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01화 딸랑 딸랑- 시몬과 로레인은 교내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문에 매달린 방울이 환영하듯 흔들리며 소리를 냈다. 정문 근처의 카페라서 그런지 1학년들이 유난히 많았다. 기말고사 준비를 하는 듯 교과서와 노트를 펼쳐놓고 와글와글 수다를 떨고 있었다. "꺅, 돌려줘!" "으하핳!" "손님! 점포 안에서 저주는 금지되어 있다고 몇 번을......!" 1학년들은 여전히 활기와 장난기가 넘쳤다. 시끌벅적한 후배들의 모습을 귀엽게 바라보던 시몬과 로레인은 이내 카운터를 향해 걸었다. "아이구, 로레인 님! 오셨습니까." 앞치마 차림의 카페 주인이 헐레벌떡 뛰쳐나와 로레인을 반겨주었다. 그녀도 눈웃음을 지으며 인사했다. 두 사람은 알고 지낸 지 꽤 된 것 같았다. 자연스레 카페 주인의 시선이 시몬으로 향했다. "어이쿠, 혹시 남자친구분?" 그녀가 담백하게 웃었다. "우리 학교 학생회장인데 모르세요?" "아? 아아! 참참! 암흑제에서 본 얼굴이네! 이거 실례했습니다. 일만 하고 사느라 학교 사정은 통......!" "시몬 폴렌티아입니다." 시몬도 웃으며 인사했다. 로레인이 다시 말했다. "전에 부탁드린 자리, 괜찮을까요?" "그럼요. 그럼요. 올라가시죠! 마실 건 어떤 걸로......." 시몬은 차가운 커피로, 그녀는 딸기가 들어간 이름이 복잡한 뭔가로 시켰다. 계단을 많이 올라가야 해서 음료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데, 시선이 하나둘씩 모이는 게 느껴진다. "저기 학생회장 선배님이랑 로레인 선배님 맞지?" "대박! 조합 뭐야? 저 둘을 한자리에서 보네." "저런 거물들은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할까?" 우러러보는 눈빛들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그때 한 1학년이 툭 내뱉었다. "근데 이제 시몬 선배님은 학생회장직에서 물러난다며?" "목소리가 커!" 후배들의 수군거림을 들으며 시몬이 쓰게 웃었다. '아직 물러난 건 아니지만.' 학생회장이라는 직위가 익숙해지긴 한 모양이었다.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렇게 집착할 생각도 없다. 그저 기말고사 이후의 승부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이후 주문한 음료를 하나씩 들고 계단을 올라 4층으로 올라갔다. 4층 옥상은 테라스 자리였는데, 아무도 없었다. "좋지?" "응. 조용하네." 로레인의 말에 따르면 가끔 교수진이나 직원들이 올라와서 회의할 때 쓰는 곳이라고 했다. 학생들은 이 자리를 빌리는 게 하늘의 별 따기겠지만, 차기 키젠 총장에게 불가능은 없었다. 두 사람은 자리에 앉아, 노을 지는 하늘 아래 키젠 캠퍼스 경관을 바라보았다. 그림 같은 경치였다. 스으. 그때 딸기 음료를 마시던 로레인이 시몬의 손을 잡아당겼다. 시몬이 움찔하며 얼굴을 붉혔다. "로, 로레인?" "......." 그녀는 시몬의 손에 붙어 있는 반창고 따위를 진지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진짜 싸운 거 아니지?" 못내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시몬은 정말로 '보충수업' 때 난 상처라고 밝히고는, 변명하듯 더듬더듬 말했다. "애초에 내가 막 싸우고 다니는 성격은 아니잖아." "1학년 말에 헥토르랑 결투했다며?" "아, 그건 여러 사정이 있어서......." 그녀가 푸훕 하고 웃으며 손을 놓아주었다. "알았어, 알았어. 그럼 본론으로 넘어갈까?" 그녀가 궁금한 건 칼로스 북부에서 있었던 일들이었다. 시몬이 배신의 군단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만큼, 거기서 무슨 일들이 벌어졌는지 궁금해했다. 시몬은 가감 없이 이야기했다. 대공을 만난 일, 북부군과 함께 출정한 일, 자이로스를 구해내고 새로운 북신으로 옹립한 일까지. "그랬구나. 데스랜드에 이어서, 프로스트 필드가 7군단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딸기 쉐이크가 든 잔을 내려놓고는 살갑게 웃었다. "축하해, 시몬." "고마워." 그녀는 잠시 빨대로 음료를 휘젓다가 말했다. "시몬은 이제 정말 연합에 없어선 안 될 사람이 됐네." "응?" "암흑연합의 골칫덩이인 땅들을 차례차례 통치해 주고 있잖아." 그렇게 되는 건가? 로레인의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저 내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솔직히 나는, 엄마가 대중들 앞에서 7군단의 존재를 밝힌 게 너무 섣부르지 않았나 생각했거든." 로레인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굳이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사실을 끄집어내 대륙을 시끄럽게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시몬만 더 신경 쓸 일이 많아지고 스트레스받는 게 아닐까? 하지만 결국 언젠가 겪어야만 하는 일이었고, 대륙의 분위기도 서서히 바뀌고 있어.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 그녀가 따뜻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이야기해 줘." 시몬은 괜히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로레인." 그녀와의 짧은 대화에 진심으로 힘이 나는 걸 느꼈다. 그렇게 무거운 이야기는 내려놓고, 이런저런 학교생활에 관한 잡담을 나누었다. 소환재료학 시간에 에슈가 실험도구를 폭발시켜서 2시간 내내 뒤에서 손들고 있었다는 이야기에 시몬은 폭소를 터뜨렸다. 그러다 자연스레 이야기는 학생회장직 쪽으로 향했다. "결투는 기말고사 뒤로 미루기로 했구나." 로레인이 미간을 좁힌 채 턱을 괴었다. 그녀는 학생회장 자리를 놓고 결투한다는 것 자체가 못마땅한 눈치였지만, 전대 학생회장의 지침이었으니 더 뭐라 하지는 않았다. "잠깐, 그러고 보니." "?" 그녀가 다시 시몬의 몸에 난 상처를 보았다. "그거 보충수업 때 생긴 상처라고 했지?" "맞아." "음, 역시. 교수님들이 조금 훈련을 세게 시키시나 보네?" 그녀가 알 만하다는 듯 미소 지었다. 시몬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시 뭐 짐작 가는 점이라도 있어?" "나도 직접 듣진 못하고 소문으로만 들었는데." 로레인의 말에 따르면, 최근 교수회의에서 2학년 교수진과 3학년 교수진들이 약간의 신경전을 벌였다는 것 같았다. 애초에 학생회장 자리는 학생들의 고유한 권한이다. 교수들이 관여할 수는 없고, 적당히 그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정도였다. 그러다. -결투는 무슨, 시몬 학생이 눈치껏 물러나 줘야지. 학생회장은 키젠 최강이라는 상징성이 있는데, 2학년 학생회장이 되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사정을 설명하느라 골치가 아파. -그럼, 그럼. 에이젤의 1합도 못 견디고 떨어져 나갈 아이가 학생회장이라니. 한 교수가 그런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제인을 비롯한 몇몇 2학년 교수들이 발끈하며 끼어들었다. 시몬의 강함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온 모양이었다. '......교수님들.' 시몬이 쓰게 웃었다. 어른이라고 해도, 나이를 먹어도 사람이 생각하는 건 다 똑같은 것 같았다. "늘 차분하던 제인 교수님이 화를 내셨을 정도였으니 말 다 했지." 로레인이 잔을 만지작거렸다. "그래서 네게 이런저런 훈련을 시켜주시는 게 아닐까?" 시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교수들의 자존심 싸움으로 번져 나간 문제. 아무래도 앞으로 꽤 시달릴 것 같았다. * * * 테라스 자리는 다음 예약이 또 걸려 있었기에, 두 사람은 카페에서 나와 함께 소환학 기숙사를 향해 걸었다. 소환학과 기숙사로 가는 길 자체가 인적이 드문 곳이라서 느긋하게 걸을 수 있었다. 시몬이 북부에서 있었던 가벼운 일화들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휘이이이이이이잉-! 맹렬한 돌풍이 몰아닥쳤다. 근처의 떨어진 나뭇잎들이 빙글빙글 회전했다. "시몬." 로레인이 바짝 긴장한 표정을 지었고, 시몬은 태연하게 정면을 응시했다. 이내 돌풍이 가시며 타닥- 하는 발소리가 들렸다. 교복 위에 걸친 회색 가디건이 나풀거리며 내려앉았다. 키젠 최강, 에이젤 브링어. "이틀 만이군." 말끔한 복장에 날카로운 눈빛과 턱선. 그는 그림으로 그린 듯한 엘리트의 모습으로 안경을 추켜올리며 걸어왔다. 혼자 온 건지 주위에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잠시 같이 가주겠......." "시몬에게는 무슨 용무이신가요? 선배님." 로레인이 대신 앞으로 나왔다. 그녀의 루비 같은 눈동자가 경계심으로 반짝였다. "결투는 기말고사 뒤라고 들었는데요. 서로 민감한 시기에, 굳이 시몬에게 접촉하실 이유는 없지 않나요?" 에이젤이 무표정한 눈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네게 묻지 않았다." 키젠 최강 에이젤 브링어와, 네프티스의 딸 로레인 아크볼드. 두 사람 간의 신경전이다. 누가 봤다면 숨 막히는 듯한 폭풍전야의 상황처럼 느껴졌으리라. '그런데.' 에이젤의 진짜 모습에 대해 알고 있는 시몬은 묘한 장면들이 눈에 들어왔다. 겉보기엔 그냥 한없이 카리스마 넘치는 에이젤이지만, 이마에 조금 흐르고 있는 땀방울, 그리고 다리 끝이 살짝 떨리고 있다. 이 사람. '떨고 있잖아!' 실력 같은 건 둘째 치고, 그냥 에이젤의 소심한 성격상 로레인의 박력에 움찔한 모양. 이렇게 어설픈 변장을 지금까지 아무도 몰랐다니. "괜찮아. 로레인!" 시몬이 얼른 앞으로 나오며 웃었다. "그쪽 문제가 아니라, 학생회 운영비에 관해서 이야기하기로 했거든! 초기랑 몇 가지 달라진 부분이 있어서." "......그래?" 그녀는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는 눈초리였지만, 이내 눈을 감았다. "알았어." 그러고는 아공간에서 자그마한 통신 수정구 하나를 꺼내 시몬의 손에 꼭 쥐여주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연락해. 알았지?" "응." 그녀는 가면서도 에이젤 쪽을 응시하다가, 마지못해 고개만 까닥하는 것으로 선배에 대한 예의를 취한 뒤 금지된 숲으로 사라졌다. "......." 에이젤이 걸음을 옮겼다. "가지." "네." 두 사람은 한동안 숲을 아무 말 없이 걸었다. 그렇게 인적이 완전히 드문 곳까지 와서야. "......무섭네." 위엄 넘치던 에이젤의 입가에서 그런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네프티스 님의 딸이라더니. 처음 보는데 박력이 어마어마해서 쫄았어." "하하." 이미 비밀을 들켜 버린 시몬 앞에서는 숨길 필요가 없는지, 에이젤은 본 모습을 드러냈다. 바지가 헐렁해지고, 키가 몇 센티미터나 쭈우욱 내려왔다. 이마를 드러낸 채 멋지게 솟아 있던 머리카락도 힘없이 내려왔다. 다시 봐도 적응이 안 되는 모습이었다. "참, 그보다 우리 결투는 어떻게 할지 생각해 봤어?" 에이젤이 물음에, 시몬은 머리를 긁적였다. "결투 자체를 피할 수는 없으니, 그냥 순수하게 싸우는 건 어때요?" "안 돼. 그럼 내가 무조건 학생회장 자리를 가져가게 되잖아." 역시 이 사람. 진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나도 수업 내내 좀 생각해 봤거든. 이런 건 어때?" 그가 검지를 세웠다. "내가 연기하고 있는 '에이젤 브링어'에겐 사실, 남을 인정해 주고 자비를 베풀 줄 안다는 자애로운 이미지도 있어." "네네." "그래서 결투에 너랑 내가 남들이 보기에 동등하게 싸워 나가는 건 어떨까? 물론 마지막엔 내가 이기겠지만, 그때 이렇게 말하는 거지." 에이젤이 다시 안경을 쓰고 진중한 목소리로 돌아왔다. "2학년인데도 나와 대등하게 겨룰 정도니, 학생회장 자리에 부족함이 없군." 그렇게 말하곤 다시 안경을 벗었다. "라고 하는 거야. 어때?" "끙." 시몬이 쓰게 웃었다. "그러니까 결투를 짜고 하자는 거네요?" "아, 아니지! 짜고 하는 거랑은 완전히 다르지! 간단히 합을 맞춰서 남이 보기 그럴듯하게 싸우자는 거야." 시몬이 뭔가 찝찝한 표정이자, 에이젤이 빙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어. 그럼 기말고사 전에, 간단히 한번 친선전으로 겨뤄볼래? 물론 승부 결과는 노카운트로 하고." 시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래도 돼요?" "내 손을 잡아." 시몬이 에이젤이 내민 손을 붙잡는 순간. 후우우우우우웅-! 두 사람의 몸이 하늘로 치솟았다. 마치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주위의 모든 지형이 빠르게 밀려나기 시작했다. "어, 어디로 가는 거예요?" 시몬이 바람에 마구 헝클어지는 머리를 붙잡으며 소리쳤다. 에이젤도 소리쳐 대답했다. "다른 사람들이 절대로 올 일이 없는 장소!" "로크섬에 그런 곳이 있어요?" "거의 없지. 하지만." 시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느새 로크섬을 벗어난 두 사람의 발밑에 바다가 있었다. "만들면 돼." 에이젤이 환하게 웃으며 손짓했다. 쏴아아아아아아-! 시몬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바다가 갈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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