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48화 "시몬 학생, 토토 학생, 방금 여학생 목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문 좀 열어주시겠어요?" 학과 내 공포의 대상이자, 그 어떤 자비도 베풀지 않고 절차대로 학생들을 징계위원회에 던져 버리기로 유명한 관리인. 매부리코의 기숙사 사감이 무섭게 굳은 표정으로 문을 두들겼다. 똑똑똑똑. "안에 있나요?" 사감은 더 말하지 않았다. 즉각 품속에서 열쇠 꾸러미를 꺼내 들고 돌리다가, 손의 감각만으로 원하는 열쇠를 찾아내 열쇠구멍에 넣었다. 절걱!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그녀가 안으로 들어갔다. "......." 기숙사 방은 이미 아무도 없이 휑했다. 창문도 닫혀 있었다. "우리가 잘못 들은 걸까요?" 함께 온 후배 관리인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기숙사 사감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성큼성큼 걸어가 창문을 열어젖혔다. 그러곤 팔을 쭉 내밀어 창문 뒤편을 훑었고, 이내 붙어 있던 뼈 하나를 떼어냈다. 하수인의 눈이 커졌다. "설마......." "네, 창밖으로 빠져나간 뒤에, 본 아머 기술로 창문을 닫은 겁니다." 오랜 관리원 하수인 경력으로 사감 자리까지 오른 사감에게, 이 정도 수법은 귀여운 수준이었다. 관리원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내일 아침에 시몬 학생과 토토 학생회를 사감실로 소환하겠습니다!" "......." 사감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열린 창밖을 보았다. 와아아아아아! 떠들썩하게 웃고 즐기는 소환학과 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에슈가 샴페인을 터뜨리다가 얼굴에 거품이 잔뜩 묻혔고, 주변의 친구들이 바닥에 나자빠지며 깔깔 웃어댔다. 물끄러미 학생들을 바라보던 사감은, 창문을 닫고 걸어가 손에 든 뼈를 시몬의 책상에 내려놓은 뒤 말했다. "오늘 하루 정도는 괜찮겠죠." 그녀는 그 말만 남기고 등을 돌려 걸어갔다. 하수인이 경악한 표정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사, 사감님이?' 아무래도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뜰 것 같았다. * * * 암흑제가 끝나가는 밤, 이제는 작별의 시간이었다. 시몬은 레테와 함께 그레리온의 동굴에 도착했다. 에버 키레를 잡은 뒤라, 이쪽 분위기는 많이 풀려 있었다. 다들 연이은 야근으로 피로에 절어 있었어도 표정 하나만큼은 좋았다. "이거 돌아가면 계속 생각나겠는데." 꽤 재미있는 광경도 있었는데, 언제 친해진 건지 팔라딘 한 명과 네크로맨서가 돌판 위에서 카드 게임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팔라딘들이 신앙을 지키며 굳건하게 서 있었지만, 가끔은 느슨하게 웃으며 네크로맨서들과 농담 따먹기를 하는 사람도 틀림없이 있었다. 시몬은 그 모습이 보기 좋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흐에에에―" 낯익은 사람이 축 늘어진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시몬이 활짝 웃으며 뛰어갔다. "성녀님!" 수확의 성녀도 시몬을 보고는 손을 슥 들어 올렸다. "오랜만이에여. 학생회장."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눼에에." 그때 갑자기 시몬의 발밑에서 밀들이 자라더니, 시몬의 뺨을 막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시몬이 아하하! 웃으며 뒷걸음질 쳤다. "자, 장난치지 마세요!" "내가 한 거 아니에여." 수확의 성녀가 어깨를 으쓱했다. "권능이 자동으로 발현되던데. 이 힘이 학생회장을 좋아하나 봐여." "무슨 말씀을! 윽, 간지러워요!" 저벅. 수확의 성녀의 고개가 돌아갔다. "아. 수고했어여. 별의 성녀." "나 참." 레테가 귀찮은 표정으로 앞머리를 쓸었다. "선배가 당하는 바람에 내가 개고생했잖슴까. 수확의 성녀라는 이름이 울겠슴다." "어쩔 수 없었어여." 그녀가 의자에 슬라임처럼 축 늘어졌다. "그 광신도가 이상한 공간으로 끌고 가서 가짜 여신이랑 싸우게 했어여. 신성이 안 통하더라구여." 아무래도 시몬과 레테가 함께 싸웠던 그 '가짜 신'을 상대한 모양이다. 레테가 콧방귀를 뀌었다. "가짜 신이고 뭐고, 나였다면 어떻게든 이겼을 검다." "거기서 멘탈 나간 거 까먹었...... 아야!" 레테가 시몬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시몬이 몸을 굽히며 옆구리를 매만졌고, 레테는 홱 고개를 돌려 버렸다. "어느새 헤어질 시간이로군." 저벅. 저벅. 이번 조사단을 이끌었던 유일한 까마귀 요원인 알레이스터가 걸어오고 있었다. 네크로맨서 요원들이 절도 있게 고개를 숙였다. "네프티스 님께서 다시 한번 성녀 두 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달하셨소. 우리는 결코 이번 도움을 잊지 않을 것이오." "적끼리 번지르르한 말은 됐어여." 수확의 성녀가 손을 까닥했다. "요구한 물건은 준비했겠져?" "물론이오. 확인해 보시오." 알레이스터가 아공간에서 상자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수확의 성녀가 상자를 열어보고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건 사람의 손이었다. 썩지 않고 온전하게 보관되어 있었다. "위대한 성물, '제사장의 오른손'. 확실히 반환받았어여." 레테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수확의 성녀를 보았다. "자, 잠깐만요! 우리 대가를 약속받고 온 거였어요?" "새삼 무슨 소리예여? 당연한 거져." 수확의 성녀가 눈의 실밥을 비비적거렸다. 레테가 얼굴이 벌게져서 말했다. "나, 난 이스라필 님한테 아무것도 못 들었는데요!" "그럼 진짜 순수하게 전쟁을 막자는 사명만으로 온 거예여? 아직 어리네여. 이게 어른의 비즈니스라는 거예여." 지켜보던 시몬이 쓰게 웃었다. 이스라필 이모, 이상주의자라면서 은근히 챙길 건 다 챙기는 실속파였다. "그리고 이런 물건 정도는 대가로 암흑연합에서 받아내야-" 성물상자를 닫은 수확의 성녀가 입꼬리를 올렸다. "혹여나 우리가 여기 왔다는 사실이 발각됐을 때 '할 말'이 생기는 거예여. 알아두세여." "아......." 멀찍이 뒤에서 지켜보던 카쟌은 눈 밑의 흉터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제사장의 오른손이라, 예상했던 것보다 큰 지출이군요." 알레이스터가 그 말을 받았다. "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네프티스 님의 의지가 크셨다네." 그때 알레이스터의 품속에서 통신 수정구가 울렸다. 보고를 들은 그가 말했다. "텔레포트 마법진의 준비가 완료됐소. 이동하지." 이내 모두가 텔레포트 마법진으로 이동했다. 다들 서로 작별인사를 하는 모습이었다. 며칠 동안 나름 친해진 사람들끼리 인사를 나누었다. 알레이스터는 수확의 성녀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카쟌도 한 팔라딘과 정보를 교환하고 있었다. "결국 새끈한 언니랑 못 자고 가서 아쉬운데." 금발의 팔라딘이 느끼한 윙크를 하며 말했다. 여성 네크로맨서 요원이 푸핫 웃으면서 중지 손가락을 내밀었다. "미쳤네. 니네 여신이 궁둥짝 안 후려갈기냐?" "생식은 신성하니 여신께서도 용서해 주실 것이다." 저런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친해진 사람도 있었다. 다들 바쁜 가운데. "레테." 소란을 틈타 시몬도 레테에게 다가왔다. 그녀가, 음 하고 머쓱하게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 학교까지 도와주러 와서 기뻤어. 무사히 잘 돌아가. 이스라필 이모한테 안부도 부탁해." 그녀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다음엔 당신이 에프넬에 와야 할 차례인 거 알죠?" "난 너무 잘 적응해서 문제일걸." 두 사람이 숨죽여 쿡쿡 웃었다. 그러고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 "......." 할 말은 산더미처럼 많았지만, 막상 이별의 순간이 찾아오니 이상하게 많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때 떠들썩한 주위를 한번 훑어본 레테가 흡 하고 숨을 들이마시더니, 성큼 다가왔다. 시몬은 주위에 희뿌연 연기 같은 게 펼쳐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곤. "!!" 하얀 머리카락이 맞닿으며 백합 향이 감돌았다. 이어지는 따뜻하고 포근한 감각. 레테가 시몬을 안아준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시몬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그때 시몬의 주머니 속으로 뭔가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이건?' 그리고 얼른 시몬에게 떨어져 나와 레테는 옅은 홍조를 띤 채 고개를 돌렸다. "그, 그럼 가보겠슴다." 그러곤 후다닥 도망치듯 텔레포트 마법진으로 달려갔다. 수확의 성녀가 제일 먼저 텔레포트를 탔고, 다음은 레테의 차례였다. "안녕히 가십시오! 성녀님!" "전장에서 만나면 좀 봐주시고!" 시몬도 손을 흔들었다. '잘 가, 레테.' 그녀가 손을 흔들며 웃었다. 푸른 빛무리가 그녀를 감쌌다. * * * 레테와 신성연방 사람들을 보내고, 에버 키레를 잡기 위한 임시 조사단도 해산. 시몬은 카쟌과 알레이스터와도 작별하고는 기숙사 방에 돌아왔다. 파티에서 와인을 잔뜩 마셨는지, 토토는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삐익! 삣! 삣! 편지를 가져다준 새는 아직도 가지 않고 총총거리며 기숙사에 눌러앉아 있었다. 아무래도 답신을 매달아줘야 떠날 심산이었다. 시몬은 새에게 간단히 물과 먹을 것을 챙겨주었다. "웃차."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 위에 벌러덩 드러누워 레테의 편지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편지를 뜯었다. 처음 새가 가지고 왔을 때는 편지 봉인이 제대로 붙어 있었는데, 레테가 뜯었는지 봉인이 뜯어져 있는 모습이었다. 시몬은 편지지를 꺼내 확인했다. -시몬에게. 따박따박 써내려간 레테의 정갈한 글씨체가 보인다. -안나 선생님께 편지를 받았습니다. 하늘 섬으로 편지를 바로 보낼 방법을 찾고 있다고 해서 보내는 거예요. 심부름을 하는 아이는 신수의 일종이라고 하네요. 답신을 써서 발목에 묶으면 알아서 먼 거리를 날아 하늘섬의 게이트를 무사히 통과할 거예요. 시몬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다음 장으로 넘겼다. -편지 보낼 방법만 알려주고 줄이기엔 딱딱하니까, 간단히 제 근황이나 쓸까 해요. 저는 여전히 에프넬에 다니면서 성녀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뭘 그렇게 하라는 게 많고 알아야 할 게 많은지. 여기 있으면 온갖 인간쓰레기들을 다 만날 수 있어요. 그녀는 성녀로서의 생활과, 거기서 만난 다양한 인간군상에 대해 늘어놓았다. 시몬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녀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갔다. '키젠 학생회장 일은 약과였구나.' 저쪽은 인간에서 반신이 되어야 하는 수업인 만큼, 무척이나 엄격하고 험난했다. 시몬은 새삼 본인의 일에 만족하며 이야기를 읽어나갔다. -너무 내 푸념만 늘어놓은 것 같네요. 당신은 키젠에서 잘 지내고 있나요? 학생회장이 됐다는 소식은 들었어요. 당신이 어깨에 힘주고 등 꼿꼿하게 펴고 돌아다니는 걸 떠올리니 기분이 나빠지네요. 나한테 걸리면 등을 반대로 접어버릴 거예요. 무서웠다. 시몬은 척추가 잘 있는지 무심코 등을 쓸어보고는 다음 장으로 넘겼다. -기억나요? 다음 방학에는 내 쪽에서 암흑연합에 넘어가기로 약속했죠. 안나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넘어가려고 노력은 하겠지만, 성녀수업 일정이 밀려서 가지 못할지도 몰라요. 그래도 당신은 레스힐에서 딱 대기하고 있으세요. 명령이에요. 당신이 키우는 신수 아이들을 보고 싶으니까요. 당신의 신성마법 실력도 얼마나 좋아졌는지 체크해 봐야 해요. -사실 에프넬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요.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국경이 닫힐지 걱정이에요. 그래도 만약 우리가 방학 때 다시 만나게 되면 꼭-!@!%!^!^@%! 시몬은 그 옆에 말을 깃펜으로 마구마구 덧칠한 모습이 보였다. 잉크가 마른 지 얼마 안 된 걸 보니 레테의 짓이었다. 저 덧칠에서 그녀의 부끄러워하는 얼굴이 보이는 듯했다. 시몬은 푸핫 웃음을 흘렸다 "아, 무슨 말이었는지 궁금한데." 편지지로 얼굴을 푹 덮으며 시몬이 두 팔을 벌렸다. 새가 짹짹하며 날아와 시몬에게 답신을 쓰라는 듯 부리로 콕콕 팔을 찔렀다. * * * 로크섬. 키젠 본부, 네프티스의 집무실. "어, 연결됐다!" 네프티스가 말했다. 수정구에서는 치직! 칙! 하고 노이즈가 연신 들리고 있었다. 동시에 휘이잉 하고 바람이 휘몰아치는 소리도 들린다. "안뇽! 대공! 바빠?" 지직! 지지지직! 통신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아 보였다. 잠시 후 누군가의 음성이 들렸다. -한가로우십니까. 절도 있으면서도 차분한 목소리. 폴짝 뛰어서 본인 의자에 폭 올라간 네프티스가 칭얼거리는 소리를 냈다. "힝! 너무해! 북부에 연락한다고 벌써 백 번은 넘게 시도한 끝에 잡힌 신호란 말야!" -바빠요. 끊겠습니다. "잠깐! 잠깐마안! 내 말 좀 들어봐!" 그녀가 씩 웃으며 깃펜을 들어 올렸다. "대공! 혹시 7군단 소식 들었어?" -......예. "와, 그런 험지에도 소식이 들어갔다니! 난리가 나긴 났나 보네!" -7군단장의 정체라면 저도 아는 바가 없습니다. 네프티스가 손을 휘휘 저었다. "그거 물어보려고 대공에게 연락했다고 생각해?" -......이미 그자가 누군지 알고 계시는군요. "응. 하지만 아직 세상에 드러내기엔 군단장으로서 허점이 너무 많아. 너무 위험하기도 하고. 그러니." 네프티스의 입꼬리가 무섭게 올라갔다. "군단장은 군단장이 맡아서 가르쳐 주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데." 잠시 통신구에서 침묵이 일었다. 그러다. 삐이- 삐이- "잠깐! 대공! 대고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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