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21화 시몬은 간만에 여유를 되찾았다. 오늘 참가할 경기도 끝났고, 소환학과의 1위 또한 굳건했다. 첫날에는 암흑제 걱정으로 신경이 바짝 곤두서 있었는데, 둘째 날부터는 마음이 편해졌다. 여유도 생겼으니 산책 겸 순찰로 이곳저곳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사람 진짜 많네.' 암흑제 기간 동안은 로크섬 전체가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 길거리 하나 텅 비어 있는 법이 없었다. 길마다 노점들이 쭉 깔려 있고, 관람객들은 화기애애하게 웃으며 경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 우드빌 경기장에 '발락'이 나온대!" "보러 갈까?" 시몬도 귀가 솔깃해지는 것을 느꼈다. 에이젤이 없는 키젠에서 최강인 발락의 경기를 한번 구경해 볼까도 생각했지만, 일단은 학생회로서 순찰임무가 먼저였다. "키젠의 학생회장이죠?" "경기 잘 봤어요." 걸어 다니다 보니, 학생회장 코트를 입지 않아도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곳곳에서 사람들이 응원의 메시지를 던졌다. 비단 시몬뿐만 아니라, 키젠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지나가고 있으면 힘내라고 한마디 해주는 게 암흑제의 문화인 것 같았다. 심지어 먹을 걸 공짜로 건네주는 노점주인도 있었다. 학생회 신분인 시몬은 여러 번 사양하다가, 결국 돈을 내고 아이스크림 하나를 구매했다. 두두두두두! '앗.' 산책로 옆의 마차 도로에는 마차들이 끊임없이 오가고 있었다. 흙먼지가 피어올랐기에, 시몬은 잽싸게 마차 도로 쪽을 등지고 아이스크림을 지켰다. "서둘러 주세요!" "샤텔의 경기에 늦겠어요!" 젊은 부부가 그렇게 말하며 마부를 보채는 모습이 보였다. 다들 암흑제 관광을 열정적으로 즐기고 있었다. 이런 암흑제에 조금이라도 기여했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끼며, 시몬도 계속 걸었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걷다 보니 어느새 로크섬 중앙에 위치한 '노점광장'까지 왔다. 키젠에서 가장 많은 노점이 밀집된 구간. 특히 1학년들이 수업 끝나자마자 달려오는 곳이다. 벌써 맛집 리스트까지 생겨서 그들 사이에 긴밀히 공유되는 것 같았다. "바싹 튀긴 새우요리 드셔봅쇼!" "감사합니다! 손님!" 점심시간이라 사람들이 상당히 붐볐다. 시몬은 테이블에 앉은 키젠 학생과 가족들이 식사하는 모습을 잠시 보았다. '부모님은 영주 일 때문에 바빠서 못 오신다고 했고.' 아쉽긴 했지만, 어차피 두 사람이 방문해도 학생회 일 때문에 피차 얼굴 느긋하게 보기는 힘들었으리라. 시몬은 순찰을 계속했다. 그러다. "헤이! 마이 베프!" 딕이랑 딱 마주쳤다. 식당 테이블에 앉은 그가 힘차게 손을 흔들었고, 그의 앞에는 딕과 비슷하게 생긴 주근깨 소년들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시몬 형!" "반가워요! 시몬 형! 셋째인 딕 바로 아래의 쌍둥이 동생들. 빌 헤이워드와, 알 헤이워드였다. "와! 둘 다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모처럼 만난 절친의 동생들이니, 시몬도 잠시 시간을 내어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빌 헤이워드와 알 헤이워드는 아침에 봤던 암흑제 경기 이야기를 왁자지껄하게 떠들었고, 딕은 또 콧대가 한껏 높아져서 잘난 척을 했다. "이거 다~ 형이 한 거야! 어? 여기 노점 하나하나 내 손이 안 들어간 게 없다. 이 말씀이야." 빌과 알이 콧방귀를 뀌고는 정말이냐는 듯 시몬을 응시했다. 시몬은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야, 딕이 없었으면 암흑제는 시작도 못 했을걸." "들었지?" 오올~ 빌과 알이 셋째 형을 다시 봤다는 듯 휘파람을 불었다. "솔직히 딕 형이 학생회 총무란 것도 로크섬에 오기 전까진 안 믿었어요!" "400위가 학생회에 어떻게 들어가? 하고!" 하하하하하! 빌과 알이 큰 소리로 웃어댔다. 딕의 입꼬리가 파들파들 떨렸지만, 애써 태연한 척 어깨를 으쓱했다. "키젠에 입학하는 것도 힘들 것들이, 어? 니들은 키젠 생활 한 달만 하면 눈물 줄줄 쏟으면서 집에 보내주세요! 하고 눈물 쌀 게 뻔하다. 뻔해." 빌과 알은 셋째 형의 허세는 가볍게 무시하며 시몬을 보았다. "참, 시몬 형!" "우리 코어 개방했어요!" 시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 진짜로?" 빌과 알이 동시에 손바닥을 펼치는 모습이 보였다. 그 상태에서 한참을 낑낑대고 있자. "이거 봐요!" 두 사람의 손 밑에 검은 방울이 자그맣게 맺혀 있었다. 정말로 칠흑이었다. 시몬이 헛웃음을 흘리며 딕을 보았다. "어떻게 된 거야? 아버지가 네크로맨서가 되는 거 허락하신 거야?" 딕이 고개를 저었다. "에이, 그럴 리가. 아버지는 빌이랑 알을 평생 창고에 가눠놓고 창고지기로 키울 생각이셔. 근데 얘들이 워낙 내년에 키젠에 입학하고 싶다고 졸라서, 투자금 좀 털어서 코어 개방 비용 대줬지." 시몬은 조금 감격한 표정으로 딕을 보았다. "형 노릇 제대로 했네." 코어 개방 비용은 상당한 걸로 알고 있다. 키젠 생활에도 돈이 많이 들어갈 텐데, 그런 거금을 선뜻 동생들에게 주는 건 쉽지 않은 선택이었으리라. 시몬은 살짝 목소리를 낮췄다. "근데 진짜 괜찮겠어? 아버지한테 말씀은 드려봐야 하는 거 아냐?" "쟤들이랑 약속했어." 딕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년에 키젠 입학시험 치러보고, 안 되면 그냥 가업을 이으라는 게 조건이야. 쟤들이 키젠에 붙으면 아버지도 반대하진 못하시겠지." 그건 그랬다. 키젠 입학은 어지간한 고위귀족들도 잔치를 벌일 정도로 중대사다. 키젠에 붙었는데 상인 일을 계속하라고 말하는 아버지는 없을 것이다. 딕은 조용히 덧붙였다. "......저렇게 좋아하잖아. 한 번뿐인 인생인데, 시도도 못 해보고 꿈을 접는 건 너무 가혹하니까." 시몬은 진심으로 감격한 눈으로 딕의 어깨를 툭 때렸다. "너 멋있다 진짜." "어허, 그걸 이제 알았다고?" 딕이 낄낄 웃고는, 여전히 칠흑을 쥐어짜 내고 있는 동생들을 보며 말했다. "근데 니들, 키젠 떨어지면 그걸로 땡인 거다? 그 밑에 3대 네크로맨서 학교. 어? 알란드, 시에란, 모이란 그딴 데 이 형은 취급 안 해준다?" "우와~ 엘리트주의!" 사이 좋은 헤이워드 형제를 보며, 시몬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때. "하, 학생!" 살이 뒤룩뒤룩한 중년 여자가 뒤뚱거리며 달려왔다. "그, 그 완장! 혹시......!" 시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학생회입니다, 부인. 무슨 일 있으신가요?" "내 지갑! 지갑을 가져갔어요! 저기 저 사람이!" 소매치기다. 시몬의 표정이 굳어졌다. "빌, 알. 먼저 가볼게. 재밌게 구경하다 들어가." 딕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나도......!" "동생들이랑 있어줘, 딕." 시몬이 씩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가족들과의 시간이잖아." 딕이 쩝 하고 무안하게 입맛을 다시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래, 고맙다." "저녁에 학생회실에서 봐." * * * 헤이워드 형제와 헤어진 시몬은 중년 부인과 함께 달리며 말했다. "소매치기의 인상착의는요?" "파란 옷! 파란 옷에 두건!" 그 말을 들은 시몬은 망설임 없이 다리에 칠흑을 끌어올렸다. 그러곤 능숙하게 노점 건물을 밟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발견.'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마침 헐레벌떡 뛰어가고 있는 파란 옷에 두건을 두른 남자가 보였다. 시몬이 손가락을 휘젓는 것으로 스켈레톤의 뼈가 날아가 그에게 '본 아머'를 입혔다. "이, 이게 뭐야!" 소매치기는 달아나는 속도 그대로 방향을 돌려 시몬과 중년 부인 쪽으로 돌아왔다. 테이블에서 맥주 한잔 마시고 있던 아저씨들이 '와하하!' 유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지갑은 돌려받겠습니다." 그렇게 지갑을 중년 여자에게 돌려주고, 소매치기는 근처의 하수인들에게 넘겼다.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의 작은 박수갈채도 받았다. '여길 집중적으로 순찰하면 되겠다.' 사람이 많다 보니 이런저런 사건 사고도 많았다. 노점상에 항의하다가 다투는 사람, 학과 경쟁으로 시비 붙은 학생들, 스켈레톤을 서빙으로 쓰다가 통제를 벗어난 경우도 있었다. 시몬이 열심히 사고를 수습하며 다니고 있는 사이. "저기 시몬 선배님 맞지?" "학생회장 선배님! 여기예요!" 이번에는 근처에서 식사 중이던 1학년 돌연변이 후배들과 만났다. 사샤와 몰리 공주. 그리고 오늘은 아서도 껴 있었다. "시몬 오빠! 오빠 경기 또 언제 해?" "사샤, 너! 버릇없게 학생회장 선배님을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아하하! 시몬 선배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마구 떠들어대는 1학년들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시몬이 웃으며 그쪽으로 다가갔다. "다들 안녕. 재밌게 놀고 있어?" 네에에-! 1학년들이 활기차게 대답했다. 시몬이 옆머리를 긁적였다. "왠지 미안하네. 1학년들은 경기에 참여할 수 없는 룰이라서." 암흑제는 학과 대항전이다. 아직 학과가 없는 1학년들은 당연히 참여할 수 없다. 로크섬 전역이 달아오르는 즐거운 축제 와중이지만 1학년들은 정상수업을 받아야 한다. "무슨 말씀을." 몰리 공주가 긴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웃었다. "5년에 한 번이니까 암흑제를 아예 보지도 못하고 졸업하는 기수도 있잖아요? 저희 기수는 운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맞아요!" "경기 너무 재밌어요! 학생회장 선배님! 멋진 축제를 만들어줘서 고마워요!" 그 말에 시몬이 당황하며 손사래를 쳤다. "아, 아냐! 만들다니 무슨. 내가 한 건 별로 없어." "학생회장 선배님이 이거 다 한 거 아니에요?" 1학년들 후배들의 눈에는 그만큼 시몬이 대단한 사람처럼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너희들." 근처의 노점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한 시몬이 1학년들에게 말했다. "다음 수업 준비하려면 시간 많이 빠듯한 거 아냐?" 1학년들이 일제히 움찔한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피했다. 딱 걸렸다. "먹은 건 내가 치울 테니까 지금이라도 빨리 달려." "죄, 죄송해요!" "실례하겠습니다!" 뒤늦게 위기감을 자각했는지 1학년들이 후다닥 준비하는 모습이 보였다. 후배들이 먹은 걸 치우던 시몬이 의자에 놓인 가방을 들어 올리며 급히 소리쳤다. "아서! 가방 가져가야지!" 이미 초월적인 육체능력으로 혼자 저만치 앞서 나가 있던 아서가, 다시 엄청난 속도로 돌아와 시몬의 앞에 섰다. "감사합니다! 하하하! 큰일 날 뻔했습니다!" "정신 차려." 시몬이 웃으며 아서의 이마에 톡 딱밤을 때렸다. "덜렁대는 것 좀 줄이고." "옛! 죄송합니다!" "그리고 혼자서 막 달려가지 말고 동기들도 좀 챙기고. 여기서 너 혼자 남자잖아?" "앗! 확실히 그렇군요. 명심하겠습니다! 하하하!" 제 짐을 아공간에 넣고 있던 사샤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저 눈치 0단 바보왕한테 신사의 매너를 가르치려고? 힘들걸." "바보왕이 아니라 용병왕이다!" 시몬이 싸우는 두 사람을 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는 그때. "!" 갑자기 등 뒤에서 소름이 쫘아아악 돋았다. '뭐......야?' 온몸의 피가 싸늘하게 식는 기분이었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고 뒷목에 식은땀이 흘렀다. 스르르르륵- 등 뒤에서. 무언가 끔찍한 게 지나가고 있다. 돌아보지 마. 돌아보지 마. 돌아보지 마. 전신의 세포가 그렇게 경고하고 있다. 빨간 불이 켜지고 경종이 울린다. 시몬의 세계가 새빨간 피처럼 붉게 물들었다. 그저 돌아보면. 자신은 물론, 여기 있는 1학년들, 헤이워드 형제들, 그리고 주위의 다른 사람들까지. 휘말릴 것 같다고 생각했다. '.......' 눈이 충혈되고 손등이 힘줄이 돋아났다. 시몬은 침착하게 칠흑을 일으켜 전신으로 퍼뜨렸다. '피할 수 없어. 돌아봐야 해.' 모든 대비를 마친 시몬이 삐걱거리는 고개를 돌려 마침내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웅성 웅성 웅성! 느려진 시간이 원래대로 돌아오고, 보이는 건 무수히 많이 지나가고 있는 인파들뿐. 시몬이 다급히 달려가 주위를 둘러봤지만. '그것'은, 인파에 섞여 지나갔다. "시몬 오빠?" 사샤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무슨 일 있어?"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시몬이 진땀을 흘리며 말했다. "늦겠다. 빨리 강의실로 돌아가야지?" "응." 마지막으로 사샤가 떠났다. 시몬은 급히 피어의 분신을 두들겼다. '피어! 피어! 뭔가 못 느꼈어요?' 잠시 후 피어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냐? 소년!] '약간 그, 막 이상한 게......!' 너무 놀라서 그런지 생각이 자꾸 꼬인다. 생각을 정리해 피어에게 물었지만, 피어는 수상한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뭐였지? 그건.' 시몬은 인파를 따라 빠르게 걸어갔다. 내가 잘못 본 건가? 어떻게 '그런 게' 이런 번화가에서 아무렇지 않게 지나갈 수 있는 거지? 나는 뭘 느낀 거지? 그리고. '지금 암흑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시몬은 전신의 감각을 기민하게 활성화한 다음 발 빠르게 달려나갔다. '늦지 않았어.' 그것이 지나간 방향으로 뛰었다. 추격이라긴 뭣하고, 멋대로 움직이는 예측에 가까웠지만 어쩐지 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움직여야 했다. "......." 척. 마침내 시몬이 뜀박질을 멈추고 노점거리의 뒤편을 보았다. 인적이 없는 이곳엔 조리도구들이나 식재료가 든 상자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시몬은 그곳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팟! 그 순간. 오감이 극도로 민감해진 시몬은 등 뒤에서 다가오는 손길을 감지했다.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다가오는 손목을 붙잡아 내리고, 상대를 향해 뛰어들며 주먹을 내질렀다. <홍펭 오리지널 - 취타> 푸칵! 그러나 날카로운 뭔가가 올라와 주먹의 방향을 틀며 취타를 끊어버렸다. '!' 강하다. 시몬이 급히 자세를 바꿔 발차기를 날리려고 했지만 상대가 다리를 부딪혀 오며 그 동작을 끊고 훅 다가왔다. "진정해라 시몬." 처억! 척! 서로의 주먹이 상대의 얼굴 앞에서 멈췄다. 허억 허억 숨을 거칠게 내쉬던 시몬이 비로소 상대를 확인했다. 빛바랜 회색 머리, 사나운 눈매와 날카로운 턱선, 그리고 오른쪽 눈에 길게 찢어진 흉터까지. "찾고 있었다." 비로소 손을 내린 시몬의 표정에 짙은 안도감이 드러났다. 1학년 때는 밤마다 사라지던 룸메이트. 사실 그 정체는 네프티스에게 직접 임무를 받고 키젠에 입학한 스파이 겸 요원. "카쟌!" 언제나 매번 시몬의 가장 큰 협력자로 활약해온 카쟌 에드발트였다. 그가 버릇처럼 눈가의 흉터를 긁적이더니,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축제는 충분히 즐겼길 바라마.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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