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70화 "숨겨진 비밀?" 시몬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볼드몬트 백작이 눈을 빛내며 상체를 시몬 쪽으로 기울였다. "그래, 그러니 나와 손잡지 않을래?" 갑작스러운 동맹 제안. "네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보고 받고 있어. 키젠에서의 인상적인 활약은 물론, 어떤 사적인 관계도 구축하지 않는 진 대공의 제자로 들어갔지. 심지어 진이 날린 화살을 막아내기도 했어! 그 삼형제 중의 '첫째'도 일격에 보내 버린 대공의 화살을 말야!" 백작이 손바닥을 펼쳤다. "네 힘은 도움이 돼. 나와 함께 일하자!" 이쪽을 높여주기만 할 뿐, 저쪽은 아직 패를 까발리지 않았다. 시몬이 다소 심드렁한 반응이자 백작이 큭큭 웃었다. "그래, 좋아. 이건 정말 기밀 중의 기밀인데." 백작이 진지해진 얼굴로 깍지를 꼈다. "자원이야! 북부에, 정확히는 프로스트 필드 근방에 어마어마한 지하자원이 매장되어 있어! 내가 지금까지 파악한 것만 해도 마정석 광산 열한 곳에, 사파이어 광산도 두 곳!" 그가 두 팔을 벌렸다. "상상이 돼? 너와 나. 우리 가문 전체가 몇 세대는 돈 한 푼 안 벌고 풍족하게 살 수 있을 매장량이야! 야만적인 북부인들은 그 가치를 몰라! 설명을 해줘도 심드렁하지! 그게 자신들의 투쟁의 삶에 무슨 도움이 되냐는 거야. 싸움밖에 모르는 바보들! 그냥 거기 굴러떨어져 있는 보석 좀 주워다 팔면, 평생 몬스터 볼 일 없는 따뜻하고 평화로운 남부에서 으리으리한 저택을 짓고 살 수 있는데?" 그가 짝! 소리 나게 손바닥을 맞부딪혔다. "우리가 하자! 10%!" 그러곤 시몬의 가슴을 가리켰다. "모든 수익의 10%를 네게 주겠어! 같이 세상을 뒤집어주자! 우리를 비웃는 고위 귀족 놈들의 엉덩이를 걷어차고......!" "잠깐만." 시몬이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흥분한 백작이 말을 멈추며 눈을 끔뻑였다. "조건이 맘에 안 들어? 그럼 15%?" "아니, 아니. 전제부터가 이상하잖아." 시몬이 속으로 한숨을 쉬고는 말을 이었다. "북부는 대공의 땅인데 무슨 수로 광산을 가져가겠단 건데?" "정확히 말하면 '프로스트 필드'를 제외한 북부만 대공의 땅이지. 사실 그 부분은 전혀 걱정할 필요 없어. 내가 빈틈없는 계획을 세워놨거든! 북부인들은 지하자원의 가치를 모르니까 계약서에 살짝 손을 쓰면 광산의 소유권을 빼 오는 건 일도 아냐." 벌써 계약까지 생각해 놓은 건가. 시몬은 쓰게 웃었다. "이제 막 삼형제를 없앴을 뿐인데, 너무 성급한 거 아냐?" "과연 그럴까." 볼드몬트 백작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삼형제를 잃은 북신은 아무것도 아냐. 북신은 방대한 수의 언데드를 지배하기에 무서울 뿐이고, 북신의 본체 자체에는 전투능력이 없어! 놈은 절대 대공을 못 막아. 이 싸움은 이미 끝난 거나 다름없지." 그가 손끝으로 다시 시몬을 가리켰다. "중요한 건 남들이 다들 북신을 없애는데 집중할 때, 우리는 시야를 넓혀서 그 뒷일까지 생각하는 거야!" "......." 시몬이 눈을 감았다. 여전히 중요한 카드는 숨긴 채, 빙빙 말을 돌리고 있다. 볼드몬트 백작은 어리지만 예사내기는 아니다. 이런 상대는. "전쟁이 끝나면, 나더러 대공을 배신하란 거야?" 그냥 가식을 내려놓고 핵심을 찌르는 편이 낫다. 찰나의 순간, 시몬은 볼드몬트 백작의 손끝이 살짝 떨리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표정은 여전히 빙긋 웃고 있었다. "배신이 아니라, 모두를 위해 효과적인 일 처리를 하잔 거지. 전부 북부를 위한 길이야." 백작이 당당하게 대꾸하며 제 가슴을 가리켰다. "나 혼자서 자원 수익을 꿀꺽할 거라고는 말 안 했는데? 북신과의 전쟁이 끝난 북부는 좋든 싫든 변화를 피할 수 없어. 수호의 긍지도, 용기도, 싸움실력도 필요 없게 되지. 나는 의식주에서 벗어나 북부인들을 사람답게, 누릴 만큼 누리게 만들어 줄 거야." 그가 제 턱을 톡톡 두드렸다. "물론 전쟁이 끝난 새로운 북부에, 진 대공 같은 말도 안 되는 규격 외의 괴물은 필요 없는 게 사실이지. 음, 자원해서 신성연방 전선 같은 곳에나 가주면 좋겠는데." 시몬은 그와의 대화에서 여러 가지를 느꼈다. 십 년을 넘게 살아온 북부에 대한 애증을. 절대적인 강함과 카리스마를 가진 대공에 대한 열등감을. 그리고 무엇보다. "너." 시몬이 볼드몬트 백작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북부의 문화를 부정하는구나." 북부에 애증을 가지면서도, 그 문화는 부정하는 양면성을. "맞아." 볼드몬트 백작은 손을 들며 시원하게 인정했다. "북부인들의 인정을 받으려고 노력해 봤어?" "야만적인 인정 따위는 받을 필요도 없다고 봐." 시종일관 여유롭던 백작의 표정이 날카로워졌다. "난 그동안 북부와 남부를 잇는 철로를 건설했어! 상단들과 거래해 식량을 빈틈없이 대고 있지! 필요한 물자도 부족함 없이 공급하고, 다양한 문화들을 들어오려 했어. 나도 북부를 위해 내 역할을 한다고! 하지만 주민들을 나를 돈만 밝히고 계산기만 두들길 줄 아는 속물이라고 모욕하고 비웃기만 해!" 백작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10년! 아홉 살에 북부에 와서 자그마치 10년을 살았는데 그 사람들은 날 아직도 '외부인'이나 '남부인'이라고 불러! 난 남부에서 살았던 것보다 북부에서 더 많이 살았다고! 내가 없었으면 겨울을 버티지 못하고 다 굶어 죽었을 인간들이!" 쾅! 그가 팔걸이를 내리쳤다. "왜! 왜 여기선 싸우지 않는 인간은 쓰레기 취급받는데? 사람은 각자 잘하는 게 다를 뿐이야! 나는......!" 거기까지 말한 백작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 뒷말만큼은 말해서는 안 된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 이내 감정이 진정된 건지 후우 하고 숨을 내뱉었다. "미안, 친구. 못 볼 꼴을 보였네." "괜찮아." 시몬도 같은 외부인으로서 그의 감정은 이해했다. 시몬 또한 북부에 온 첫날부터 전사들에게 시비가 걸렸고, 둘째 날에는 보복을 받았다. 물론 시몬은 힘을 가지고 있었기에 대처할 수 있었지만, 힘이 없는 일반인들은 어땠을까. '그리고.' 시몬은 이 저택에서 본 하인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단순히 백작의 편의에 고용된 하인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손목이나 목 등에는 사슬 자국이 있었다. 아마도 죄를 짓고 북부로 도망친 죄인들. 하지만 강하지 못해 북부에도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 볼드몬트 백작은 북부인이 되지 못한 외부인들을 거두어들이고 있었다. 대공에게는 대공의 정의가. 백작에게는 백작의 정의가 있다.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시몬." 볼드몬트 백작이 검지와 중지를 붙여 시몬 쪽을 가리켰다. "모든 광산 수익의 20%. 솔직히 재정은 북부의 재건으로도 빠듯하지만 내가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야." "......." "얼마나 북부에 머무르다가 키젠에 돌아갈지는 모르겠지만, 네크로맨서 생활은 자금이 많이 들지?" 그가 입꼬리를 올렸다. "키젠에 돌아갈 시점에, 넌 키젠 최고의 자본가가 되어 있을 거야! 아, 물론 당장 대답하란 소리는 아냐. 천천히 생각해 봤다가......." "아니, 지금 바로 말할게." 시몬이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챙겼다. * * * 시몬이 떠났다. 볼드몬트 백작은 뒷짐을 진 채 가만히 창밖을 보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그 제안은 못 들은 걸로 할게. 그게 시몬의 대답이었다. 백작은 씁쓰레한 미소를 지으며 창밖을 보았다. 시몬이 홀로 대공의 성에 돌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똑똑똑. "백작님." "들어와요." 나이가 지긋한 집사장이 들어왔다. "시몬 학생회장은......." "유감스럽게도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지 못할 것 같네요." 볼드몬트 백작이 뒤를 돌아보았다. "이젠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계획은 그대로 유지하세요." 집사장이 깊게 허리를 숙였다. "예, 백작님의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 * * 다음 날 아침. 시몬은 오늘도 대공의 성에 출근했다. 거리나 성 곳곳에 보이던 전사들은 어제 그렇게 술을 퍼마셔 놓고도 멀쩡하게 일하고 있었다. 결투의 흔적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부상자들도 붕대 좀 두르고 털털하게 일어나 다음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북신과의 결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시몬도 군단장으로서 지금보다 더더욱 성장해야 했다. 다시 한번 결연하게 다짐하며 집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대공, 시몬입니다." 쿵! 우당탕탕탕! 집무실 안에서 뭔가 요란스러운 소리가 들린다. 후닥닥 뛰어다니는 소리도 들린다. 시몬이 조금 놀라서 다시 노크했다. "무슨 일 있어요?" "아무 일도 없다! 아직 들어오지 말거라!" 그렇게 잠시 후. 시몬이 안으로 들어갔다. 주위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의자에 뒤를 돌아본 채 앉아 있는 검은 머리의 여인이 보인다. "오늘은 훈련복이 아니라 제복차림이네요?" 시몬이 접객용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늘 훈련만 할 수는 없지 않느냐." 그녀는 여전히 뒤를 돌아본 채 그렇게 말했다. 시몬은 서랍장에 삐쳐 나와 있는 훈련복 상의를 보았다. "어젯밤은 잘 주무셨어요?" 시몬은 평소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어쩐지 대공의 대답은 평소 같지 않았다. 단답을 하거나,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 대답하는 경우도 있었다. 무엇보다 집무실에서 만난 직후, 그녀는 한 번도 시몬을 돌아봐 주지 않았다. 시몬이 땀을 삐질 흘렸다. '내, 내가 뭔가 잘못했나?' 어젯밤 술 취한 대공을 침실로 데려다줄 때 뭔가 문제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느끼기에 불쾌한 언사나 행동을 했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그런 종류의 잘못이 아니라면. "저." 시몬이 고개를 들어 대공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어제 볼드몬트 백작을 만나고 왔습니다." 많은 전사들이 볼드몬트 백작의 하인과 자신이 이야기하는 걸 봤고, 직후 시몬은 연회장에서 사라졌다. 사람들은 분명 백작을 만나러 갔다고 추측했었으리라. 대공과 볼드몬트 백작의 관계가 좋을 리가 없으니, 뒷이야기가 나와도 할 말이 없었다. 차라리 여기선 시원하게 사실을 밝히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렇군." 그녀는 여전히 돌아보지 않았다. "제 이름과 신분을 정확히 알고 있었기에 확인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 대공이 어깨를 으쓱했다. "뻔하다. 네게 또 거래 같은 걸 제안했겠지." 대충 짐작이 간다는 투. 시몬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안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갔건, 네가 거래를 받아들였건 말건 상관없느니라." 대공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도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거래 관계가 아니더냐. 나는 널 가르치고, 너는 내게 협조한다. 그뿐이다. 네가 다른 누군가와 또 거래했다고 해서 문제 될 건 없느니라." 시몬이 희미하게 웃었다. 그녀가 몸을 빙글 돌려 걸어갔다. "나오거라. 결전의 날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오늘은 실전 위주로 훈련을 하마." "네!" 그러나 대공을 뒤따라 나가는 와중에도, 대공은 한 번도 시몬을 돌아보지 않았다. 시몬은 옆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어렵구나.' 대공은 제 이마를 덮은 손바닥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그냥 물어보면 되는 것을, 나답지 않게 왜 그렇게 질질 끌고 있는 거지?' 대공이 힐끔 시몬 쪽을 돌아보았다. 그러다 시몬과 눈이 마주치려 하자 얼른 시선을 되돌려 앞만 보았다. 그날 이후 눈을 제대로 쳐다볼 수도 없었다. 자꾸만 그 얼굴이 옆에 덧씌워졌기 때문이었다. '정말 터무니없을 정도로 닮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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