지금 여기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로지 직관과 재능에 의존해서, 머릿속에 있는 뿌연 심상을 형상화한다. -뭔가 이상해! -실수지? 이 수식을 만들려는 거지? 칠흑의 기억하려는 성질은 어떻게든 익숙한 것을 만들어내려고 한다. 하지만 시몬은 그런 강렬한 유혹들을 모두 뿌리치고, 알지 못하는 미지의 바다에 기꺼이 몸을 집어 던진다. 내가 원하는 건. '새로운 영역!' 파앗! 마침내 시몬이 눈을 떴다. 룬어의 상식을 완전히 박살 내는, 받침이 밑에 몇 개나 들어가고 획이 희한하게 그어진 괴이한 형태의 룬어가 탄생했다. 파르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드레이크의 뼈들이 즉각 반응한다. 자기들끼리 멋대로 떨리더니 이내 두둥실 공중으로 올라가 마법진 위에서 부유한다. 인자 함유량에 차이가 있어서, 어떤 건 높이 떠오르고 어떤 건 떨어질 듯 위태롭게 아래쪽에서 놀았지만 그래도 모든 뼈들이 반응했다. '좋아!' 시몬은 생전 느껴본 적 없는 감각에 입꼬리를 올리며 열심히 두 팔을 움직였다. 마법진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던 뼈들이 움직이고 모여서 여러 형태를 맞춰나간다. 그 모습을 보던 아론이 까끌까끌한 턱수염을 쓸며 미소 지었다. '적어도 한 달은 이 작업을 시킬 생각이었다만.' 아무래도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마침내 룬어를 이루던 칠흑이 모두 소진되며, 뼈들도 다시 테이블에 내려왔다. "어때요? 된 건가요?" "그래. 방금 느낀 감각을 기억해라." 아론이 등을 돌려 걸어갔다. "굴에 오래 있었더니 슬슬 기관지가 안 좋아지는군. 밖에 나가서 이야기하지." "네!" 시몬과 아론은 밖으로 발굴장 밖으로 나왔다. 고고학자들과 발굴 작업자들이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한 고고학자가 아론을 보며 아는 척을 했다. "아론 교수! 오랜만이구먼!" "오랜만에 뵙습니다. 박사님." "자네 정도나 되는 사람이 이런 곳까진 웬일인가?" 그가 시몬의 머리 위에 툭 손을 올렸다. "제자에게 교육을 시켜주고 있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아론의 지인인 것 같았기에 시몬도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고고학자가 허허 웃었다. "그래, 그래. 교실에만 있으면 뭐 하남? 이런 현장까지 와보고 하는 게 다 경험이지. 많이 배우고 가게." 몇 마디 더 하던 고고학자는 곧바로 발굴장에서 나온 커다란 뼈를 보고 달려갔다. 아론은 겉옷을 벗으며 바위에 걸터앉았다. "드레이크는 이 정도면 됐다. 다음부터는 조금씩 용의 인자를 인위적으로 부여한 뼈들을 다뤄보면서 감을 잡도록 하지." "넵." 듀라한 때 배워서 알았지만, 이런 사전 작업들이 하나둘씩 쌓여가야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교수님." "말해라." "모든 드레이크가 퇴화된 채로 마물이 된 건가요?" 아론이 고개를 저었다. "번식과 생존을 위해 격을 포기한 드레이크가 있는가 하면, 체내에 있는 용의 인자를 발전시켜 브레스까지 사용하는 고대종 드레이크도 있지. 이들은 이미 드레이크라고 부르기 미안할 정도로 강력한 존재다." 시몬의 눈이 반짝였다. "그런 걸로 연습하면, 네프티스 님이 주신 진짜 본 드래곤을 만들기 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아론이 눈을 감으며 덧붙였다. "그런 것들은 아주 귀하고, 비싸다." 귀하고 비싸다는 말에 시몬의 눈이 무척 반짝이고 있다는 걸, 아론은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무느라 눈치채지 못했다. * * * 희귀한 고대종 드레이크라는 중요한 정보를 얻고 로크섬에 복귀한 시몬은 다시 칠흑역학, 저주학, 마투학 보충수업을 진행하며 실력을 끌어올렸다. 밤에는 기말고사 공부를 했고, 새벽에는 '피어의 유적'에 들어가서 몰래 에이젤전을 대비한 신기술을 연구했다. 파스슥-! 시몬의 비밀무기이자, 수행평가에 1만 마리를 베었던 카오스 듀라한. 그 듀라한의 몸 끝에. 파스스스스-! 혼돈으로 만든 밀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시몬이 환호성을 내지르며 벌러덩 쓰러졌다. "돼, 됐다." [크흐흐흐! 이거 흥미롭군!] 지켜보고 있던 피어가 다가와 팔짱을 꼈다. [성녀의 기술을 '혼돈'으로 흉내 내고, 그걸 듀라한에 이식한 건가! 인상적이지만 이러면 흑마법이 너무 무거워지겠군.] "네, 그게 조금 걱정이긴 해요." 아직 실전성이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일단은 성공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에이젤 선배와 싸울 날이 기대된다.' 그렇게 늦은 새벽에 기숙사로 복귀. 잠깐 눈을 붙였다가 정규수업과 보충수업을 소화했다. 틈틈이 남는 시간에는 기말고사 공부를 했다가, 저녁엔 학생회실에 들러서 학생회 업무를 해야 했다. 학기 말이라 학생회 업무도 상당히 바빴다. "시몬! 여기 서명해 주세요!" "고마워 카미." 시몬은 서류를 훑어본 후 서명을 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몸이 딱 열 개였으면 좋겠다.' 키젠에서는 1분 1초가 황금과도 같았다. 이곳에만 오면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특히 이번에는 정규 수업, 보충 수업, 본 드래곤 제작, 기말고사 공부, 수행평가 준비, 에이젤과의 결전, 학생회 업무까지 겹쳐 있는 상황. '하다못해 잠을 안 자는 능력이라도 있었으면.' 시몬이 그런 망상을 하며 하품을 하고 있는데, 메이린이 다가왔다. "시몬, 이것도 서명......." 거기까지 말한 그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너 피곤해?" 시몬이 얼른 웃는 표정을 꾸며냈다. "아니, 아니. 괜찮아. 여기에 서명하면 돼?" "네가 벌써부터 기말고사 때문에 밤샘하는 스타일은 아닐 텐데....... 혹시 진짜 에이젤 선배를 이기려고 준비하는 건 아니지?" 메이린은 예리했다. 시몬은 멋쩍게 웃었다. "그냥 이것저것 시도해 보고 했어. 결평 대비도 할 겸......." "어차피 2학년 결평 승률 100%면서 무슨 대비를 또 해!" 잠깐 컨디션의 중요성에 의해 잔소리를 한 메이린이 '으휴' 하고 한숨을 쉬었다. 어쨌거나 이렇게 바쁜 와중에 에이젤전 대비를 한다는 건 학생회를 위해 애써주는 건데, 거기서 더 뭐라 하지는 않았다. 대신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혼자서 끙끙 앓지만 말고 내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 시몬이 말을 멈추고 물끄러미 메이린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빤히 시선이 집중되자 메이린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왜, 왜?" "메이린. 말이 나와서 그런데." 시몬의 머릿속에 마침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조금 도와줄 수 있을까?" * * * 학생회 업무를 끝내고 밖으로 나왔다. 메이린이 '하?' 하고 허리에 손을 얹었다. "지금 나더러 네 언데드 상대를 해달라고?" "응." 시몬이 혼돈 마법진을 세밀하게 조작하면서 말했다. 그의 앞에는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는 카오스 듀라한이 떡 하니 서 있었다. "결투다! 결투!" 간만에 튀어나온 즐거운 구경거리에, 딕의 표정은 무척이나 기뻐 보였다. "두 사람 다 힘내세요! 시몬! 메이린!" 카미바레즈도 날개를 파닥거리며 응원했다. 메이린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내가 에이젤 선배 대신이란 거네. 근데 나랑 그 사람은 같은 칠흑역학과긴 해도 사용하는 흑마법이 전혀 다른데?" "괜찮아." 시몬이 제안한 이번 룰은 '풀 포지션'. 본래 결투평가에서는 흑마법을 미리 준비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풀 포지션 룰은 두 사람 다 서로 가능한 만큼 흑마법을 준비한 상태에서 쾅! 맞붙는 룰이다. 시작부터 온 힘을 다한 주력기로 싸우는 룰이기에, 단번에 승패가 갈리는 게 특징이다. 또한 얼마나 강력한 흑마법을 보유하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마법진을 펼쳐놓은 채 유지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메이린은 무려 다섯 개의 서로 다른 흑마법진을 완성해서 유지했고, 시몬은 카오스 듀라한 하나만을 준비했다. "자, 당연히 심판은 접니다!" 딕이 앞으로 나왔다. "풀 포지션 룰은 위험하니까, 제대로 된 유효타를 먹여서 배리어 게이지를 반만 깎는 쪽이 승리하게 됩니다! 의의 없죠?" "없어."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는 거야? 그렇게 투덜투덜거리던 메이린이 시몬의 옆에 선 거대한 목 없는 거인을 바라보았다. '.......' 1만 마리의 몬스터를 베며 키젠에 새로운 전설을 찍은, 시몬의 가장 강력한 소환형 소환수 카오스 듀라한. 막상 상대하려고 하니 긴장이 됐는지 그녀가 침을 꼴깍 삼켰다. 딕이 귀신같이 그 모습을 캐치하고는 눈썹을 들썩였다. "어? 메이린 혹시 쫄았냐?" "아, 아냐! 쫄긴 무슨!" 메이린이 빼액 외치며 주먹을 꽉 쥐었다. "시몬 본인도 아니고, 소환수만으로 Top6인 날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단번에 결판낼 테니 각오해!" 시몬도 빙긋 웃었다. 딕이 팔을 높게 들어 올렸다. "자, 그럼 갑니다! 홍코너! 작년에 세르네한테 진 뒤로 개빡쳐서, 잔혹한 일반인 학살을 퍼붓고 결평 승률 100% 기록하고 있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는 메이린 빌렌느!" "야!! 무슨 소개가 그래?" "이어서 청코너! 1만 마리의 몬스터를 베었다고 알려진 카오스 듀라한을 앞세운 학생회장 시몬 폴렌티아!" 그가 팔을 세웠다. "경기 시작!" 시몬이 사념으로 명령을 내리기 무섭게, 카오스 듀라한이 굉음을 일으키며 메이린에게 돌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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