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53화 사흘 뒤, 네프티스는 '특별 수업'을 강행했다. 특별 수업이라는 제도 자체가 암흑제 직후 급하게 진행할 만한 커리큘럼은 아니었기에, 진도에 박차를 가하려던 몇몇 교수들은 불만을 표했지만 네프티스의 생각은 확고했다. 시몬도 특별 수업 전까지는 최대한 몸을 사렸다. 특히 그 웨디안 벤치니오라는 기자는 끈질겼다. 시몬이 누군가와 이야기 나누고 있을 때면 불쑥불쑥 튀어나와 마력촬영기 버튼을 눌러댔다. -찾았어요! 시몬 폴렌티아! 분명 에이션트 언데드들과 밀담을 나누고 있었겠죠? -....... 가장 최근에는 길가의 쓰레기통에서 튀어나왔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저 바보는 뭐냐.'하는 반응이었지만, 사실 시몬은 간담이 서늘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가끔 피어의 분신과 머릿속으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송장거미로 에르제베트의 정기 보고를 듣거나 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기 때문이다. 운 좋게 예리할 때도 있었다. 물론 시몬도 그냥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학생회로서 공모전 측에 연락해 공모전 외의 건으로 학생들에게 인터뷰를 강요하거나 개인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행위에 대해 자제를 요청했고, 공모전 측도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웨디안은 마치 어떤 사명이 있는 사람처럼 집요하게 굴었다. 상관이 그녀에게 징계를 가하는 등의 조치를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구금 조치 중에도 숙소 밖으로 뛰쳐나오기도 했다. 그런 그녀의 집요함에 시몬은 얼른 북부로 떠나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바로 오늘. 시몬은 이른 새벽부터 피어의 유적에 들렀다. "이제 다 들어온 거 맞죠?" [그래. 다 끝났군!] 이렇게 군단이 대규모로 이동하는 건 오랜만이었다. 피어, 에르제베트, 프린스, 아케뮤스, 헤르세바. 그리고 그들의 주요 병력이 초대형 아공간에 들어갔다. 모두 함께 북부로 떠날 것이다. 병력들이 이동하는 사이, 피어는 유적의 입구를 결계로 완전히 봉인했다. "그 기자분이 유적을 열지는 못하겠죠?" 조금 걱정스러웠던 시몬이 그렇게 말하자, 피어가 호탕하게 웃었다. [그래 봐야 네크로맨서도 아닌 일반인에 불과하다. 신경 쓸 필요 없다, 소년!] 그동안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스토킹을 하도 많이 겪다 보니, 시몬은 이제 노이로제라도 걸릴 것 같았다. 지나가던 산새에도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보고드리옵니다, 군단장님.] 파삭! 나무 위에서 거미줄에 거꾸로 매달린 에르제베트가 내려왔다. [그 기자가 금지된 숲에 들어왔다가, 제 아이들이 쳐놓은 거미줄 덫에 걸렸사와요.] 마침 그녀의 목소리가 저 멀리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거 놔! 놓으라고! 내가 이런다고 포기할 줄 알고! [죽일까요? 시체는 흔적도 없이 세상에서 지울 수 있는데.] 에르제베트가 서슬 퍼런 눈빛을 하며 말했지만, 시몬은 고개를 저었다. "날 조사하던 기자가 갑자기 실종되면 오히려 더 의심을 살걸. 북부에 있다가 돌아오면 외부인들도 없을 테니 괜찮을 거야." [군단장님의 뜻이 그러시다면 소녀, 따르겠사옵니다.] 물론 시몬도 불안한 건 사실이었다. 에이션트 언데드 하나를 두고 유적을 지키도록 하면 든든하겠지만, 이번에 북부에 가는 이유는 '군단장 수업'을 위해서였다. 한 명이라도 빠지면 의미가 없다. 모든 에이션트 언데드의 역량을 이번 기회에 올리는 게 목적이었다. 시몬은 마지막으로 초대형 아공간을 열어 에르제베트와 피어까지 들어오게 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가자, 북부로!' * * * 북부. 암흑연합에서 추운 지방 하면 '샤헤드 왕국'이 유명하지만, 샤헤드 왕국은 영토의 많은 부분이 추운 북부지역에 위치해 있어 '북부'라고 딱 잘라 말하기 애매한 점이 있다. 암흑연합에서는 '북부'를 언급했을 때, 일반적으로 대륙민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곳은 칼로스 북부다. 그 유명한 인류의 영웅, 북부 대공이 지키고 있는 빌케노스 성과, 프로스트 필드. 프로스트 필드의 몬스터와 언데드들은 극도로 포악하다. 단기로 영지 하나를 불태울 만한 강력한 개체들도 존재하며, 주 먹잇감인 인간을 잡아먹기 위해 숱하게 인류의 영역을 침입한다. 그런 식인 몬스터들과 언데드를 틀어막는 인류의 최전선이자, 역사상 그 어떤 군대도 공략하지 못한 땅. 동시에 농사도 제대로 지을 수 없는 추운 기후에 척박한 골칫덩어리 땅. 바로 그곳에. '여기구나!' 시몬이 도착했다. 여러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최종 목적지에 눈을 뜨자마자, 달그락거리는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북부라고 생각하면 보통 떠오르는, 눈 덮인 그림 같은 도시 같은 광경은 아니었다. 바닥은 축축한 진창길이었고, 드문드문 눈이 덮여 있다. 곳곳에서 투레질 소리가 들리고 말똥 냄새가 난다. 험상궂게 생긴 수염 난 사람들이 도끼나 할버드를 하나씩 들고 지나가고 있다. 느껴지는 기운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전장'. 진을 친 군의 막사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생각보다 크네.' 여기가 바로 칼로스 북부의 심장이자, 북부에서 가장 발달한 도시인 빌케노스였다. 저 멀리 도시 전체를 감싸는 드높은 외성벽이 보이고, 그 너머로 시몬이 생각했던 북부의 광경. 새하얀 설산들이 삐쭉삐쭉 솟아 있었다. 겉보기엔 아름다운 자연경관이었지만, 저 산에 얼마나 많은 몬스터와 언데드가 우글거릴지 생각하면 괜히 등줄기가 차가워졌다. '가보자.' 가야 할 방향은 정해져 있었다. 도시 위에 우뚝 솟아 있는 가장 큰 건물. 빌케노스 정중앙에 위치해 있는 내성. 저곳에 대공이 산다. 바스락- 시몬은 걸으면서 품속에서 편지를 꺼냈다. 키젠의 인장이 찍힌 편지. 심지어 네프티스가 직접 써줬다. 시몬은 그녀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아, 참고로 대공한테 너 보내는 거 허락 못 받았어!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시몬은 심장이 쿵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럼 손님으로 가는 게 아니라 불청객으로 가는 거예요? 이번 특별 수업은 엄연히 키젠 교내 커리큘럼이었고, 이런저런 조건과 수행해야 하는 미션이 있었다. 그냥 손 놓고 시간만 죽이면 준 퇴학급 핸디캡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몬이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자, 네프티스가 빙긋 웃었다. -에이, 걱정할 필요 없어. 그냥 대공의 인정을 받으면 돼!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편지를 꺼냈다. -처음엔 막막할지도 모르겠지만 한번 북부와 대공의 인정을 받으면 그 뒤로는 수월할걸? 자 이거! 이 편지를 대공이 읽게 하면 모든 게 술술 풀릴 거야! 회상을 마친 시몬은 다시 편지를 품속에 소중히 넣었다. 어쨌거나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대공을 만나보는 수밖에 없다. 사실 시몬도 무척 궁금하긴 했다. 신성연방의 성녀들은 여럿 만나봤지만, 이에 대적하는 일곱 군단장은 매그너스 외에는 만나본 자가 없었다. '거기에 인류의 영웅이라.' 대륙 전역에서도 손꼽히는 격전지인 프로스트 필드의 확장을 수십 년 동안 틀어막으며 북부를 지킨 전설. 그런 자의 능력과 경험이 궁금했다.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었고, 어떤 에이션트 언데드를 보유했는지 궁금했다. 만에 하나 대공이 이쪽의 에이션트 언데드에 탐을 낸다면 싸워야 할지도 모르지만, 네프티스나 피어나 '그럴 인물이 아니다'며 오랜만에 의견이 일치했다. 그 두 사람이 명확하게 선을 그을 정도면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턱!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길을 걷고 있는데 누군가 시몬의 어깨에 부딪혔다. "어허, 앞은 제대로 보고 걸으셔야지?" 건장한 체구의 남자가 눈썹을 휘며 걸걸하게 웃어댔다. 손에는 자신의 상체보다 큰 배틀액스를 들고 있었다. 그의 동료들도 입꼬리를 올리며 걸어갔다. '뭐야, 저 사람들.' 시몬이 뭐라고 할 새도 없이, 남자들과 시몬의 사이로 한 무리의 언데드 병사들이 우르르 뛰어갔다. 파박! 파바바박! 병장구를 착용한 스무 기가 넘는 스켈레톤이 바쁘게 갈 길을 가는 모습. 시몬의 시선은 단번에 그쪽에 빼앗겼다. '잠깐만, 저거 누가 조종하는 건데?' 자연형 언데드는 아니다. 틀림없이 네크로맨서의 통제를 받는 개체들인 것 같은데, 아무리 봐도 주위에 네크로맨서는 보이지 않았다. 언데드들은 마치 특정한 노선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길을 따라 쭉 이동하고 있었다. '신기하네.' 저 북부 언데드들의 비밀을 파헤치고 싶었지만, 지금은 대공을 찾는 게 우선이었다. 시몬은 애써 궁금증을 억누르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어이, 레커! 남의 집 다 부숴 먹으려는 거냐!" "거 미안하게 됐소!" "으하하! 대낮부터 성대한 지랄이야!" 북부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드워프의 후손이라도 되는 건지, 몸이 굵고 근육질에, 털이 많았다. 그 외에도 대륙에서 차별받는 이종족들도 이곳에는 흔히 보였다. 고양이 수인들이 건물 지붕을 휙휙 뛰어넘고 있었고, 몸에 짐승처럼 털이 나 있는 소를 연상케 하는 수인이 시몬을 보며 피식 웃기도 했다. 다들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시몬이 외부인인 걸 아는지 힐긋힐긋 보았다. "저기, 죄송하지만 대공의 성으로 가려면 어느 길로 가야 하나요?" 슬쩍 질문을 던져보니, 수인들은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고양이처럼 후다닥 사라졌다. 그렇게 길을 헤매면서 진창길을 쭉 걸어. '아.' 마침내 내성에 도착했다. 칼로스 국왕 다음가는 권력자라는 대공이 사는 성이라기엔 그리 화려하진 않았다. 투박한 회색 성벽, 드높은 기둥들이 산맥처럼 삐쭉삐쭉 솟아 있었고, 지붕에는 닭 모양의 장식들이 걸려 있었다. 시몬은 성 앞에 멈춰서 잠시 고민했지만. '뭐가 됐든 일단 부딪혀 보자.' 대공이 여기서 빤히 기다리고 있어도 만날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당당하게 정면 승부하기로 했다. 시몬이 성문을 향해 걸음을 옮기려는 그때. 뿌우우우우-! 갑자기 뿔피리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는 빠르게 도시 전체로 퍼져나갔고, 일반 주거지에서도 뿔피리 소리가 화답하듯 터져 나왔다. 시몬은 귀를 틀어막았다. '뭐야, 무슨 일어나려는 거지?' 두두두두두두두! 지축이 뒤흔들린다. 뒤이어 점점 선명해지는 말발굽 소리. 성의 비탈길에서 새까만 뭔가가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다. 그것은 말을 탄 언데드였다. '설마 저게 다 듀라한이야?' 온몸에 칠흑을 연기처럼 풀풀 흘리는 사령마(死靈馬) 위로, 검은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보인다. 그들은 듀라한처럼 목이 텅 비어 있었으며, 머리가 있어야 할 부분에 유령과도 같은 불꽃이 솟구쳤다. 바로 그 불꽃에 잭오랜턴을 연상케 하는 눈코입이 있었다. 손에는 거대한 장창을 들었으며, 곳곳에 북부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처적! 척! 수백의 언데드 기병들이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도열하는 모습은 소름이 다 끼칠 정도였다. [저건 듀라한이 아니라 '팬텀 듀라한'이라는 특수한 개체다!] 피어가 설명했다. [자연계에는 없고 오로지 에이션트 언데드로부터 태어나는 자들이지. 저들이 바로 대공이 직접 이끄는 정예병, 무패를 자랑하는 언데드 기사단이겠군!] 확실히 가디언 등으로 만드는 일반 듀라한과는 달라 보였다. 스륵- 그때였다. 사령마를 탄 압도적으로 거대한 기사가 시몬의 옆으로 다그닥거리는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시몬은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에이션트 언데드!' 시몬은 그 위압감에 식은땀을 흘렸다. 아무래도 저 존재가 '팬텀 듀라한'의 우두머리인 듯했는데, 텅 빈 목의 단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대신 사령마의 얼굴이 인간의 얼굴이었다. 기사의 머리가 말에 연결된 모습. 상당히 괴이했다. 에이션트 언데드는 시몬을 본 척도 하지 않고 병력 쪽으로 합류했다. 이내 언데드 기병들이 좌우로 모세의 기척처럼 갈라져 창을 들어 올렸다. 처억! 척! 창끝이 하늘로 향할 때 칠흑이 뿜어져 나온다. 동작 하나하나가 정확하고 절도 있었다. 검은 파도가 꿈틀거리는 것만 같다. 이내 기병들의 좌우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낸다. 다그닥- 다그닥- 일말의 빈틈도 없는 풀 플레이트 아머를 입은 사람. 시몬은 그를 보는 순간, 팬텀 듀라한들과 에이션트 언데드의 모습은 머릿속에 말끔하게 지워지는 것을 느꼈다. 말도 안 되는 기백. 저게 인간이 뿜어낼 수 있는 기운이란 걸까 싶었다. 가까이 가는 것만으로도 전신의 피가 들끓어 오르는 것 같았다. 틀림없이 저 사람이 그 유명한 북부대공, 진 아르스칼트다. [전황은.] 투구 사이로 차가운 목소리가 들린다. "적의 언데드 병력이 돈드라로 들어오려 하고 있습니다." [돈드라까지 한 시간 안에 주파하겠다.] 시몬은 순간 고심했지만, 눈 딱 감고 가보기로 했다. 지금이 아니면 만날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시몬은 과감하게 대공에게 다가갔다. 대공 또한 시몬을 보았다. [누구냐.] 투구 사이로 음침한 안광이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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