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94화 학생회실에 들어가기 두 시간 전. 로크섬에 무사히 복귀한 시몬과 카미바레즈는 바로 하수인들의 안내에 따라 키젠 부총장, 제인의 연구실로 향했다. 사각 사각- 제인은 아직 업무 중이었다. 업무용 안경을 쓰고 깃펜을 움직이고 있었다. 정갈하고 세련된 사인이 서명란에 얹어지고, 그 아래로 작은 설명과 지시사항이 곁들어진다. 기계처럼 한 장이 넘어가고, 다음 한 장이 책상으로 넘어온다. "......." 시몬과 카미바레즈는 허리를 바짝 세우고 두 손은 무릎에 얹은 채 최대한 공손하게 앉아 있었다. 무거운 적막이 흐른다. 실내가 그리 덥지도 않았는데 땀이 났다. 사락- 마침내 마지막 서류에 서명한 그녀가 깃펜을 잉크통 위에 얹어놓고, 피곤한 듯 작게 한숨을 쉬며 안경을 벗었다. 진한 바이올렛 눈동자가 두 사람을 지그시 응시했다. 시몬과 카미바레즈의 허리가 조금 더 꼿꼿이 세워졌다. "특별수업을 마치고 무사히 복귀했습니다. 제인 교수님!" "보, 복귀했습니다!" 시몬이 말했고, 뒤를 이어 카미바레즈가 복창했다. 두 손을 모아 가볍게 깍지를 낀 제인의 긴 검지가 툭툭 하고 반대쪽 손등을 두들긴다. "늦었군요." 마침내 그녀의 입이 열렸다. 고요했지만 냉연한 음색이었다. "죄송합니다. 파견지 사정에 약간의 문제가......!" "이미 현지 상황에 대한 보고는 받았습니다, 학생회장." 제인이 시몬의 말을 끊으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임무기간을 유예하는 건 키젠에서 대수로운 일은 아닙니다. 다만-" 그녀의 보랏빛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이번 일정은 임무평가도 파견평가도 아닌 단순한 '특별수업' 커리큘럼. 멘토에게 수업을 받는 것 외에 파견지에 필요 이상으로 관여했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시몬이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유예보고도 하지 못한 한 사람." 이번엔 그녀의 시선이 카미바레즈에게로 향했다. 놀란 카미바레즈가 딸꾹질을 했다. "일정보다 빨리 끝났으면 지체없이 복귀했으면 좋았을 텐데, 굳이 친구와 같이 학교에 돌아가겠다고 남의 파견지에 들어갔다가 사태에 휘말렸더군요." 카미바레즈의 얼굴이 잘 익은 사과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등 뒤의 앙증맞은 박쥐 날개가 푸욱 아래로 처지는 게 보였다. "두 사람 다 의욕이 과했어요. 파견지에서 크게 다치거나 문제가 생겼으면 어쩔 뻔했습니까." "...자중하겠습니다." "죄, 죄송해요." 두 사람은 빠르게 사과했다. 제인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물론." "?" "한 학교의 교수라는 입장상 쓴소리를 했지만." 그녀가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옳은 일을 했습니다. 키젠의 네크로맨로서로서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았고, 많은 목숨을 구해냈습니다. 힘을 가진 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군요." 시몬과 카미바레즈의 눈동자가 커졌다. "자랑스러워해도 좋습니다." 제인이 특별수업 평가점수 'A+'가 붙은 확인서를 두 사람 앞에 내밀었다. "하지만 다음에는 '규정을 지키면서' 옳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더 정진하십시오." "제인 교수님!" 카미바레즈의 눈망울이 그렁그렁해졌다. 시몬도 큰 힘이 나는 것을 느끼며 확인서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두 사람을 포함해, 특별수업 학생들은 이번 기간 동안 정규수업을 빠진 일수가 꽤 됩니다. 각 과목의 교수들과 조교들이 시간을 내어 보충수업을 진행할 겁니다." 그녀가 이번엔 보충수업 일정표를 두 사람에게 내밀었다. "다른 학생들을 따라잡으려면 빠듯할 겁니다." 시몬은 일정표를 빠르게 눈으로 훑었다. 방과 후는 물론, 주말에도 수업이 빠짐없이 계획되어 있었다. 물론 2주 넘게 수업을 빼먹었으니 보충은 당연한 거였고, 각오도 하고 있었다. 오히려 보충수업을 해주는 학교 측에 감사해야 했지만. "보충수업은 누가 맡아주시는 건가요?" 이번 특별수업에 참가하느라 밖에 나가 있던 학생들은 듣는 수업이 각기 다르다. 기껏해야 몇 명의 학생들을 위해 교수들이 주말까지 출근해서 수업하는 건 너무 미안한 일이었다. "관례상 보충수업은 각 과목의 수석조교들이 진행합니다만." 제인이 눈을 감았다. "교수가 직접 들어와서 가르치는 과목도 있을 겁니다." 시몬은 칠흑역학은 무조건 제인이 직접 들어오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앞으로 굵직굵직한 수행평가들이 남아 있고, 곧 기말고사 이슈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동기들도 이 2주간 크게 성장했습니다. 파견으로 뒤숭숭해진 머리를 다잡고 다시 학교생활에 집중해서 좋은 성적을 내도록 하세요." 두 사람이 큰소리로 '네!'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 제인은 조금 망설이는 듯하더니 이내 턱을 괴고 눈을 감았다. "자연스럽게 알게 될 테니 내가 이야기하는 건 적절하지 못하겠군요. 이만 나가보세요." * * * 시몬과 카미바레즈는 제인의 연구실에서 나왔다. 정규수업은 내일부터 들어가는 일정이기에, 오늘 하루는 여유가 있었다. 시몬이 말했다. "카미, 학생회실에 들렀다 갈까?" 카미바레즈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메이린이랑 딕에게 인사하고 가요! 다들 잘 있는지 궁금해요." 두 사람은 곧장 2학년 캠퍼스를 쭉 가로질러 학생회 건물에 들어왔다. 매끈한 검정 유니폼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뒷짐을 진 채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학생회의 명령에만 움직이는 '직속 하수인'들이었다. 두 사람을 알아본 그들이 공손하게 인사했다. "돌아오셨습니까 시몬 학생회장님, 카미바레즈 서기님." 그리고 직속 하수인들을 이끄는 리더인 모조가 앞으로 걸어왔다. "오랜만이에요 모조! 학생회에 별일은 없었죠?" 그 말에 모조가 흠칫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예." "계속 수고해 주세요." "수고 많으세요!" 두 사람은 직속 하수인들을 지나 학생회실을 향해 걸었다. 카미바레즈가 말했다. "그런데 시몬. 하수인 분들의 분위기가 조금 이상하지 않았어요?" "그랬었나? 난 잘 모르겠는데." 시몬은 그렇게 말하며 학생회실 문을 열었다. 드르륵-! 문이 열리며, 그리웠던 학생회실의 모습이 짠하고 나타났다. 학생회장 책상과 널찍하고 편안한 소파, 그리고 캠퍼스가 내려다보이는 창문까지 모든 게 그대로였다. "으음." 그리고 소파에 퍼질러 누워 있던 소년이 부스스한 머리를 긁으며 눈을 떴다. "뭐야, 누구...... 응?" 시몬이 씩 웃었다. "오랜만이야, 딕." 카미바레즈도 날개를 파닥파닥 흔들며 인사했다. "딕! 저희 돌아왔어요!" "시몬! 카미!" 딕이 '오오옷!' 하는 소리를 내며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나 반가움 가득한 함박웃음이 바로 변하며 말했다. "아니 참, 이럴 때가 아냐! 큰일 났어! 너희들이 학교에 없는 동안......!" 타다다다닷! 그때 밖에서 바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바로 학생회실 문이 열리며, 시냇물 같은 하늘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소녀가 숨을 헐떡이며 들어왔다. "모조한테 들었어! 시몬이랑 카미가 돌아왔다고...... 아!" "메이린!" "보고 싶었어요!" 그러나 메이린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둘 다 왜 이렇게 늦었어! 큰일 났어!" "?" 회포를 풀 시간도 없었다. 메이린이 빼액 소리 질렀다. "에이젤 선배님이 돌아왔다고!" * * * 그렇게 다시 현재. 재회에 기쁨을 나눌 시간도 없이, 학생회실은 무거운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현 키젠 최강, 3학년 수석 '에이젤 브링어'가 돌아왔다. 그 말은 즉, 전 학생회장 판타서스의 계약에 효력이 발휘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시몬은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겼다. '원래는 에이젤 선배가 학생회장이 됐어야 했지.' 하지만 에이젤은 학기 초부터 장기임무로 자리를 비우게 됐다. 키젠의 입장에선 학생회장 자리를 오래 비워둘 수는 없었고, 다른 3학년들이 후보에 올랐다. 이때 전대 학생회장인 판타서스는 에이젤이나 시몬, 둘 중 하나가 아니면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학생회 자체가 '학생자치기구'인 만큼, 교수진들보다 전 학생회장의 입김이 더 강하게 적용되는 자리였다. 결국 시몬이 에이젤이 돌아오는 동안 학생회장을 맡는 그림이 되었다. 이때 계약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에이젤의 공백 기간 동안 시몬 폴렌티아가 학생회장을 맡는다. -둘째, 3학년들은 임시 학생회장의 활동을 존중하며, 학생회장도 3학년들에 크게 간섭하지 않는다. -셋째, 에이젤이 돌아오고 시몬 폴렌티아가 학생회장직을 무사히 유지하고 있는 경우, 그리고 시몬이 학생회장 자리를 계속 이어나갈 의지를 보이는 경우, 두 사람의 결투평가를 통해 승자를 학생회장으로 한다. -넷째, 세 번째 조항에 따라 에이젤이 시몬으로부터 학생회장직을 인수한 경우, 에이젤은 무조건 다음 학생회장으로 시몬 폴렌티아로 추천한다. 3학년들의 횡포를 막고, 시몬의 학생회장 자리를 굳히기 위한 조약이었다. 이로써 2학년이 학생회장이 되는 기이한 구조가 계속되었고, 3학년들은 학기 내내 묘한 열등감에 빠지게 되었다. 사실 사람들은 에이젤의 귀환이 이렇게 늦어질지도 예상하지 못했고. 시몬과 학생회 멤버들이 이렇게 학생회를 잘 운영할지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게 '2학년 키젠 학생회장 시몬 폴렌티아'라는 말이 모두에게 익숙해질 즈음. -에이젤이 돌아왔다! 장기임무를 마친 에이젤이 학교에 복귀한 것이다. 이제 시몬은 에이젤과 학생회장 자리를 걸고 싸워야만 했다. "그래, 한여름 밤의 꿈 같은 나날이라고 생각했다." 시몬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선도부장 말콤도 학생회실에 나타났다. 그는 소파에 드러누워 긴 한숨을 쉬고 있었다. "선도부원으로서 학교에 인정받고, 선도부가 정식조직이 되고, 너무 잘 풀린다고 생각했지." "뭐래. 네가 왜 질질 짜는 소릴 하는데?" 메이린이 눈을 흘기며 말했다. 대답은 딕에게서 들려왔다. "시몬이 물러나면 휘하 조직인 선도부도 싹 다 물갈이야. 에이젤 선배가 자기랑 친한 3학년들로 채우겠지." 사실이었다. 현 330기 학생회는 시몬을 중심으로 꾸려졌다. 부회장 메이린도, 총무 딕도, 서기 카미바레즈도 모두 시몬이 임명했다. 학생회장 시몬만 물러나는 게 아니라, 조직 자체가 바뀌게 된다. 에이젤은 자신의 심복들로 직책을 채울 것이고, 그게 당연한 관례였다. 시몬이 딕을 보며 물었다. "3학년들은 뭔가 움직임이 있었어?" "아직." 딕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뭐, 3학년들은 에이젤 선배가 돌아와서 아주 살판났지. 늘 우리 2학년 학생회를 아니꼽게 봤었잖아? 네가 돌아왔다는 소문이 퍼지면, 당장에라도 방 빼라고 말하러 올걸?" "싫어. 싫어! 다 짜증 나아." 메이린이 이마를 감싸 쥐며 칭얼거렸다. "우리가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공부하고 잠잘 시간도 줄이고, 밤새워서 암흑제 같은 굵직한 행사도 치르고 사람들의 평판도 좋게 유지했는데! 이제 와서 우리 성과를 다 빼앗겠다고? 너무한 거 아냐? 선배면 다야?" 누구보다 이번 학생회에 애정과 노력을 쏟던 게 부회장인 그녀였다. 그래서 아쉬움이 더 커 보였다. "그, 그래도!" 카미바레즈가 애써 웃으며 박쥐 날개를 파닥거렸다. "우리가 이대로 영영 헤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학과는 다르지만 계속 만날 거고! 3학년이 되면 다시 만날 수 있고요!" 메이린은 아무 말 없이 곁에 있는 카미바레즈를 껴안았다. 카미바레즈도 상심하는 메이린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주었다. 그렇게 분위기가 처져 있는 그때. "아니, 잠깐! 다들 생각해 봐!" 딕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다들 우리가 쫓겨날 거라고만 생각하는데? 에이젤 선배와의 결투에서 시몬이 이길 수도 있는 거 아니냐?" "......." "......." 학생회 멤버들이 딕을 빤히 쳐다보았다. 메이린이 한숨을 푹 쉬었다. "시몬한테 무리한 부담은 주지 말지?" 딕이 땀을 뻘뻘 흘렸다. "아, 아니, 뭐. 확률이란 게 있는 거잖아! 내 말은, 희망을 완전히 버리지 말잔 거지!" 아무리 실력 만능주의의 키젠이라지만, 키젠에서 '학년'이라는 벽은 절대적이었다. 키젠에서 1년을 더 버티고 덜 버티는 건 어마어마한 차이다. 그 안에서 얻는 배움과 경험의 양, 그리고 성장치는 차원이 다르다. '확실히.' 1학년 때 가장 기본적인 랫맨 스켈레톤이나 조립하던 시몬이, 이제는 리치를 만들었고 소드마스터 듀라한을 만들었으며, 곧 본 드래곤 조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1학년 시절을 생각해보면 그만큼 학년의 격차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시몬도 모두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암흑제에서 3학년 차석인 '발락'의 싸움을 보았다. 솔직히 군단장의 힘을 쓰지 않는 이상, 이길 수 없는 상대라고 생각했다. 그런 발락보다 더 강한 에이젤이 상대라면. '쉽지 않겠지.' 시몬이 팔짱을 끼며 생각에 잠겨 있는 그때. "학생회장!" 드르르륵! 학생회실 문이 큰 소리와 함께 열리며 금빛 배지를 찬 학생들이 들어왔다. "자리에 있나?" 모두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들을 보았다. '3학년들!' '벌써?' 3학년들이 몰려왔다. 그중에서는 Top10에 속하는 거물들도 있었다. "안녕 회장." 소환학과 대표 레오나드가 빙긋 웃으며 시몬 쪽으로 손을 흔들어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시몬도 그에게 인사하며 앞을 보았다. "우리 에이젤이 할 말이 있다고 하는데." 그렇게 말한 레오나드와 3학년들이 좌우로 물러섰다. 뚜벅- 뚜벅- 느릿한 걸음 소리와 함께, 물러난 3학년들 사이로 누군가 걸어오고 있었다. '현 키젠 최강, 에이젤 브링어.' 시몬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문만 무성한 인물이었고, 지금까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다른 상황은 잠시 제쳐두고, 시몬은 키젠 최강이 어떤 네크로맨서일지 같은 네크로맨서로서 호기심이 일었다. '과연 어떤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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